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山 2002년 6월호 ‘동강의 산’ 취재길에 적어 놓은 산행노트의 한 꼭지다. 그 날은 운이 참 좋았다. 전국 각지의 산꾼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의 산행가이드북 <영월의 명산>(비매품)을 쓴 영월악우회 현윤기 회장이 어여쁜 ‘백조 산꾼’ 한 사람을 취재길 안내역으로 소개해 주었다. ‘백조 산꾼’은 할일 없이 산만 다니는 남자 ‘백수 산꾼’의 대칭으로 여자에게 붙이는 말이다. 그 백조가 모는 차편으로 안내를 받아 여러 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백조 산꾼 따라 찾아든 강변
잘 지은 민박방에 차려진 주안상
문전박대 항다반 하늘이 지붕
삿갓어른 보셨다면 무어라 하셨을까
199년 전, 1807년에 태어나 57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한 김립(金笠·김삿갓·본명 金炳淵·호 蘭皐) 어른께서 오늘을 사시면서 지금 형태의 산행을 하셨다면 어떤 모습일까. 재미있는 상상을 한번 해 본다.
겨울을 지낸 김삿갓은 봄이 되자 또 방랑의 끼가 발동했다. 삿갓에 지팡이 하나를 의지하고는 오라고 반기는 사람, 오지 말라고 막는 사람도 없는 곳을 향해 정처없는 길을 또 나선다. 그러고는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는 새를 보고 한 수 읊지 않을 수 없었겠다.
창가에 와서 지저귀는 저 새야
너는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느냐
산속의 소식 너는 잘 알겠구나
산에는 진달래가 피어 있더냐
問爾窓前鳥(문이창전조)
何山宿早來(하산숙조래)
應識山中事(응식산중사)
杜鵑花發耶(두견화발야)
150년 전쯤 어느 해 이른 봄날 어디에서 읊은 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杜鵑花消息(두견화소식)이라는 시다. 시성(詩聖) 삿갓어른의 흉내라도 내고픈 나그네는 소한 대한 추위에 그가 죽어서 묻혀 있는 영월땅 마대산 자락으로 취재길에 올랐다.
와석송어 양식장 - 영월송어는 살아 있다
와석은 영월에 있는 마을이자 고개다.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영월에서 이곳까지 가자면 해발 300m의 와석재를 넘어야 한다. 구곡양장 가파른 자동차 고개길은 지금도 넘기가 아찔한데 짚진 신고 걸어야만 했던 삿갓어른의 방랑길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멈추어서 쉬어야만 했을 이 고개 아래쪽 마대산 계곡에 잘 가꾸어 놓은 ‘와석송어양식장(033-374-9361)’이 있다. ‘송어양식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송어횟집이다.
심산유곡 청정수에서 기른 송어로 회를 쳐 먹을 수 있는 집인데, 지난 가을부터 호된 시련을 겪는 데는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 긍지가 대단한 223기 해병 출신의 집주인 남궁승(58)씨는 말라카이트그린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약품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3대의 버스손님 예약이 취소되더니 예약취소가 계속되더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7대의 버스손님 예약취소 전화를 받고는 정말 황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후유증은 남아 있지만 진실은 밝혀지는 법. “송어회 없어서 못 먹지” 하면서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오히려 늘어난다고 했다. 이를 뒷바침이라도 하듯 영월읍내 번화가 큰 길 곳곳에는 군민의 이름으로 걸어 놓은 ‘청정지역 영월송어 이상 없음’이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쉽게 띄었다.
하산길 해단 장소로 이 횟집 식탁에 둘러 앉았더니 서글서글한 성격의 주인 내외가 “송어가 싫은 분에게는 한방오리진흙구이를 차려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모두가 “오리보다 송어지” 하고는 맛있게 송어회를 ‘쳐 먹었다.’ 송어 1kg 20,000원.
다슬기마을 - 한 차원 높은 다슬기 해장국
다슬기 해장국집 옥호가 ‘다슬기마을(033-373-5784)’이다. 태백선 영월역 길 건너편에는 다슬기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네 곳이나 된다. 이렇게 다슬기 해장국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만큼 다슬기는 영월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마대산 취재길 영월로 가던 날, 우리 일행은 새로 개통한 용산~덕소 구간의 전철역 덕소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점심은 양평의 명산 중미산과 유명산 코스 37번 국도 상의 막국수집 ‘중미산(031-773-1834)’에서 먹었다. 이 집은 워낙 유명한 집이라 주말이면 식탁 차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집주인 윤광규씨(57)는 소문난 효자에 애처가다. 우리 일행에 합류한 그는 차를 모는 동안 영월 다슬기 타령으로 예찬론을 폈다. 77세의 노모를 모시고 영월 역전의 다슬기를 먹고 왔는데 부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인과 함께 한 차례 더 들렀던 식당이 ‘다슬기마을’이었다며, 이번에도 그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영월 다슬기는 청정의 강 동강과 서강에서 건져낸다. 사람의 간에 좋다는 다슬기는 예로부터 민간요법에 많이 쓰여 왔다. 간이 약해지면 다슬기와 인진쑥을 달여 먹도록 한 것이다. 깊은 산골 맑은 물에 사는 다슬기는 간과 담의 조직원료인 청색소를 머금고 있는 천연신약으로 간장과 신장에 작용해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위통과 소화불량을 치료하고 숙취와 염독, 갈증을 풀어 주기도 하며 눈을 밝게 해 준다. 민물고동이, 고디이, 올뱅이, 올갱이, 골뱅이, 골부리, 대사리 등 지방마다 다르게 부른다. 다슬기가 표준말인데 영월에서는 이 표준말을 쓴다.
