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家 狀 가장
府君姓金氏諱應鳴字而遠翠竹號也吾慶州之金自新羅大輔公肇基族姓繁昌奕舃于麗入于 本朝諱乙貂判書諱自養郡守諱伯敦文縣監諱克從生員卽府君高祖也曾祖諱琥進士祖諱奎年奉事考諱遇鍊號松齋性簡重寡默博通經史慷慨有志節壬辰率家僮赴忘憂堂郭公陣誓與之終始臨陣必爲士卒倡神勇感人鼎津之捷設奇應變丁酉又入火旺積薪置火以挑一陣敢死之憤郭公歎曰首尾八年賴而全安者爲多
▶音讀:
부군성김씨휘응명자이원취죽호야오경주지김자신라대보공조기족성번창혁석우려입우 본조휘을초판서휘자양군수휘백돈문현감휘극종생원즉부군고조야증조휘호진사조휘규년봉사고휘우련호송재성간중과묵박통경사강개유지절임진솔가동부망우당곽공진서여지종시임진필위사졸창신용감인정진지첩설기응변정유우입화왕적신치화이도일진감사지분곽공탄왈수미팔년뢰이전안자위다
▶讀解: 府君의 姓은 金氏요 諱는 應鳴이요 字는 而遠이요. 號는 翠竹이다. 우리 慶州 金은 新羅大輔公이 토대를 닦은 뒤로 族姓이 번창하여 麗代에 차례로 빛났으며 本朝에 들어와서 諱 乙貂는 判書요 諱 自養은 郡守요 諱 伯敦은 文科 縣監 諱 克從은 生員이니 府君의 高祖이다. 曾祖의 諱 琥니 進士요 祖 諱 奎年이니 奉事요 考 諱는 遇鍊이니 號는 松齋라 성품이 簡重寡默(간중과묵)하고 經史를 博通하여 강대한 志節이 있어 壬辰亂에 집안의 종을 거느리고 忘憂堂 郭公陣에 가서 더불어 맹세하고 처음부터 끝가지 陣에 다달아 士卒을 힌도하니 신비로운 용맹은 사람이 감동하였고 鼎岩津승첩에 기묘하게 응변하였다. 丁酉재란에 다시 火旺山에 들어가 섶을 쌓아 불을 질러 一陣을 도우고 감히 줄기로 분전하니 郭公이 歎曰 八年동안 힘을 입어 안전한자 많다 하더라.
妣瑞山柳氏文簡公權之後也德性賢婉治家有幹局松齋公在外積年不以家事經心萬曆癸巳九月十四日府君生于慶州府慈仁縣蔚谷里儀容秀朗逈異凡兒姿稟至孝遊必在書舍之傍五歲問于母夫人曰吾父在何處而久未還母夫人言其詳府君驚而泣曰然則危地也自後每露禱于天曰天乎天乎使吾父破敵早還聞者莫不憐歎亂已受學于家庭曉解文義不煩敎督一歲中通小學纔數年已涉百家語世以奇才稱之
▶音讀:
비서산류씨문간공권지후야덕성현완치가유간국송재공재외적년불이가사경심만력계사구월십사일부군생우경주부자인현울곡리의용수낭형이범아자품지효유필재서사지방오세문우모부인왈오부재하처이구미환모부인언기상부군경이읍왈연칙위지야자후매로도우천왈천호천호사오부파적조환문자막불련탄란이수학우가정효해문의불번교독일세중통소학재수년이섭백가어세이기재칭지
▶讀解: 妣는 瑞山 柳氏니 文簡公 權의 後孫이라. 德性이 어질고 고와서 집안을 다르림에 사물을 판단하는 국량이 있어 松齋公이 여러해 外地에 있어서도 家事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萬曆 癸巳 九月十四日에 府君이 慶州府 慈仁縣 蔚谷里에서 태어 나시니 얼굴은 빼어나서 보통아이들과 다르고 姿稟이 지극히 효도하여 놀아도 반드시 글방 곁에서 놀았다. 五歲에 母夫人에게 묻되 아버님은 어디 계시고 오랫동안 돌오시지 아니합니까? 母夫人이 자세히 말하니 府君이 놀라고 울면서 그러한 즉 위태로운 곳이라 하고 이로부터 매향 밖에서 하늘에 기도하며 말하되 하늘아 하늘아 우리 아버지로 하여금 원수를 격파하고 일찍 돌아오게 하소서 하니 듣는 사람이 어였삐 여기고 탄식하지 아니함이 없더라 亂이 끝남에 가정에서 수학하여 글 뜻을 이해하며 가르치는 이를 번거롭게 아니하고 한해에 소학을 통달하고 겨우 수년만에 百家의 글을 섭렵하지 세상이 奇才라 칭하다.
