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의 단지파의 자손
단지파의 단은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檀君)
가. 단지파의 유래
단 자손의 지파 즉 단지파의 시조 단(DAN)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황인종의 조상인 셈 → 셈의 9대 자손 아브라함→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삭의 아들 야곱→야곱의 12아들 중 5번째 아들인 단이다. 단은 야곱의 본처 라헬의 몸종 빌하의 몸에서 태어났으며 그래서 우리나라 한단고기에도 단군이 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은 이스라엘의 7년 대 가뭄 때에 형제 가족 70명과 함께 이스라엘을 떠나 애급(이집트)에 정착한 이후로 애급에서 죽고 그 후손들이 다른 형제들의 후손들과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BC1491년) 모세의 인도로 애급을 탈출하여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60만 대중은 4군으로 나뉘어 원주민들의 땅을 분배하여 정복케 되었는데 4군에 배속된 단지파는 가장 강한 블레셋 민족와 싸우게 되었다. 단지파는 한때 레바논 동쪽 지방에 위치한 라이스(레센)를 점령하여 단(DAN)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도 하였다. (사사기 18:29, 여호수아 19:47)(여호수아 19:47─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그러나 단 자손들은 대를 이어 블레셋 민족과의 200년 간의 전투를 치르던 중 사사인 장수 삼손이 죽게 되자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어버리고 동북방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나. 단지파의 이동경로
단지파는 단 자손의 거주지 가나안의 소라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이주를 하였는데 그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
|
|
|
|
|
●가나안 소라(Zolar) →레바논 동부지방(지금의 시리아)→ 이라크(일부는 터키로 감)→ 이란 →중국 북부 알타이 산맥 →몽고 →만주(일부는 시베리아로 감)→압록강→ 대동강 변 도착(고조선 건국) |
우리 민족이 고대 이스라엘 단지파 였다는 증거
A.우리 민족은 고대에 히브리어를 사용하였다.
♠ 중국 북부 알타이(Altay) 산맥에서 약 100년간 머물면서 그곳 원주민과 교류하면서 그곳에서 태어난 후손들이 알타이어에 동화되므로서 현재 우리 민족을 언어학상 알타이어족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한반도에 도착하고 나서도 우리 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히브리어 언어와 문자도 사용하였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히브리어의 사용 흔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 히브리어: 애기(아기),에미,애비, 고시레,꼭두각시, 실로(구세주), 단(심판자)
실로 대단하다→구세주는 위대한 심판자이다. 라는 뜻으로 그 당시 장래에 올 구세주를 찬양, 염원하는 뜻으로 사용 되었으나, 본래의 뜻은 망각되고 크게 감탄하는 뜻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 대동강에서 발견된 3000년 전의 유물인 와당(둥근 기와) 에는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었다. (번역: 서울 대학교 종교 철학과 신상운 박사)
♠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는 단군 지석이 백두산에서 발견되었다.
1911년 일제 식민지가 시작된 무렵 백두산에서 벌목을 하던 일본인이 알 수 없는 글이 씌여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하고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다. 그러나 해석 할 길이 없어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던 프랑스 천주교 신부에게 판독시킨 결과 고대 히브리어로 씌여진 단군 지석임을 알게 되었는데 압록강 건너 안동현 천주교 신부도 와서 히브리어로 된 단군 지석임을 확인하였다. 그 이후 단군 지석은 일본인이 가져갔다. (평북 의주 출생 독립운동가 고정록씨 증언)
|
|
|
|
|
|
|
B. 인종 (외모,골상)이 같다
♠ 노아의 세 아들 중 황인종의 조상인 셈(Shem)의 후손이다.(창세기 9:25)
-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에서 이스라엘에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갈데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문명 말기에 수메르 민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현재의 이라크 유프라테스강 남단 지방이다. 수메르(Shumer)는 셈(Shem)에서 유래된 말이다.
♠ 머리카락이 검고 키가 작았다. (민수기 13: 33)
- 서구 유태인들은 백인들과 혼혈이 되어 백인과 같은 모습이 되었지만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우리 선조와 같이 키가 작고 머리가 검었다. 백인과 서구 유태인을 구별할 때 머리카락에 검은 빛을 띤 것을 보고 구분하였다 고 함.
♠ 골상이 똑 같다.
