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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1,027m : 단양/영월)
*일 시 : 2004. 11. 5(일), RTNAH 제8차 산행(21명), 날씨(흐림, 싸라기눈)
*코 스 : 오그환이-태화사터-산성고개-915봉-1025봉-1027봉-태화산-1001봉-절터-달곶
*소 시 : 오전 9시 45분~오후 2시 10분 종료 → 총 산행시간 4시간 25분 소요
새벽 5시 40분. 밤이 덜 거둔 새벽의 어둠은 신선해서 좋다.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새벽 버스 승차직전까지는 현실이고, 일행의 표정을 접하는 시각부터 낭만과 꿈의 나래가 열린다. 발산역 강서웨딩부페 앞에서 '절편'(홍영미 회원제공)박스를 받고, 이어 닿은 버스(천보관광 김성현 기사)에 올랐다. 통화가 불가능했던 오여사님은 보이지 않았다. 김포시에서 출발한 최영복-박관례 회원과 강영성이사 내외분이 탑승해 있었다. 화곡역 앞에서 예정된 일행들이 승차했다. 그러나 처음 참석한 박순옥씨와 그네의 일행 3명을 기다리는 긴 시간이 있었다. 결국 기다리던 3명은 불발이었다. 새벽의 약속시간은 절박한 시각이다. 산행의지가 굳어진 사람만이 시간을 아끼고 지킨다.
강서구청 앞-하이웨이주유소-강서보건소 앞-당산역을 차례로 통과하는 새벽이 가파르게 이어갔다. 이만대 선생님(양천중학교 교감)이 처음 참여했다. 동작동에서 마지막 승차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하는 차창 밖 풍광은 지난 기억들을 모두 토해 파노라마를 이루며 생존의 무게를 어깨에 얹는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여행은 꿈이 아닌 현실이다.
새벽 6시 40분.
일행 21명 모두 새벽을 만났다. 산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맺어진 건강한 인연들이다.
천숙녀 시인의 노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인연은 건강하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인연은 아름답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꿈을 갖게 하고, 누군가에게 성장이 되게 하는 인연은 늘 행복하고 건강한 인연이다. 갈증을 축이는 한 방울 이슬 같은 인연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시인의 노래는 우리의 꿈과 희망이요, 우리의 행복이다. 그래서 새벽과 아침을 싣는 인연을 우리는 함께 누리고 있다.
행복의 첫 번째 원칙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요, 세 번째는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지라는 세 가지 원칙을 열거한 임마누엘 칸트의 지적도 건강한 새벽을 지나가는 현재에서 한번 생각해 볼 사안이다.
'樂而不淫 哀而不傷' 꿍쯔의 <論語>에 나오는 말씀이다.
즐기되 빠지지 말고, 슬퍼하되 상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무엇이곤 미치되 즐기는 것 자체로 끝나야지, 그것 자체에 빠지면 안 된다는 警句다.
목적과 수단이 분간되도록 생활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과 일맥상통이다.
곧 자신을 지키라는 핵심이 차창에 엷게 殘像으로 번진다.
그래도 고향을 찾아오고, 거스르며 지나가는 마음은 자꾸 침울하다.
세월 탓이라고 돌리기엔 어딘가 머쓱해짐을 모를 리 없겠지만 애써 태연해본다.
먼저 이승을 떠난 자랑스런 친구의 무덤 곁을 지나갈 때마다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모재비걸음을 취하는 마음에 작은 흠집이 생김은 어쩔 수 없는 흔적이 아니겠는가. 잃어버린 고향으로 변해버린 오전의 깊은 悔恨을 동-서강 합수머리에 털어 버리려고 잠시 진저리치듯 순간적인 몸짓과 함께 떨었다. 안 되는 행동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영월읍으로 들어서는 소내기재를 넘어서 장릉 방향으로 내려서는 우측 산비탈에 심어진 배추밭이 처참한 오늘을 보인다. 씨앗 값은 고사하고, 생산원가 자체를 언감생심 꺼낼 수 없는 배추재배 농부들의 울분은 배추밭은 갈아엎는 극단을 서슴치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나라의 시행착오 농정은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다. 멍든 농심을 보상할 이 땅의 지도자는 아무도 없다. 방치된 배추밭을 바라보는 비극적인 현장의 종말은 끝간데가 없다.
태화산(太華山 1027m)
강원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 팔괴리,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를 가르는 태화산(1,027m)은 영월군과 단양군을 연계하는 道界이자 영월읍의 안산으로, 남한강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4억 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씨동굴(천연기념물 제76호)을 품에 안고 있다. 사계절 변화무쌍한 부드러운 능선은 아름다운 비경과 함께 가족단위 산행지로 최적의 명산코스다.
강원도 영월읍 남쪽에 위치한 태화산은 新증동국여지승람에 '대화산'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끝에는 U자형으로 남한강이 曲流하고, 영월읍을 두루 굽어보기 좋은 위치에 태화산성 성터가 남아있는데, 고구려시대 토성으로 지금도 瓦當과 그 파편이 발견된다. 태화산 정상 남으로는 멀리 소백산과 도솔봉-황장산-대미산으로 잇는 백두대간 줄기가 한눈에 잡힌다. 산행 후 시간을 내어 청령포, 장릉, 고씨동굴, 소나기재 선돌 등 주변에 산재한 명소들을 더불어 찾아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태화산은 치악산과 연결도어 있다. 치악산 남봉 망경봉(1,182m)에서 갈라지는 능선은 신림터널 위인 싸리재에서 잠시 누웠다가 감악산-용두산-왕박산-삼태산-국지산을 거친 후 남한강 지류에 막혀 진행하지 못하고 산줄기가 융기하듯 들어올려 놓은 산이 태화산이다. 말하자면 치악산의 동쪽 종점이 태화산이다.
태화산의 산행기점인 팔괴리 오그환이에 도착하면 남한강을 건너 북으로 올려 보이는 태화산의 산세가 자못 위압적이다. 1990년도 이전에는 영춘에서 상리 쪽으로 남한강을 건너려면 나룻배를 이용해야 했는데, 이제는 북벽교(北壁橋)란 이름으로 커다란 다리가 남한강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상리 마을 초입까지는 약 15분 정도면 들머리에 닿는다.
또 다른 들머리는 영월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고씨굴 방면으로 100여 미터 정도 가면 태화산 등산로를 가리키는 표시판 앞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우측 강변으로 내려서는 길을 따라 팔흥교를 건너 500미터쯤 가면 작은 다리가 있다. 다리를 건너 태화산 등산로 안내판을 따라 진행될 오늘의 코스다. 그 외 단양 영춘 상리 북쪽 花藏庵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산꾼들이 즐긴다. 상리 서쪽 태화산 줄기 道界너머 영월 흥월리 달곳마을에서 광산터를 경유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도 1990년대 중반부터 산꾼들이 간혹 이용하곤 했었다. 망령 같지만 오늘 산행은 생각지도 않았던 마지막에 소개한 코스로 마감하게 됐다.
오전 9시 45분.
