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보고 나오다 바로 이웃인 이서중학교를 보면 운동장의 동쪽편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다. 멀리서 보기에는 한그루에서 두 줄기가 힘차게 뻗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가까이 가서 보면 키도 모양도 비슷한 우람한 두 그루의 나무이다. 어쩌면 그렇게 두 그루 나무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감탄스럽다. 말없이 서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함께 쉬어가라고 정겹게 맞이해 준다.
△ 화순 쌍 느티나무 - 이서중학교 운동장 한켠에 서있는 쌍 느티나무의 전체 모습. 뽀샾 처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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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튼튼한 뿌리 위에 넉넉하게 얹혀 있는 아름이 넘는 줄기며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뻗쳐 있고, 여름 내내 속살이 불어 견뎌내지 못한 껍질은 이내 터져서 다닥다닥 비늘처럼 붙어 있다.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굵기로 가늘어지는 가지들은 평온하면서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곡선미를 연출해 내고 있다. 이름하여 ‘쌍 느티나무’란다.
△ 화순 쌍 느티나무의 잎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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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화순군의 군목(郡木)이다.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기에 그렇게 정했으리라. 돌아 다녀 보면 남녘에는 비교적 적은편인데 다른 지방에 비해 유난히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 고을이다. 특히 이 ‘쌍 느티나무’는 화순 군목을 내 세울 때 항상 모델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 화순 쌍 느티나무의 줄기 모습 - 카메라 앵글 때문에 두 그루의 크기가 차이가 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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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의 수피 - 여름 내내 속살이 불어 견뎌내지 못한 껍질은 이내 터져서 다닥다닥 비늘처럼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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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봄이면 연초록 새순이 거목(巨木)을 휘감아 푸릇푸릇한 신록의 향연을 벌이고, 여름이면 진초록 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정말 포근한 쉼터를 마련해 준다. 그 뿐이랴, 느티나무 그늘은 단아한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또 가을이면 노랗지도 않고 붉지도 않게 물들어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그 나무 아래에서 쌓여있는 낙엽을 깔고 앉아 술잔에 떨어지는 낙엽을 한쪽으로 불어 가면서 잔을 기우리다 보면 어느새 세속을 벗어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신선이 된다.
△ 느티나무의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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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나무들 중 상록수의 으뜸이 소나무라면 낙엽수 중에서는 역시 느티나무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네 삶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서 있는 나무가 당산나무이고, 그 중에서 남해안 지방을 빼놓으면 느티나무가 가장 많은 편이다.
105mm 렌즈로 갈라 터진 나무껍질을 확대 촬영하다 보니 이상한 게 보인다. 자세히 보니 허물 벗은 매미의 껍질이 수피에 그대로 붙어 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기 허물을 잘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데 매미는 나무껍질에 그대로 붙어 있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좀 특이하다.
그러다보니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그런데 왜 여태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이상한 노릇이다. 그러니까 소리가 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 보았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듯이 듣는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보았다고 다 믿을 것이 못되고, 들었다고 역시 다 믿을 수가 없겠구나 생각하니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불현듯 떠 오른다. 매미소리가 조용해졌다가 다시 요란하게 운다. 이제는 요란한 소리가 아닌 기분 좋은 소리로 들리니 이 또한 무슨 조화인지?!
△ 느티나무 수피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 카메라 한 시야에 3개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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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 수피에 붙어 있는 매미 허물- 105mm로 확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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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모두 떨어진 겨울철 나목(裸木)의 모습에서 느티나무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난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지 끝마다 엉켜 있는 듯 보이는 잔가지들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거기에 함박눈이라도 살포시 내려 눈꽃이 피면 그 설화 만발한 나목이 연출해 내는 아름다운 정경은 마음을 시리게 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 느티나무의 수피와 움싹 : 마치 사천왕의 얼굴 눈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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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한자로는 괴목(槐木) 또는 규목(槻木)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Zelkova Tree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ケヤキ라고 부르며, 세계 공통 학술명인 학명은 Zelkova serrata Makino이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타원형으로 끝은 뾰족하며 톱니가 있다. 암수 한 나무로 4, 5월에 새 잎과 동시에 아주 작은 담황록색의 꽃이 핀다. 보통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꽃이 작다. 나뭇가지 끝의 새로 나온 가지의 밑에는 수꽃이 피고 위에는 암꽃이 피고, 10월에 열매가 익는데 역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기 어렵다.
△ 느티나무의 열매- 줄기 끝 부분의 잎겨드랑이에 익지 않은 녹색의 열매가 보인다. 줄기 끝에 까맣게 열매처럼 보인 것은 열매가 아니고 잎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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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 어르신들은 가진 것이 많지 않더라도 항상 넉넉하였고 조금이라도 있으면 서로 나눌 줄 알았으며, 추한 것을 덮어두고 미풍양속을 쫒는 우리네의 은은한 정이 얽혀진 마을마다의 삶의 상징들이 당산나무 느티나무에 배어 있다. 그러기에 우리 한국의 문화를 `정의 문화'라고들 한다. ‘정’과 ‘멋’이란 말은 우리만의 아름다운 말이리라. 정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한테서만 나눠지는 것이며, 멋은 아름다움만도 아니고, 예쁜 것만도 아닌 우리네 선비들의 해학과 풍류가 곁들어져서 이룩된 정서이리라. 그래서 나는 유독 그 말을 좋아 한다.
느티나무의 목재는 목재 중에서 최상급에 속하며 무늬가 곱고 광택이 있으며 뒤틀리지 않는 특성이 있어 최고급 가구, 악기, 현판, 조각, 상감 세공, 선박, 목형 등의 소재로 사용한다. 느티나무는 목재로도 경관수로도 가장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보배로운 나무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가구재 로서는 오동나무, 먹감나무와 더불어 3대 우량재로 꼽는다.
△ 느티나무의 나목 : 이 사진은 이른 봄에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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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뿌리가 깊고 실하기 때문에 방풍수로서도 훌륭하며 가로수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 오존층의 파괴와 함께 태양 자외선의 강도가 강해져 피부암 등의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느티나무 그늘을 이용한 녹음지역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나무의 황제'이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천년을 손쉽게 훌쩍 넘기는 장수목이다. 그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이다. 의지(意志)와 강건(强健)함의 표상, 느티나무 ! 한마디로 나무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장점을 다 가지고 있는 '나무의 황제'이다. 그러기에 여기 이 쌍느티나무가 우리를 영원히 지켜보게 아무 탈 없이 자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카메라 가방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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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꼭 가서 보고오렵니다
느티나무는 1년 내내 볼거리를 제공한답니다. 학교가 폐교되어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