- 1950년 미군으로 한국에 와서 거주한 인류학 박사가 2년 반 동안 무덤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유대 민족과 우리 민족의 골상이 똑같다고 발표하였고, 이러한 사실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었으며 동아 백과사전에도 기록되어 있다.
♠ 머리가 가장 좋다.
-인류 중에 한민족이 머리가 가장 좋은 민족이며 그 다음 유대인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1970년 미국 하바드 대학 인류학자들이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C. 생활 풍습이 같다.
♠귀신 쫓는 양식이 같다.
- 귀신 들어오지 못하도록 양의 피를 집문 좌우 문설주와 안방에 바름 (출애굽기 12:7,23) : 애굽(이집트 )탈출 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기념하여 유월절 행사로 명명하여 계속 행하여 왔음.
- 가축이 귀한 한반도에 와서는 양의 피와 색깔이 비슷한 팥죽을 동짓날에 문설주에 대신 뿌렸으며, 고사떡에 붉은 팥을 사용하고, 결혼식때 신부에게 붉은 연지, 곤지를 사용하고, 옷 고름에 붉은 댕기를 하였음.
♠ 흰옷을 즐겨 입는다.
- 백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흰옷을 즐겨 입는 우리 선조와 같이 옛 이스라엘 사람들도 흰옷을 즐겨 입었는데, 지금도 유월절 첫날 흰 옷을 입고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며 밤을 지샌다.
사마리아 이스라엘인(사마리탄)들은 유월절에 조선시대 선비와 똑같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리심 산에서 양의 피를 얼굴과 옷에 뿌리고 바르며 제를 지낸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의 세마포 옷이 우리의 도포와 같다.
♠ 파, 마늘, 부추등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다.
- 우리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수기 11:5)...
♠ 타 민족에 없는 숟가락, 부삽, 부집게 그리고 제사 용기로 놋그릇을 사용하였다.
-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 쓰는 놋그릇을 다 가져 갔으며 (열왕기하 25: 14)
♠ 산소마다 돌 제단을 놓아두는 민족은 우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밖에 없다. 그리고 따로 돌 제단을 쌓아서 제를 지냈다. (예: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
-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것이며 (신명기27:6), (창세기 28:22), (여호수와 8:31)
♠ 사람이 죽으면 향을 피우고 베옷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하였다.
-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풍습서 내용 중
-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토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창세기 37: 34 )
♠ 집 가에 돌담(積石)을 쌓는다.
-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지금도 돌담을 쌓은 집에 산다.
♠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외출시 얼굴을 천으로 가리는 풍속이 조선시대 우리 선조와 같았다.
- 이스라엘 내에서 유목, 천막 생활을 하는 베드윈족은 지금도 고대 유대의 남녀 유별과 남존 여비사상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첩을 두거나 이혼 할 수 있게 하며, 처녀들이 긴 머리를 하고 있다가 결혼하면 머리를 틀어 위에 얹으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고 외출시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다닌다.
♠ 기타:
|
|
|
|
|
|
중국, 일본에 없는 우리 민족의 꽃 무궁화 (http://www.mugunghwahongcheon.go.kr/)는 원산지가 레바논, 시리아이다. |
- 장대 위에 놋 뱀을 달아놓음(민수기21:9)
- 우리 선조들은 솟대를 동네 입구에 세움. 족보를 가지고 중시하는 민족, 산당과 성황당, 폐백을 드리는 풍속이 같음. 멧돌을 사용, 등불과 청사초롱으로 신랑을 맞이하는 풍속이 같다. 설, 추석, 상달등 세 절기를 지키는 것이 같다. 이장 제도가 같다. 이외에도 수 십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
|
|
|
|
|
미토콘드리아 DNA분석에 따른 이동로 |
http://blog.naver.com/nmcr/20012440877
[출처] 우리 민족은 이스라엘의 단지파의 자손|작성자 realjoys
------------------------------------------------------------------------------------------------
헛소리 반박하기----
단군민족으로 태어나고도 환부역조하는 매국의 침략기독 강점기 만드는 기독교!
유대인과 이슬람은 하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소생인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이들은 아브라함, 모세등 같은 종교의 구약적 신을 믿고 마호메트의 코란과
유대교가 믿는 신이 같다. 한국기독교도 같은 신을 섬긴다.
성경에는 누가 누굴 낳았는지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 애굽 탈출후 모세에 의해 족보기록-BC-1446~1406~)
기독교 헛소리 -
이스라엘이 우리조상이라는 기독교의 주장
1-야곱의 5번째 아들 단이 동방으로 왔다.
