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는 벌써 몇 시간 째 연속 하품만 해대었다. 눈에서 흐르는 물기 때문에 눈이 짓무를 지경이었다. 성자는 하품을 하다 턱뼈가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하품 후 손가락으로 귀밑 턱을 누르고 아그 아그 하는 모양으로 입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오늘따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따금 대각선으로 보이는 슈퍼로 종종 걸음을 치는 꼬마아이가 눈에 띌 뿐이었다. 슈퍼 말고는 대부분 상점의 현관문이 못질을 해 놓은 것처럼 꽉 닫혀 있었다. 직장에 가느라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변두리의 오전은 항상 텅 빈 느낌이었다. 남편이 3대 독자라 대를 이어야만 한다고 해서 세 딸 밑으로 아들 하나를 둔 탓에 성자는 이 고생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딸 하나만 낳은 후 취미 활동이나 하며 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늦잠을 자고 있거나 아니면 엎드려서 손톱 끝 부분을 손톱용 줄로 다듬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바이올린을 켜듯이... 아이들이 식복을 갖고 태어난다는 건 옛날에나 통용되던 말이었다. 아이들 분유 값으로 돈이 나갈 때부터 혀를 내둘러야했다. 지금은 애들이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이니 한 여름의 땡볕아래 걸어가는 강아지처럼 혀가 있는 데로 다 나와 버릴 지경이었다. 7년 전쯤에 어쩔 수 없이 적금을 해약하고 빚을 조금 내어 두 평 남짓한 액세서리 가게를 냈다. 다행이 빚은 가게를 낸지 2년 만에 다 갚았고 다시 적금도 들었다. 다만 경기 탓에 가게의 수입은 조금씩 줄어갔다. 그래도 한달 식비와 공과금 정도는 버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많아 지출되는 사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 그 외의 생활비는 남편이 조달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성자는 빠듯하게 생활을 하면서 남편 몰래 적금을 붓고 있었다. 딸이 대학에 가면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성자는 물건 몇 개를 꺼내어 마른 천으로 닦기 시작했다. 도금제품이나 은제품은 변색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피부와 접촉 후에도 꼭 닦아 주어야만 했다. 물론 변색이 되면 제품을 만든 공장에 보내어 재 도금을 한다거나 역시 공장에서 특수 약품으로 세척을 했다. 물건을 치우고 난 성자는 왼쪽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눈곱을 떼었다. 기생식물처럼 나날이 번져가는 잡티와 조각칼로 정교하게 그린 듯한 눈가의 주름을 오늘 처음으로 발견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거울을 꽉 메운 성자의 몸이었다. 그녀의 상반신은 액체처럼 출렁거리는 듯 보이는 거울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결혼생활 십칠 년에 잃은 것이 있다면 청춘일 것이요, 얻은 것이 있다면 몸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낀 두툼한 지방질이었다. 겨울엔 지방질이 몸의 외투 구실도 했지만 여름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지방질 제거 작업으로 운동을 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가게가 너무 비좁았고 집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스물 다섯이 넘으면 계속 세포가 죽어간다고 하는데 세포가 죽어서 비는 공간을 지방질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잡념에 생기면서 절망으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그녀는 뚱뚱해 보이는 게 거울 탓인 것처럼 신경질적인 표정이 되어서 마른 걸레로 거울을 빡빡 소리가 나도록 문질러 닦았다. 그래도 느긋한 성격이다 보니 금방 마음이 가라앉았다. 노인 커플이 이른 시간에 가게에 오지 않았다면 성자의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가게문을 밀고 들어올 때 함빡 웃음을 담고 오지 않았다 해서 불만이 생긴 건 아니었다. 영감에 비해 할멈이 서너 살 아래로 보였다. “어여 골라봐여. 돈 생각하지 말고...” 영감은 문신 때문에 눈썹이 시커먼 할멈을 보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할멈은 젊은 여자들이나 쓰는 빨간 루즈를 입술에 넘쳐나게 바르고 있었다. “안 사줘도 되는디...” 할멈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은팔찌를 팔목에 얹었다. 팔목이 가늘어서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걸 성자에게 채워달라더니 만족스러운지 틀니를 환히 드러내며 웃었다. 영감이 할멈에게 사준 건 은반지와 은팔찌였다. 팔찌와 반지를 합쳐 삼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돈이 나오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의 태도로 봐서 요즘 유행하는 노인정 커플이었다. 홀로된 영감에게는 찌개라도 끓여주고 등이라도 긁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호락호락해 뵈는 할멈은 아니었다. 자칫 헛일이 될 수도 있었다. 하긴 집에 데려다 앉히려면 여자들이 전세 보증금부터 본인 앞으로 해 달라는 요즘 세상이고 보면 영감도 저러다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커플이 나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성자가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남편도 늙어 그런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성자는 볕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한쪽만 내리고 맨손체조를 했다. 