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 일시 : 2014년 2월 9일(일요일)
2. 참석 인원 : 늘푸른산악회 김효선 회장님 외 30명
3. 산 행 기
늘푸른산악회 이번 주 산행은 황악산이다.
황악산은 높이가 재밌다.
해발 1,111m. 산 높이를 기억하기도 쉽지만
튼튼한 기둥처럼 1자가 넷이나 서있으니
안정감이 있고 산행 중 넘어질 염려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실지로 황악산은 岳(큰산 악)자를 쓰기는 하지만
지형이 대부분 완만한 육산(肉山)으로 구성되어 거친 바위가 없는 얌전한 산이다.
행정구역상으로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을 가르고 있고
오늘 산행코스인 괘방령에서 황악산 정상과 신선봉 갈림길까지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오늘 산행 출발 깃점은 괘방령이다.
괘방령을 쾌방령이라 부르는 이도 있으나 괘방령이 맞는 표기다.
괘방(掛榜)이란 정령이나 포고를 써붙여 일반에게 알리는 일을 이르던 말로
조선시대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의 방이 붙는다고 해서
괘방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괘방령(掛榜領)은 고도가 약 300m로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유생들이 추풍령 고개를 넘지 않고
굳이 거리가 더 먼 괘방령 고개를 넘어 한양 길을 갔다고 한다.
이유는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과거 시험에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니, 작금에서 보면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추풍령이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주로 장사꾼들이 이용하는 상로(商路)로
관리들로부터 간섭받기 싫어한 장사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이제 설은 그만 풀고 본격적으로
장쾌한 백두대간 길을 따라 여시골산 방향으로 걸어가 보자.
괘방령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을 연결시켜 주는 고개다.
<괘방령>
오늘 산행 코스는 괘방령을 출발하여 -여시골산-운수봉-백운봉-황악산 정상-형제봉-
신선봉-망월봉-직지사-주차장 코스로 정했다.
총 산행 거리가 13.5Km에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만만찮은 거리다.
영동지방에 폭설 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에서
오늘 산행길이 폭설로 인하여 고행의 길이 될까(?) 은근히 걱정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 속에 원도 한도없이 빠져보겠다" 는 기대도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고개 빈터에서 준비운동을 실시하고 늘푸른산악회 화이팅!을 외치고 출발한다.
<괘방령 출발 지점>
괘방령에서 여시골산 정상까지는 전체적으로 된비알의 연속이다.
그러나 약 30분 정도의 오르막 길은 아무리 경사가 급해도
산행인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서 꼭 필요한 코스다.
나란히 줄지어 정상을 향해 언덕을 오르는 늘푸른산악회 회원님들의 뒷모습이 든든하다.
산과의 교감을 통하여 산에 친숙해지고
산과 물아일체의 경지에 도달하면 아무리 험한 오르막길도 리드미컬하게 오를 수 있다.
적당하게 쌓인 눈길에 적당한 날씨. 바람도 적당하게 불고
그러나 나뭇가지에 맺힌 눈꽃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참석하신 회원님들께서 눈부신 설경에 매료되고 황홀경에 빠져 감탄사를 연발한다.
자연이 아니면 누가 인위적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겠는가?
여시골산 방향 고지대로 올라갈 수록
아름다운 설경은 점입가경이다.
여시골은 예로부터 여우가 많이 출몰하여 여시골짜기로 부르다가
여시골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회원님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고 산행 시간이 지체될 지경이다.
여시굴을 통과할 무렵 눈속에서 환호하시는 여성회원님들이
혹 여우가 둔갑술을 부려 깊은 산속에서 사람을 홀리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여시굴>
여시굴은 깊이가 제법 깊다.
실수로 굴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다.
자! 이쯤해서 팁하나 드려보자.
우리는 조선 중기 광해군 때 허균이 쓴 홍길동전을 알고 있다.
홍길동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당시 탐관오리나 백성을 핍박하는 토호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 활동을 했던 실지 존재했던 인물이다.
그 전설적인 홍길동이 황악산에서 조선 성종 때 직지사를 중창한 학조대사에게
병법과 무술을 배우고 연마한 산이 오늘 우리가 오르는 황악산이다.
오늘 우리는 눈 구경왔지만 서얼차대법으로 관직에 등용될 수 없었던
인간 홍길동의 시대적 번민을 눈덮인 능선길을 걸으며 잠깐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여시골산에서 운수봉까지는 1.6Km, 황악산 정상까지는 4.2Km의 거리가 남았다.
여시골산에서 황악산 정상까지의 능선은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즐거움이 더하고
각호산과 민주지산. 구미의 금오산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이국적인 모습으로 닥아온다.
