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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게시판 스크랩 해외연수보고서
아빠 추천 0 조회 164 12.07.31 12: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해외연수 보고서

 

 

 

 

 

연수기간 : 2010년 10월 27일 ~ 2010년 11월 07일(10박 12일)

 

장소 :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 주요 도시 및 시설

 

작성자: 행정기획위원회 박창순의원

 

서 론

 

 

 

2010년 10월 27일부터 10박 12일 동안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곧 바로 저 개인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 할까 하다가 의회 차원의 공식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제출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 것 같고 다녀오자마자 행정사무감사에 이어 2011년도 예산심사가 이어지면서 업무에 집중하다보니 늦게나마 연수후기 형식으로 보고서를 대신 할까 합니다.

 

나 자신 의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의원들이 해외연수 가서 종종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긴축재정에 들어간 성남시의 재정 때문에 곱지 않는 여론이 무척 부담스러웠지만, 주변에서 여론의 질타를 받더라도 해외에 나가 안목을 넓히고 연수의 본 목적에 위배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면서 다녀오라는 말에 이 때 안가면 언제 가랴 싶어 용기를 내 연수단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석 달 이상 지났고 해외연수에 대한 감흥이 많이 사라진 만큼 다녀온 기억들을 더듬으며 글을 쓰는 자체가 다소 어색하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이 보고서는 제 개인적인 시각에 의한 것이므로 다른 의원님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 미국과 캐나다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 해외연수계획에 대한 정보를 찾아 제작한 연수안내 지도(Training Guide Map)와 설레임을 안고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뉴욕 행 20:00시 비행기에 탑승했다.

 

장거리 여행에 대한 지루함은 명절날 고향에 다니며 27시간이나 자동차에서 견뎌 보는 등 익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좁은 비행기 안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상태로 주변경관 하나 볼 수 없는 13시간 비행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루하게 느껴졌다.

 

미국에서의 첫째 날(28일) 21:00시에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John F. Kennedy International Airport, 일명JFK공항)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직원들의 불친절에 가까운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대기하고 있던 라틴계 운전사와 한국계 미국시민권자인 현지 안내원 성정환씨의 안내에 따라 버스를 타고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 연수의 첫발은 시작 되었다. 멀리 저녁노을에 물 들은 맨해튼을 보면서 강을 건너고 도심을 빠져나가 뉴욕외곽에 있는 ‘EAST BRUNSWICK HILTON’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뉴욕에 도착 첫 날 체크인 하기 전 호텔 로비에서 013

 

전 날 밤 비행기에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뉴욕에 도착해 몸이 매우 피곤한 상태에서 대충 잠을 자고 약간의 문화적인 충격(?)을 감수 한 채 대장정의 미 동부, 캐나다 연수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절정에 이른 미국의 가을 풍경은 감탄사가 나올 만큼 환상적이었고,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쭉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첫 날부터 미국은 정말로 축복 받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부러움과 함께 아이러니 하게도 약간은 서글픔이 들었다.

둘째 날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이동 중 휴게소에서 버스와 함께 021

 

공식일정으로 워싱턴 근방 Fairfax City Hall을 방문하여 의회운영과 인사권 등 행정전반에 대해 질문을 하는 자리를 가졌으나 현지 통역이 행정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해외연수단이 방문한 목적을 모르는 Fairfax City 시장과 Supervisor(우리나라 의원)가 시의 일반적인 현황만을 설명하는 자리가 되는 바람에 친교의 시간 이외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한 가지 배울 수 있었던 점은 사람들과 시설물들이 매우 간결하고 검소한 느낌이 들 만큼 단촐 하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고 할 만 한 부분이었다. 하루 일정이 버스로 움직이다보니 한국과 달리 이동거리가 무척 길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점은 한국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워싱턴 근방 ‘YHYNDHAM’ 호텔에서 피곤함과 설레임을 꿈나라로 가져갔다.