일행들이 치를 태화산 산행 들머리인 영월읍 팔괴리 오그환이 봉정사 입구 삼거리에 정차했다. 이미 다른 산악회 버스가 맞은 편 도로변에 머물러있다. 이 지점에서 우측은 달곶마을로 가는 2차선 포장도로이고, 좌측은 봉정사와 산행들머리가 되는 마을로 올라가는 둔덕길이다. '등산로폐쇄'라는 장방형 프레카드가 걸려있다. 시멘트 포장 소로마을을 올라가는 이방인들에게 犬吠가 아닌 狗吠소리로 맞이하는 예사로운 산촌풍광이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一犬吠形이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고향 땅이지만 팔괴리는 처음이다.
봉정사로 올라가는 우측포장도로 대신 좌측 비포장 산판도로에 접어들었다.
<태화산 정상 4.8Km, 태화산성 2.3Km>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계족산 정상이 가깝다. 소로 주변은 아직도 못다 한 억새꽃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측 자작나무군락이 보이는 둔덕에서 좌측 샛길로 터진 계곡으로 들어섰다. 낙엽이 깔린 너덜겅 길이다. 상수리, 떡갈, 졸참나무 등 나목이 빽빽한 완만한 경사다. 눈발이 보인다. 한바탕 함박눈이라도 만난다면 오늘의 최대 행운이요, 洪福일테다. 팔괴리 마을 공사현장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중장비 기계음이 계곡을 옥죈다.
그리 급경사도 아니면서 꾸준하게 올라가는 너덜길이 은근히 숨차다.
어제 내린 비로 낙엽에 묻힌 돌밭을 잘못 디뎌 균형을 잃기 십상이다.
10시 8분.
<천연림보호사업지시험구>
입간판이 보이는 지점을 통과했다. 호젓한 분위기의 계곡은 우리들 차지다. 강이사님 내외와 김정림씨와 함께 올라가는 가쁜 오르막이다. 多汗症과 小汗症에 대한 얘기와 그동안 잊었던 산에 대한 이야기가 계곡바닥에 싸라기눈처럼 내렸다.
10시 30분.
삼거리 갈림길이다.
<샘터 50m, 정상 3.1Km, 산성 0.6Km>
우측 50m 지점에 샘터가 있다. 앞서가던 강고문님과 강사장님 일행이 되 내려온다. 라면용 식수를 담기 위함이다. 예서 행보는 좌측으로 꺾여 가파른 오르막을 만난다. 약 30분 이상 이어갔던 너덜길도 예서 끝난다. 양탄자처럼 깔린 깔딱 오르막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이 곳 샘터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좌측 급경사 길을 20여분 힘겹게 오르면 안부를 만나게 된다. 이만대 교감선생님도 '젊은 오빠'답게 원만한 행보다. 본디 체육인이니까 다를 바가 없겠지만 소개자의 부담이 없으니 한결 편하다.
작은 분묘 1기다. 아무런 표기가 없는 △형 자연석이 묘비를 대신해 정면에 박혀있다.
싸라기 눈발이 가오리연처럼 바람에 날린다. 안부 200m 아래 사면부터 나목가지와 소나무 잎에 눈꽃이 맺혀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다. 모두가 탄성을 뱉으며 안부를 향한 서두르는 행보가 경쾌하다. 표현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동일하다.
10시 53분.
산성고개인 안부에 올랐다. 선두 양대장님이 반긴다.
<봉정사 2.3Km, 정상 2.5Km, 산성 0.2Km>
정상에서 좌측 200m 오르막 지점인 태화산성 터로 올라가는 주능선은 온통 상고대 모양의 진달래 나목에 걸린 설화가 환상적이다. 이른 봄철 진달래 시즌 때 밟아도 좋을 산이다.
9시 57분.
계속 능선을 이으면 5분 후 태화산성이 있는 914봉에 올랐다.
이곳이 태화산성이며 능선을 따라 다시 산성안부로 내려가 남쪽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연결된다. 올라오는 회원들은 설화를 배경으로 장신의 모습을 담고싶어한다. 날씨만 맑았다면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태화산성 전망대에서 좋은 전망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흐린 날씨로 계족산 기슭 아래로 동, 서강이 합류해 비로소 '남한강'이란 이름으로 바꾼 풍광을 즐기진 못해도 대신 안겨준 설화가 충분한 보상이 됐다. 多聞多視多商量의 시간이다. 많이 듣고, 보고 생각하라는 의미다.
산은 <絶對孤獨>이다.
특히 만추와 초동에 밟는 낙엽은 감상과 감성, 낭만과 향수와 사색을 부른다. 낙엽은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생명의 원천이며 새로운 시작임을 예시하는 시간의 전령사다. 낙엽 밟는 소리에 귀를 기우려보자. 남겨진 계절인 겨울에서 시간과 자연을 읽어보자.
최근 불황과 실업으로 살기 힘든 우리들에게 돈 안 드는‘웰빙'(well-being)으로 어울리지 않는 두 현상이 전국에 산행(山行) 붐을 일으키고 있다. 주말 북한산 정상 백운대(해발 836m). 300m 아래 갈림길인 위문(衛門)까지 외길이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평소 10분이면 오르는 길이‘사람 체증’으로 30분이 소요된다. 단풍철 휴일에는 1시간30분 걸린다는 얘기다.
토요일 밤 10시 전후, 서울 서초구민회관 앞은 각종산악회 전세버스 수십 여대가 '무박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들로 步道가 찬다. 이런 山 중독자나 산꾼들의 집결지는 동대문운동장-사당역-시청앞-광화문-미아리-강동 등 서울에만 10여 곳에 이르고, 그 밖에 아마튜어 동네나 직장 및 친목산악회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북한산국립공원이 예상하는 올 등산객 수는 404만 명. 4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설악산도 올해 300만 명이 찾을 전망이라는 보도다.
‘야간산행'과 '새벽산행'도 인기다. 평일에도 새벽산행을 마친 후 출근을 한다는 골수 팬들도 늘고 있다. 퇴직 노인들 취미나 집합소로서의 산의 기능도 이젠 옛말이다. 장기불황의 터널이지만 산행 붐을 타고 호황을 누리는 곳이 '아웃도어’업체들이다.
보도에 의하면 등산용품을 판매하는‘컬럼비아'는“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120% 매출이 늘 것 같다”고 하며, '블랙야크’역시 “2001년 80억 원 팔던 매출이 올해는 9월 말까지 310억 원을 돌파했다”고 하니 금석직감이다. 코오롱등산학교도 기술을 배우려는 등산객들이 몰려 선착순으로 수강 인원을 자르는 형편이다.
북한산국립공원에 따르면 평일 입장객의 60~70%가 여성이다.
매일 산에 온다는‘산꾼’들 중 네 그룹 중 세 그룹이 여자들이다.
“남편 직장 보내고, 아이들 학교 보낸 뒤 이웃끼리 왔다”
평일 산은 여자들 차지, 주말 산은 가족들 차지라는 지적이다. 산은 여성들에겐 자신의 정체성과 건강을 되찾고, 가족들에겐 느슨해진 관계를 복원하는‘회복의 장소’라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등산객들의 변명이 가지각색이다.
