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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7일~19일 2박 3일 여정으로 무작정 혹은 무모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배낭에 최소한의 생필품과 최소한의 카드, 최소한의 현금, 한권의 책을 챙기고 혹 비나 눈을 만날 수도 있겠다 싶어 겉옷은 스키복으로 무장하고...
애초 알아둔 대로라면 용산으로 가 강릉에서 묵은 뒤 안동 부산 순천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으나 귀가하는 차선은 도착 시간이 너무 늦고 완행열차밖에 없어 역순으로 움직이기로 했습니당.^^
순천에서 안동행 기차를 타고 환승하기 위해 내린 동대구역에서 열차시간표를 보니 강릉까지 가는 열차가 한 대 남아있어서 전화예약해두었던 안동게스트하우스를 취소하고 곧바로 강릉으로 go go ssing~
강릉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한 시간도 남겨두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역사에서 누군가가 야광봉을 들고 빨리빨리 나가달라는 재촉에 이건 또 뭥미?했더니 영화촬영 중이라나요. 웬 떡! 하고 밍그적거리는데 두터운 파커를 뒤집어쓴 스탭들이 이곳저곳에 서서 짜증이 여간 아닙니다. 하긴, 이 추운 날씨, 이 시간에, 배우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스탭들은 뭔 고생인가,하면서도 치사빤스다싶었습니다. 결국 연기자는 확인 못하고 돌아섬...
제가 이틀을 묵게 될 곳은 경포대에서도 택시로 5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하는 '강릉게스트하우스' TV연예오락프로그램 '1박2일'팀이 묵었던 곳이라네요. 과연 '1박 2일'팀의 사진과 사인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습니다.게스트하우스는 혼자 길을 나선 여행자에게는 최적의 숙박시설인것같습니다. 별채에 여행자들이 모여 있다며 합류하기를 권하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아직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 사양하고 2층의 휴게실에서 캔맥주 2개 마시고 취침.
아침 식사 중 바람을 넣었더니 게스트하우스 싸장님이 승합차로 대관령목장에 데려다주시기로 해서 젊은 청년 5명과 join. 아가씨들은 대부분 아침 식사에도 나타나지 않고 잠자리에 있더군요. 합류한 청년들은 2인 2팀에 나처럼 홀로족이 1팀. 모두 숫기도 없고 되바라진 구석도 없고 그저 친구와 어디든 쏘다니고 싶어 온듯 보이더군요. 하긴 여행 좋아하는 사람치고 불량한 사람은 없죠.^^
대관령에 오면 대부분 양떼목장을 찾는다는데 이곳 싸장님이 적극 삼양목장을 추천하셔서 삼양목장으로~ 눈이 많기로도 유명한 곳인데 어제 그제는 이 곳 사람도 경험하기 힘들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네요... 오늘 같은 날 삼양목장에 올라가면 정말 끝내줄거라며 가는 길 내내 사장님이 호언장담하는데... 뻥이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일행 중 한명이 스위스의 융프라우보다 아름답다고 즈이들끼리 말하는데 공감백배입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가을동화' 영화 '연애소설' 속 이쁜 장면이 모두 이 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네요. 촬영지마다에 팻말도 세워져있습니다.^^
강릉으로 나오는 길에 싸장님이 나더러 양떼목장 가고 싶으면 여기 횡계서 내려줄테니 택시타고 들어가면 된다고 하네요. 내려서 다시 양떼목장으로~ 오고 가는 길 택시비가 들긴했지만 양떼목장은 양떼목장대로 좋았습니다. 굳이, 혹은, 거창하게 비교하자면, 삼양목장은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함을 느꼈다면 양떼목장은 자연은 늘 인간에게 열려있고 함께 하고 싶어하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다고 할까. 너무 오바했나요? 암튼,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으면 산책로 입산을 금지한다고 경고하시는데 시킨대로 따르려고 혼자 이 먼길 올 내가 아니잖아요 ㅋ. 몇번 미끄러져 아찔한 적도 있고 정상에 서니 모자가 벗겨지고,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얼굴을 때리는데 모래바람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쓰렸습니다.ㅠㅠ
양떼목장에서 횡계로 나오는 택시기사님께서 내일부터 눈축제가 열리니 한번 들러보라며 친절하게도 버스터미널 가는 길까지 자세히 알려주시고 눈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내려주셨습니다. 뜻밖의 횡재였지요. 게다가 곤드레나물밥 잘하는 곳을 여쭤봤더니 '고향이야기'라는 식당도 알려주시고ㅎ. 눈축제가 열릴 곳 입구에 황태덕장이 있어 그 곳에서도 찰칵.. 아직 눈 조각은 미완의 작품이 많았고 먹거리장터도 꾸미는 중이더군요. 한쪽에는 레이싱로가 만들어져 나처럼 성급하게 측제장을 찾은 아이들이 바이크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었고... 그러나 오늘은 시기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썰렁하고 황량한 느낌이 더 강했지만 내일 개장하면 또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르겠지요.