 

 

 

 

가운데 지팡이 든 분이 시의원이고 시장은 여성이다. 055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도시 워싱턴을 하루에 둘러보기에는 조금 벅찬 듯 했다.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링컨기념관, 제퍼슨기념관, 스미소니언박물관, 우주항공박물관등을 시간에 쫓겨 자세히 보지 못한 점은 못 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아울러 스미소니언박물관 내에 있는 각 나라별 전시관 중, 한국관은 전시 공간에 비해서 자료가 매우 부실하므로 박물관 측과 협의하여 한국관을 잘 꾸며 세계인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박물관 내에 있는 살아있는 나비 전시관은 관람료에 비해서 볼거리가 없으므로 절대 비싼 돈 들여서 관람하고 실망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링컨대통령 동상과 제퍼슨 동상이 응시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은 과연 민주주의가 실현됐음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아직도 요원한 현재 진행형인가? 백악관 앞에서 30년 동안 반 핵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어떤 세상을 꿈꾸며 인생을 걸고 있는 것일까?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6.25 참전용사들의 실물에 가까운 동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시 UN군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했을까?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19개국의 유엔군과 38선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이 500여 평의 면적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고 다시 한 번 전쟁의 아픔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서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매일 빵과 과일, 우유에 물린 동료의원들의 먹거리에 대한 불만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YHYNDHAM’ 호텔로 향하는 길에 ‘한성옥’이라는 한식당에 들러 모처럼 한식으로 만찬을 하였다. 반찬들이 대체적으로 느끼한 맛이 들었지만 스테이크는 육질이 한 마디로 끝내주었다.

백악관 앞에서 30년 동안 반핵 평화시위를 하고 있는 할머니와 함께 135

 

세계적인 정치도시 워싱턴을 출발하여 나이아가라로 아침 일찍 출발 하였다. 버스로 7~8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는 안내원의 설명과 함께 오만하리만큼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속도제한이 65마일 (10% 상한선 포함하면 약 115Km)이라고 표시돼있어 우리나라 운전자들 같으면 150Km 이상은 무시로 밟을 만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달리는 차량은 9일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만큼 교통질서를 잘 지키고 있었다.

 

대륙의 광활한 지평선을 가로 질러 시원하게 뻗어있는 95번 도로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차 창 밖으로 펼쳐진 광활한 들판에 평화롭게 거니는 동물들과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들은 각박한 세상에서 ?기 듯 살아 온 나에게 오랜만에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미국령 염소 섬에서 말로만 듣던 나이아가라를 처음 마주했으며, 바라보고 있다 보면 엄청난 물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현기증이 느껴졌다. 연간 1,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모여드는 국제적인 명소 나이아가라폭포(falls)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지대에 걸쳐져 있는 거대한 폭포이다. 미국 쪽 나이아가라폭포는 행정구역상 뉴욕 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뉴욕은 그 이름만으로도 세계 제일의 명성을 자랑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지고 있음으로 엄청난 자연의 수혜자임은 물론 폭포에서 뉴욕 주 전력의 ⅓을 생산해 낸다고 하니 지지리 복도 많은 것 같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빙하기 이후 하류 11km 지점에 있었던 폭포가 연간 약 30Cm 씩 침식해 현재의 모습으로 위용을 갖추었다고 한다.

미국 쪽 나이아가라폭포 앞에서 225

 

워싱턴에서 나이아가라폭포까지 8시간 넘게 가는 동안 한식당이 없어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으니 수요조사를 잘 해 보고 한 식당을 열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미국에서 레인보우 다리를 이용해 나이아가라 강을 건너 캐나다로 들어가는 과정에 입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워 버스에서 한 시간 반 이상 기다리는 불편함은 사전에 예측하지 못하였던 현지 사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나이아가라 인근 한국식당 횟집에서 LA갈비로 저녁 식사 후 식당 지하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보았고 일행들이 오메가TEN 등 오메가관련 제품들을 샀는데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다시 들어 올 때 압수당할 수 있으니 가급적 오메가TEN은 사지 않는 것이 좋겠다.

 

모두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장거리 일정에 피곤해 했고 나이아가라 인근 ‘Ramada’ 호텔에 투숙했으나, 주변이 관광지다보니 모두들 유흥시설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밤이기도 했다. 인터넷이 잘 안되고 되더라도 자판기가 한글을 인식하지 못하니 애로가 많았고 노트북을 가지고 오더라도 꼭 랜 선을 함께 가지고 와야 연결 할 수 있으며, 미국이나 캐나다 호텔에는 머리빗이 없으므로 꼭 챙겨 와야 한다.