“3년 전 고2였던 아들과 지리산을 2박3일 종주하면서 5년 동안 단절된 대화를 시작했다”
“둘째인 딸을 낳고 나서 1년 이상 産後우울증에 시달리다 남편 권유로 산을 오른 후 성격이 밝아졌다”
“아들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남편과 아이들은 자기 삶이 있지만 내겐 빈 둥지뿐’이란 생각이 들어 산행을 시작했다”
“골다공증을 예방하려고 1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산에 오르고 있다”
“3년 전 허리디스크로 누워만 있었다. 지금은 밥, 상추, 김치를 싸들고 북한산 종주를 6시간만에 주파했다."
“산에 올라 함께 계절 변화도 느껴보고, 부부간에 도시락을 먹으면 평소에 못했던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졸라서 함께 산에 왔어요. 부부간에 평소 애정 표현에 인색한 편이지만 산에 오면 험한 길에서 손도 잡아주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으니까요.”
“외국의 산과 달리 한국 산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한국의 산 속에 묻히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그러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어느 외국인의 이야기도 보도됐다.
이와 같은 산행 열풍은 유행병처럼 심신(心身)의 건강을 찾자는‘웰빙 붐'의 산물이다.
근심걱정이 많은 생활에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 폭증하며 북한산의 연간 입장객 400만 돌파를 코앞에 두고있다. 산행은 돈 안 들이고 건강을 다지는 불황기 최적의 웰빙 수단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최근보도를 접하면 산을 종교로 삼는 산 중독자들은 당분간 증가할 전망이다.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 쉬 판단이 안 선다.
10시 10분.
산성고개 안부로 되 내려왔다.
남한강이 보이는 東사면은 50도 내외의 급경사로 서쪽과 비교하면 東急西緩 지형이다.
잠시 쉬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寒氣를 쫓기 위해 모두들 벗었던 윈드쟈켓을 걸친다. 정상을 향한 주능선 행보다. 참나무류 나목마다 겨우살이가 풍성하게 매달려있다. 지난 10월 용인등봉에서 취했던 '겨우살이 茶'를 이야기했더니 박관례씨가 제일 욕심을 낸다. 고향에서 저혈압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한 모양이다. 어머니를 향한 마음과 달리 그놈의 겨우살이란 놈이 쉽게 사람 손에 잡히도록 가까이 있는 게 아니다 나목가지 끝에 까치집처럼 매달린 이놈을 오늘같이 눈발이 나무줄기에 묻은 날은 더욱 채취가 어렵다. 까마귀가 지근거리에서 울어댄다. 우리들의 욕심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안개에 묻혀 언뜻 보이는 태화산을 휘감아 흐르고 강변 각동리 마을이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강 건너 마대산이 올려다 보이고 남으로는 소백산 주능선이 사라진 현재다.
11시 18분.
헬기장이다. 좌측은 남한강 줄기가, 우측에선 팔괴리 공사현장의 중기소리가 여전하다.
주능선은 진달래 나목 마다 곱게 핀 설화로 터널을 이룬다.
진달래 나목 능선에서 두견화를 생각하며 안대희(영남대 한문학과) 교수가 소개한 圓嶠 李匡師(1705~77)의 진달래꽃을 음미한다.
“기억하라! 한이 한번 맺히면 (當知恨一結)
영원토록 마멸되지 않음을 (終古不磨滅)
파산(巴山) 만 리 붉은 빛은 (巴山萬里色)
망제(望帝) 천년의 피눈물임을!" (望帝千年血)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다.
비운의 촉(蜀)나라 임금 망제는 죽어서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천에도 진달래꽃은 피었으니 萬里산야를 천년토록 붉게 물들일 내 한을 기억하라!
이 시를 쓴 이광사, 그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로서 참담한 인생과 애절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소월의‘진달래꽃’과 대비할 수 없는 처절한 느낌은 오히려 더하다.
이 천하명필이 왜 이런 처절한 한을 노래했을까?
당시를 호령하던 명문가로서 강경파 소론(少論)이었던 그의 집안은 반대 당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하루아침에 역적의 집안으로 몰락했다. 백부의 일에 연좌되어 이광사는 평생 출세를 단념하고 오로지 불우한 심사를 글씨와 그림과 시에 풀어내 시대를 초월한 조선의 명필로 군림했다. 그러나 반대 당파는 世事에 초연한 채 예술에 몰입해 사는 것조차 봐주지 않았다. 1755년 50세의 그는 역적으로 몰려 의금부에 투옥되어 왕의 국문까지 받았다.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이때 그는 머리를 치켜들고
“빼어난 예술을 갖고 있으니 목숨만은 건져주소서!”라며 통곡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영조가 극형만은 모면시켜 주었다. 이후 그는 국토의 양끝 부령과 진도에서 무려 23년 간 유폐되어 살다가 죽었는데, 유배지 두만강변 부령에서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인생에 일어난 모든 것이 그에게는 한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오로지 한 가지 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은 그의 아내였다. 그가 의금부로 끌려갔을 때 아내 윤씨(尹氏)는 남편의 죽음을 예상했다.
“남자는 이레를 굶으면 죽고, 여자는 여드레를 굶으면 죽는다 하니 여드레가 내가 세상에 머물 날이다”라며 바로 굶었다. 그러나 물 한 모금 안 마신 지 엿새째, 남편을 극형에 처한다는 헛소문이 들려오자 윤씨는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마 끝에 목을 매어 죽었다.
의금부에서 풀려나 유배를 떠나려는 이광사는 찾아온 아들이 상복을 입은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유배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는 통곡을 터트렸다. 그 해 겨울 망자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다.
“내가 죽어 뼈가 재가 되어도 이 한은 정녕코 사라지지 않으며, 내가 살아 백 번 윤회를 거듭해도 이 한은 영원히 생생하리라. 수미산이 개미둑처럼 줄어들어도, 황하가 물방울처럼 가늘어져도, 천 번이나 부처를 땅에 묻어도, 만 번이나 신선을 장사지내도, 천지가 뒤집혀 태초가 되어도, 해와 달이 빛을 잃어도, 이 한은 맺히고 굳어져 세월이 갈수록 단단해지리라. 부서지지 않는 번뇌처럼, 뚫지 못하는 금강석처럼, 간직하면 큰 덩어리 되고 토해내면 대천(大千)세계에 가득하리. 내 한이 이럴진대 그대 한도 그럴 테지. 둘의 한이 영원히 흩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만날 인연이 있으리라.”
萬歲之恨을 표현한 名文 중의 名文이다. 일백 번의 윤회를 거듭해도 한은 더 굳어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일은 있을지언정 한은 사라지지 않아 그의 한은 극단과 대결한다. 저승과 이승에서 한을 풀지 않으면 언젠가 만나리라는 마지막 대목은 잊혀지지 않을 사무친 비원(悲願)이다. 곱게 偕老하던 부부에게 일어난 이 기막힌 사별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진달래꽃을 읊은 시는 사별한 다음 해 어느 봄날에 쓰였다는 기록이다.
우리 역사에서 잔혹한 정치판이 誣告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적은 부지기수다.
琴瑟이 깊었던 명필 부부의 인생은 파멸되었지만, 그 한은 예술로 昇華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圓嶠 李匡師는 명필가와 양명학을 수용한 강화학파(江華學派) 그룹의 한 사람으로 고교 국사교과서 일부에 전한다. 진달래 裸木을 바라보는 한낮의 시선이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그래서 人間之事는 예외 없이 무상하던가.
