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들은 이자겸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한 후
상황에 맞게 알기 쉽게 한문을 삭제하고 수정과 편집을
거듭하여 열거하였으며
이자겸이 굴비와 관련된 인물이기에
우리 고장 사람들은 필히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거 같아 공을 들여 작성하였음
이자겸을 검색해 봐도 반역자란 낙인으로 이자겸에
대해 처음부터 소상하게 정리된 것이 없어 본인이
직접 찾아서 어렵게 정리하였으나 더 보완 할 필요는
있음
그러나 아래 내용같이 상세히 정리 된것은 없음.
읽으면서 족보와 왕들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것임.
그 내용을 3회에 걸쳐 연재하겠음 : 편집자 황제원)
이자겸(李資謙, ? ~1126년) 그는 어떤 사람인가?
이자겸의 아버지는 경원백 이호이고 경원(인주)이씨를
권문세가의 위치에 올려 놓은 중서령 이자연(8대
현종의 장인 김은부의 처조카)이 할아버지이다
부인은 15대 숙종때 문하시중을 지낸 최사추(유림파
최충의 손자)의 딸이다
김은부는 이자연의 할아버지 이허겸의 사위이며 8대
현종에게 세 딸을 시집보낸 현종의 장인이기도 하다
또 김은부 두 딸들이 9대 덕종,10대 정종,11대 문종을
낳았다
할아버지 이자연은 1024년 장원급제한 후로 우보궐부터
승진을 거듭하여 1047년 이부상서 참지정사에 임명되어
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딸 셋을 문종에게 시집
보내고 큰딸이 왕비가 되면서 재상직인 시중까지 오른다
이자연은 당시 문종의 친불정책과 송과 국교를 성립할려는
의지를 따르고 이를 반대하는 최충의 유림파를 배제하고
문종에게 힘을 실어준다
또한 사찰 건립을 명령한 문종의 숙원사업 흥왕사를 짓고
송과 국교를 추진하다 죽는다
하지만 이자연의 아들 11명은 사원과 경원이씨 가문들이
문종을 계속 지지하도록 도와 세력을 유지한다
이후 경원이씨가 고려시대 최고의 문벌귀족이 된 이유도
왕비인 이자연의 큰딸 인예태후가 순종 선종 숙종을 낳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경원이씨 문벌귀족을 대적 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
(이허 겸의 부인은 안산대부인 경주김씨로 가야국의 가락김씨
김수로왕 허황옥(인도여인)의 후손이다
큰아들 거등은 대을 잇기 위해 김씨로 아래 두아들은
여자 성씨인 허씨 성을 따름)
인천(옛지명 소성,경원(인주))이씨는 태인허씨의 후손으로
신라 경덕왕 때 아찬이란 벼슬을 한 허 기라는 자가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안록산의 난으로 당나라 현종이 촉나라로 피신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데 호위한 공으로 현종에게 이씨성을
하사 받아 이허씨라는 복성을 쓰고 신라로 돌아온다
이허 기에게 신라 경덕왕이 다시 치하하고 벼슬을 올려 소성백에
(소성은 인천) 봉한다
인천이씨의 시조로 경원이씨.태인허씨 복성을 쓴 10세손
이허 겸이 이자겸의 선조이나 후에 이자겸 경원이씨는 문중에서
사라지고 이허겸을 시조로 모신 인천이씨가 등장한다
이후 김해김씨.태인허씨.인천이씨는 같은 혈족이라며
종친회명을 “가락종친회”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