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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금엉금 네 발로 무릎 꿇고 기어오른 홍릉 능상. |
ⓒ2005 한성희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정성왕후의 사초지는 가파르고 높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왕비님께' 올라가는 격이 됐다. 조심조심 잔디가 드문 곳을 골라 딛고 오르기 시작했다. 1/3 정도 올랐을까. 더 이상 잔디가 보이지 않자 차라리 사초지 곁의 숲 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무심코 밑을 내려다보니 고소공포증이 왈칵 밀려온다.
저 길 도로 내려가려면 미끄러질 것이고 내려갈 자신도 없었으니 올라갈 길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직도 까마득히 먼 데 언제 올라가나. 그때까지 왼손에 쥐고 있던 카메라를 파커점퍼 호주머니에 넣고 잔디를 두 손으로 움켜잡으며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미끄러지면 사초지를 막아놓은 뾰족한 목책에 처박혀 뼈도 못 추리겠다는 공포심에 아예 무릎까지 꿇고 엉금엉금 기었다. 움켜잡은 짧은 겨울 잔디는 너무 힘이 없어 무릎까지 꿇어 네 발로 기는 꼴이 됐다.
왕비 뵙는 신고식 한 번 단단히 치르는구나 싶었다. 잔디를 움켜잡고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그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먼저 올라가서 엉금엉금 기는 내 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던 서오릉 관리사무소 이남희양이 내려와서 손을 잡아줬다. 겨우 능상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더욱이 이곳은 효릉이나 예릉처럼 테니스장이 들어갈 만큼 넓은 곳이 아니고 탁구대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사진을 찍다가 혹시라도 떨어질까봐 계속 밑을 보면서 조심했다.
▲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무인석. |
ⓒ2005 한성희 |
▲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문인석이 어딘지 영조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
ⓒ2005 한성희 |
▲ 정성왕후 옆에 비워진 우허제로 남아있는 영조의 자리는 명당에서 보인다는 원훈이 나타났다. |
ⓒ2005 한성희 |
워낙 높은 곳이라 이곳에서 군부대가 빤히 내려다보인다. 저 군부대 이름은 '권율부대'다. 조선왕릉과 조선의 명장 권율의 이름을 딴 권율부대의 발복의 함수 관계가 있나 싶다. 작년까지 홍릉과 창릉이 비공개 능이었던 이유도 저 군부대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지역인 파주에서 자란 내 눈에는 그런 이유로 공개를 막았다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이다. 도로를 따라 군부대가 있어 낮은 철망 사이로 트럭이 몇 대 있고 훈련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뻔히 들여다보이는 게 요즘 군사지역 풍경이다.
이 권율부대가 들어선 터 역시 원래 서오릉의 경역이었다. 100만 평이 넘었던 서오릉도 한국전쟁 이후 군부대가 들어서고 이런 저런 이유로 빼앗겨 55만 평이 남은 것이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비공개 능을 공개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빼앗은 서오릉의 경역을 돌려주어 역사유적지를 회복시켜야 한다.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발전을 저해하는 군부대의 이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군부대로 인해 발전 피해를 입은 파주시의 경우, 아직도 시청 뒤에 군부대가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에 시청 뒤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파주 말고 또 있을까 싶다.
공릉도 미군부대 캠프하우스에 19만 평을 빼앗겨 국방부 땅이 됐고, 작년 11월 미군부대가 이전하자 그 땅을 국방부에서 파주시에 사라고 하고 있는 판이다. 유적지 빼앗아 마음대로 쓰고난 뒤 팔아먹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관습헌법과 경국대전을 적용해야 할 일이 아닌가.
매국노의 후손 땅은 합법적이라며 친절하게 손을 들어주어 찾아주는 마당에 강제로 빼앗긴 왕릉 부지들을 되찾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경국대전이 정말 필요한 곳은 이런 경우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