우측 산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20여분 거리에 이르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철쭉과 진달래가 우거진 능선 길을 따라 10여분 거리에 이르면 첫 전망대에 도착한다.
발 밑에는 옥색 물빛을 자랑하며 태화산을 휘감아 흐르고 강변 각동리 마을이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강 건너 마대산이 올려다 보이고 남으로는 소백산 주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11시 30분. 1025봉이다.
계속 능선을 따라 군데군데 나타나는 바위지대를 지나 정상과 높이가 비슷한 봉우리다.
그 동안 많은 시빗거리가 됐던 천성산 고속철 공사가 부산 高法도 '도롱뇽訴' 기각으로 재개됐다는 보도다. 이유야 어찌됐던 국가적 사업이 중단된 것은 충분한 사전계획과 환경적인 연구 없이 밀어붙인 정부의 단견도 있었지만, 최선이 어려우면 차선이나 차차선은 한치의 여유도 없이 무조건 거부하는 소위 환경단체의 아집도 수준급이다. 타협과 이해를 모르는 우리들 최악의 속성이 그대로 보여 우울하다. .
부산~대구 구간의 고속철 2단계 공사는 7년의 공기(工期) 중 2년 반이 지났지만 현재 공정률은 12.4%에 불과하다. 재판부는 공사가 1년 지연될 때마다 2조원씩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빚게 되는데, 두 차례에 걸쳐 공사가 중단되면서 생긴 이 피해는 국민이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월급쟁이 수십만 명의 봉급 봉투에서 몇 년 간은 다달이 세금으로 빼내야 할 액수다.
11시 55분. 1027봉이다.
암벽지대를 막 지나면 정상이 코앞이다.
행동식과 라면타임이다. 기어코 강고문님의 수고로 겨우살이 한 묶음을 따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그의 솜씨로 봐서 어릴 때 동네 나뭇가지에 튼 새알둥지가 나마나지 않았을 것이다. 악동이었을 그의 어린 시절은 우리들 모두의 추억이다. 행보를 서둘렀다. 한기가 엄습한다. 이 곳에서 안부로 내려서서 15분 정도 걸으면 3~4평 넓이의 정상이 기다린다.
과속은 山도 예외는 아니다.
등산은 대표적인 웰빙 스포츠로 남녀노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잘 걷고 잘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기복이 많은 산길을 오랫동안 즐겁게 걷기 위해서는 올바른 보행법과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여유와 요령이 필요하다. 발바닥 전체로 착지하는 것이 기본이고, 힘을 빼고 자연적으로 일정한 리듬의 행보가 필요하다.
평지인 경우 성인의 步速은 시속 4∼5㎞ 정도다. 즉 1㎞를 걷는데 걸리는 시간이 12∼15분 정도 소요하나, 산길에서는 굴곡과 무거운 배낭을 매고 있으므로 평지와 똑같은 속도로 걸을 수 없다. 평지보다 緩速으로 보폭을 작게 걷는 것이 등산의 기본이다.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대개 1㎞를 20∼25분 정도로 걷는 것이 적당하다.
자칫 과속하면 다리와 허리에 과도한 부담을 주어 제2의 부상을 당한다. 내리막 행보도 오르막일 때와 비슷한 보속과 일정한 리듬을 갖고 걷는 것이 유리하다. 휴식은 되도록 짧게 취하는 것이 피로감을 이기는 행보의 비결이다. 걷기 시작할 때 워밍업 뒤에는 대략 50분 걷고, 5분 내외로 휴식하는 것이 알맞다. 너무 긴 휴식은 몸의 열이 식어서 오히려 피로가중의 원인이 된다.
주의해야 할 것은 휴식 장소인데, 길의 골 쪽이나 절벽 아래쪽은 낙석이나 절벽 붕괴로 인한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노상일 때는 가능한 넓은 장소를 골라서 다른 등산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에 앉도록 한다.
넓은 장소가 없을 때나, 잠깐 동안만의 짧은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1~3분간 스탠딩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길 가장자리에 배낭을 내리고 선 채로 심호흡을 통한 리듬을 유지해야한다. 호흡조절을 마치면 다시 배낭을 지고 걷기 시작한다. 스탠딩 휴식을 취하면 다른 등산객에게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최소한의 등산예절과 윤리가 필요하다.
급한 비탈은 20분 정도마다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전진하는 것이 좋다.
12시 40분.
3~4평 정도의 넓이의 태화산 정상이다.
<태화산 해발 1,027m 영월군>
<태화산 해발 1,027m, 충북 단양군,
삼태산 10Km← 영춘면4.3Km↓ 수리봉 6.8Km→>
<1993년 재설 영월 1242>
영월군과 단양군이 각각 세운 정상 표지석이 부부처럼 나란히 박혀있다.
두 표지석 사이에 삐죽 나온 삼각점이 자식을 사이에 둔 단란한 일가족을 연상케 한다.
정상에서의 북쪽조망은 신갈나무 숲에 가려 신통치 않으나 남쪽 조망은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렴풋하게 다가든다. 소백산 자락의 구인사 뒤 구봉팔문의 각 봉우리와, 형제봉에서 시작되는 주능선이 마루금, 단양방면으로 바라보면 월악산, 금수산이 아련하다.
북으로는 나무숲 사이로 영월읍 시가지가 어렴풋하다. 서쪽으로는 국지산(625)-삼태산(876)이, 서북쪽 더 멀리 치악산(1288)까지 이내 속에 아련하다. 태화산 정상은 고독한 평화가 가득한 분위기다. 江山不老요, 江湖之人의 江湖之樂이다. 모든 게 鏡花水月이다.
높이 오를수록 작아져 가는 나무들의 키
겸손의 덕을 말없이 말하는가
안개구름이 앞을 가리며
俗人은 오르지 마라 가로막는가
구름을 나란히 벗하고 올라서니
이제는 저 아래 俗世를 내려다보지 말라고
저 밑 세상을 하얗게 가리네
아름다운 눈에서는 아름다운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서는 서시(西施)같은 미인이 나온다(美眼眼前出美人, 情人眼前出西施)는 말이 실감된다.
12시 47분.
<태화산성 2.3Km, 큰골 2.8Km, 달곶 3.0Km>
이정표 지점을 지났다.
오후 12시 55분.
삼거리 갈림길이다.
가끔 이런 고산지대에서 무덤을 만난다. 리본 대신 무덤이 정확한 이정표다.
평야가 적은 이곳 심심산촌에선 흔한 상황이다.
능선의 직진이 필요했지만 선명한 좌측 내리막에 달린 리본을 확인하곤 방향을 틀었다.
오류는 이 지점에서 비롯됐다. 인적의 냄새를 거의 찾기 힘든 내리막에 풍성하게 쌓인 낙엽이 포근하고 푹신하다. 발목을 덮는 참나무 낙엽냄새가 온몸에 배인다. 그러나 낙엽 아래는 머금은 습기로 여전히 미끄럽다. 나침반을 봤지만 이미 한참을 지난 지점이다. 주능선에서 서쪽 지능선으로 들어간 셈이다.
영춘에서 대기중인 김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산 예상시간을 묻는다.
