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옛말에 “可憐天下父母心(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가련하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주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할 수 만 있다면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내할 수 있다는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안쓰러운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식을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중국 부모님들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는 어느 현장으로 우리 블로그 부부가 한 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중국에서도 올해 쌍춘년(雙春年) 결혼식 붐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결혼식 붐을 타고,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두고 있는 중국의 부모님들은 애타는 마음을 더욱 가눌 길이 없답니다. 그래서 사업으로 혹은 학업으로 바쁜 자녀들을 재촉하다 못해 직접 자녀들을 대신해 배우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일명 구혼(求婚)을 위한 “뿌랑윈똥(布朗運動 - 브라운 운동, 즉 물리학에서 말하는 미세분자가 액체와 기체 중에서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빗대어 부모들이 자녀의 배우자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 말인 것 같습니다)”이라고 불리는 “父母代相親(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맞선을 보다)”하는 자발적인 모임이 북경, 상해, 남경, 광주, 심천 등의 대도시에 있는 공원이나 광장 등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북경에서는 中山公園(중산공원), 玉淵潭公園(옥연담공원), 紫竹院公園(자죽원공원), 龍潭公園(용담공원) 등지에서 주로 주말과 특정한 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린답니다. 적게는 몇 백 명에서 많을 때는 심지어 천 명 가까이나 되는 많은 어르신들이 모이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인 모임이 정부 관련 기관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정부에서도 이러한 모임을 전폭 지지하며 좀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오늘 우리 블로그 부부는 북경의 중산공원(中山公園 - 천안문 바로 서쪽에 있는 공원이지요)에서 열리고 있는 “父母代相親(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맞선을 보다)” 모임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모임은 작년 초부터 공원을 찾아 산책 나온 일부 어르신들의 만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두고 계신 어르신들이 산책을 나온 공원에서 서로의 가정사(家庭事)를 이야기하다 우연찮은 기회에 자녀들의 맞선을 주도하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성사된 결혼 성공담이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점차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들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공원 내의 “위허(御河)” 혹은 “호우허(后河)”라고 불리는 인공호수의 주변에서 모임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체로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께서 두꺼운 도화지나 판자에 자녀들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적어와 들고 다니시거나 눈에 띄기 쉬운 장소에 세워두고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모임에 등장한 자녀들의 신상 정보를 살펴보면...
20대 초반의 여성에서부터 40대 중반의 남성까지, 직업은 군인, 의사, 교사, 디자이너, 회사원, 학생, 기업체 간부, 공무원 등등 천차만별이지만 주로 “바이링(白領 - 화이트칼라)” 계층의 샐러리맨들이 많았고, 초혼인지 재혼인지의 결혼경력 유무와 신체조건, 성격, 월급, 부동산 소유 여부 등 정말 다양한 조건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수치로 명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뽀샵” 처리된 자녀의 사진까지 들고 나오셔서, “우리 딸내미가 미녀 선발대회에도 나갔었다네...” 하시며 자랑을 늘어놓으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네요.
어르신의 말씀대로라면, 그렇게 예쁘고, 머리 좋고, 나이 어린 아가씨가 왜 스스로 배우자를 찾지 못하고, 부모님이 대신해서 나오셨을까요?
어르신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딸내미가 너무 바빠 연애할 시간도 없을 뿐 더러, 더 나이가 차서 혼기를 놓치기 전에 빨리 짝을 찾아주려고 한다네.” 하지만 이곳에 등장하는 자녀들의 대다수는 혼기를 놓친 “따링(大齡 - 고령, 나이가 많은)”의 처녀, 총각들이랍니다. 간혹 이미 한 번의 결혼에 실패한 자녀를 위해 새로운 인연을 찾아주려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참, 그런데 공원에 등장하는 자녀들의 성비(性比)를 따져보니,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 연령에 있어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자유롭지 못하다는 현실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남성의 연령은 결혼 조건에서 크게 중요시되지 많지만, 여성은 연령이 많아질수록 결혼 시장에서 점점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한창 꽃다운 나이의 여식(女息)을 둔 부모님들이 더욱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하네요.
우리 블로그 부부는 이날 이곳을 방문해서 많은 어르신들의 주목을 받았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주로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시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의 등장이 낯설게 느껴지시나 봅니다.
어떤 어르신은 우리 블로그 부부에게 다가오셔서 누구의 배우자를 찾으러 왔냐고 물으시기도 합니다. 아무튼 생생한 현장을 사진 속에 담으려다, 우리 블로그 바깥주인은 또 다른 복병(?)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호랑이를 닮은 할아버지께서 “웬 기자가 와서 난리냐? 찍지 마라!” 하시며 호통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다른 분들께 매번 양해를 구하였지만, 직접적으로 대외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시는 탓인지 대부분은 사진 촬영을 거부하셨답니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몇몇 어르신들은 자녀의 신상이 적힌 자료와 사진까지 내보이시며 널리 광고를 좀 해달라고 부탁까지 하시네요. 아울러 대다수의 어르신들은 자녀들도 모르게 모임에 나왔다며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블로그 안주인은 혼기를 놓친 중국 친구와 함께 그 친구의 배우자를 물색하기 위해 이곳을 다시 한 번 찾아 갔습니다.
