아련한 추억 속의고향 풍경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

서양미술의 역사는 대개 유럽 대륙을 무대로 발달해 왔어요. 이탈
리아나 프랑스, 스페인 같은 나라가 그 중심에 있었지요. 그러나 풍
경화가 처음 꽃을 피운 곳은 바다 건너 영국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에서 풍경화가 한때 인기를 누리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에 얼굴을 내민 것은 영국이지요. 그 전까지 영국에는 이렇다 할 만
한 그림의 전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초 영국에 뛰어난 풍경화가들이 등장했어요. 그 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컨스터블이 될 것입니다. 그의 그림은 가히 풍
경화의 교과서라 불릴 만합니다. 멋진 경치를 보았을 때 우리는 흔히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컨스터블의
그림은 그 표현에 딱 어울릴 만한 그림이지요. 그가 남긴 최고의 명
작 〈건초 수레〉를 한번 볼까요?
초원 숲 사이로 흘러나온 개울물이 화면 앞쪽에 시원스레 펼쳐져
있습니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나무와 집, 하늘의 흰 구름까지 어른
어른 그림자를 비추고 있어요. 지금 그 개울을 건초 수레가 건너고
있지요. 두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의 바퀴에선 철퍼덕철퍼덕 물소리가
들릴 듯합니다. 수레를 보고 뛰쳐나왔는지 개 한 마리가 물가에 서
있어요. 고개를 휙 돌린 개의 시선이 화면의 중심을 건초 수레로 더
욱 모아 주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 수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저 멀리 초원 끝에는
허리를 숙인 채 낫으로 풀을 베는 사람들이 있어요. 흰색 점으로 개
미처럼 작게 그렸기 때문에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하지요. 이 수레는
지금 그곳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빈 수레지만 돌아올 때 건
초를 가득 싣고 오겠지요. 수레 위 두 농부의 머리 바로 위쪽에는 시
원한 소나기라도 한 줄기 뿌릴 듯한 짙은 구름이 있고, 먼 하늘에는
맑은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어요. 낮게 드리운 구름과 먼
하늘의 구름을 잘 묘사해 공간적 깊이감이 느껴집니다.
그림 왼쪽에는 붉은 벽돌의 오두막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푸른 초
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이지요. 개울로 연결된 이 집의 난간 끝에는 한
여인이 앉아 물에 손을 담그고 있어요. 윤곽이 선명치 않지만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맞은편 개울가 수풀 속에도
한 남자의 윤곽이 그려져 있는데 긴 막대기 같은 걸 들고 있어요. 낚
시를 하던 중에 갑자기 건초 수레가 개울로 뛰어들자 낚싯대를 걷어
올린 게 아닐까 싶네요. 수풀 아래에는 그가 타고 온 듯한 나룻배가
매여 있습니다.
그림 속 장면 하나하나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초원
을 가로지르는 맑은 냇물, 파란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 나무숲 사이
에 파묻힌 아담한 오두막집, 개울을 건너는 건초 수레, 수레를 보고
짖는 강아지, 어느 것 하나 고향의 풍경을 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습
니다. 아련한 옛 추억 속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는 어느 나라에나
있게 마련인데, 그런 노래에 나올 법한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아
마도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
라면, 어린 시절 철없이 뛰어놀던 옛 동산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설령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왠지 마음속에 이런
고향이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도대체 그런 환상은 어
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 그림은 화가가 막연히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그린 게 아니에요.
컨스터블의 실제 고향 풍경입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영국의 서퍽 주
를 비껴 흐르는 스투어 강 근처랍니다. 그림 속에 보이는 시냇물도
스투어 강의 한 줄기지요. 그는 고향을 떠난 뒤에도 어린 시절 노닐
던 강변의 풍경을 그리워했어요. 그래서 틈틈이 고향으로 돌아와 스
케치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점의 멋진 풍경화를 완성했지요.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랍니다. 그림 속 풍경이 매우 아련하고 정감 넘
치면서도 현실감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지요. 야외에
서 실제 풍경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이런 멋진 그림이 탄
생한 것이죠.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에 보이는 집입니다. 이 집은 흔히
윌리 롯의 오두막으로 알려져 있어요. 윌리 롯은 귀머거리에다가 성
격이 괴팍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이 집에서 태어나 여든 살이 넘도록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네요. 굴뚝 위로 흰 연기가 살짝 보이는데 집안
에 윌리 롯이 살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 주는 듯합니다. 그림에 보이
는 오두막과 강 주변은 현재 영국의 문화재 보호 재단이 관리하며 잘
보존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림 속 풍경을 실제 눈으로 보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존 컨스터블(1776~1837년) | 터너와 더불어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예요.
영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서퍽 주 이스트버골트에서 태어났어요. 근처에 스투어 강
이 흐르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지요. 스투어 강 유역은 옥수수를 많이 재배하는 농
업지대였을 뿐 아니라 목초지가 잘 발달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습니
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제분업자였는데, 그 지방에서 재배한 옥수수를 빻아 스
투어 강을 드나드는 배에 싣고 런던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했지요. 어린 시절 보
았던 잘 자란 옥수수 밭과 넓은 목초지, 강줄기를 따라 오가는 거룻배들은 멋진 풍
경화를 그려 내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의 낭만적 풍경화는 들라크루아, 밀
레, 제리코 등 여러 화가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훗날 인상파 화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답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일부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