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이길권을 시조로 하고 이사영 등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연원]
시조 이길권(李吉卷)은 904년(신라 효공왕 8) 용인에서 태어났다.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구성백(駒城伯),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숭록대부(崇祿大夫) 등의 지위에 오르고 고려 태조의 부마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은 구성이 용인으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용인이씨로 하였다.
[입향경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은 고려 말부터 6백여 년 동안 용인이씨 가문이 가풍을 이어온 동족부락이다. 입향조는 고려 말의 절신 이사영(李士潁)으로 고려가 망하자 아버지, 아들과 함께 벼슬을 버리고 조선왕조에 항거했다.
이사영은 이곳에 터를 잡고 마을 주변에 수양버들을 심어 숲을 만들고, 그 숲속에 정자를 세워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이름이 정자뜰[亭坪]이다. 이후 후손들도 용인을 기반으로 살아왔다. 마을 전체 50여 가구 250여 명이 모두 이사영의 후손들이다.
포곡의 용인이씨들은 중시조인 이중인(李中仁)의 후손들인데, 그의 세 아들 중 둘째 아들인 이사위(李士渭)의 다섯 손자 중 첫째인 이수상(李守常)의 후손이 판관공파(判官公派)를 이루었다.
24세인 장양공 이일 장군의 아들 3형제 중 첫째는 후사가 없었고, 둘째인 이숭원(李崇元)의 후손들은 주로 신원리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셋째인 이숭의(李崇義)의 후손들은 유운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다.
이숭의의 장남인 이용(李涌)의 후손들은 영국공파로, 4남인 이견(李汧)의 후손들은 수사공파로 분파를 이루었다. 신원리와 유운리의 판관공파 후손 중에는 무신의 비율이 많다고 한다.
[현황]
용인시 수지 지역의 용인이씨의 대부분이 참판공파로 풍덕천 일대에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포곡면의 용인이씨는 수사공파로 주로 유운리와 신원리에 동족촌을 형성하여 거주하고 있다. 용인시에 분포하고 있는 용인이씨의 인구는 1985년 11월 현재 945명이다.
출처: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0900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