역시 젊은 우리들의 등장으로 많은 어르신들이 주목을 하셨고, 적극적인 어르신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습니다. “나이는 몇 살이냐?”, “어디 출생이냐?”, “어디에서 일하냐?”, “학력은?” 등등... 심지어 어떤 어르신은 블로그 안주인의 미모(?)와 성격(?)에 반하셨는지,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 연락처를 남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블로그 안주인은 어쩔 수 없이 이실직고 하였지요. “저는 이미 임자 있는 몸인데요...” 하면서 어르신의 얼굴을 살피니, 상당히 아쉬워하는 표정이셨답니다. 하하~
아무튼 우리처럼 이렇게 배우자를 찾아서 자녀들이 직접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물론 시간도 나지 않을 뿐 더러, 이렇게 부모님들의 재촉에 등 떠밀리며 억지로 인연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합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듣게 된 어느 부모님들의 대화가 인상에 남습니다.
“단돈 3위안(약 390원)의 공원 입장료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맞선을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좋아? 만약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개를 받는다면, 못해도 몇 천 위안(약 몇 십 만원)은 들어갈 텐데 말이야...”
결국 이날 중국 친구는 마땅한 배우자를 찾지 못했지만, 우리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자~ 부모님들끼리 자녀들을 대신해서 맞선을 보는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중국 부모님들끼리의 “샹친후이(相親會 - 맞선모임)”이 열리고 있는 북경 중산공원(中山公園 - 천안문 바로 서쪽에 있는 공원이지요)으로 들어가는 서문의 전경입니다.
입장료 3위안(약 390원)으로 여러 사람들과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답니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샹친후이(相親會 - 맞선모임)”이 열리는 격언정(格言亭) 주변으로 부모님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자녀들의 혼사(婚事)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계시네요.
만남의 광장 여기저기에 자녀들의 신상 정보를 적어 놓은 팻말을 세워두거나 들고 다니며 배우자감을 물색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배우자감을 찾게 되면, 적극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자녀들의 만남을 추진합니다.
만남의 광장에 등장한 어느 구혼 광고입니다.
이렇게 눈에 띄기 쉬운 장소에 놓아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습니다.
내용을 한 번 살펴볼까요?
35세의 남성으로 아직 미혼이고, 키는 185 cm이며, 북경사범대학과 청화대학 두 명문대의 학위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현재 북경 모 대학의 행정관리 간부와 강사직을 겸하고 있다네요. 북경 호적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명랑한 성격과 성숙한 인품을 지니고 있답니다.
배우자감으로는, 대학 학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고 건강하며 피부가 하얀 31세 이하의 미혼 여성을 찾는다고 쓰여 있네요.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상대 여성의 키가 167 ~ 172 cm 정도면 좋겠다고 하면서, 만약 다른 조건이 좋다면 165 cm나 175cm의 여성도 무방하다며 신체조건을 정확한 수치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구혼 광고를 살펴보겠습니다.
80년생 원숭이 띠인 26세 된 여식(女息)의 애인을 찾는다는 광고입니다.
여성은 키가 168 cm로 대범하고 활달한 성격의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고, 현재 건축 설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북경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벌써 아파트도 한 채 소유하고 있다네요.
배우자감으로는, 대학 본과 졸업 이상의 정규 교육을 받은 성실하고 이해심 많은 키 176 cm이상의 74~ 79년생 남성을 원한다고 쓰여 있네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성이 건축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조건도 달고 있는데, 부부가 같은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나 보네요. 참! 또 하나, 북경 사람이면 가장 좋겠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곳에 나온 구혼 광고의 대부분이 북경 호적의 소지 여부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에서 호적을 쉽게 변경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납득이 가네요.
이렇게 연세 드신 노부모님들께서 자녀들의 구혼 광고 전단을 펼쳐 놓고 마땅한 배우자가 접근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연로하신 아버지가 딸내미의 신상 정보를 적은 자료를 펼쳐 보이며 자랑을 하고 계십니다.
"자~ 여기를 보라구요. 내 딸내미가 얼마나 예쁘고 능력이 좋은데..."
아버지의 고슴도치 사랑이 엿보이는 장면입니다.
마땅한 배우자가 있는지 물색 나오신 어르신들.
인심 좋아 보이는 어르신께서 딸내미의 사진을 공개하며 웃고 계시네요.
구혼 광고를 보니...
따님은 현재 33세로 키는 163 cm 이고, 전문대를 졸업하여 현재 부동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찾고 있는 남성 배우자의 조건을 보면, 나이는 33~45세 정도로 키는 175 cm에 전문대 이상의 학력과 집을 소유하고 안정된 수입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씌여 있습니다.
아무튼 빨리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길 바래봅니다.
이쪽에는 부모님 두 분께서 모두 나와 계시네요.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블로그 안주인의 여러 가지 질문에 이것저것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답니다. 두 분만 뵙고도 자녀분의 성품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가까이 다가가서 자제분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정말 잘 생겼네요. 하하~
참고로, 중국에는 “빠오빤훈(包辦婚)”이라는 전통적인 결혼 풍습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독단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시키는 풍습이지요.
물론 유교사상을 중요시하던 봉건시대에 주로 성행하던 결혼 풍습이었지만, 현재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부모가 자녀들의 결혼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판 “빠오빤훈(包辦婚)”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처럼,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배우자를 찾는 사회 현상 역시 “빠오빤훈(包辦婚)”의 잔재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하지만 자식을 위해 좋은 배우자를 찾아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부모님들의 노력으로, 현재 많은 청춘 남녀들이 맞선을 통해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원 측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데이트를 진행 중인 100쌍의 커플 중 1쌍의 커플이 결혼에 성공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