이미 誤導된 행보를 생각하면 대략시간을 알릴 수밖에 없다.
성긴 꼬리진달래 능선과 낙엽밭에서 희희낙락하는 시간도 가졌다.
오늘 오전은 송원동 씨가 쳐지더니, 오후는 김자연씨와 정재근씨가 쳐진다.
오후 1시 42분.
적막강산처럼 아늑한 분지에 자리잡은 산촌가옥모양인 '절터'에 내렸다.
수백 평 너비의 억새밭과 채소밭이 산바람에 가벼운 몸체를 흔들거린다.
암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산촌의 한 농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주변은 밤나무 천지다. 잠시 후미를 기다리는 틈을 타서 누군가 뒤돌아본 태화산 8부 주능선 위로 무대처럼 펼쳐진 설산풍광이 아름답다. 한낮을 보낸 설산의 고행이 부처의 고행만큼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이자 화계사 祖室 숭산스님이 11월 30일 오후 5시 15분 서울 수유리 화계사에서 入寂했다. 세수 77세, 法臘 57세다.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49년 수덕사에서 고봉 스님을 법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고인은 화계사 주지, 불교신문사 초대 사장, 조계종 비상종회의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특히 全세계에 한국 불교를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1966년 일본 홍법원을 시작으로 40년 가까이 세계를 돌며 30여 개국에 120여 개의 선원을 세웠다. 1996년에는 30년 간 해외포교에 힘 쓴 공로를 인정받아 조계종 총무원의 감사패를 받았고, 1985년 세계평화문화인대회에서 세계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걱정하지 마라. 萬古光明이요, 靑山流水인데......"
임종직전 "스님께서 가시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하며 안타까워하는 성광스님(화계사 주지) 등 제자에게 남긴 말이다. 1970년대 이후 1년에 지구를 두 바퀴 씩 도는 강행군하며 한국의 선 불교를 포교했다. 그가 세계를 돌며 강조한 정신은 '世界一花'(세계는 한 송이 꽃)다. 세계가 보편적 진리에 의해 하나로 연결될 때 비로소 인간은 제 모습을 찾을 쑤 있다. 2001년 해외포교 35주년 기념 간행물인 <세계일화> 머리말의 회고가 돋보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네
동서남북 지구촌을 돌고 돌아 35년
올바른 생활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고 달리며 또 달렸네'
장례식은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될 예정될 스님의 저서로는 <큰스님과의 대화>,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온 세상은 한 송이 꽃>, <천강에 비친 달>등이 있다.
< What am I? >
12월 4일 오후 충남예산 수덕사에서 불도 8천명이 모여 거행된 숭산스님 다비식에 걸린 '英文만장'이다.( 2004.12.05 )
“스님, 불 들어가요. 나오세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4일 오후,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지난달 30일 입적한 화계사 조실 숭산(崇山) 스님의 다비식이 엄수됐다.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려온 화계사 조실 숭산 스님의 영결식 및 다비식이 4일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엄수됐다. 8000여명의 스님과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비장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평생을 해외 포교에 힘쓰고 수많은 외국인 제자를 둔 스님의 영결식장은 남달랐다.
“What is this pink?” “What am I?”
등 영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적은 색색의 만장이 한자로 쓴 수백의 만장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날 스님의 영정을 든 무량(LA태고사 주지) 스님을 비롯, 무심(무상사 주지) 현각(화계사 국제선원장) 등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들과 신도들이 적잖았고, 스님이 입적한 서울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도 자리했다.
“나무아미타불” 염송이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비장에 도착한 스님의 법체는 수덕사 방식으로 낮게 쌓인 장작더미 위에 놓여졌고 그 위로 다시 어른 키보다 높게 장작을 쌓아 법체를 완전히 덮었다. 제자 스님 등이 불을 들여 불길이 치솟는 순간, 곳곳에서 “스님…” 하는 신도들의 낮은 흐느낌이 흘렀다.
다비식에 앞서 이날 오전에 열린 영결식은 숭산 스님의 생전 육성(肉聲) 법문,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종산 스님의 영결사와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추도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법전 스님은 법어를 통해
“찾아도 볼 수 없고 떠나도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전신탈거(全身脫去)한 스님의 면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이 마음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스님의 법신(法身)이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스님의 본래 면목입니다”
라고 추모했다는 보도다.
佛心을 생각하는 중생들의 소심은 더욱 아플 수밖에 없다. 시대적 정신을 이끌어 가는 프런티어의 부재가 오늘을 아쉽게 만든다. 정리가 안 되는 이 시대 카오스의 종점은 어느 때인고? 빈 절터에서 만난 빈집이나 숭산스님의 법신이나 다를 게 무엇이더냐?
모든 게 무상하고 허망한 게 아니던가.
북쪽 고개를 너머 마을 방향으로 내려갔다.
수확조차 포기한 폐허의 바짝 말라버린 콩밭을 지나가는 마음도 짠하다. 아침에 목격한 방치된 가을 배추밭이나 심산산간지역의 콩밭이나 農心은 깊은 병고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생명보다 귀했던 이 땅의 농산물이 이렇게 처참한 애물덩이로 변한 사실 앞에 우리는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판단조차 禁忌다. 그래서 슬프다 못해 하늘을 향해 진한 哄笑라도 뱉을 그들의 표정을 도시인들과 농정책임자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빈 농가의 주인은 현재 생존 모습이 얼마나 처참할까.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감할 수 없는 이와 같은 사회적 제반 모순을 변증법적 이론에 짜맞추기에 바쁜 책략가들을 힘없이 지켜보는 서글픈 심사가 폐가 구석구석에 버려진 생활도구처럼 난삽하다. 순리와 역리는 무엇이던고?
佛心을 생각하는 중생들의 소심은 더욱 아플 수밖에 없다. 시대적 정신을 이끌어 가는 프런티어의 부재가 오늘을 아쉽게 만든다. 정리가 안 되는 이 시대 카오스의 종점은 어느 때인고?
오후 2시 3분.
마을을 향해 내려가는 소로에서 만난 장끼(수꿩)와 까투리(암꿩)가 번갈아 동, 서쪽으로 날아간다. 그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는 일행들의 표정이지만 싫지 않은 기색이다. 꿩이란 놈은 되게 미련하고 굼뜬 조류다.
생김새, 몸길이 수컷은 몸길이 80cm로 머리꼭대기와 꼬리가 갈색이고 뺨은 붉으며 목은 청록색이고, 암컷은 60cm로 몸 전체가 갈색이며 검은색 무늬가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서식하는 꿩은 곡식의 낟알, 개미, 메뚜기, 거미 등으로 일본, 중국(만두), 유라시아에 분포한다. 꿩은 암컷보다 수컷의 날개와 털이 유난히 눈에 잘 띄는 색깔을 가지고 있다. 초원이나 숲 속에서 지상생활을 하며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잔다. 그리고 지상생활에 적응한 튼튼한 발과 발톱으로 땅을 파고 곤충이나 풀의 싹이 먹이다. 암컷은 땅에 배를 깔고 문질러서 움푹 들어가게 파고 거기에 알을 낳는데, 털 색깔은 보호색으로 되어 있으며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곧 걷기 시작한다. 꿩은 한번에 오래 날지 못하고 대개 걸어서 적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꿩은 앞이 탁 트인 풀밭이나 산기슭의 경작지 주변에서 하늘을 잘 날지 않고 지상생활에 익숙하다. 산행 중 마을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만나는 꿩으로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다.