▲ 다슬기마을 식당 주인 윤광규씨의 다슬기잡기.
다슬기해장국(5,000원)과 다슬기무침(20,000원), 다슬기전골(20,000~30,000원), 다슬기전(10,000원) 등 다슬기음식만을 차려내는 ‘다슬기마을’ 주인 이병용씨(61)는 다슬기만을 전문으로 잡아올리는 어부다. 엄동설한인 한겨울에도 방한장비가 부착된 어부복장으로 매일 서강이나 동강 물속 작업을 한다는데 하루 평균 15kg 안팎을 잡는다고 한다. kg 당 시가가 15,000원쯤이고 서울의 3~4 곳 업소에서 단골로 가져간다고 했다.
겨울 작업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쉽다는 답변이다. 추운 겨울이면 물속 다슬기들이 한 곳으로 몰려 있기에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다슬기마을’의 다슬기요리는 ‘대한민국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데, 일행이신 다산사랑모임 김남기 회장의 ‘한 차원 높은 다슬기해장국’이라는 품평사에 일행 여덟 사람 모두가 동감의 박수를 쳤다.
김갓갓마을 노루목식당, 김삿갓 해선식당 - 삿갓어른이 후광
정처 없이 떠도는 빈 배 같은 내 삿갓
한번 쓰고 난 다음 사십 평생 함께 하네
더벅머리 목동 소몰이 할 때 차림이요
갈매기를 벗하는 늙은 어부 것이라네
술 취하면 벗어서 꽃나무에 걸었고
흥겨우면 누각 올라 달 보고 기뻐했지
사람들의 의관은 겉모습 치장일 뿐
비바람 몰아쳐도 근심 없는 내 삿갓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립등허주)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牧竪輕裝隧野犢(목수경장수야독)
漁翁本色伴白鷗(어옹본색반백구)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괘간화수)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俗子衣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滿天風雨獨無愁(만천풍우독무수)
비바람 몰아쳐도 근심 하나 없는 삿갓을 눌러 쓰고 팔도강산을 떠돌아다니며 양반과 귀족들의 부패상과 죄악상, 그리고 비인도성을 폭로하고 풍자한 방랑시인 김삿갓. 40여 년간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863년 3월29일,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전라도 땅에 묻혔는데, 3년 후 아들 익균이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했다.
묘가 있는 이곳이 바로 마대산(1,050.2m) 동쪽 자락이고, 지금 이곳에는 난고김삿갓문학관이 들어섰다. 2003년 10월에 개관한 이 문학관에서는 삿갓어른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 놓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삿갓어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먹거리집이 있게 마련인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김삿갓의 후광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옥호에는 ‘김삿갓’을 접두어로 붙인 것이다. ‘김삿갓마을노루목상회식당(033-374-2738)’과 ‘김삿갓해선식당민박(033-374-9209)’이 이 지역을 대표할 만한 식당이다.
노루목 식당은 김성규-이월재 할아버지 할머니집이다. 슬하에 5남3녀를 낳아 모두 출가시키고 이제는 자신들의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자식처럼 돌봐드리는 재미가 괜찮다고 한다. 닭고기와 오리고기, 토끼고기로 요리를 해내는데 아무래도 이들 음식들 중 토끼고기가 별미일 것 같다며 집에서 기르고 있다고 했다. 60명까지 받을 수 있는 민박방 여러 개가 있다.
해선식당은 산자락 음식점의 전형같은 음식들로 이곳 토박이인 박해원(51)-김선자(49)씨 부부가 손님들을 맞고 있다. 손두부·감자부침·메밀부침·칡국수 4,000원, 산채비빔밥 5,000원, 민물매운탕 20,000~25,000원, 닭요리·오리요리(백숙과 탕) 30,000원.
