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빈신사지(獅子頻迅寺址) 석탑을 바라보며
경주 배광식
(서울대 치대 교수)
단풍이 찬란하게 손짓하는 월악산 송계계곡길을 따라오르다가 “골미길”이란 이정표를 보며 우회전하여 조금 가니 사자빈신사지 석탑이 보인다. 고려 현종 13년(1022년)때 세워진 사자빈신사는 간 곳 없고, 9층탑 중 4층만이 남은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이 진중하게 천년의 세월을 회고하고 있다.
보물 94호인 사자빈신사지 석탑 기단부의 상대를 돌사자 4 마리가 떠받치고 있고, 그 가운데에 두건을 쓰고 지권인을 결한 비로자나불 좌상이 계신 모습을 우러르며 합장하였다. 비로자나불 좌상은 작지만 고려때 불상의 특징대로 위엄이 서려 있다.
사자빈신사의 이름은 사자빈신비구니獅子頻迅比丘尼에서 유래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보살의 지혜와 행을 묻기 위하여 방문한 53선지식 가운데 25번째 선지식인 사자빈신비구니獅子頻迅比丘尼는 선재동자에게 ‘일체지를 성취하는 해탈문’을 설한다. 보살의 수행계위로는 10회향중의 제 4 ‘지일처회향至一處廻向’이며 수행도는 ‘선근의 수행공덕을 일체처에 이르도록 함’이다.
이곳에 함께 동행하신 스님과 도반과 탑을 돌아보는데, 이 탑의 비로자나불을 닮은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거신다.
“어디서 오셨슈?”
“서울에서 왔습니다.”
“내가 충주 살다가 이곳에 와서 산지가 40년이 넘는디 맨날 새벽에 이 탑에 다기물을 올리고 있슈. 와서 보니까 이곳 부처님이 물 한모금 못 얻어 마신지가 100년은 넘었더라구유.새벽에 안일어나면 부처님이 베개를 흔들어서라도 깨워줘유. 충주 살 때는 덕원사에 다녔는디 지금 생각하면 욕심으로 다녔슈. 여기서는 새벽마다 이 탑 앞에서 기도하면서 마음을 비워유.” 묻지 않는데도 술술 할머니의 말문이 열리신다.
순박하면서도 언행이 다르지 않으니 가는 곳 마다 스승이 있다던 옛말이 그르지 않다.
나를 비롯해 욕심으로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의 세가지 독심毒心을 비우는 것이 부처님 가르치심인데, 탐심을 한껏 안고 가서 부처님 보채는 일 이외에 무엇을 했던가? 절 안에서 서로 반목하고 성내는 일이 적지 않았고, 불교가 깨닫는 종교라 하니 깨달으려는 욕심을 내는 어리석음은 또 어찌할 건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진을 꾸준히 잘 하시는 할머님께 질문하였다.
“기도는 하루에 몇시간이나 하세요?”
“글씨유? 새벽에만 하는디 샛별이 저 앞산에 삐죽이 올라올 때 시작해서 댓발은 올라올 때까지 하지유.”
그렇다. 나는 손목시계에 매어서 하루 24시간을 살고 있는데, 저 할머니는 해와 달과 별이 뜨고 지는 하루를 살고 계시구나.
“어두운 때 기도를 시작해서 마음을 자꾸 비우면서 환해질 때까지 기도하면, 어둠이 물러가고 환해지듯이 저절루 지혜가 밝아지는 것 같어유. 내가 이제 뭘 더 바라것슈. 그저 내 공부하는게 제일이유.”
“다음 세상에는 스님 되셔서 열심히 공부하시면 되겠네요.”
“글씨유! 스님이 될 수 있을랑가? 욕심은 안내유.”
보물인 석탑 바로 오른 쪽 옆에 터를 돋구어 현대식 양옥 한 채가 서있고, 그 집의 오른쪽에 쓰러질 듯한 작은 시골집 한 채가 할머님이 사시는 곳이란다. 집을 좀 고치려고 해도 문화재인 보물 옆이라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석탑과 할머니 집 사이의 양옥은 언뜻 생각에도 건축허가가 날 수 없을 것 같은 가까운 거리인데 그 집은 버젓이 신축되어 있고, 할머니 집은 그 집을 격해서 탑에서 먼 쪽인데도 개축조차 못한단다.
신축양옥집의 대문에 해당되는 부분이 모두 할머니 소유땅이란다. 양옥집 주인은 그 땅을 사려고 할머님을 계속 조르고 있단다. 할머니땅에 갇혀 있어 할머님이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출입구 없는 집이 될 것이다.
“자식들이 모두 와서 팔라고 하는디 돈은 가져서 뭐해유! 딸네가 돈을 빌려달래서 빌려줬는디 안 갚어유. 그래서 그냥 주었다고 생각해버렸슈.”
어느날 할머님이 바깥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니 양옥집과 탑사이를 흐르는 물길을 모두 메워 마당을 만들고, 물길을 돌려 할머님 집으로 흘러내리게 해서 비오는 날이면 집이 온통 물난리란다.
한 사람의 욕심이 천년의 탑의 고즈넉한 꿈을 훼방하는가 하면, 순박하고 따질지 모르고 마음 비워가며 사시는 할머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이마에 보석이 빠져서 얼매나 안타까운지! 악세사리점에서 유리를 사다가 내가 대신 끼워놨슈.”
할머님께 이곳 비로자나 부처님은 돌부처님이 아니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공경하여 모시는 살아계신 부처님이시다.
“집이 누추해서 들어오라고는 못해두, 여기 잔디밭에서 과일이래두 좀 드세유.”
할머님이 내어오신 과일을 들며,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가 매일 부처님 다기물 올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씀을 드리고 헤어졌다.
사자빈신사지를 지나 무릉도원의 입구를 연상시키는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그 깊은 골 속에 10여채 집이 있는 동네가 있고, 민박집 하나가 나온다. 민박집 수돗가에서 나물을 씻고 있는 주인 할머니에게 말을 붙였다. 이 할머니는 스무살에 이곳에 시집와서 50여년 이상을 이 동네에 사셨단다. 그런데 계속 심통나고 짜증나고 나무라는 어투로 말을 하였다.
사자빈신사지에서 뵌 편안한 할머니와 너무도 대조가 되는 심성心性이다.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재시財施와 진리를 알려주는 법시法施와 더불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며, 미흡한 내 언행을 다시 돌아보고, 언제나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시는 큰스님의 법답고 자애로우신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오늘 나들이에서 고려의 불심佛心을 만나고, 욕심 버리기를 손수 보여준 스승이신 할머님과 그 대조로 욕심으로 천년 문화재의 경관을 해치는 양옥을 만나고, 진심嗔心이 일상화되어 말끝마다 퉁박을 주는 민박집 할머니를 통해 무외시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데다가, 철따라 어김없이 물드는 단풍잎이 먼지 안 타고 청명한 가을 햇볕 아래 빛나는 모습을 만났으니 나날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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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제 모습도 함께 보입니다._()_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일체처에 스승님 아니 계신 곳 없군요...귀한 법문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