2-애급탈출후 12지파 동방이주
3-아브라함의 자손이다.
4-바벨탑 붕괴이후 동방으로 이주-셈족의 자손이다.
5-수메르도 셈족출신이다.
-기독교 창조사학과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것-
셈의 첫째 아들 엘람 가문과 둘째아들 앗수르 가문 등은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의 통치하에서 시달리다가 바벨탑 사건이 터지자 동방으로 이주하였다
http://youny.yu.ac.kr/creatsci/Korean/03_immigration_route.html
(기독교 창조과학 3. 한민족의 이동 원인과 이동 경로)
헛소리 비벼주기★-★-답변
1-야곱아들이다.야곱-BC-2055년- 단군조선 건국(BC-2333)에 미치지 못함.
(야곱의 아들이름이 "단"자 하나가 맞다고 단군인줄 아는데 단군은 제사장 명칭이다)
2-12지파 애굽탈출후.=BC-1446년 =단군조선 건국에 미치지 못함.
단지파가 세계 열국으로 흩어짐이 아니다.가나안 땅을 차지해 12지파로 분배,(가나안 지도참조)
3-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BC-2166) 단군왕검 탄생( BC-2370년)
단군 왕검보다 204년이나 늦게 태어남.
4-1 바벨탑 붕괴후 이주설 -바벨탑 붕괴 -2178년- 조선 건국- 2333년
벨렉의 자손이랬다. 셈족 후손이랬다. 12지파다 라고 하는데.
4-2 벨렉 BC-2233 년대,-단군보다 137년이나 늦게 태어 났다.
4-3 셈의 자손이다.=셈은 가족들과 흩어졌다는 기록이 없고
아브라함이 18세까지 같이 살았다.
이도저도 우리민족에게 결부시키지 못하니 단군은 신화이며
우리역사는 오천년도 안된다는 환부역조인들 '
-바벨탑 붕괴후 이주설
기독경에 바벨탑은 노아의 증손자인(기독교 주장 바벨탑 사건 2417년 ~2178년) 대제국을 건설한
니므롯에 의해 시작된다. 바벨탑 붕괴이후 민족이 흩어져 우리나라로 왔다는 것인데 기독교 주장으로
연대를 바벨탑 붕괴 BC-2178년으로 쳐도.우리나라 건국 2333년이다.
★-★- 12지파가 열국으로 흩어져 우리나라까지 이동했다는 오류하나!!
1200년→→1000년경 히브리인이 가나안에서 신진세력으로 부상.
가나안땅을 차지해 12지파로 분배, 단지파가 세계 열국으로 흩어짐이 아니다.
가나안에서의 열국이다.(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므낫세, 에브라임, 베냐민 13지파이다.(12지파 지도 검색)
12지파가 열국으로 흩어졌다고 주장하는데 가나안에서의 땅차지하기이고 그 당시 우리
조선은 문헌상으로 봤을 때도 건국 1000년이 다되어 있었다.
★-★- 동방의 나라 설명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씌여졌다.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중심은 상대적으로 모든 곳을 의미한다.
곧 세상의 중심을 자신의 위치에 둘때 모든 곳이 중심이 되듯이,
서방이라함은 이스라엘로부터 서쪽(서아시아나 유럽)을 의미할 것이며
남방이라함은 남쪽 곧 아프리카를 의미할 것이고
동방이라 함은 동쪽(이란,이라크쪽을 향한 동쪽)을 의미할 것이며,
북방이라함은 이스라엘의 북쪽(시리아 터키등)을 의미한다. ...
동방으로의 이주설은 한국이 아니라 이란 이라크이다.
5-수메르가 셈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다.
기원전 1만 2000년경 서유럽에는 바스크인들이 문명을 일으켜 알타미라 벽화를 남겨놓았다.
그들은 지금의 유럽인들과는 다른 순수 토박이였다. 수메르인은 기원전 2500년대에 어디선가 몰려온 셈족에 의해 큰 타격을 받았다. 현재 중동을 이루는 셈족의 대이동인 것이다. 이 시기에 마침내 시리아가 역사에 모습을 내밀었고 그 지배자는 바로 셈계 페니키아인이었다. 이집트의 람세스 2는 기원전 1286년 시리아 북부 카데시에서 한판 승부를 겨루었으나 동쪽에서 강성해지는 아시리아를 보고는 싸움을 멈추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고 말았다. 바빌로니아 또한 이 시기 도시국가 이신에서 기원전 1155년 새 왕조를 열어 바빌론을 유린하던 엘람족, 카시트족을 격파하고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훌륭한 치세를 이루어 칼데아인에게 침입을 받을 때까지 흥성하게 된다.
