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는다. 사막에서 폭우를 기다리는 갈증처럼, 어둠 속에서도 꼭 쥐고 있었던 생각 가물가물 꺼져가는 심지 끝에 촛불 같은, 어쩌면 슬픈 향기를 품은 한 톨의 씨앗이다. 물을 딛고 아른아른 봄의 적막을 깨운다.
따뜻했다. 한 겹 한 겹 얼음알갱이며 어둠이며 훌훌 털어 버리고 새벽안개 피어나는 봄물 속으로 텀벙,
소쩍소쩍 소쩍새 울음
봄을 건너다닌다.
꽃
유회숙
길을 가다 꽃을 보았다
소똥이다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길 끝에 과수원이 있다
사람들 무시로 다니는
밤낮으로 하늘이 내려다보는
풀잎 뒤척이는 길 위에 똥을 보았다
어디선가 굴러온 돌멩이
딴청 피는 길 위에
철퍼덕 철퍼덕 귀쌈을 올리듯
뜨거운 속 꺼내 놓고 가는
뒤가 향긋한 꽃을 보았다
만질 수는 없다
소가 사라진 길 끝에 과수원이 있다
보름달 뜬다.
바람 부는 날
정희
고향집 저문 날에
전화 벨 울린다
내 마른 정원에 넘쳐흐르는 그리움
소낙비
오늘도 가슴에 바람 부는데
소리나지 않은 풍금을 밟으며
친정집 뒤안을
서성대는 나
동해의 파도소리
정희
천하가 다 내 것이라네. 동해의 파도소리
할퀴고 부서지는 분노의 이랑마다
비릿한 아침 햇살이 앞다투어 반짝인다.
시끌한 여름 한 철 신명낫던 모래알도
저마다 제자리 찾아 일제히 명상한다
인간사 물거품이라 이르네, 동해의 저 파도소리
하찮은 것 손에 쥐고 바둥대는 세월자락
저만치 비켜서서 돌팔매 날려 보면
동해의 저 파도소리 갈매기떼 몰고온다
용수리 마을 김노인
오정수
한없이 내리는 비
논밭에 이삭은 맺을 엄두도 못한 채
왼 종일 빗속을 헤매는 김노인
해마다 올해가 마지막 농사라고 다짐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어떻게 살며
애비가 버린 땅을 자식인들 지켜주겠는가
언제부턴가 못 보던 서양풀은
논밭도랑을 온통 뒤덮어 버리고
예전부터 늘 상 혼자 하던 일이었지만
이젠 놉을 사 맡기곤 한다네.
언덕 아래 작은 외딴집
주인은 먼 길을 떠났는지
간밤에 고추밭은 비에 잠기고
저 건너 행길에는
인적마저 뜸하네.
폐차장을 나서며
오정수
십 년도 넘게 지내 온 애마가
우리 곁을 떠난다네.
이젠 늙고 지쳐 언덕마저 오르기 힘든 애마
남과 다퉈 본 적도 없는 애마가
오늘 아주 떠나고 만다네.
그 동안 붙인 채 다니던 주차금지 스티커를
말끔히 떼어내고 마지막 세차를 한 후
폐차장으로 가는 석양 길.
그 날 따라 바람은 세차게도 불어싸
폐차장 철판조각 불려 다니고
국밥집 천막은 바람에 나부끼네.
두고 가는 애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내 눈시울은 붉고 말이 없네.
입구의 경비 영감님
‘어여 가, 걱정 말고 어여 가’ 하는 소리에
아내는 돌아섰네.
겨울 감자
송선애
겨우내
방 한구석에 좌정한
감자상자에서
싹들이 일제히 올라오고 있었다.
여름 날 마루에 앉아
속살 뽀얀 하지감자를
한입가득 물게 되면
포근한 어머니가 보였다.
이제는 까칠한 모습에
화색도 잃었는데
몇몇 조각난 눈들은
제각각 뿌리를 내리고 산다.
다 빠져 나간 자식들
감자의 눈처럼 다시 돋을까
숭숭뚫린 어머니 가슴에
봄 햇살은 뽀송뽀송한데……
거듭나기ㆍ4
송선애
쪽풀을 눌러 담은 항아리에
맑은 냇물로 채운다.
사나흘 뒤 허물 벗어
파도에 실려온 조개껍질
부수고 부수어 저으면
텁텁한 마음 물 위로 뜨고
푸른 정신 담은 쪽빛 결정체
볏짚 태워 우리고
정갈한 쪽앙금 넣으면
하늘이 내려와 나풀거린다.
