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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복수초(설련화)-어떤 분은 '호기심'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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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봄이 늦는다고 한다. 이곳 제주도 예년에 비하면 대략 일주일 정도 늦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봄이 늦어진다는 소식과 함께 '봄의 전령'들을 소개하는 데 한결 같이 개나리의 개화 시기를 말하고 있다. 대략 3월 중순경 서귀포에서부터 봄의 전령 개나리가 개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개나리가 아직 꽃망울을 맺지도 않은 때에 이미 피고지면서 봄을 알려 주는 진정한 '봄의 전령'들이 있다. 올해처럼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에도 입춘 전에 어김없이 피었으며, 입춘 다음 날 어느 양지 바른 오름에서 눈맞춤을 했던 꽃이 있었으니 제주의 세복수초였고, 제주에서뿐만 아니라 강원도에서도 복수초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 하여 '설련화'라고도 부른다. 그 설련화를 찍기 위해 입춘지절에 눈만 오면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렇게 쉽게 설련화는 모습을 내주지 않는다. 피어 있을 때 눈이 오면 눈에 짓물러 버리니 눈이 소보록하게 쌓인 후 그 눈을 뚫고 올라와야 하고, 너무 따스하면 눈이 다 녹아 버리니 설련화를 만나는 것은 심마니들의 산삼 찾기와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설련화를 찍은 분들은 '심봤다!'고도 한다.
입춘 다음날 세복수초와 눈맞춤을 했으니 거반 한 달이 지났다. 그 때에 설련화를 얼마나 고대하고 또 고대했지만 담지 못했는데 거짓말 같이 3월에 설련화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설련화를 찍었으면 하는 소망이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 3년만에 행운처럼 찾아온 것이다.
'봄이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 그 차가운 겨울을 녹여내고 봄을 오게 하는 것은 이렇게 작은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저 꽃들의 기운에 녹아 내리는 눈들을 보면서 이제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에 온 몸이 따스해지는 것도 같다.
겨울은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긴 겨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작년 이맘 때에는 개별꽃, 노루귀, 변산바람꽃, 산자고까지 만났는데 올해는 아직도 드문드문 소식이 들려올 뿐이다. 그러나 이미 봄은 와 있었다. 단지 추위에 잠시 주춤했을 뿐이었다.
작은 연등을 연상시키는 세복수초가 봄 햇살을 가득 담았다. 저기에 담긴 봄 햇살 한잔이면 온 몸에 담겨져 있는 겨울이 다 물러갈 것만 같다. 그 안에 담긴 봄 햇살, 그것은 어떻게 마시는 것일까?
설련화를 담는 것을 내년으로 미뤘는데 행운처럼 다가오게 한 주인공은 이제부터 소개할 '변산바람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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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바람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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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바람꽃이 궁금했다. 지난해에는 2월 중순에 만났는데 이미 화들짝 피어서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 주었던 꽃이다. 복수초의 뒤를 이어 피는 꽃, 봄의 전령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꽃이 변산바람꽃이다. 꽃을 찾아 소식을 전하는 분들이 전하는 봄꽃들 중에서 그 순위가 상위권이다. 대략 3위까지 보면 순서가 약간 다를 수는 있지만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등의 순서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개나리나 진달래는 순위권밖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봄의 전령이 된 이유는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고, 키도 제법 크고, 꺽꽂이를 해서 따스한 방에 두면 꽃을 일찍 피우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개나리나 진달래까지는 지나치지 못하니 평균적으로 볼 때 그들은 봄의 전령이다. 그러나 작은 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봄의 전령은 복수초, 변산바람꽃이나 노루귀 같은 것이리라.
세복수초는 지천이고 꽃몽우리를 쑥쑥 올렸는데 작년 이맘때 지천이었던 변산바람꽃은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간신히 막 싹을 내고 몽우리를 낸 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략 일주일은 더 있어야 만개한 변산바람꽃을 볼 것 같다. 그만큼의 시간 봄이 늦어진 것이라고 보면 될까?
따스한 햇살에 녹아 내린 눈으로 땅이 질퍽하다. 질퍽한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사진을 찍으니 무릎에 물기가 스며들고, 풀내음이 '이젠 봄이야, 완연한 봄이야!'하고 속삭인다.
어딘가 피어 있는 꽃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천천히 돌아본다. 외롭게 한 송이씩 핀 꽃을 서너 개 만났다. 활짝 핀 꽃도 예쁘지만 사실 새악시처럼 막 피어나는 꽃들의 아름다움이 또 얼마나 근사한 것인지 그들을 바라보면 절로 행복하다.
"야, 이제 너희들 만나느라고 더 분주해지겠다. 더 부지런을 떨어야겠는데?" "너무 서둘지도 말고, 그렇다고 나하고 눈맞춤 하느라 해야 할 일 놓치지 말고 행복하시길..."
봄의 전령, 그것이 누구로 불려지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 터이다. 누구로 불려지든 봄을 가장 먼저 전하는 이가 봄의 전령이니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너희들이 진짜 봄의 전령이야!'하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역사의 주체이면서도 주변부에서 천덕꾸러기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참 모습을 보는 이들도 있으니 슬퍼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봄의 전령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노루귀, 보춘화 이런 것들이 내년에는 그들의 봄의 전령이라고 불리우면 좋겠다.
오마이 뉴스 김민수(dach)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