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치게 정통성 맛만 고집하면 세계시장 진출 어려워
- 대상 국가에 맞는 다양한 기호로 수요를 창출해야
- 기무찌도 하나의 품질영역으로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
김치는 요즈음 말로 천연의 건강식품으로, 세계에 이와 견줄 것이 없는 우리 민족 고유한 문화 유산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에서 "기무찌"라는 이름부터 김치와 닮은 김치가 세계의 김치시장에서 김치와 share를 다투게 되어 - 이름을 "김치"로 하느냐, "기무찌"로 하느냐, 규격을 어떻게 하느냐 - 하는 표준화의 문제까지 국제문제로 대두하여 업계, 학계에서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 금년 7월 2일부터 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식품규격위원회(CAC : Codex Alimentarius Commission) 제24차 총회에서 우리나라 '김치(kimchi)'가 Codex 국제식품규격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기무찌"는 "김치"의 일본어 표기로서 일본인들의 글로는 "기무찌"라고 밖에는 표기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의 "갈비"를 "가루비"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듯이-.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 고유의 것을 일본이 모방하여 우리 몫을 뺏어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장원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게 한번은 유럽에서 손님이 와서 그 부부와 식사를 하는데 김치를 소개했더니 매워서 얼굴을 찡그렸지만 맛있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부부가 다음에 또 한국에 왔을 때 저녁식사로 한식이 어떠냐고 했더니 '김치만 빼고는 한식 좋다'는 것이다. 그 날 부인이 실토하는 말이 '전에 맛있다고 먹었지만 실은 너무 맛과 냄새가 강해 먹기가 힘들었다'는 고백이었다.
나는 이 외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여러 차례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서양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늘냄새를 싫어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젓갈 냄새도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이 싫어하는 냄새란다. 김치를 먹은 서양사람의 많은 수가 먹고 난 뒤 그 냄새를 없애느라 양치질을 열심히 하는 등 고심하기도 한다.
남의 나라가 자랑하는 고유식품을 칭찬하는 것이 그들의 에티켓이라서 대접받을 때는 예의상 칭찬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면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김치의 세계화를 생각할 때 세계인의 기호분석을 먼저 해보고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마늘이나 젓갈, 짠 맛, 매운 맛을 즐겨 먹을 수가 있는 그룹을 '가'그룹, 이들을 싫어하는 그룹을 '나'그룹으로 한다면 '가'그룹은 많아야 수억명 정도이고 '나' 그룹은 수십억이 되므로 마케팅은 당연히 '가'그룹뿐 아니라 '나'그룹도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가'그룹에게는 한국식 전통김치를 목표로 해도 좋지만 '나'그룹에게 이렇게 했다가는 효과적일 수가 없을 것이다.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게 하는 것은 마케팅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좋다는 점을 설명해도 한번 맛보면 다시는 입에도 대지 아니할 것이다.
이들을 위해 덜 짜게, 덜 맵게, 마늘 없게, 젓갈 없게 만들면 이것이 바로 "기무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진짜 김치냐, 누구 것이 더 좋으냐 하는 정통성 시비보다, 누가 이들에게 거부감 없는 김치를 먹일 수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문제는 누구를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품질조건이 달라져야 하는데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해답은 자명해 진다.
'가'그룹 사람과 '나'그룹 사람용 김치를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김치를 다양한 맛이 나게 종류를 세분해서 목표로 삼는 나라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쉽게 좋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맛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기무찌를 김치의 한 종류로 포용하여 발전시키면 된다.
우리나라의 김치도 원래부터 짠지가 있고 싱건지가 있으며 먹는 계절에 따라 젓갈 쓰는 김치와 안쓰는 김치가 있고 고춧가루를 넣는 김치와 넣지 않는 동치미나 백김치도 있지 아니한가? 심지어 소금만으로 조미한 소금김치라는 것도 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김치의 종주국이 되고 김치는 세계인의 식품이 되며 우리나라의 김치 공업이 그 보급권을 갖게 되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정통성 논리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우리 고유한 맛만 고집한다면 앞으로 수십년 안에 기무찌의 세계소비량이 김치의 열배는 넘을 것이고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의 상당수도 수입한 기무찌를 사서 먹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너무 짜고 너무 맵게 먹으면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