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의회에 대해 새롭게 묵상할 것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그 가르침의 결실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공의회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하다.”(교황 바오로 6세, 1969년 3월5일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일반 신자 알현 때 강론 중에서)
평화신문은 창간 14돌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40돌을 기념해 특별 기획 시리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배운다’를 마련한다. 그 첫 회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현대 교회와 세상에 미친 영향을 알아본다.
“오늘의 가톨릭은 답답해! 신선한 공기가 좀 필요하니 바티칸의 창문을 열라.”
복자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2)가 1958년 교황직에 즉위한지 얼마 안돼 추기경과 대주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말이다. 요한 23세는 자신의 말처럼 20세기를 살면서 아직까지 봉건제도를 고수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교회 전체 생활에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자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 요한 23세의 예언자적 안목에 의해 개최됐지만, 공의회 폐막 후 교회는 이 공의회가 바로 ‘성령의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의회를 주목하던 교회 밖 세상도 “가톨릭 교회가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에 참여, 인류 공동 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참된 인류의 봉사자가 되려 한다” “싱거워진 소금(마태5,13)이 제 맛을 되찾기 시작했다”며 공의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희망을 걸 정도였다.
▲새로운 교회상 ‘하느님의 백성’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큰 업적은 교회의 본질을 ‘교계제도’가 아닌 친교의 공동체로 새롭게 인식, 성직자·일반신도 모두 동등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정의한 것”이라고 꼽고 있다.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인식함으로써 교회로부터 떠나간 동방교회와 서방 개신교에 대한 ‘형제적 일치’ 관계를 도모하는 자세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신학자들은 또 이 새로운 교회상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비그리스도교적 문화와 타 종교들 안에서도 만인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발견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가톨릭 교회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세계 교회의 변화
△평신도의 교회 참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세계 교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바로 ‘평신도의 교회 참여’이다. 공의회는 평신도를 “각기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교회헌장,33항)으로 인정하여 세속의 복음화와 성화를 위한 고유한 사도직 임무를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 공의회의 이 가르침으로 오늘날 세계 모든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이 성직자들과 동반자의 입장에서 교회의 구원사업에 구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례의 토착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전례에 있어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미사를 비롯한 각 성사를 자국어로 집전토록 하고, 성서와 교회법전 등의 자국어 번역을 장려했다. 성당 제단 벽면에 붙어 있던 제대는 사제와 신자들 가운데로 옮겨졌고, 제단과 신자석을 가로막던 난간이 사라졌다. 또 난간에 꿇어서 혀로 받던 영성체 예식은 서서 손바닥으로 받는 식으로 변했다. 아울러 밤 12시부터 지켜야 했던 공심재는 성체를 영하기 전 한 시간으로 변해 영성체가 훨씬 용이해졌다.
△교회 일치와 타종교와의 대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일치 운동과 비그리스도교 문화와 타 종교와의 관계 개선을 권장해 각 지역 교회들이 나름대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 문화와 타 종교 안에서도 만인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 지역 교회의 토착화를 장려해 현대 교회는 세계 곳곳에서 진정한 ‘보편적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번된’ 교회상을 실현하고 있다.
△공동선을 위한 사회 현실 참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또한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분리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 아래, 교회 구성원이 인류 구원과 세계 평화를 위해 모범을 보일 것을 촉구하며 교회의 문을 세상을 향해 활짝 열었다(사목헌장 24항 참조). 공의회는 “인간의 기본권에 관한 성별, 인종, 피부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 기인한 모든 차별 대우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하고 제거되어야 한다”(사목헌장 29항)며 교회 공동체가 세계 안에서 ‘공동선’ 증진을 위해 헌신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천명했다.
각 지역 교회가 부의 편재, 사회 정의 등 현실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사회악의 근절과 공동선의 구현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된 것도 공의회가 변화시킨 교회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정일(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 교회에서도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교회의 주인’으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라며 “공의회 정신을 보다 구체적으로 한국 교회와 현대 사회에 실현시키기 위해선 평신도들의 능동적인 교회 참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 배경과 과정
1962년 10월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서 개막
4기에 걸쳐 진행 요한 23세 1963년 선종
바오로 6세, 16개 문헌 채택하고 65년 폐막.
1959년 1월25일 교황 요한 23세는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 폐막 미사’를 봉헌한 후 베네딕도회 성 바오로 수도원을 방문, 그곳에 있던 17명의 추기경에게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금세기 가톨릭 교회의 최대 사건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시작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요한 23세가 여러 번 확언한 것처럼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돌연한 영감에서 이루어졌다.
▲소집 배경과 준비과정
1950년대 세계 가톨릭 교회는 세계 공의회를 개최해야 할 만큼 위기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는 쟈크 마르탱, 프랑소와 모리악, 이브 콩가르, 에티엔느 질송, 칼 라너, 앙리 드 뤼박, 스킬레벡스 등과 같은 걸출한 가톨릭 지성들이 많았다. 또 미국 교회 경우만 해도 신자의 85%가 매주 미사에 참석했고, 그들 가운데 50%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영성체를 할 만큼 활기를 띠고 있었다. 또 신앙 교리를 특별히 명확히 해야 할 계기도, 교회에 위협을 줄 만한 새로운 이단도 없었다. 이처럼 당시 교회 상황은 전 세계 주교들을 모두 불러 공의회를 개최할 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요한 23세는 세계 공의회를 소집했다. 요한 23세는 이번 공의회가 ‘교리상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목적 공의회’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요한 23세는 1960년 6월5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 목적을 세가지로 제시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쇄신’과 ‘교회 규율의 현대 적응(Aggiornamento)’ 그리고 동방교회와 프로테스탄트 등 ‘갈라진 그리스도교와의 일치’였다.