 

아침 호텔식이 부실하다고 모두들 투덜댔지만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잤다.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를 둘러보기 위해 하류 쪽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가니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부유한 저택들 틈에 기네스북에 올라있다는 세계에서 제일 작은 교회가 보인다. 얼마나 작기에 그러나 싶어 가보니 성인 너 댓 명 정도가 예배를 볼 정도였다. 왠지 속았다는 느낌과 함께 별 것도 아닌 것을 관광자원화 하는 자세가 부럽기도 하였다. 성남시에서도 새겨 볼 만한 대목인 것이다.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에서 제일 작은 교회 253

 

엄청난 위력으로 떨어지는 나이아가라폭포는 심장을 멈추게 하는 듯 감동 그 자체였다. 워싱턴에서 나이아가라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그동안의 피곤함은 엄청나게 떨어지는 폭포수에 실어 보낼 수 있었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아침은 어쩌면 신비에 가까운 조화와 하모니였다. 늦가을 11월의 햇살과 함께 단풍의 나라 캐나다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말로만 듣던 나이아가라폭포의 엄청난 위용을 감상하던 시간은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캐다다 쪽 나이아가라폭포 앞에서 270

 

점심 역시 전 날 저녁을 먹었던 한국식당에서 먹고 초겨울로 접어든 오대호를 따라 토론토로 향했다. 토론토에 도착하니 한 눈에 자연호수와 교통 및 상업이 발달 한 곳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옛 토론토 시청사는 고풍을 간직한 채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바로 옆에 신청사는 첨단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며 토론토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 했다. 한 가지 특이 한 점은 시청 1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혹시 우리 성남시에도 적용 가능 할 런지 검토 해 볼 필요가 있겠다.

 

 

 

 

 

 

 

 

 

 

 

 

 

 

토론토 신 시청사 281 토론토 구 시청사 285

토론토 대학교 302

시간에 바빠 스쳐 지나다시피 시 의회 건물을 돌아보고 토론토대학 교에 들어서니 대학교의 규모가 명 성에 비해서 크지 않다는 것에 다 소 놀라움이 있었지만 학교의 크기 가 어디 학문의 수준과 비례한다던 토론토 시의회 건물 298 가? 토론토대학교가 언제까지나 참 진리의 전당으로써 그 명성을 이어가기를 바래본다.

 

어디를 가더라도 차이나타운이 형성돼 있다고 하지만 토론토 차이나타운은 특히 번성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일말의 부러움 이었으리라. 물건은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 상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별로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안내원의 설명 중 한 가지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토론토는 추운 고장이기 때문에 사우나가 잘 될 거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시내에 사우나가 한 곳이 생겼는데 대박을 터트릴 만큼 사업이 잘 되고 있으나, 사업을 시작하려면 초기 건물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도 꼭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업 타당성 조사에 나서보자.

 

토론토 시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C N 타워에 올라가니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토론토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바다 같은 호수와 수시로 뜨고 내리 는 경비행기가 무척 풍요로워 보였다. 550m가 넘는 탑 꼭대 기는 회전하는 레스토랑이어서 그런지 스테이크가 더욱 맛이 있었다. TORONTO HOLIDAY INN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토론토 C N 타워 앞에서 320

 

 

미국과 캐나다에 와서 느낀 것들 중 하나는 할로윈데이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이었다. 마침 할로윈데이가 가까웠는지 건물 출입구와 길옆에 노란 호박으로 유령처럼 만들어 귀신인형과 함께 놔두는 풍습으로 봐서 집안으로 잡귀의 출입을 막고자하는 뜻이 아닌가 싶었고 젊은이들은 여러 가지 분장을 하고 밖으로 나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할로윈데이를 맞아 집 앞에 유령인형을 놔두고 토론토항에서 길거리 분장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309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과테말라출신 운전기사는 아직도 반팔 옷차림이고 저녁에 잘 잤느냐고 하며 나이를 물어보자 뜻 밖에 나하고 나이가 동갑이었다. 늙수레해서 한참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콧수염도 길렀고 원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민족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가관 인 것은 이번 우리 연수가 끝나면 스물네 살 처녀하고 재혼을 할 예정이라고 자랑을 한다. 콰테말라에서는 대통령보다 월급이 많아 아메리카드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며 자기가 일등 신랑감이라는 말도 빼 놓지 않았다.