두릅밭과 수백 평에 달하는 오갈피나무 밭이다.
오갈피 검은 열매가 마치 방울처럼 가지 끝마다 달려있다.
鷄鳴狗吠소리다. 마을이 가깝다는 얘기다.
오후 2시 10분.
예정과 달리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 달곶마을로 하산을 완료했다.
예정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는 愚를 범했다. 소요시간은 비슷했지만 새로운 경험하나를 얻었다. 방향판단 착오로 오류를 범한 알티나 산악회 첫 번째 에러였지만 全회원이 이탈자 없이 일사불란하게 동시에 움직여 다른 고난을 상쇄할 수 있었다. 오늘의 작은 판단보류로 인한 착각이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晩時之歎이지만 경솔한 판단이 아쉬웠다.
들머리였던 팔괴리 오그환이를 출발하여 샘터삼거리-산성고개-산성터-산성안부-정상-삼거리-절터-달곶에 이르는 도상거리 9Km에 4시간 20분을 소요했다. 영춘면 상리에서 대기중인 김기사와의 잦은 연락 끝에 일행과 합류한 시각은 오후 3시 5분이다. 예정한 일정보다 약 40~50분 가량 지체됐다.
오후 3시 35분.
영춘면 하리 영산강 가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약주와 함께 음식의 인연을 나누는 시간이다. 산행에 비교하면 풍성한 청국장 식탁이다. 음식도 맛깔스러웠고, 주인 인심도 후했다. 무릇 음식점은 이런 배려가 있을 때 빛나는 법이다. 지난 치악산 매봉휴게소 식당과 비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거푸 드는 소주잔에 오늘의 피로가 넘실거렸다. 李白의 술 예찬 '독작(獨酌)'을 음미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天若不愛酒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酒星不在天 주성(酒星)이 하늘에 있지 않을 것이고
地若不愛酒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地應無酒泉 땅에 응당 주천(酒泉)이 없었으리라
天地旣愛酒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하니
愛酒不愧天 술을 사랑해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已聞淸比聖 이미 청주를 성인에 비함을 들었고
復道濁如賢 또 탁주는 현인과 같다고 말한다
聖賢旣己飮 성현(술)을 이미 마셨거늘
何必求神仙 어찌 반드시 신선 되기를 구하랴
三盃通大道 석잔 술에 대도(大道)를 통하고
一斗合自然 한말 술에 자연과 합하네
但得醉中趣 단지 취중에 취미로 즐길 뿐
勿爲醒者傳 깨어있는 자를 위하여 전하지 말라
오후 4시 15분.
가든식당을 출발, 59번 도로-영월남면-쌍룡-제천-박달재-장호원-이천IC-중부톨게이트를 지나 올림픽도로에 이르는 행로가 예상과 달리 퍼 순조로웠다. 반포대교 아래에서 오영삼이사 내외분-송원동씨가 하차하기 전 오늘의 산행과 앞으로의 행사일정을 전달하는 시간을 거쳤다. 모두가 헤어지는 순간의 표정에는 미련이 남아있다. 영등포 당산역 팀, 보건소 앞 팀, 그리고 하이웨이주유소 앞에서 강성윤씨까지 동시에 하차하는 걸 봐선 술자리가 마련될 모양이다. 서로의 인정이 늦은 밤까지 고래힘줄처럼 질기게 이어갈 것이다.
밤 8시 발산역에서 박순옥씨와 함께 내렸다.
외발산동 수산시장 부근에 거주한다는 그네는 하이웨이주유소 앞에서 하차하면 더 편한데 행여 술자리에 휩쓸리는 것이 염려되어 발산역을 택했다는 얘기를 남겼다. <마니커> 윤여사 가게 앞 새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그네와 헤어졌다. 윤여사 가게에 들려 생맥주 한 잔에 오늘을 털었다. 오늘 참여한 21명의 회원 모두에게 평화한 밤이 내릴 것이다.
지난 주 초 '이슬'님이 우리들의 카페(우리들의 이야기)에 소개한 '사랑의 詩'가 낭만이상의 살갗에 닿는 노래라는 생각에 再讀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옮겨본다.
<가슴이 먼저 한 사랑(김경훈)>
눈길 닿기 전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첨벙첨벙 강을 건너
달빛이 도착하기도 전에
가슴을 열어 버렸습니다
손길 닿기 전에
이미
심장이 녹아 버렸습니다
터벅터벅 가슴속으로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그대는 걸어 들어 왔습니다
사랑의 스킨십은
우리에게 없었지만
언어의 스킨십에 녹아
가슴이 먼저 그리움에 앓아 누웠습니다
눈길 닿기도 전에
손길 닿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배워버린 사랑으로
그대에게 특별한 포로가 되었습니다
*태화산 교통 :
-도로안내 : 중앙고속도로 西제천IC-5번 국도-제천-영월방향 38호 국도-영월-
청령포-흥월초등교-흥월리
-승용차 : 영월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100미터쯤 가면 우측 팔괴리 방면으로 진입 남한강 건너 700미터 지점 오그환이 마을 태화산 등산로 안내판 앞에 주차.
-버스 : 영월 시외버스터미널 앞 영월발 흥월리행 시내버스1일 4회 (06:00~18:40)이용,
영월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100m 주행 후 남한강 건너 700m 지점 팔괴리
오그란이(오그환이) 마을 태화산 등산로 앞 주차
영월에서 영춘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하루6회(오전 7시∼오후 6시20분)
운행. 하동면 각동리까지 40분 소요.
흥월리발 영월행 시내버스 1일 4회 (06:40~19:20)이용, 큰골마을 입구에서 하차
*숙식 :
-영월[이화장(033-374-8853), 파크장(033-373-6110), 로얄장(033-374-8101),
가든장(033-373-5794), 신라장(033-373-8771), 그린장(033-373-8361)
관광지 주변 민박농가 이용 가능]
-단양 영춘면 하리[永想江 가든민박 ; 상황오리백숙, 숯불갈비, 기타 한식
이미선 043-423-0573, 7372, 011-367-7372]
*기타 :
-230-800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242번지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0-2542)
*관광지(영월-단양군청 정보임)
(1)고씨동굴 (강원 영월군 하동면 진별리 ) 고씨동굴 관리사무소 (033-370-2621)
우리나라 대표적 석회암 동굴인 고씨동굴은 임신왜란 때 고씨 일가가 은거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무려 4~5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종유석의 생성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특징. 현재 총 길이 6.3km 중 900m만 관람을 허용해 아직까지 동굴 속 깊은 모습은 숨기고 있는 신비한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노리곡석굴'이라 했으나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가 피난을 했으므로 '고씨동굴'이라 하였다. 4억 년의 신비를 자랑하는 이 굴은 호수, 폭포수, 광장 등과 24여 종의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고씨굴에는 피난을 하면서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때어 그을린 흔적과 솥을 걸었던 자리가 남아 있다.