柳公永詢巡察于本道也到密陽欲起亂後文風以登泰山小天下爲題設白場而試士府君操筆立就柳公擢爲傍首及見乃丱童也尤佳愛之吟賞不已膾炙一世今觀全文雖不敢妄議然文義宏博含蓄題外之旨覷得聖人氣像此柳公所以極口嘉歎者也府君學業早成必以性命理學爲本領而尤專力於庸學於養親之節不憚鄙事鼎臼竈爨不專俾於奴僕松齋公慮其妨業止之府君潛入廚何不少懈焉每隨松齋公晨謁于廟退讀書室室忘寢食1)
晨謁신알: 이른 아침에 사당(祠堂)에 뵙는 일
▶音讀:
류공영순순찰우본도야도밀양욕기란후문풍이등태산소천하위제설백장이시사부군조필립취류공탁위방수급견내관동야우가애지음상불이회적일세금관전문수불감망의연문의굉박함축제외지지처득성인기상차류공소이극구가탄자야부군학업조성필이성명이학위본령이우전력어용학어양친지절불탄비사정구조찬불전비어노복송재공려기방업지지부군잠입주하불소해언매수송재공신알우묘퇴독서실실망침식
▶讀解: 柳公 永詢이 本道를 순찰할 때 密陽에 와서 난리 뒤에 文風을 이루고자하여 登泰山小天下로 제목을 삼아 白日場을 열어 선비를 시험할 때 府君이 장원을 하시다. 柳公이 보니 초립동이라 더욱 사랑하여 吟賞을 그치지 아니하니 세상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도다. 지금 全文을 보니 비록 망연되게 평론 할 수 없으나 글뜻이 크고 含蓄성이 있어 題밖의 뜻은 聖人의 氣像을 보는것 같으니 이것을 柳公이 극구 嘉歎한 것이라 府君이 學業을 일찍 이루어서 반드시 性命理學으로 근본을 삼고 더욱 中庸과 大學에 힘을 기울이고 부모를 섬기는 예절은 더러운 일도 꺼리지 않고 밥짓고 방아찧고 불 때는 일도 종에게 전부 안맡기니 松齋公이 학업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하여 그치게 하니 府君이 몰래 부엌에 들어가 조금도 게으르게 아니하다.
癸丑拜寒岡鄭先生之門得聞爲學之要丁巳陪先生于東萊溫井之浴想舞雩之遺風2)歸路遍觀山海關防而有亂後多少不盡之感及先生歿又贄見于旅軒張先生之門卒業焉自甲寅後發鄕解而初不利南省至是又發解松齋公甚嘉悅府君詩以識喜府君豈以一解爲樂哉只慰悅親心故也
▶音讀:
계축배한강정선생지문득문위학지요정사배선생우동래온정지욕상무우지유풍귀로편관산해관방이유란후다소부진지감급선생몰우지견우여헌장선생지문졸업언자갑인후발향해이초불리남성지시우발해송재공심가열부군시이식희부군개이일해위락재지위열친심고야
▶讀解: 癸丑년에 寒岡鄭先生의 門에 배알하여 학문의 중요함을 듣고 丁巳년에 先生을 모시고 東萊溫井에 가서 목욕하며 舞雩3)의 遺風을 생각하고 돌아오는 길에 山海의 요새와 방비를 두루보니 난리 뒤에 다소 부진함을 느꼈다. 先生이 돌아가심에 다시 旅軒 張先生의 문하에 들어가 학업을 마치시다. 甲寅년으로부터 鄕解4)를 하여 而初不利南省5)至是又發解6)松齋公이 심히 기뻐 하시다.(재해석) 府君이 詩로서 기뻐 하심을 기록하다. 부군이 어찌 한번 發解로 기뻐 하리오 다만 부친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함이라.