과테말라 출신 기사와 함께 128

 

빵과 우유 과일로 아침을 먹었지만 몇 몇 동료들은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토론토시청을 방문 할 계획이었으나 현지 사정상 일정을 변경하여 토론토시에 있는 무역센터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우리 방문단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역센터 직원은 토론토시의 Discovery District, Soundest Banking System 등 투자유치를 위한 설명회만을 하는 바람에 다들 의아해 할 뿐 이었다. 따라서 연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여 시간과 예산을 낭비 한 점은 인솔자들의 책임 소재로 남을 수 있을 만큼 아쉬운 부분이었다.

토론토 무역센터에서 342

 

무역센터 방문을 마치고 캐나다 재활 치료단체들 중 하나인 March of Dimes를 방문하여 연혁과 현재 활동 등을 살펴보았다. 이 단체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8년 당시 대유행했던 소아마비를 극복하기 위해 소아마비재단(National Foundation for Infantile Paralysis)을 설립한 것이 이 단체의 전신으로 재단은 소아마비와 싸우기 위해 라디오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임'(10센트) 기부를 호소하곤 하였다. 이 단체가 성공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소아마비의 대유행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시대적 상황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재단을 창설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March Of Dimes’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따온 친숙한 네이밍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고 기부가 어렵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또한 당시로써는 첨단 대중 매체인 라디오를 이용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 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들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루즈벨트가 사망하고 백신의 개발로 소아마비가 사라지면서, 방향성을 잃고 단발성 캠페인의 성공적인 사례로만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브리핑에서 언급한대로 목표를 다시 재설정하고 대중의 관심을 얻을 캠페인을 현재 상황에 맞게 전개한다면 역사적이고 널리 알려진 재단인 만큼 그 정신을 이어가면서 장기적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아울러 재단에서 현재 근무 중인 한국인 유학생의 알기 쉬운 통역과 친절에 이 글로써나마 고마움을 표시하는 바이다.

March of Dimes를 방문하여 브리핑을 듣고 있는 모습 348

 

한국식당 ‘李家’에서 LA 갈비로 점심을 먹고 토론토를 떠나 캐나다 동부 쪽을 가로 질러 오타와로 가는 길은 한국 풍경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차 창 밖으로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들과 오대호 주변으로 천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들 위에 지어진 호화 주택들을 보면서 부러움보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지금 이런 호강을 누려도 되는 걸까 또 시장 아줌마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낸 세금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비용에 포함돼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미안하기도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보았다. 장거리 버스여행에 지친 동료들은 단잠에 빠지고 정용환의원 김선임의원과 동전으로 짤짤이를 하며 즐기는 동안 땅거미와 함께 오타와 시내로 들어섰다.

토론토에서 오타와로 가는 길 오대호 주변 천 섬 앞에서 369

 

 

일정표에는 행정의 도시 오타와 문화탐방이라고 되어있어 기대를 했으나 그냥 저녁에 시청사 둘러보고 시청사에 정면에 만들어진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타와시청사 내 꺼지지 않는 불 앞에서 385

 

오타와시청에서 버스를 타고 십분 정도 이동하여 저녁 식사는 ‘비원’이라는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외국에서 먹는 맛도 괜찮았고 주방장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가 있어 대화를 해 보니 보람도 있지만 외롭다는 말과 함께 외국에 살면 애국자라는 말에 공감 할 수 있었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이 말이 딱 어울리는 오타와 방문이었다.

 

밤길을 두 시간 넘게 달려 몬트리올 ‘SEINEURS DES HOTEL’에 도착하였다. 몬트리올 일정 역시 연수계획에는 캐나다의 프랑스인 몬트리올 문화탐방이라고 되어 있으나 호텔에 밤늦게 도착하여 하루저녁 자고 아침에 그냥 떠나는 수준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숙박은 외곽으로 벋어 날수록 좋은 호텔보다 모텔수준이긴 하지만 깨끗하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몬트리올을 출발하여 퀘벡으로 이동하였다. 가는 도중 안내원이 퀘벡은 날씨가 춥고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비만인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에 유심히 살펴보니 미국인들에 비해서 확실히 비만인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퀘벡이라는 뜻은 앨곤퀸 인디언 말로 ‘강폭이 좁아지는 곳’이라고 했다. 세인트로렌스 강 폭이 좁아지는 곳에 위치한 퀘벡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확연히 구분되었다. 특히 우리가 방문했던 구시가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250년 전으로 돌아온 같았고,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 퀘벡 역사지구는 (Historic District of Old Quebec) 잘 보존되어 관광 상품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 주민들의 삶 자체가 관광자원화 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퀘벡 구시가지 샤또 프롱트낙 호텔 앞 작은공원에서 431