영월읍에서 영월 화력발전소 쪽으로 11Km 거리에 위치해 있는 고씨동굴은 총 길이가 6.3km 에 이르는 종유석 동굴이다. 동굴 내부에는 약 4억 년 전부터 형성된 종유석과 4개의 호수, 3개의 폭포 및 6개의 광장이 있으며, 모양이 다른 종유석과 석순, 돌기둥의 배열과 조화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굴 주변에는 관광지가 조성되어 놀이시설, 토산품점, 향토 음식점, 숙박시설, 위락시설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주 차 장 - 200대 수용(소형 1,000원 / 대형 2,000원) 1일 수용능력 - 최대 1,500명
-개장시간 - 하절기(09:00-18:00), 동절기(09:00-17:00)
-관람요금 - 성인 3,000원 / 청소년 2,200원 / 어린이 1,500원 / 경로무료
-관람소요시간 - 하절기 1시간 / 동절기 1시간
-도로안내 : 영월읍 4거리-영월시내 동쪽외곽인 동강교-덕포 3거리-우회전
-단양 고씨동굴 방면 88번 지방도로-남쪽 11km-고씨동굴
-현지교통 :
1) 영월읍에서 시내버스 고씨동굴까지 06:00 - 22:00 사이 1시간 간격 운행(20분 소요)
2) 택시 / 영월읍 -고씨동굴 15분 소요
-야 영 장 : 고씨굴 야영장 5,600㎡
-향토음식 : 칡국수, 보리밥, 용봉탕, 메기매운탕, 쏘가리회, 송어회, 산채비빔밥
-1일 관광코스 :
o 영월-장릉(30분)-보덕사(20분)-청령포(30분)-창절사(20분)-관풍헌. 자규루
(20분)-민충사(10분)-고씨동굴(1시간)-김삿갓 묘(1시간)
o 영월-선돌(20분)-책 박물관(20분)-요선정. 마애여래좌상(30분)-법흥사(1시간)
o 영월-동강, 어라연(3시간)
-교통, 관광안내 :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370-2531), 영월역 : (033-373-7788)
영월시외버스터미널 : (033-374-2450~1), 고씨동굴 : (033-370-2621)
(2)장릉
영월하면 단종애사가 회상되는 고장이다.
영월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좌를 빼앗기고 어린 나이에 유배되어 마침내 비운의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에 관한 유적이 많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장릉이다.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동을지산에 있는 장릉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마시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조선 제6대 단종의 능이다.
단종은 왕좌에 오른 지 3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다. 이곳에서 2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뜻하지 않은 홍수로 시내 관풍헌으로 거소를 옮기고 약 1년여의 세월을 보낸 단종은 1457년 10월 24일 사육신의 역모에 가담하였다 하여 사약을 받고 마침내 그 한많은 생을 마감한다.
단종의 시체는 동강에 버려졌지만 후한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부터 충성심이 지극했던 호장 엄홍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을지산으로 모셔갔고 산중턱에 노루 한 마리가 앉아있던 자리가 하늘이 점지한 묘소라 생각하여 그 자리에다 시신을 암매장하였다.
그 후 수양대군이 물러나고 세상이 뒤바뀌어 암매장되었던 노산군 묘를 찾아 묘소의 형태를 갖추게 되니 이때가 1516년 12월 15일이다. 단종이 복위된 때부터 118년이 지난 1698년 노산군의 신호가 단종으로 복위되자 이 묘도 장릉으로 추봉되어 왕릉의 예우를 받게 되니 이는 단종이 승하한 지 241년이나 지난 후다.
낙락장송의 울창한 송림에 둘러 쌓인 장릉에는 현재 엄홍도의 정려각, 제사지낼 때 제수를 차려놓는 배식단, 제사를 지낼 때마다 수량이 풍부해진다는 우물 영천,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여러 신하들의 위패를 봉안해 놓은 충신각 등이 남아 있고 칼 든 자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하여 무인석 없이 문인석만 쓸쓸히 서 있다.
해마다 淸明節에는 단종을 추앙하는 단종문화제가 이곳에서 거행되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곳 장릉 주위의 소나무들이 단종의 비애를 알기나 하는 듯 모두 능에 절을 하는 모습으로 묘하게 굽어져 있다는 것이다.
-관리사무소 033-370-2619] [이용 시간] 동계: 09:00~17:00 하계: 09:00~18:00
-입장료 어른 1,2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40원
-단종제 기간에는 입장료 면제
-주차료 : 소형 1,000원, 대형 2,000원
-대중 교통 : 영월~장릉 시내버스 07:00-20:00, 20분 간격 운행
-승용차 : 주천 삼거리~북쌍(좌회전)~문곡 삼거리(우회전)~장릉 88(구 402)번 지방도,
38번 국도 이용
(3)청령포
조선조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로 6대 왕위에 올랐던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의 모함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의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영월에서 남서쪽으로 4km지점에 위치한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쪽은 66봉이란 층암절벽에 무성한 송림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유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천연의 유배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1456년 6월 28일, 조선조 6대왕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군사 50명의 호송아래 이곳 청령포로 유배되어 약 2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금 이곳은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채 휴양지로 개발되어 야영이나 수영 등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름 나들이 장소가 되었습니다.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청령포에 얽힌 단종의 비화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강에 떠있는 작은 모래섬 같은 아름다운 청령포가 어쩐지 더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관리사무소 033-370-2620]
-대중 교통
1)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직행버스 이용 (2시간 30분 소요)
영월읍-청령포 입구 시내버스 이용(11회 운행/10분 소요)
시내버스 영월읍 출발 청령포 행 (07:30, 08:30, 09:40, 10:50, 11:40, 12:30, 12:50, 14:40, 15:30, 16:30, 17:30)
7월부터 9월말까지 순환버스 운행 07:00부터 40분 간격 장릉-영월읍 터미널
-고씨동굴-청령포-신아아파트
2) 택시/영월읍 -청령포 입구 5분 소요. 입구에서 수시 운항하는 도선을 이용해야 한다.
3)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열차 이용(영월-청령포 입구, 하루 5회 운행)
-승용차
1. 영월읍 사거리-문곡방면31번 국도-1.8km-좌회전-1.2km-청령포 입구
2. 문곡3거리-5.8km-장릉-우회전-1.1km-우회전-1.2km-청령포 입구주차장
-입장료 어른(1,000원-800원), 65세 이상(200-200), 청소녕과 군인((770-500),
어린이(500-400)
(4)청령포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인 144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上王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중추부사 노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단종 유배시에 세운 禁標碑(금표비)와 영조 때 세운 端廟遺支碑(단묘유지비)가 서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단묘유지비는 총 높이 162cm로 밑으로 1단의 화강석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전면에는「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라 새기고 후면에는 「皇命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泣涕敬書 令原營 石」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전면 측면 각 1간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이 비각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금표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청령포 유지비각, 금표비, 망향탑, 노산대, 관음송이 있다
망향탑은 남면 광천리 청령포 뒷산 층암절벽 위에 있는 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생활을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흘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觀音松(관음송)영월군 남면 광천리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 위치하고 있는 소나무로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월읍에서 남서쪽으로 4Km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청령포 단종 遺址碑閣(유지비각)서편
에서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는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音)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 30m, 가슴높이의 둘레 5m로 지상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랐다. 갈라진 줄기의 밑 둘레는 3.3m, 남북 20m로 가지를 펼치고 있다. 수령은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 유배시의 수령을 80년으로 하여 계산된 것이다.