유태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도 이때이다. 강대국들의 기록에 변방에 사는 소수 미개야만족으로 등장하는 정도이고 유태인의 바이블에서 언급하는 그 이전의 시대는 신뢰할 수 없는 신화의 시대이다. 기원전 1100년대에 유태인은 자신들을 지배하던 강대국들에게서 배운 역사와 자신들의 신화관을 접목하여 구약 바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셈족, 함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도 신화와 접목된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대인의 형성은 지금으로부터 모세가 기록한 BC-1446년이다.조선건국BC-2333년
그 이전(창세기)은 수메르 이집트 타민족의 창조신화를 베끼고 게시록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6000년이란 숫자를 보지말고 모세가 족보 기록한 숫자를 보기를...!
애굽의 자손,벨렉의 자손. 셈족 후손.. 12지파다. 동방으로 왔다.
이도저도 우리민족에게 결부시키지 못하니 단군은 신화이며
우리역사는 오천년도 안된다는 환부역조인들 '
5천년...우리의 ..유구한 ..역사속에..노아의 후손이란..흔적이..왜 먼지 한점 없을까...
왜 구한말 선교사(제국의 침탈 선봉대역할)의 말에 혹하기 전엔 전혀 몰랐을까...
---------------창세기는 신화를 빌려다 쓴것이다 ------------------------
19세기 부터 야훼의 천지창조를 6000년전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연대가 60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단이라 취급되었다. 성령충만 같은 오순절 기독들이 짖어대는 5000년 설도 기독경의 천지창조 시발의 연대를
모르면서 짓거린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유태족에 있지도 않는 비과학적인 허구의 천지창조라는 개념이 생긴 건 2500년 전의 일이다.
이스라엘에서 처음부터 천지창조 이야기 따위는 애초에 개념도 있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고대의
이야기들(언약, 출애급) 조차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창조라는 개념은 개독교가 이스라엘과 유대교에서 전승된 개념이다. 그리고 창조라는 큰 사건에 대한 언급도
구약 전체에서도 비중이 낮을 뿐더러 창조에 대한 내용이나 창조순서 조차도 앞뒤가 맞지 않을 정도이다.
창조의 개념은 포로기 이후에야 등장하는데, 이것은 유태인들이 중동의 다른 민족의 창조개념을 가져온 것이다.
이유는 유태족들에게 창조론이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훼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전지전능이나 세계를 만든 창조신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애급에서
구출하는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유태족들은 처음부터 야훼를 창조에 결합하지 않고 단순히
애급으로 부터의 구원하는 존재라고 여겼을 뿐이었던 것이지 별다른 것은 없었다.
이런 유태인의 야훼에게 창조라는 개념이 생긴건 후대의 일이다. 그래서 구약은 유태족 구원의 역사에서
창조로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유태족이나 기독교인들은 천지창조의 야훼가 이스라엘을 애급과 바빌론으로부터
구해준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유태족이 바벨론에서 탈출한 이후에 천지창조라는 개념이 적용 된 것이다.
결론은 유태족 초기에 야훼가 창조신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가나안 정착후 타민족들과 타종종교들의 창조신화를
도입하여 야훼에게 천지창조라는 중임을 부여하여 후대에 구약의 천지창조에 이른 것이다.
구약에 나오는 야훼의 천지창조(창세기 1-2장)는 포로기 이후에야 마지막에 기록되어서 은근슬쩍 구약의 머리를
장식하여 재정립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후대에 천지창조사건이 마치 야훼가 만들어 버린 것처럼 둔갑된 것이다.
유태족이 세계시작과 천지창조에 관한 신화적인 개념들을 옛날 중근동의 민족들과 함께 인정하게 된 것도 여기에서
연유하게 된 것이다. 유태족의 포로기 이전만 해도 천지창조가 야훼의 짓거리라는 일반적인 개념조차 인식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기독인들이 믿는 야훼의 천지창조는 6000년전도 아니고 성령충만이 주장하는 5000년 전은 더더욱 아니며
2500년전에 타민족의 창조신화를 베겨 짜집기한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