 

원래 인디언 마을이 있던 이곳을 프랑스가 먼저 선점을 하였고 프랑스와 영국은 이 지역에서 격렬한 패권 다툼을 벌인 결과 1759년 프랑스로부터 이 지역을 획득한 영국은 1775년 미군의 공격까지 막은 뒤 성벽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17~18세기 경 유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좁은 골목에는 고풍스러운 멋이 살아 있었고 절벽을 따라 펼쳐진 아브라함평원은 영국군이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퀘벡의 지배권을 획득한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했다.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지금도 프랑스계 주민들은 80% 이상이 불어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고유의 전통을 잘 지키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퀘벡 구시가지에는 유럽 열강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생긴 인디언들의 희생에 대한 역사가 있었고, 우리 대한민국의 근대사와 맞물려 가슴이 아파왔다.

 

가을이 아름다운 도시 퀘벡을 돌아보면서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며, 우리 성남시는 미래에 대한 첨단 이미지를 세워가는 것 못지않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점심은 400년이 넘은 프랑스풍 식당에서 닭요리로 먹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까지 장장 800km가 넘는 아름다운 메이플 로드(Maple Road)를 따라 올라왔던 반대방향 미국 보스톤으로 향하였다. 많지 않은 눈이지만 사색에 잠길 만큼 쌓여있는 길을 따라 8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를 달려 버스는 국경을 넘어 저녁 늦게 보스톤에 도착하였고, 한식당에서 해물탕으로 밥을 먹은 다음 ‘U-Mass Double Tree’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참고로 ‘U-Mass Double Tree’ 호텔은 대학의 연수원 숙소 같은 곳 이었다.

 

아침부터 다들 피곤에 지쳐 입맛을 잃었는지 내가 가지고 간 컵라면이 단연 인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처음 방문한 미국에서 어느 정도 언어소통이 되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있으니 다들 체질 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것 같아서 신기 할 따름이었다.

메사추세츠 주 보스톤 시내에 있는 미국 최초의 공립 수목원이자 유명한 공원 중 하나인 하버드 아놀드 수목원(The Arnold Arboretum of Harvard University)으로 향하였다. 수목원은 1842년 벤자민 벗시 (Benjamin Bussey, 1757~1842)가 우드랜드 힐(Woodland Hill)을 하버드대학에 기부하면서부터 설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교는 기부 받은 이 토지를 농업연구에 이용하기 위하여 1871년 농업대학 소속의 벗시연구소(Bussey Institute)를 이곳에 설립하였고 1872년 제임스 아놀드(James Arnold)가 농업과 원예학을 위해 사용해주길 희망하며 0.5㎢의 자신의 토지를 기부하면서 하버드 아놀드 수목원이 설립되었다는 수목원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버드 아놀드 수목원에서 현장학습 나온 어린이들과 함께 472

 

그저 평범한 공원으로만 보이는 이 수목원의 안내서를 읽어보면 놀랍게도 1900년대 초 아시아에서 식물을 채집하고 육종하고 계량하여 식물자원으로 만드는 식물 유전자원 채집기지 역할을 하였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메타세쿼이어'이다. 많은 사람이 메타세쿼이어의 원산지를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알고 있는 것도 중국에서 발견된 메타세쿼이어가 하버드대 아놀드 수목원으로 보내진 후 아놀드 수목원에 의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미대륙에 심어진 수많은 메타세쿼이어는 1948년 중국에서 하버드대 아놀드 수목원으로 보내진 메타세쿼이어를 당시 수목원장이었던 Elmer Merrill박사가 메타세쿼이어 보급운동을 벌여 종자와 꺾꽂이 형태로 세계적으로 보급한 결과이다. 당시 도입된 메타세쿼이어는 아직도 하버드 아놀드 수목원의 정문에 심어져 있으며 수목원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여름 정원에 녹색 이외의 색을 첨가하고자 여름에도 색이 변하지 않는 황색계열과 흰색계열의 변종 식물을 심고 조각정원을 만들거나, 혹은 건축물을 정원에 배치한다는 설명은 유념하여 들을 필요가 있었다.

