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때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비록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만은 꿋꿋해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뜻하는 바가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뚱뚱하고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란 처녀가 나이 서른이 넘는 처지에도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소문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양홍은 그의 뜻이 기특해 처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곧 결혼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양홍이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자 그 까닭을 물으니 이에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을 걸치고 짙은 화장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도 살 수 있는 여자였소"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고 후에 양홍의 아내는 화장도 않고 산골 아낙네 차림으로 생활하다가 남편의 뜻에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농사일의 틈틈이 친구들에게 詩를 지어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몇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고, 이에 환멸을 느낀 양홍은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로 있으면서 구차하게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 때 양홍이 방앗간지기로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양홍의 아내는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며 밥상을 눈썹 높이로 올려 바쳤다고 합니다.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每歸妻爲具食不敢於鴻前仰視擧案齊眉)<양홍이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 바쳤다.]-후한서(後漢書)의 양홍전(梁鴻傳) 고백통은 이 부부의 사람됨을 예사롭지 않게 여겨 여러 면에서 도와주어 양홍이 수십 편의 훌륭한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 놓고 학문을 파고들어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한 양홍의 부인의 처사를 높이 칭송하여 '거안제미'(擧案齊眉)(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하게 올린다)라고 합니다. 양홍은 아내가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꾸미고, 뚱뚱한 몸을 비단으로 감싸고 진실을 감춘 채 사는 것을 싫어하였고, 진심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며 살고자 하는 아내를 원했고, 그의 아내는 겸손하게 받아들여 일생을 검소하고 겸손하게 남편을 공경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