황새여울 - 여울목 물가의 시심
‘와석재 땅 그림자가 품은 작은 찻집 / 행선지를 어디로 정할지 몰라 / 그리움에 허덕이는 여행객처럼 / 여울목으로 난 창가엔 /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 여울목 물가에는 / 물빛 비늘을 쪼아대는 황새 한 마리 / 누굴 기다리는 것도 / 누굴 그리워하는 것도 아닌데 / 자꾸만 재 너머 하늘을 본다 // 삿갓도 방랑을 멈췄다는 와석재 무릉리 / 소나무도 절을 한다는 재 너머 장릉 바람이 / 여울목 하늘에 노을빛을 담그면 / 발걸음 바빠진 가을 하늘이 / 불현듯 눈시울 붉히며 비를 내린다 // 찻집의 그림자마저 와석재 품안에 안기고 / 여울목 은빛 물결마저 어둠에 사위어 갈 때 / 찻집의 창가에서 일어선 여행객과 / 물빛을 쪼아대던 재두루미 눈빛이 / 그리움으로 닮아있다’
어느 해 여름날 밤, 여울목 물가의 황새여울 민박방에서 잤다.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나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며 문자로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 되어 이 풍광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대산 취재길, 해거름에 황새여울에 들렀더니 찻집 안주인이 자신의 찻집이 소재가 된 아름다운 시가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어렵게 시인의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시인과 통화가 이루어져 경북 김천 출신 이상진(李相鎭)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읽을 수 있게 됐다. ‘황새여울(033-374-4245)’은 영월읍에서 고씨동굴이나 김삿갓 유적지로 가는 길 88번 지방도 강변에 있는 전통찻집인데 민박 방도 있다.
고향식당 - 월남에서 돌아 온 장상사네집
영월읍에서 마대산으로 가는 88번 지방도는 남한강과 나란히 달린다. 이 길에서 고씨동굴로 건너가는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가 놓인 길가에는 10여 업소가 영업하고 있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식당가에서 외지로 가장 많이 알려진 집이 ‘고향식당(033-372-9117)’이다. 예쁘장하게 지은 건물에 회갑이 눈앞이라는 안주인 김복선씨도 소녀처럼 예쁘장하다.
식당내 치장도 안주인의 분위기 같은데 이 집은 외부에 ‘월남에서 돌아 온 장(張)상사네집’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향식당 주인 내외분의 러브스토리는 멋진 영화 한 편이나 연애소설 한 권 같다.
철길가에 살던 처녀가 월남전선으로 떠나는 군인들이 탄 열차가 지나는 철길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열차에서는 씩씩한 군인 한 사람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군사우편 주소가 적힌 큰 쪽지 하나를 던졌고, 그 쪽지를 받아든 처녀는 며칠 밤 설레는 가슴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얼굴도 모르는 그 군인에게 편지를 띄웠다.
편지는 2년동안 이어졌고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씩씩한 그 군인은 어느 대중가요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처럼 개선했다. 그러고도 3년, 두 사람 사이에는 뜨거운 사랑이 오갔고 결국은 같은 집 한 방에서 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두 사람 사이의 딸 아들들도 다 자라고 금실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 있다.
자신의 이야기가 평범한 것으로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을 보고는 그 때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몇 보따리나 되는 러브레터가 더 소중하게만 느껴진다며 안주인 김복선씨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는다. 칡칼국수·칡냉면 4,000원, 감자떡 1개 300원.
전원가든 - 청령포의 명소
조선 6대 임금 단종은 조선 왕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린 나이인 12세로 왕위에 올랐다. 5대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 태어난 단종은 조부인 세종의 칭찬이 자자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명석했다. 삼촌인 수양대군이 어린 왕을 보필한다는 명목으로 정치권에 뛰어들었고, 결국은 왕권에 대한 삼촌의 야심으로 단종은 즉위 3년만에 왕위에서 물러났다. 그 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땅 청령포로 유배됐다.
지금 영월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단종의 애사(哀史)가 서려 있는 청령포를 찾아 간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음식점들이 청령포 주변에는 여러 곳인데, 그 중에‘전원가든(033-374-8484)’은 단연 손님들이 가장 많은 집으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문전은 늘 성시를 이룬다. 옥호가 말해 주듯 고기집인데 ‘객은 맛있게 드시고 주인은 친절하다’는 이 식당의 구호가 많은 손님들을 끌어 들였다고 한다.
흔히 관광지에 있는 식당들은 바가지를 씌우고 불친절하다는 것이 통념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그런 집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집은 오래지 않아 문을 닫게 된다. 주중의 하루, 한나절을 청령포에 머물었는데 이곳으로 오는 손님의 차량 90% 이상이 전원가든으로 들어갔다. 많은 업소들이 불황이라며 괴로워할 것만이 아니라 손님들이 찾아올 수 있는 연구를 좀 했으면 좋겠다.
갈비탕 6,000원, 한방돌솥밥 7,000원, 돼지갈비·삼겹살 각 8,000원, 생갈비·갈비살·등심 200g 23,000원. 주차공간이 넉넉하고 청령포 유람선선착장까지 100m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