또한 백두대간의 등줄기에 올라 장엄하게 한 걸음씩 내 딛는 기분이란
형용하기 이를 데 없이 매력적이다.
솔잎과 가지에 오롯이 눈을 이고 있는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이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추운 겨울이 와서야 비로소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옛 선인들의 지고한 인식이 고스란히 소나무에 스며있는 듯하다.
운수봉에서 출발 지점 괘방령까지는 3.1Km, 산 정상까지는 2.6Km로 중간 지점을 조금 더 통과한 위치다.
운수봉을 통과했으니 2014년 청말띠 갑오년에 이곳을 통과하신
늘푸른산악회 회원님께서는 이제 하시는 일마다 운수대통(運數大通)하시길 빌어본다.
아무도 밟지않은 순결의 설원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최여사께서는 산행로를 이탈하여 아예 눈밭에 철푸덕 주저앉아 버렸다.
매화꽃처럼 화려한 나무에 핀 설화(雪花)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마음을 달뜨게 하는가 보다.
눈이 내리고 소복소복 쌓이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괜히 센티멘탈해지고 가버린 세월의 아쉬움에 혹은
연모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에 애달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정상에서>
드디어 해발 1,111m 정상에 올랐다.
다들 면면이 즐거운 얼굴! 행복한 얼굴! 만족한 얼굴 얼굴들!!
山이 있어 동행한 이들이 반갑고
동행할 사람이 있어서 山이 즐겁다.
「도시에서 마음이 신산해지면
에멜무지로 山으로 오시라!
그러면 넉넉한 山기운
그대의 품속에 스며들어
인생이 즐거우리라!」
산정(山頂)에 서면
山은 그 순간 내 키만큼 높아지지만
나는 산 높이 만큼 커진다.
수석산행대장이신 주왕산님이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서 계시고
동부인하신 대송님이 제일 행복한 표정이시다.
"어! 난 어딨지? 사진 찍는다고 빠졌네!"
정상에 도착할 무렵부터 하늘이 흐려지면서 바람도 불고
약한 눈발을 흩뿌린다.
설경에 매료되어 예정 시간보다 진행속도가 늦어졌다.
선두 산행대장이신 아크맨님과 교신해 보니 선두와 간격이 너무 멀어졌다.
<백두대간 바람재 갈림길>
바람재 갈림길이다.
백두대간 코스는 이곳 바람재에서 우두령-삼도봉-민주지산-각호산을 따라 흐르고
멀리 지리산까지 너울너울 장대하게 흐른다.
처음에 계획했던 신선봉을 경유하지 않고 지름길을 따라
바람재 갈림길을 조금지나서 내원계곡 직지사쪽으로 하산한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
이 코스는 내원계곡까지 경사도가 심하여
눈 길에 특히 여성회원님들께서 굴러 떨어지면 어쩌나 염려가 되는 코스다.
그러나 살금살금 앙금앙금 여시같이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잘도 내려 가신다.
내원계곡은 주변의 나무들이 대부분 활엽수로 분포되어 있어서
낙엽을 떨군 앙상한 참나무 군락이 황량한 겨울바람에 바르르 떨며
힘겨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대웅전>
직지사는 사명대사가 출가하여 득도한 너무도 유명한 절이고
사찰의 내력이나 창건 역사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라 또 다시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그러나 놓치기 쉬운 몇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언급드리고 싶다.
먼저 대웅전 용마루 정중앙에 보면 청기와 1장이 보이고
청기와 양 옆으로 연꽃모양의 백자연봉이 봉긋하게 솟아있다.
청기와는 예로부터 왕이 거처하는 처소나 인연이 있는 곳에만 사용해야 했고
이곳 직지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직지사에 머무르게 된 인연으로
청기와와 연봉을 용마루에 얹게 되었다 한다.
<사명각에 모신 사명대사 초상화>
임진왜란 때 왜병은 사명대사가 이곳 직지사의 주지를 역임했다는 이유로
비로전과, 천왕문, 일주문을 제외한 모든 전각을 불태워 버렸다.
스님의 진영(眞影)에는 다른 스님들은 수염이 없지만,
유독 사명대사만 수염을 기르고 있다.
생전에 사명대사는
「내가 중이기 때문에 머리는 깎지만, 수염은 대장부라서 깎지 않겠다」며
수염 깎는 그 당시 풍습을 한사코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번 겨울에 어쩌면 마지막 눈산행이 될지도 모를 겨울산행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며 멋지게 장식했다.
철이 바뀌어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세월의 흐름 속에 또 다시 눈 내리는 겨울이 찾아오겠지만
오늘 하루 도시의 좁은 공간을 떠나 대자연과 함께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한 우리가
축복받은 사람임이 분명한 것 같다.
2014년 2월 9일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