 

수목원 안에 한국 나무도 있냐는 질문에 안내원은 기온상승으로 한라산 구상나무는 고사하거나 생육불량을 겪으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고,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했는데 1920년 미국 식물학자 윌슨이 한국 특산식물임을 밝혀냈고,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는 현재 미국 하버드 아놀드 식물원에서 자라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목 본류 식물학자에게는 세계최고의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의 안목과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부러움과 함께 개인적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성남시민들께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버드 아놀드 식물원 관람을 마치고 보스톤 중심을 흐르는 찰스강 건너 케임브리지 시에 접어들었다. 케임브리지 시내에 접어들자 세계적인 하버드대학과 MIT공대가 있는 교육의 도시답게 세계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버드대학은 매사추세츠 식민지 최고법령에 의해 1636년에 설립된 미국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 당시의 이름은 케임브리지 칼리지로 청교도 목사를 육성하는 대학이었지만 청교도 목사 존 하버드가 400권의 장서와 현금 800파운드의 재산을 기탁한 후 그의 이름을 따 하버드대학이 되었다고 했다.

 

대학 안에 들어가자 바로크식 건물들과 첨단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었고 하버드동상 신발을 잡으면 공부를 잘 한다는 말에 동료들 모두 사진 찍기에 바빴고, 그런 속설이 맞기나 한 것처럼 하버드 동상의 신발은 사람들의 손에 반질반질 해 져 있었다. 학습관 안으로 들어가자 열기 높은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가 느껴졌고 가끔 한국 유학생들도 있어서 반가웠다. 또한 반라의 남학생이 학교 안에서 행위예술 비슷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 학생들의 자유분방함과 지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버드대학 안에서 487

 

하버드대학 방문을 마치고 MIT공대 방문 일정이 있었으나 동료의원들이 가고 싶지 않은지 일정변경을 요구하였고,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가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가자고 할 수도 없어 못 가고 말았다. 세계적인 교육의 도시 케임브리지에서 많은 것을 가슴으로 담고 왔다. 나는 아직까지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 일 뿐만 아니라 올 해 대학에 입학하는 수녕이가 이런 대학에서 공부를 한 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점심때가 되어 케임브리지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 ‘코리아나’에서 육개장을 시켜먹고 오후에는 숙소인 보스톤 외곽 Double Tree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대형마켓에서 쇼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물건을 사지는 않았고 주로 가격과 품질을 확인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브랜드들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어느 덧 하루 일정도 끝나가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으며, 버스에 있던 소주를 식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마시는 바람에 교포 주인아줌마께서 경우가 아니라며 내뱉은 짜증 섞인 말소리를 들었던 장면은 성남시의원으로써 뿐 만 아니라 고객으로써도 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연수기간 중 아쉬운 부분의 하나였다.

 

이 날 밤 피곤에 지쳐 같이 잤던 동료의원의 코 고는 소리는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나 역시 그에 못 지 않을 정도로 코골이를 했으리라는 것은 짐작만 할 뿐 이었다.

 

연수기간 중 딱 하루 비가 온 날이었다. 보스톤 Double Tree 호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빗길을 헤치고 다섯 시간 정도를 버스로 달려 뉴욕에 다시 오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뉴욕 한 복판에 한국식 설렁탕집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한 밭’이라는 식당은 그 맛에 비례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우산을 받쳐 들고 맨해튼의 중간에 위치한 그 유명한 센트럴 파크(Central Park)를 둘러 봤다.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대개 공원들이 자연 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거목들이 즐비한 공원에는 연못과 산책로, 동물원 등이 있었고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문득 생각 난 것이 성남 본시가지 제1공단 자리에 규모는 작더라도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493

 

오후에는 도시건설 분야로 배터리 파크를 견학 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문화복지 분야로 기획한 국립 건강 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를 방문하였으나 이 역시 다녀갔다는 의미 외에 달리 얻을 것이 없었다. 경제환경 분야는 뉴욕시 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하여 축척된 기술력을 보는 것으로 일정표에 되어 있었으나 엉뚱하게 시내에 있는 청소행정국을 방문하는 바람에 정작 쓰레기 처리시설은 보지 못 한 체 담당자로부터 뉴욕시 쓰레기는 배로 실고가 타 지역에 매립을 한다는 말을 듣고 소각을 위주로 하는 성남시와 매립을 주로 하는 미국의 특성을 잘 못 이해하고 시간을 낭비 한 것 같아 허탈하였다.