식당에 도착한 시간이 3시가 넘은 지라 손님은 없고 종업원들이 식사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리잡은 잠시 후에 가족이 들어오더군요. 남편이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매운탕이며 돌솥밥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내되는 분이 짜증을 부립니다. 라면이 어쩌고 제육덮밥이 어쩌고 햇반 사서 콘도에 들가서 어쩌고... 남편 왈 그런건 휴게소 메뉴고 가격 생각하려면 뭐하러 여행왔겠냐고...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은 아예 엄마를 상대도 안 하고,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딸내미는 엄마한테 시선도 안 주고 엄마도 딸을 외면하고... 아빠는 어떻게든 이 어색한 분위기 바꿔보려고 애들한테 스마트폰이야기며, 이과, 문과별 진학진로에 관해 이야기하는데(아빠가 고등학교 교사인듯) 애들은 시큰둥하고.... 보는 내가 다 불편했습니다. 사춘기 즈음의 자녀를 둔 대부분 우리나라 가정이 저런 모습일까 싶으니 왠지 서글퍼지더군요. 내 아이에게 고마워해야겠습니다.
강릉에 도착한 건 4시 30분쯤. 유명한 짬뽕집이 있다는데 방금 식사를 한 후라 시내 어슬렁거리다가 배가 고파지면 먹어볼 생각으로 중앙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순천 중앙시장보다 규모도 훨씬 컸고 구획이 잘 되어 있는 것이, 아마 시에서 정책적으로 관리한 듯싶습니다. 그러나 규모나 잘 정리된 것에 비해 시장을 썰렁했습니다. 워낙 추운 날씨탓인지 전체적인 불황탓인지 모르겠지만 짠했습니다. 비닐봉투에 물건을 사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괜히 내가 다 반갑고 고마울 정도였습니다. 시장 끄트머리 먹자골목 좌판에서 메밀전과 감자전을 하나씩 시키면서 아주머니께 제가 식사한 지 두 시간도 안돼서 그러니 양을 적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드렸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 보니, 아니, 나중에 게스트하우스아르바이트생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은 건데, 아주머니께선 메밀전은 돈을 안 받으신 것같더군요. 아르바이생 말이 메밀전은 기본이 세장으로 한 장은 안해준다는데 나는 한 장을 시켰고 당연히 한장만 나오더군요.
감자전을 부치기 위해 감자를 갈고계시는 아주머니 앞에 앉아 먼저 나온 메밀전을 한 점 집어드는데 웬 남자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잠시 검문있겠습니다, 합니다. 몸매나 말폼새가 자세히 보니 옷이 그럴 뿐이지 여자가 분명합니다. 그녀는 아주머니 앞에 호떡이 담긴 봉투를 던져주며 소주 한병을 시켜놓고 다시 자기 짐을 부시럭거리며 뭔가를 찾더니 이번에는 홍시를 꺼내 한입 크기로 잘라놓습니다. 홍시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오늘은 술 안 마시려 일찌감치 퇴근해 버스타러 갔더니 길이 꽁꽁 얼어붙어 버스가 끊겼다며 어쩔 수없이 술을 마셔야하는 팔자라며 하하 웃어댑니다. 그러면서 이곳저곳 순댓집이며 떡집이며 전집을 돌아다니며 언니, 나 외상값 못 갚아. 월급탈 때까지 기다려. 합니다. 그녀에게 외상을 준 시장 사람들은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합니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녀는 딸년이며 남편 흉을 늘어놓습니다. 저 여자와 같은 이들도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습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업신당하고, 밖에 나와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여성성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그녀를 가족들은 대놓고 창피해하고, 그런 자신이 밉고,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술, 담배에 의지하고, 가족에게 정을 못 받으니 여기저기 정을 흘리고 다니고, 그러면서도 자기 관리에 부실해,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하며 살아가는 ...낯선 듯하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얼굴입니다.
강릉의 또 하나 명소는 안목커피 거리입니다. 우리나라 원두커피 1세대들이 자리잡은 곳이 강릉이랍니다. '봉봉방앗간'이니 '보헤미안'이니 '테라로사'가 그곳입니다. 싸장님의 적극 추천으로 '테라로사'로 가기로 합니다. 택시로 이동하면서, 잠깐,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맛있는 커피보다는 커피 거리라는 분위기인데... 하는 후회가 쬐끔 들기도 했지만 분위기와 커피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아마 지금껏 마신 커피 중 베스트군을 차지할 정도?
