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행 고속버스에 10여명이 탔다. 그것도 주말에 이 정도이니 운영이 제대로 되는지 의문이다. 30여 년 전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묵호(지금,동해)항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안내양이 동승하여 예쁜 목소리로 써비스를 하였는데 세월의 흐름이 여실히 느껴진다. 어쨌든지 뒷좌석 한 라인을 온통 차지한 채 고속도로를 달린다. 강릉 터미널에서 공선생과 함께 점심을 먹고 속초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맨 앞좌석의 초로 아줌마의 딱딱거리는 껌 씹는 소리에 기사 양반이 한 마디 한다. 그 아줌마도 맞장구치며 그 정도의 예의는 있다고 한다. 몇 명 타지 않은 버스에 기분이 맹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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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조대에서 우리는 내렸다.
‘다 같이 그러나 다르게’라는 구호가 재밌다. 도시로 모이는 교육의 집중은 획일성과 성적 만능주의에 젖어 개성이 없어진지 오래다. 시골의 학생은 계속 줄어 폐교가 늘어가는 지금 그 옛날 벼메뚜기를 잡으며 등하교를 했던 그 아련한 기억은 오늘 부모 세대에나 있었던 되돌릴 수 없는 추억거리일까? 그 때에는 학원이 온 산과 들과 개천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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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폐쇄된 맥주집. 항구에 닻을 내린 선원들의 왁자한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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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에서 불어온 아직 냉기 품은 바람은 그물 고르는 아낙의 손마디에서 떠날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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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어놓은 38선은 돌비석에 남아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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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하는 바위 위에는 소나무 몇 그루 생명의 처절함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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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슬레트 지붕 안에 이젠 사람이 살지 않아 훤하게 열어버린 어머니 가슴으로 찬바람만 비집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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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스카이라운지에서 보는 바다는 끝없이 넓고 저 아래 일인용 공선생 해수욕장이 앙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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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기둥과 벽들은 한국동란 전에 칙칙폭폭 달렸을 증기기관차 철로였겠지. 지금은 밭이나 도로로 흡수되고 흩어져 아련한 상상으로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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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항은 피항한 어선들로 가득이다. 옛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라고 관광객을 부르는데 바람바다에 몇 쌍의 연인들이 들고 날아 어촌의 쇠잔함만이 너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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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나무에 세워진 안전모는 무슨 뜻일까 그 옆 갈매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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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주문진에서 떨어진 외진 항구. 털고 남은 회감을 얻어먹으려는 갈매기들의 자리싸움이 한창이다. 자연산 도다리와 가재미회 한 점 들고 철이네 집에서 나그네의 회포를 푼다. 밤은 깊어가고 모래사장에 절퍼덕 앉아 달과 별을 배경으로 우리는 자꾸만 흩어지고 사라지는 목소리에 연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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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다. 또 다른 시작이다. 일출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동해 바다를 박차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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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철책 너머 저 군인들이 뭔가 흔적을 수색하고 있다. 강화도의 녀석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아침에 갑자기 아픔을 느낀다. 15년 전에 가본 캘리포니아만을 따라 형성된 천혜의 바다와 모래 그리고 파도는 그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롭던지. 써핑과 파도를 타며 그칠 줄 모르고 나오는 명랑한 웃음들은 지금도 아득히 부럽다. 우리도 그 못지않은 해안과 미를 갖추고 있는데 저 곳에 들어갈 수 없으며 만지지도 못한다. 우리 것을 우리가 갖지 못하는 이 서글픈 현실은 지금 서해에서 또 다른 아픔을 만들고 있다. 백두대간 어느 무서리가 내리던 날, 소백산 비로봉에서 일출을 보려고 두 시간을 기다렸던 추위보다 오늘 모텔 발코니에서 보는 일출이 더욱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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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나무 숲 아침 길은 위안이다. 이런 길이 경포대까지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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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해수욕장에 있는 cafe가 아침을 맞는다.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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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항에 서 있는 저 머구리 동상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서해 천안함 구조에서 운명을 달리한 한주호 준위가 갑자기 생각난다. 그에게 산소 호스가 연결된 저런 도구가 조금 더 빨리 준비되었더라면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우리네 인생사에서 보기두문 영웅이 사라진다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며 도 다른 슬픔이다. 자식 같은 후배 해군들의 생사를 몸소 해결하려했던 용기는 조그만 안전 도구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었다니 참으로 애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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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넓은 들에도 봄 준비에 한창인데 저 멀리 대관령 준령은 아직도 눈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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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오늘의 종착지 경포해수욕장이다. 앞서 간 저 발자국도 잠시 후에는 바닷물에 흔적 없이 지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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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의 갈대는 무심한 바람에 제 몸을 맡긴다. 그 소리 귓가에 맴돈다. 지금도
첫댓글 조박사와 같은 길을 걸었으면서도 서로 보고 느끼는 것이 조금은 차이가 나는것은 사람이기 떄문 이겠지요. 모처럼 화창한 봄날 눈이 호강을 하고 가슴은 시원해진 여행,
그 자리에 길 동무가 있어 더욱 좋았던 시간 이었습니다. 이제 미둔님의 사진 솜씨는 제법 경지에 올라선 느낌입니다. 저두 곳 올리겠습니다.
같은 길을 가도 다른 맛을 느끼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닐까요? 동행해서 항시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