오후에는 조금 바빴다. 그래도 다른 날처럼 수십 번 씩 물건을 목에 걸었다 손가락에 끼웠다 하는 손님이 없어 그다지 피곤하진 않았다. 혼을 빼 놓고 가는 손님이 많으면 늦은 밤에 소주를 한두 잔 마셔야 잠이 왔다. 피곤과 스트레스는 불면증의 근원이었다. 오늘은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날 것 같은 예감이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자 손님이 좀 뜸해졌다. 그녀는 하루 벌은 걸 셈해 봤다. 액세서리라 큰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마진이 좋아서 벌써 순수익이 오 만원을 넘기고 있었다. 오늘 남편은 좀 늦겠다는 전화를 했었다. 그녀는 딸 둘과 아들을 불러내서 자장을 시켰다. 큰애는 고2라서 야간자습을 하기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들은 자장 배달이 늦자 안절부절못했다. 학원도 늦으면 벌칙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돌아가자 밥 먹는 내내 숙제 얘기와 시험 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끼리 있는 집은 엉망일 테지만 청소를 하란 말도 할 수 없었다. 학원에서 공부하다 아홉시쯤에나 집에 돌아오는 애들은 늘 시든 배추 꼴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학습지를 해야 하는 터라 놀 시간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손님이 있는 틈을 타서 용돈 요구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게에 잠깐이라도 데리고 있기가 부담스러웠다. 성자는 아이들이 입 주변에 묻은 자장을 닦기도 전에 등을 떠다밀었다. 그녀는 어둑신한 골목길로 사라지는 아이들의 축 늘어진 뒷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디밀어 앉았다. 뻐꾸기가 아홉시임을 알리러 문을 밀치고 나왔다. 건전지가 거의 소모되어 뻐꾸기는 숨넘어가는 듯한 소리로 울었고 겨우 날개를 접었다. 약을 갈아 끼워야 한다면서도 귀찮아서 그대로 두고 성자는 간간이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막내인 아들이 뻐꾸기 소리를 까꿍이라는 소리로 흉내낸 적이 있었는데 그 무렵 네 살이던 아들이 열한 살이나 되었으니 고물이 다 된 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은 물건만 낡게 하는 게 아니었다. 성자의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 뚝딱거리는 소리를 내는 무릎은 관절염의 시초라고 했다. 의사는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성자에게 대학 입시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던 성자는 진열장 귀퉁이를 잡고서 일어났다. 동시에 유리문이 힘차게 열리더니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의 세운 앞 머리카락에 무스가 곱게 발라져 있었다. 그는 약간 웃음을 흘리면서 성자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걸을만한 목걸이 좀 보여 주세요.” 얼굴 표정과는 달리 딱딱하게 말을 하는 청년의 몸에서 은은한 향이 맡아졌다. 성자는 갑자기 화끈거려오는 얼굴을 감추려고 얼른 몸을 숙여 목걸이가 담겨진 진열상자를 통째 꺼내 진열장 유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쓰윽 훑어보더니 싯누런 도금이 된 굵은 줄의 금빛 목걸이를 가리켰다. 거울 앞에 서서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있는 청년의 면도기로 깔끔하게 다듬은 뒷머리 아래쪽의 매끈한 목덜미는 틀림없이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목걸이의 고리를 잡은 청년의 손이 자꾸 엇나가고 있었다. 성자는 수평이 되도록 남자의 손을 잡아 고정시켰다. 잠깐 사이 부드러운 감촉이 성자의 손끝에서부터 신경줄기를 타고 머리까지 전달되면서 성자의 가슴에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스물 두 살 때의 기억이 부스스 눈을 뜨는 것 같았다. 성자는 그때 까만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처녀였다. 한 마디로 동양적인 매력을 지닌 아가씨였다. 굳이 흠 있는 곳을 들라하면 몸에 비해서 굵은 허벅지라 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긴치마가 유행되던 시절이라 흠이랄 것도 없었다. 막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성자는 친구와 경춘선 안에 있었다. 열차 속에는 청춘 남녀로 넘쳐 나고 있어서 틈에 끼어있는 몇몇 어른들은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성자와 친구 희자는 창밖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부숭부숭한 성자의 눈이 한층 더 가느스름해졌다는 것은 창밖의 풍경에 취해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치장을 끝낸 건너편 산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물을 따라 흐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성자와 희자는 소양호 주변에서 계획대로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일어섰다. 소양호를 멀거니 구경하기가 뭣해서 성자는 번데기를 샀다.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하나씩 찔러 입에 다 털어 넣을 때까지 둘은 소양호 주변을 맴돌았다. 쉬엄쉬엄 도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는 오후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 내내 멀건 빛깔이었을 하늘에는 푸른 천이 깔린 듯했다. “저거 봐. 은하수 같지?” 성자는 죽 늘어서 있는 포플러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기 손바닥 모양이라고 노래에서 그랬을 걸?” 