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수기와 신명기
민수기의 히브리어 책 제목은 “광야에서”이다. 칠십인역에서는 이 제목을 “백성의 수”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그 당시의 전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25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민수기 1장에 언급되는 인구조사는 구세대의 출발을 보여준다. 이집트로부터 구원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하게 된다. 민수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 관계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했으나 이 믿음의 싸움에서 그들은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민수기 26장에 언급되는 두 번째 인구조사는 신세대의 출발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신세대에 대하여 여호수아의 세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세대를 세우시는 것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민수기의 주제와 교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속사의 궁극적 목표를 지향한다.
1) 시내산에서의 출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준행해야 할 율법과 제의에 대한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단지 그들에게 맡기신 것이다(롬 3:2 참고). 그들에게 맡기사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민에게 드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 51:4)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의 제의 역시 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협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가 되게(출 19:6) 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국 가운데서 제사장적인 중보의 역할을 하는 나라로 세워주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주변 국가들 가운데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던 것은 그들이 주변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주변 국가들과 동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였다. 실상은 열국 가운데 하나님나라의 표본이 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소명이었다. 따라서 민수기는 선교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선교적인 사명을 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첫 출발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로 특징지을 수 있었다. 그들은 레위인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행군을 시작했다. 언약궤와 더불어 항상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출 14:19, 민 10:33-36, 신 1:33). 이사야는 그들 가운데서 그들을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라고 하였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 63:1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속적으로 보살피시고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는 이 복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것이다. 이 임마누엘의 복은 궁극적으로 성령님을 통해 우리 속에 이루어진다. 제사장 아론은 이 임마누엘의 복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해야 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민 6:24-26)
2) 이스라엘 백성의 반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원망하였다. 그들의 원망은 반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애굽에서의 삶을 동경하였으며(출 16:3), 먹고 마시는 문제로 인해 늘 하나님께 원망하였다(민 11:1, 14:2, 16:41, 21:5).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 14:22-23)
백성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미리암과 아론의 반란은 모세의 선지자직에 대한 반역이었고(12장), 고라의 반란은 레위지파의 제사장직에 대한 반역이었다(16-17장).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은 곧 기름부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절대적 권위는 오늘날 성직자의 권위를 의미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기름부음 받으신 이인 그리스도의 권위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언약궤와 함께 두어 반역한 백성에 대한 표징을 삼으셨다(민 17:10).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1-6)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열두 사람을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파송했다. 과연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은 실패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백성에게는 이집트에서부터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었다.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다(민 14:2, 10).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민 14:26-35). 시편 106:7-27에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아래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16)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7)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18) 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 (19)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20)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22)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24)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25)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26) 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27) 또 그들의 후손을 뭇 백성 중에 엎드러뜨리며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시 106:7-27)
3) 여호수아 세대의 준비
모세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는 데까지이다. 모세는 자기 시대의 출애굽 1세대 백성과 함께 불순종의 죄책을 짊어져야 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선택하게 되는데 여호수아의 이름의 뜻은 ‘구원’이다. 출애굽 2세대를 대상으로 한 민수기에서의 두 번째 인구조사(26장)를 통해 여호수아 세대의 서막이 열린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자원으로 사는 삶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셨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3-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더위를 막아주셨으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막아주셨다.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4-5) 이러한 불평은 어쩌면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 같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러한 불평을 불신의 죄로 간주하셨고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자기 백성을 징계하셨다(민 8:5). 그 열악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축들까지 일일이 지켜주신 것(민 32:1)은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스라엘의 가축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기업도 지켜주셨으며, 또 백성 가운데 도피성을 두어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의 생명을 복수하려는 자들의 손에서 지켜주셨다. 이 도피성의 제도는 살인자의 내적 동기에 의해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공정성을 증거한다. 도피성은 요단 이편과 동편에 각각 세 군데 있었다. 도피성에 거하던 살인자들은 대제사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기에 방면되는데, 이 시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대망이 절정에 이루는 때이다. 이 시점에 살인자를 방면하는 것은 미래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살인자가 방면됨을 뜻한다.
4) 신명기
‘신명기’라는 한글 책 제목은 ‘율법의 복사’에 대한 오역이다. 히브리어 제목은 문장의 앞 구절을 따서 “이것들은 말씀들이다” 라고 되어 있다. 문장의 양식은 고대근동의 종주권 언약의 양식을 띠고 있지만, 신명기는 고대근동의 문헌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신명기는 출애굽 1세대가 시내산에서 들었던 율법 전문을 모압 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내용이다. 따라서 신명기의 내용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언급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있다. 이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우리는 그 어떤 형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알리신다. 신명기 6:4-5의 말씀은 ‘쉐마’(들으라)로 일컬어지며, 유대교육의 기초를 이룬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첫째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과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역사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해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까지의 역사를 가리킨다. 이 기간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일관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령을 세워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정탐꾼들을 파송하지만 믿음이 없었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되며,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해주셨다. 그러나 모세는 구세대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사역을 마감한다(1-3장).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지켜야 한다. 이 율법의 골조는 십계명이다. 신명기 5장에서는 다시 한 번 십계명을 언급하고 있다. 신명기의 율법은 십계명의 각 조항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4, 6-26장). 율법준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마땅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복이 약속되어 있다(28:1-14). 이 복은 물질적 번영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이 복은 은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편 신명기의 언약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순종 시에 받게 될 복과 함께 불순종 시에 받게 될 저주를 포함한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시키며,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아 그들을 인도하게 한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사역은 이로써 막을 내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히 3:5)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다고 했다. “장래에 말할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신명기를 포함한 모세오경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아야 할 것이다. 신명기에 보면 도피성과 기업 무를 자의 구속 등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종이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이 되신다(히 3:5-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 18:15)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예언하였던 참 선지자가 예수님이심을 변화산상에서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세를 중보자로 하는 이상의 언약을 구약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신약은 무엇인가? 신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으로 인해 지킬 수 없었던 언약의 율법을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지키시고 성취하신 후 그 공로를 택하신 백성에게 돌려주시는 은혜의 언약이다. 옛 언약에 번제와 화목제의 피가 필요했듯이(출 24:4-8) 새 언약에서 제물의 피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다(히 9:16-2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백성의 장로들과 만찬을 가지셨듯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는 열두 제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자기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눅 22:20). 즉 언약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므로 신약은 구약의 궁극적인 성취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