숙소로 돌아오니 9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어제, 오늘 아침의 얼굴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고 새로운 얼굴들이 도미토리와 휴게소를 채우고 있더군요. 불금이어선지 어제보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여행자가 곱절은 많아 보입니다. 또래끼리 공유되는 친화력인지 젊은 세대의 문화가 그런지, 그들은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만들고 각자 자기 소개를 합니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첫 발령을 받아놓은 초등학교 신임 남선생님, 브랜드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친구 사이인 여자애들 둘, 자매,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는 20대 후반(28세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의 느끼녀, 갓 제대한 남학생, 인사한지 5분도 안되어 자신이 고등학교 국어교사임을 드러내는 미모의 여교사도 있었궁 ㅎ.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자신의 위치, 격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아닌 척 하면서, 알고보면 드러내놓고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우낀건 여교사가 그 정도의 레벨이 아닌뎅 ㅋㅋㅋㅋ
아, 물론 나는 그들 사이에 들앉지못하고 휴게소 한쪽 구석의 컴퓨터 앞에서 내일 아침 용산행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지만 귀는 열어두고 있었다는 ㅋㅋㅋ
그렇게 강릉의 둘쨋날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에 술자리에 가있던(6인실이 꽉 찼는데 자매 중 동생과 저만 침대 속에 있었다는...) 여자애가 들어오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원없이 뱃속의 것들을 뱉아냅니다. 그러고는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는 듯 방을 나갑니다. 혼자 나선 여행이 이런 장점은 있네요. 스스로 자기 관리가 된다는 거. 끝장을 볼 수 없다는 거. 그러니 체력이 되고, 체력이 되니 여행이 편합니다.
어제 저녁에 pick up 신청을 해 두었더니 아침 일찍(8시) 싸장님이 승용차로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십니다. 작은 써비스가 큰 편리와 감동을 주더군요. 강릉 시내 홈플러스(번화가)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강릉역으로 가는 버스노선을 물었던니 걸어서 5분쯤 걸리는 거리라고 합니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내가 타고자 하는 청량리행 열차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같습니다. 아침부터 뭔가가 딱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토요일이서인지 게다가 아침이었고, 이틀전 강릉역에 도착할때와 역 풍경이 사뭇 다릅니다. 청량리행 무궁화호와 관광목적인 바다열차가 10분 간격을 두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어서 역은 무지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여행하면서 스스로 지킬 것 가운데 하나가 하루에 우유 500ml 마시기인지라 우유를 사기 위해 역사내 편의점에 들렀는데, 내 앞에 잔뜩 멋을 부린 아주머니가 병에 든 커피를 계산하기기 위해 내미니 창구의 아가씨가 병의 겉을 싸고 있는 비닐을 벗깁니다.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며, "지금 먹을 거 아닌데..." 하시니 "네, 비닐만 벗기고 뚜껑은 놔둘게요. 이 비닐이 벗기기가 힘들어요 어르신." 하고 웃어줍니다. 그제사 아주머니가 "맞아 우리같은 노인네는 이거 벗길라면 한참 걸려."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는 흔히 통칭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경계선의 연세이신 것같습니다. 그 둘의 모습들이 예뻐서 평소 낯을 가리는 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젊고 고운신데요.
자유석 이용의 요령이 생겨서 여기 저기 빈 자리 찾아다니느니 아예 처음부터 열차의 까페칸으로 가서 맥주와 과자를 하나씩 사서 책을 읽기로 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제목이 너무 과한데, 짐작하다시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저자가 히틀러정권의 만행과 자존감과 본능적 욕망 사이에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수 있는 가를 보여주는 내용인데 2차대전 수용소 실상을 고발한 책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으뜸인 것같습니다. 출발하면서 첫장을 읽기 시작한 책은 여행 내내 이동하는 기차에서만 읽었는데 순천 도착과 함께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습니다. 일부러라도 그러기가 힘들텐데 기가 막히네요!!!
애초 계획과 다르게 역순으로 움직이기로 한 것은 내려올 때는 좀 편하자 했던 건데 용산역에 도착하니 기대했던 ktx는 일반실은 매진이고 특실만 남아 있었습니다. 내가 이용하고 있는 하모니는 새마을호까지만 자유승차고 ktx는 10% 할인되 가격으로 좌석을 배정받아야 하는데 특실 가격이 60200원이라는데 3일동안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하모니 가격이 59000원.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맞질 않네요. 거기다가 ticketing 할 수 있는 시간도 5분이 채 남지 않았는데 내 앞은 9명이 대기하고 있고... 결국 포기하고 두 시간 후의 새마을호를 타기로 했습니다. 순천 도착은 오후 10시 35분!!
여기까지가 보고 들은 fact입니다. 소감은....글쎄... 오늘 동영상 작업하느라 너무 피곤해서... 집 컴이 후져서 자꾸 끊기는 바람에 내 실력(?)같으면 두 세시간이면 끝났을 작업을 하루 종일 매달렸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이후로도 시간 나면 혼자라도 자주 집을 나서게 될것은 분명할 것같고.... 소감은 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