희자가 건성으로 나뭇잎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성자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편지만 주고받았던 첫사랑이 떠난 지 꼭 일년이었다. 막상 편지를 써야할 계절이 왔지만 이젠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다. 성자는 길바닥의 잔 돌을 차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얘! 저기 좀 봐." 다소 고조된 희자의 목소리에 성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성자는 희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건물을 바라보다 몸을 기역자로 꺾었다. 간판이 모로 걸려있어 읽기 위해서였다. 비.탈.에. 선. 카.페. 중얼중얼 간판을 읽고 나서 몸을 들어 담쟁이덩굴에 휘감긴 건물을 쳐다보았다. 카페는 건물 일이층을 다 쓰고 있었다. 담쟁이덩굴은 회갈색으로 바랜 벽을 타고 올라 지붕에까지 실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덩굴에 붙은 잎사귀들은 빨강, 노랑, 주황, 녹색 등으로 배색되어 있었다. 성자는 담쟁이 잎을 두어 장 따서 책갈피에 넣어 두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 가까이 갔다. 앞 유리면으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울의 커피숍처럼 디제이 박스가 있고 테이블 너덧 석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커피숍 안은 미니 이층이었다. 그러니까 앞쪽으로는 일층이었고 뒤쪽으로는 이층이다 보니 가게 안이 비탈져 있는 꼴이었다. 유리 벽면 앞으로 테이블이 대 여섯 개 정도 놓여 있고 중간에 대 여섯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이 일이층을 연결하고 있었다. 전체 테이블 수는 스무 개가 넘지 않아 보였다. 성자는 자리에 앉으려다 미니 이층에 있는 디제이 박스를 쳐다보았다. 조도가 다소 낮은 불그스름한 불빛 아래 앉아 있는 디제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가 하경을 하게 된 까닭은 막국수 때문이었지 비탈에 선 카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담쟁이덩굴과 모로 누워있는 간판에 홀려 이곳을 찾았습니다. 다섯 곡을 듣겠다는 것은 저의 고집입니다. 물론 그 노래를 다 들어야만 저는 비탈진 이 카페를 나가겠지요.’ 디제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종업원이 들이 민 성자의 쪽지를 읽었다. 성자와 희자는 햇살이 깊숙이 스며드는 시간에야 커피숍에서 일어 날 수 있었다. 성자와 희자가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가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돌아보니 디제이였다.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디제이는 죽은 깨가 있는 얼굴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와 기다란 목과 기다란 손가락이 인상적이었다. 성자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디제이의 뒷목덜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스물 두살 무렵의 매력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성자는 방금 떠올린 아름다운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충혈 된 눈을 비볐다. 그제야 가게의 물건이 하나씩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성자는 입 가장자리가 터지지 않을 만큼 힘껏 벌리고 하품을 했다. 벌써 시간은 아홉시 반이 넘어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인지 잠자리에 들 이층 여주인이 그녀의 가게를 향해서 땅딸하고 뚱뚱한 몸을 어기적거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원래도 알사탕을 문 것 같이 툭 불거진 볼이 잔뜩 부어 있었다. 여주인은 현관문을 일고 들어서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이 정신 나간 여편네야 . 이 집 식구들 다 태워죽일 셈이야?” 목걸이를 샀던 청년이 나갈 무렵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았다는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정신이 번쩍 든 성자는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부엌에 딸린 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 밀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오랫동안 써 온 알루미늄 커피포트가 숯덩이처럼 새카맣게 되어서 성자의 추억을 처참하게 뭉개어 버리고 있었다. 성자가 벌렁대는 가슴을 누르며 허무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 앞머리가 뭉텅 빠져버린 남편이 가게문을 밀며 들어섰다. “에고 춥다.” “오는 길에 마트에나 다녀오라니깐. 참내...” 성자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겼다. “여편네가 남편 알기를... 못해! 씨!” "으이그...내가 미쳐!" 툴툴거리는 성자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픽 웃었다. 비틀거리던 남편은 덜퍽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소파에 앉았다. “나도 미쳤지. 좋은 여자 다 놔두고 몇 통의 편지에 헤까닥하다니...흐흐...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던 아름다운 비탈의 카페라...서두가 그랬지 아마?” 아예 뒤집어진 넥타이가 눈을 커다랗게 치떴다가 스르르 감는 남편의 목에서 대롱거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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