청령포는 남한강 상류에 3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우거진 소나무의 숲이 있고, 관음송은 그 소나무 숲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송림 주변에는 낙엽 활엽수인 떡갈, 말채, 산뽕, 소사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5)어라연계곡
영월읍 거운리와 문산리 사이에 위치한 어라연은 험한 산길을 타고 내려온 동강 물줄기가 절벽에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淵이다.
이곳은 물 속에 잠겨있는 커다란 세 개의 바위 때문에 일명 삼선암이라고도 하며 옛날 선인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여 정자암이라 부르기도 하는 곳으로 영월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움에 감싸인 계곡이다.
동강의 백미라 하는 어라연은 상부, 중부, 하부에 3개의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 소의 중앙에 물 속으로부터 솟아있는 세 개의 거대한 암반을 중심으로 양옆으로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울창한 송림이 천혜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물 半, 고기 半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금방이라도 물고기가 뛰어오를 듯한 맑은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동강의 물고기들이 다투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곡에도 역시 단종의 전설이 어려있어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단종이 어린 나이에 죽은 후 그 원혼이 영월을 돌아다니다 천혜의 비경 어라연에서 쉬려하자 이곳의 모든 물고기들이 단종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고 한다.
(문의전화 : 영월군청 033-370-2544)
-승용차
1. 영월읍 4거리 - 영월시내 동쪽외곽인 동강교 - 중리3거리 - 태백방면 1km -
상리3거리 - 좌회전 - 9.5km - 어라연계곡 입구
-대중교통 :
1. 영월역/시외버스터미널 - 거운리 시내버스 이용(4∼5회 운행)
2. 시간표 : 시간: 06:20, 08:30, 13:00, 15:30, 18:00
3. 거운리-어라연계곡/도보로 1시간 소요(4km)
(6)단양 온달산성 (丹陽溫達山城)
충북 단양군 영춘면(永春面) 하리(下里)의 삼국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264호 지정(1979)되었다. 고구려 평원왕(平原王)의 사위 온달이 신라군의 침입 때 이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사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옛 석성(石城)이다. 성의 둘레 683m, 동쪽 높이 6m, 남북 쪽의 높이 7~8m, 서쪽의 높이 10m, 성의 두께 3~4m. 영춘을 돌아 흐르는 남한강 남안의 산에, 길이 70cm, 너비 40cm, 두께 5cm 크기의 얄팍한 돌로 축성한 성으로, 약 100m 정도가 붕괴된 것 외에는 대체로 현존한다. 동 ?남 ?북 3문(門)과 수구(水口)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내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매몰되어 물이 조금 나올 정도이며, 곳곳에서 삼국시대 및 고려 때의 토기조각을 볼 수 있다.
(7)구인사
충북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132-1번지에 위치한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하여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 건평 15.014평방m)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2000년 11월 5일에 화려하고 웅장한 목조 건물 조사전 지어 낙성식을 거행했다.
(8)영춘장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단양군 영춘면은 북쪽으로 강원도 영월군과 맞닿아 있다. 남으로는 소백산 줄기를 사이에 두고 경북 영주시와 이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춘면은 강원도 분위기와 경상도 분위기가 한데 어울린 순박한 고장이다. 마을 사람들은 남한강 물줄기처럼, 소백산 철쭉처럼 오순도순 살아간다.
단양군 내의 5일장으로는 단양장(1, 6일), 매포장(4, 9일), 그리고 영춘장이 있으며 규모로 치자면 단양장이 가장 크고 영춘장이 가장 작다. 영춘면 소재지 상리에서 5일장인 영춘장이 서는 날은 3일과 8일. 남한강에 뗏목이 흘러가던 시절만 해도 면소재지에는 뗏꾼들과 산골에서 내려온 화전민들이 뒤엉켜 제법 시끌벅적 했고, 객주집은 하루 종일 붐볐다. 지금도 영춘면에 사는 주민 중 70세가 넘는 노인들은 뗏목을 서울 마포까지 나르던 경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세월은 너무도 많이 변해 장이 서는 날이라고 해도 외지에서 물건을 차에 싣고 들어오는 상인들은 고작 열댓 명 정도다. 더군다나 농번기에, 일요일이라도 겹치면 상인 수도 줄어들고, 장을 찾는 주민들의 발걸음도 뜸해진다. 기찻길이라도 놓여 있으면 정선 5일장처럼 관광열차라도 운행되련만, 산골짜기에다가 단양이나 영월에서 이곳까지 약 20km쯤 떨어져 있어 장구경에 나선 관광객들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영춘장을 찾는다면, 근처 온달동굴이나 온달산성, 남천계곡, 소백산 구인사나 철쭉제(6월초, 단양 천동계곡~비로봉 일대, 문의 : 단양군청) 등을 구경하는 김에 덤으로 들르는 일정으로 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영춘장은 우체국과 농협건물을 중심으로 도로변 좌우에 길게 늘어선다. 이곳의 산물은 고추, 마늘, 잡곡, 송이 등이다. 잡곡은 굳이 장이 서는 날이 아니더라도 농협(043-423-7150)에서 소포장으로 판매하며 택배도 가능하다. 산나물을 파는 촌로들은 영춘장 대신 구인사 입구에서 전을 펼친다. 그곳에 관광객의 발길이 잦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대부분 제천 사람이고 그밖에 충주, 음성, 증평 사람들이 약간 섞여있다.
봄철 영춘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은 고추모종이나 고구마싹, 토마토 모종, 가지, 수박, 참외, 오이, 치커리 모종 등과 키, 채, 낫, 호미 등. 다른 지방의 5일장과 달리 주민들이 내다 파는 것은 거의 없다. 주민들이 고령화되고 경기가 부진한 탓이다.
한편, 영춘면 사람들은 온달동굴 일대의 개발이 완료되면 많은 여행객들이 영춘장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단양군은 온달산성 주변에다 삼림욕장 설치를 완료하고 온달동굴 입구에는 고구려 시대의 의상이나 가옥, 음식 등을 전시하는 '온달관'을 지어놓았다. 또, 온달동굴 입구에서 영춘교까지 2km 구간을 장승거리로 조성중이다. 북벽 앞을 흘러가는 남한강에서의 래프팅 역시 영춘장 활성화에 한몫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주민들의 바램이다.
-현지교통 :
단양읍, 영월읍, 제천~영춘면소재지 상리까지 시내(군내)버스가 수시운행.
또는, 제천시외버스터미널~구인사 행 직행버스(수시 운행) 이용, 영춘에서 하차
도로안내 : 1) 서울-원주-제천-단양-고수대교-영춘교-상리(면소재지)
2) 영호남 지역에서는 대구나 김천, 문경, 안동을 기점으로 단양까지 온 후,
영춘 방면으로 이동
-현지숙박 : 태화산파크(043-423-2150), 백문장(423-7259),
오사리 사슴나라(콘도형, 423-2266)
-정보제공 단양군 영춘면사무소(043-423-7030) 작성일 2004년 0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