戊午中司馬壬申丁松齋公憂癸酉母夫人亦歿府君荐罹巨創柴毁莫支廬于墓下風雨不廢展墓時値連歉恐奠饋不繼常貯糓於廬下矣一日夜有虎咆哮開戶視之虎則去而人仆于地移時甦起府君認其爲糓賊以數包糓曉喩而送之自是賊感服相戒不入服闋後翼年丙子卽崇禎九年神州陸沈南漢受圍府君痛念君父蒙塵卽募鄕兵赴難而到咸昌地聞和媾已成痛哭而返掃却百念搆茅屋于三樂峯下植竹千本自命翠竹盖寓尊周之義也只以誘進後生爲自任遠近笭箵不絶時與府君交厚者居長銓以擬寢郞之選書以示之府君笑而不答書
▶音讀:
무오중사마임신정송재공우계유모부인역몰부군천리거창시훼막지려우묘하풍우불폐전묘시치련겸공전궤불계상저糓어려하의일일야유호포효개호시지호칙거이인부우지이시소기부군인기위糓적이수포糓효유이송지자시적감복상계불입복결후익년병자즉숭정구년신주육심남한수위부군통념군부몽진즉모향병부난이도함창지문화구이성통곡이반소각백념구모옥우삼락봉하식죽천본자명취죽개우존주지의야지이유진후생위자임원근령성불절시여부군교후자거장전이의침랑지선서이시지부군소이불답서
▶讀解:
戊午年에 司馬試에 합격하고 壬申年에 松齋公의 親喪을 당하고 癸酉年에 母夫人이 역시 돌아가시니 府君이 거듭 큰 슬픔을 겪고 몸이 쇠약하여 지탱하지 못하여도 墓下여막을 짓고 風雨에 墓살피기를 폐하지 않았다. 때에 흉년이 연이어 상식을 잇지 못할까 두려워 하여 항상 곡식을 여막에 쌓아두었는데 하루밤에 범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문을 열어보니 범은 가고 사람이 땅에 쓰러져 있는지라 옮길 때 다시 살아남이라 府君이 곡식 도적임을 알고 두어 포대 곡식을 주고 달래서 새벽에 보내니 이로부터 도적이 감복하며 서로 경계하고 침입하지 않다. 服을 벗은 다음해 丙子年은 즉 崇禎 九年이라 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받아 南漢山城이 포위 당함에 府君이 君父가 蒙塵하는 것을 痛念하여 고을 군사를 모집하여 난을 구하려 가다가 咸昌에 이르러서 강화가 이루어 졌다는 조식을 돋고 통곡하며 돌아오다. 일백생각을 쓸어버리고 三樂峯아래 집을 짓고 대나무 일천그루를 심고 翠竹당이라 명하니 周나라를 존중하는 뜻이라 다만 후생을 가르치는 것을 스스로 책임지니 원근에서 책을 지고 오는이가 끊어지지 아니하다. 때에 府君과 교분이 두터운 사람이 벼슬을 등용하는 자리에 있어서 능참봉을 주려고 편지로 보이거늘 府君이 웃고 답하지 않다.
1) 내용이 다소 부실하여 재 해석이 필요함.
2) 舞雩之遺風: 논어 선진 25장. -點아 爾는 何如오 鼓瑟希러니 鏗爾舍瑟而作하여 對曰 異乎三子者之撰이니다 子曰 何傷乎리오 亦各言其志也니라 曰 莫春者에 春服旣成이어든 冠者五六人과 童子六七人으로 浴乎沂하여 風乎舞雩하여 詠而歸하리이다 夫子 喟然嘆曰 吾與點也하노라. “點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하시자, 그는 비파를 타기가 間歇的이더니, 쨍그렁하고 비파를 놓으며 일어나 대답하였다.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기의 뜻(포부)을 말하는 것이다.” 하시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冠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點을 허여한다.” 하셨다.
3) 舞雩는 하늘에 제사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니, 제단과 터를 닦아놓은 자리와 수목이 있다.
4) 鄕解향해: 지방에서 실시하던 과거(科擧) 초시(初試).
5) 南省試남성시: 고려(高麗)때, 국자감(國子監)의 진사(進士)를 뽑던 시험(試驗). 과목(科目)은 시(詩)와 부(賦)
사례) 누차 향시(鄕試)에는 합격하였으나 남성시(南省試, 사마시(司馬試))에는 번번이 실패하였다.
6) 發解발해: 과거(科擧)의 초시(初試)에 합격(合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