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갈대아 (수도 우르: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사람(신바빌로니아 왕국 건설)
갈대아(칼데아,Chaldea)는 바빌로니아 남부를 가르키는 고대의 지명으로
수도는 우르이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라함의 고향이기도 하다.
갈대아 사람들(갈대아인,셈족의 한 종족)은 메디아 왕국과 연합하여
바벨론을 점령하고 BC613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네베(니느웨)를 함락시켜
멸망시키고 신바빌로니아제국(갈대아제국)을 세운다. BC 586년에는
느부갓네살왕이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민족을 포로로 데려간다.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
< 갈대아 >
그림참조 (Chaldea)
BC 9세기 이후의 앗수르 왕가의 비문 중에 `갈두'(Kaldu)와 그 주민 `갈대'(Kaldai)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아람족의 일파인 갈대가 후에 `갈대아 사람'(Chaldeans)이며, 그들은 BC 1000년대에 이미 메소보다미아로 진출하고 있었다.
갈대아는 티그리스, 유브라데 두 강의 하류 유역 바벨론과 페르시아만의 사이에 끼어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갈대아의 대표적인 성읍은 우르(창 11:28,31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고향이다)인데,이 지방의 대부분은 습지이며, 특별히 눈에 띄는 성읍은 거의 없다. 갈대아의 주민은 어업,수렵, 소규모의 농업과 가축 사육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유목민이 항상 그러하듯이 도시사회의 적대자로서 행동하였다.
갈대아인의 이 특성은 앗수르인이 이 지방에 침입함에 따라더욱 더 발휘되었다. 즉, 성읍의 주민이 앗수르의 군사력의 보호하에서 성읍과 성읍 사이의통상이 안전하게 행하여지고 있는 한 친앗수르적 태도를 취한데 대해, 갈대아인은 반앗수르운동의 중핵(中核), 민족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되었다. 므로닥발라딘은 디글랏 빌레셀Ⅲ세, 사르곤 Ⅱ세, 산헤립 등의 앗수르 제왕(諸王)과 싸우기는 했으나, 앗수르의 강대한 군사력과는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어 결국 엘람(Elam)으로 끌려가 포로의 땅에서 죽었다.
아슐바니발이 죽고 앗수르 제국(帝國)이 붕괴하자 갈대아인이 역사의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 틈을 타서 나보볼라살(Nabopolassar)은 반란을 일으키고 메대와 동맹하여 BC 614년 드디어 앗수르의 도성 니느웨를 전멸시켰다. 나보볼라살의 아들느부갓네살 Ⅱ세(BC 604-562)는 구 앗수르 제국의 영토를 그 왕성한 정복 사업에의해 수중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치세 기간 중 함무라비(Hammurabi, BC1728-1686 재위?)의 황금 시대에 대하여 부흥 시대라 불리우는 바벨론의 최성기(最盛期)를 출현시켰다. 이 느부갓네살 Ⅱ세가 구약성경에 있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라 불리는 인물과 동일 인물이다(렘 25:1,왕하 24:1,기타).
그는 BC 598-597년,589-587년의 두 번에 걸쳐 유대로 침입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함락시켰다. 그결과 남왕국 유대는 그 역사의 막을 내리고, 또 주민 중 상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갔다. 그리고 이 시대에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고 있던 예레미야가 느부갓네살을 여호와의 종', 여호와의 심판을 수행하는 그릇으로 하였다는 것은유명하다(렘 25:9,27장). 바벨론 포로가 구약 종교에 준 헤아릴 수 없는 영향에 대해서는새삼스럽게 말할 나위도 없다.
느부갓네살은 정복사업을 일단락 짓자 평화로운 건설 사업에정력을 경주하고 관개 치수 사업을 행하여 백성의 복지 증진을 꾀하였다. 또 도성 바벨론을개조 수복하여 세계에 중심에 어울리는 건조물로 채웠다. 바벨론의 건조물에는 유브라데 강의 대석교, 말둑(Marduk)의 신전과 지그라드(바벨탑), 장려한 궁전과 조정(弔庭) 그리고 이슈달(Ishtar)문 등이 있었다.
문화면에서도 갈대안인은 느부갓네살 왕 밑에서 다대한 공헌을하고, 특히 천문학에서는 갈대아의 제사장들의 장기간에 걸친 관측 기록에 근거하여 특별한재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바벨론에서는 태음력이 쓰였는데, 태양력과의 오차를 메꾸기 위해19년 동안 7개월을 부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계산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19 태음년 7개월과 19 태양력의 오차는 겨우 2시간 4분 25.22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시 천문학이나 수학의 진보 정도를 여기서도 알 수 있다.
바벨론의 신년제(新年祭)는 특히 유명하다. 신년제에서는 에누마 에리슈(천지 창조의 대 서사시)가 말둑 신전의 신관(神官)이나 가수들에 의해 낭송된다. 왕의 제사도 신년제에서 행해져 왕의 권위가 재확인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왕의 즉위식도 신년제에서 집행되었다. 즉, 신년제로 왕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을신으로부터 받아 신의 대리자로서 세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바벨론의 유적 발굴에 의해 사로 잡혀간 유대인의 생활의 일단이 알려졌다. 이슈달문 부근에서 출토된 설형문자(楔形文字)의 토판에 따르면, 유대 사람들도 다른 지방에서 온 공장(工匠)이나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보리나 기름의 배급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이름 가운데는 유대 왕 여호야긴의 이름도 보인다.
그밖의 다섯 사람의 왕족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야긴은 유대 정통의왕위 권리 주장자로 인정되어 시내를 산책할 자유가 부여되었었다고 보인다(왕하25:27-30). 바벨론의 번영도 오래 계속되지 않아 느부갓네살의 가계는 그 후 2대에이르러 끊기고, 마침내 BC 539년 바벨론은 바사 왕 고레스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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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대아 사람 >
[히] 그림참조 (kasdim), pl. [아] 그림참조 (kasda'in) [그] 그림참조 (Chaldaios)
[영] Chaldeans (RSV)바벨론 남부의 주민, 특히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주민을 가리킨다(왕하 24:2,25:4,5,렘21:4,9,단 1:4,9:1기타, 행 7:4). 이곳에서 천문학 기타의 학문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학자들의 한 계급인 [갈대아 사람]으로서 알려졌다(단 2:2,4).
아람어 [카스다-인]도한가지로, 갈대아의 일반주민을 가리키고(단 3:8,5:30), 나아가서는 학자의 일계급도 가리켰다(단 2:5,10,4:7,5:7,11).
렘 51:1의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으로 역되어 있는 히브리어[레-브카-마-이 ym;q; ble(leb qamay)]는 칠십인역(28:1)에서는 [칼다이오이 Caldai'oi]로 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어의 은어를 이해하는 한 수단을 가리키는 술어(→아트 바슈)의 방법에 기초하여 문자를 바꾸어 놓고 [카스딤 !yDIc]k'(kasdim)]으로 읽은 때문이다. 이것은 갈대아 사람을 가리키는 은어이다.→아트바슈.
* 출처: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