 

오후 일정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버스로 가는 길에 타임즈 스퀘어 (Times Square) 광장을 잠시 방문하였다. TV가 일반화되기 전 타임즈 스퀘어는 대중을 향해 번쩍이는 광고를 내걸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은 Mc Graw Hill Building부터 그리스 부흥기 양식의 Town Hall과 Morgan Stanley Building으로 대표되는 브로드웨이의 좀 더 현대적이고 화려한 사무실 블록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잘 볼 수 있었다. 또한 85개 언어를 쓰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들이 뒤 섞여 타임스퀘어 광장은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쳐 보였으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광고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설치가 되어있어 새삼 반갑기까지 하였다. 우리 성남시 역시 규모와 성격은 조금 다르겠지만 예전 종합시장근방이 이와 같은 기능을 담당 한적 있는데 상권과 함께 이런 문화적인 공간을 만들어 젊은이들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이 되어보기를 희망해 본다.

타임즈 스퀘어 광장에서 505

 

미국에 와서 그나마 방문다운 방문을 해본 곳은 일정에 없었던 에세스 바이오라는 회사를 방문하여 설명을 들어 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말라리아에 대한 자가 진단 시약을 발명하여 특허 출원하였고, 지금은 미국 국방성에 납품을 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향후 사업계획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라는 것이 더욱 고무적이었다.

 

저녁은 김순례의원의 부군께서 우리 일행들에게 ‘금호정’식당에서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고 곁들여 노래방에서 잠시 노는 시간을 가졌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일찍 깨어 호텔 밖으로 나갔더니 어제 내린 비로 가로수 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라틴계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어 잠시 물어보니 굿은 일은 남미 쪽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다는 답변을 해 줬다. 청소를 하는 방식이 우리나라 보다 더 기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전 공식일정으로 AMBOY 시청 및 의회를 방문하여 시장과 시의원들의 환대를 받았다. 인구가 약 5만 정도 되는 작은 도시지만 역사를 잘 간직한 도시 같아 보였고, 자치경찰까지 두고 있는 도시답게 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미국에 와서 많이 느낀 것이지만 사람들이 참 검소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AMBOY CITY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큰 부분이었다. 또한 의회와 방청객들 간의 거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열린 공간에서 의사 진행을 하는 것은 우리시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분명한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차 창 밖으로 펼쳐진 미국 풍경들 중 우리나라와 조금 다른 것들은 우리나라에는 예전에 없어진 나무 전신주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이었다. 시멘트 재질보다 좋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은데 어떤 측면에서 그런지 나중에 확인 해 볼 필요가 있었다. 또한 시내 고가도로를 받치고 있는 철제 빔에 페인팅을 안 하고 녹이 슬어 있는데도 그대로 두고 있는 곳이 많았으며, 가로수 보호대는 우리나라처럼 지면과 똑 같이 평평하게 하지 않고 지면으로부터 30cm 정도 감싸 안은 것처럼 올려서 그 안에 퇴비 같은 것을 주어 흩어지지 않도록 하고 뿌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뉴욕시내 구경을 나섰다. 먼저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배터리 파크(Battery Park)로 가서 배를 타고 그 유명한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눈앞에서 직접 구경하였다.

 

이 거대한 동상은 전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고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는 이 45m 높이의 동상을 만드느라 파리에서 10년간 작업했는데, 1886년에 뉴욕으로 실고와 교수대가 있던 이 곳 작은 섬에 세워졌다고 한다.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612

 