이 세가지 공의회 소집 목적은 요한 23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 영감은 바로 세상 복음화를 위한 교회 스스로의 노력, 즉 현대화의 노력이었다”고 신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요한 23세는 1961년 12월25일 사도헌장「인간의 구원」(Humanae Salutis)을 통해 1962년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된다고 공포했고, 성직자들에게 공의회의 성공을 위해 성무일도를 바치도록 촉구하고, 주교들에게 경건한 생활 자세를 갖추도록 조언했으며, 신자들에게 공의회가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께 간구하도록 요청했다.
▲진행과정
1962년 10월11일 요한 23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개회를 장엄하게 선포했다. 이날 개회식에는 표결권을 가진 2,540명의 공의회 교부들과 동방교회와 개신교 17개 교파에서 35명의 대표가 참관인으로 초대받아 참석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20차례의 세계 공의회에서는 모두 서구 출신 교부들이 참석했으나 이번 공의회에서는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이 참석해 명실상부한 세계 공의회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전 세계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이날 개회식 연설을 통해 요한 23세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과 급진적인 입장 양 극단을 경계하면서 가톨릭 신자 사이의 일치, 가톨릭과 타 그리스도교 사이의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교와 타종교간의 대화와 일치 등 세가지 차원에서의 일치를 강조했다.
요한 23세는 또 강론에서 “이 공의회의 빛에 비추어져 교회는 영적인 부를 더하고 새로운 힘을 굳세게 되어 어떤 것에도 동요함이 없이 미래를 응시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 공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유산을 더 한층 효과적으로 수호하고 또 전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총회와 위원회, 공개회의로 구분돼 진행됐다. 총회는 제출된 초안에 대한 채택, 기각, 수정을 결정하며 사회는 교황이 임명한 10명의 추기경으로 구성된 의장단에서 맡았다. 총회 안건 표결은 참석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유효표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는 초안을 작성하고 총회에서 부결된 초안을 수정하여 제출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총 4회기에 걸쳐 진행됐다.
제1회기(1962.10.11~1962.12.8)에서는 각 위원회의 위원을 선출한 후 ‘전례’ ‘계시의 원천’ ‘매스미디어’ ‘동방교회’에 관한 의안을 다루었지만 초안을 하나도 채택하지 못하고, 1962년 12월8일 휴회했다. 교황 요한 23세는 제1회기 휴회 후 공의회의 성공적 폐막을 보지 못하고 1963년 6월3일 선종했다.
요한 23세에 이어 교황으로 선출된 교황 바오로 6세는 1963년 9월29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2회기(1963.9.29~1963.12.4)를 재개했다. 바오로 6세는 총회에 평신도가 방청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전례헌장)과「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을 반포했다.
제3회기(1964.9.14~1964.11.21)에서는 주교의 사목직무, 종교의 자유, 유다교와 비그리스도교, 하느님의 계시, 평신도사도직, 현대 사회 안에서의 교회, 사제, 그리스도교 일치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바오로 6세는 이 회기에서「일치운동에 관한 교령」「동방교회에 관한 교령」「교회에 관한 교의헌장」(교회헌장)등 3개 문헌을 채택했다.
제4회기(1965.9.14~1965.12.7)에서는「주교들의 교회 사목직에 관한 교령」「수도생활 쇄신 적응에 관한 교령」「사제양성에 관한 교령」「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계시헌장」「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이 반포됐다. 바오로 6세는 이 회기 중 교회의 공동선을 위해 교황이 지역 주교들의 자문을 얻기 위해 소집하는 ‘주교 대의원 회의’(시노드) 설립 의사를 밝혔고, 성직자들의 독신생활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4개의 헌장과 9개 교령, 3개 선언 등 모두 16개 문헌을 채택하고, 1965년 12월8일 교황 바오로 6세 주재로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에서 성대한 폐회식을 갖고 폐막됐다.
<평화신문 2002. 5. 19-26 에서>
※공의회란 무엇인가?
세계 공의회(Cocilium.이하 공의회)는 전세계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신앙과 윤리, 규범 등에 관해 결정하는 가톨릭 교회의 최고 회의체를 말한다. 교황을 단장으로 하는 주교단이 신자들과 전체 교회의 선익을 위해 최고의 권한을 행사하는 회의가 바로 공의회인 것이다. 따라서 공의회는 전체 교회를 대변하는 회의이다. 공의회는 회합이 이루어지는 장소 이름을 붙여 ‘바티칸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등으로 구분해 부른다.
신앙과 진리에 관한 공의회의 결정은 영구적이다. 또 교회의 신앙과 신자들의 윤리 규범에 대한 공의회의 결정은 모든 신자가 지켜야 하는 의무가 되며, 모든 신자에 대한 구속력을 지닌다. 특히 신앙 문제에 관해서는 공의회 참가 교부들의 만장일치를 고수한다. 때문에 신앙 문제와 관련한 여러 의견과 신학파들간의 대립이 있을 경우 그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선언을 유보하고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이 공의회의 관례이다.
교회법상 공의회 소집은 교황만이 할 수 있고, 교황만이 의장이 되어 진행 순서를 정하고 의제를 설정한다. 그러나 공의회 의장의 동의가 있으면 의제들을 참가자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 공의회 결정 사항들이 실제 효력을 갖기 위해선 교황의 비준과 공포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교황의 결정에 반대해 결정 사항을 공의회에 상소할 수 없다. 이처럼 교황은 공의회의 진행과 토의 내용, 효력 발생에 있어 최고의 권한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