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녹수 [1472 ~ 1506 : 연산군]
연산군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폐비 윤씨, 성종, 인수대비 등 다양한 인물이 떠오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장녹수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장녹수의 출생년도는 알 수 없지만 연산군이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 당할 때 장녹수도 같이 처형되었는데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연산군이 일으킨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는 조선이 생긴 1392년 이래 백년이 지나고 1498년과 1504년에 일어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왕조가 왕권 중심에서 신권 중심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주게 된다. 이로 인해 왕권은 약해 질대로 약해지고 신권이 왕권을 위협하며 심지어 독살 당했다는 설이 나도는 왕만 해도 인종,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까지 끊임없는 독살설이 끊이지 않았고 소현세자와 장헌세자도 이런 당파 싸움에 의한 희생양이 아니던가! 장녹수는 연산군 8년 3월이던 1502년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연산군은 승지에게 그녀의 부친 장한필의 내력을 조사시켰다는 기록인데, 아마 이 전후로 연산군이 장녹수와 만난 것으로 사료된다. 처음에는 숙원으로 책봉되었다가 나중에는 정 3품 소용이 된다. 연산군은 왕세자로 있을 때부터 어머니 폐비 윤씨가 죽고 난 뒤에도 아버지 성종과 계모인 정현왕후, 친할머니 인수대비 등으로부터 사람다운 사랑을 받지 못했고, 갑작스런 자기 어머니의 죽음과 맞물리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등 여러 가지로 심적 변화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왕비 신씨하고는 사이가 무척 좋았고, 성종, 정현왕후, 인수대비에게 못했던 사람의 정을 왕비 신씨에게서는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연산군이 다른 누구에게는 함부로 해도 왕비 신씨에게 만큼은 궁합이 잘 맞았다고 한다. 그런 연산군이 또다른 여인, 장녹수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장녹수는 슬하에 옹주 하나를 두었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천인이면 자녀도 자동적으로 천인이 되었는데 그 자녀의 소유권은 모계를 따라 가도록 되어 있었다. 장녹수가 처음에는 제안대군의 종과 결혼하고 아들 하나가 있었지만 힘들어서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얼굴에 비해 어려보였던 장녹수는 영리함이 뛰어나 남자의 뜻을 잘 맞추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한다. 연산군이 국왕이 아닌 세속적인 인간으로 돌아가 장녹수의 아내가 되어 주었다. 사적인 청탁과 인정을 배제하기는 불가능한 사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녹수가 인사나 이권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개입한 것 같지는 않다.
카페도우미 - 오렌지향기 Orange fragrancy... - |
연산군을 희대의 폭군으로 표현한다는게참..-_-
언제쯤 연산군의 진면목이 적나라하게 들어날런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