자유의 여신상 구경을 하고 난 후 배터리 파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고 뉴욕 맨해튼 거리를 약 30분 정도 걸으며 직접 느껴 본 것들 중 길거리에 힘차게 서 있는 황소동상을 보면서 성남시에도 이런 것이 하나쯤 있어서 명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뉴욕시내 구경은 시간 때문에 버스로 이동을 하면서 보았던 관계로 여기서도 스쳐 지나가듯이 써 보기로 한다.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South Street Seaport),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 그리니치 빌리지 Greenwich Village,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 뉴욕 증권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 세인트 존 대성당(Cathedral of St. John the Divine),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 9.11 테러에 비극적으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건물, 차이나타운 등등 버스를 타고 차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뉴욕은 도시전체가 아름답고 깨끗하고 고풍스럽다는 막연한 기대감보다, 현대적이며 역동적이고 그 뒤에 숨어있는 미국식 전통과 문화, 인류 문명이 탄생시킨 세계 최대 걸작의 도시이면서도 낡고 허물어지고 힘들어 스스로 지탱하기 힘들어 철근이 들어난 노쇠한 콘크리트, 엄청난 부와 명예 그리고 낭만이 넘실대는 풍요로움과 미국인 특유의 여유가 곳곳마다 배어 있고 부와 빈곤이 공존하는 뉴욕은 분명 야누스의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뉴요커들의 삶의 진한 체취를 느낄 수 있었고,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구의 중심부 뉴욕은 그래서 지구인 모두의 동경의 대상인 것처럼 보였다.

 

저녁 식사는 한인 타운 내에 있는 한국식당 횟집에서 먹었다. 한국에서부터 인솔하고 간 세종여행사 이사님께서 의원님들의 불만이 많으신 것 같은데 죄송하다며 오늘 저녁은 우리 회사에서 사겠다는 제안과 함께 회를 주문하여 먹었다. 다른 의원님들께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먹는 회 맛은 푸짐하기는 하나 그렇게 담백하지는 않았다.

 

한인 타운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미국에 사는 보통 현지 교포들이 평소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 썩 잘 살고 있다는 인상은 받지 못 했으며, 오히려 어려운 와중에도 열심히 사는 교민사회를 보면서 잠시나마 미국생활에 대한 생각도 정리 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은 록펠러 센타 Top Of The Rock 전망대의 야경과 Times Square 광장을 돌아보며 해외연수의 마지막 밤 일정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날 비행기에서의 지루한 시간에 잠을 자기 위하여 가벼운 고스톱으로 밤을 지새웠다.

Times Square 광장의 야경 1402

 

한 숨도 자지 않고 먹는 아침이 그리 맛있을 리가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서둘러 여행 가방을 챙긴 다음 버스에 올랐다. 그 동안 비교적 잘 먹고 잘 잤다고는 하지만 집이 그리워 얼른 가고 싶은 마음의 비중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오후 네 시가 넘어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평소 아껴주시던 지인들께 공항에서부터 버스로 오는 시간에 내내 전화로나마 먼저 귀국인사를 드렸다.

 

 

 

 

 

결 론

 

사실 이번 해외연수를 떠나면서 선진 지방자치제도를 직접 보고 배우겠다는 의욕과 계획은 나름대로 세우고 떠났던 것이 사실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정책 결정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촉진하고 정부권력을 분할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싶었다.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우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방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에 가장 충실하게 부응하는 정부라고 믿고 있을 것 같은 선입관이 있었고, 지방정부가 주민들을 위해 여러 다른 종류의 서비스를 유연하게 제공해 주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과 집단이 살고 있는 미국은 여러 도시나 지방정부의 대민봉사 유형이나 세금수준을 그 지방정부 관할구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각자 결정하고 있을 것 같았고,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일선 행정기관으로서 주민들이 원하는 행정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보다 잘 충족시켜 주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지방자치가 갖는 중요한 의의에 부합하고 선진 사회에서의 지방자치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현황 및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하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이번 해외연수를 계획하는 것으로 알았고,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매우 컸지만 그 기대감은 내가 초선이라는 순박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연수 첫 날부터 내 생각과는 거리가 멀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처음 간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의 사고방식, 역사, 우수한 점 등에 대해 잘 보고 느낀 점들을 대상으로 성남시 발전에 조그만 뒷받침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였다. 또한 버스의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 연수 시간의 30%를 길에서 보 낸 점은 아무리 광활한 미 대륙에서의 연수였다고는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아쉬운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공항에서부터 픽업을 해주고 돌아올 때까지 수고하여 준 현지 안내원 성정환씨와 과테말라출신 버스 운전기사에게 이 지면을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2011년 2월 23일

행정기획위원회 박창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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