모시를 삼아 씻을수록
뽀얗게 분칠한 새색시의 엷은 미소처럼
자연을 탁본 뜬 세모시
바다를 옮겨다 놓은 쪽빛정신
연등구름
박기동
구름이
땅을 기어 다니는 걸 본다.
해인사 연등행렬 밑으로
낮은 햇살을 타고 내려온
꽃구름
구름의 고향은 흙이었을 게다
땅속의 알갱이들을 쏘아 올려
저 높이 출세의 가도(街道)를 낳은
아아, 나의 어머니
두 손 모아 합장 하신다.
흙을 빚어
팔만대장경 그 정성 담긴
연등구름
일곱 남매 기다리다, 어머니
이제 물이 되시려한다.
물이 된다.
입자가 된다.
자꾸만 허공을 바라보시며
어머니, 아직도 젖은 흙 일구고 계신다.
온천에서
박기동
온천엘 갔다
칠남매중 다섯째인 내가
아흔 살 아버지의 등을 민다.
어릴 때 목욕탕에서
내 등을 밀어 주시던 힘센 아버지
아프다고 울었던 기억
오늘도 그때처럼 눈물이 난다
등이 휘고 뼈만 앙상함에
내 가슴팍이 젖는다.
슬픔의 소이를 눈치 못 채고,
가볍게 등을 밀어 드려도 아프다고 하신다.
등엔 흐릿한 별처럼 검버섯 번져 있고
다리는 지탱하기 어려운 듯
가지처럼 휘청 인다.
아아 이분이 나의 아버지라니
어릴 적 하늘같으신 분
오늘은 대엿섯살 아이가 되시다니
미지근한 온탕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죄스럼에
눈앞이 흐려진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위로
시간만 잰 걸음 가만가만 옮기고 있다.
바뀐 신발
이병훈
붐비는 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벗어둔 신발을 찾으니
행방이 묘연하다.
남의 새 구두와 눈이 맞아
줄행랑친 줄도 모르고
조신하게 주인을 기다리던
허름한 신발과 눈이 마주쳤다.
전생의 인연인 듯
그의 품속에 발을 밀어 넣고
속궁합을 맞춰보니
따뜻하게 나를 받아준다.
하마터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그의 운명을 구해준 보답을 하듯
맨발이 될 뻔했던 내 발을
의외로 편하게 보살펴준다.
정들자마자
엉뚱한 사람에게 붙들려 간
첫사랑처럼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런 생각 지우라는 듯,
소나무 아래 앉으면
이병훈
가파른 산을 오르다가
황토 속에 깊이 뿌리박은
왕 소나무를 만났다.
무거운 발걸음
편히 내려놓으라는 듯
허리 굽혀 늘어진 가지로
그늘을 깔아 놓았다.
온갖 풍상 다 겪어
갑옷처럼 단단해진 껍질
세속과 타협하지 않은 옹이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훈장보다 아름답다.
심지 곧게 박히면
벼랑 끝, 바위틈에서도
천년세월 끄덕 없다고
솔잎에 스치는 바람소리
큰 울림으로 귀에 박힌다.
문 밖에서 서성이며
최혜숙
시험장에 아이 들여보내고 나면
왜 자꾸만 목 막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지.
달빛 아직 남은 이른 새벽
달콤한 잠 쫓아가며
학교 가던 모습 안쓰러워 이것저것 챙겨주었더니
어느새 아빠보다 키가 커진 아들이
운동장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어미는 푸석거리는 검불 같다.
숲 가운데 나있는 여러 갈래 길에서
제길 가려 맞추려는 너
밖에 선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발 동동 구른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아이를 문안으로 들여보내고
어미는 문 밖에서 서성거려야 하나
몇 해 지나면 짧은 머리로 거수경례 붙이며
다른 문 안으로 들어가겠지.
하늘에는 구름 모여들고
바람에 흙먼지 이는데
굳게 닫힌 문짝 붙들고 서있다.
황사 속 노랑나비
최혜숙
연두색 바바리에 흰 블라우스 받쳐 입고
한강 철교를 막 건너려는데
미처 떠나지 못한 겨울바람이
뒷덜미 끌어당긴다.
기적을 울리며 들어온 기차는
찬 벽에 등 기대어 졸던 이들 태워 강을 건넌다
그들이 떠난 자리 신문지 몇 장 흩어져 있고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 넓게 퍼져나가
꽃망울 터트리기 시작한다.
철로 위로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높게 쌓아 둔 침목 아래 여기저기 제비꽃 하늘거린다
기차가 쉴새 없이 오가는 철길
어느새 민들레는 노랗게 피어났다.
꽃잎 하나 따서 바람에 날리자
팔랑이는 노랑나비
내 손 안에 들어왔다가
삼월의 황사 속으로 날아오른다.
백자 속 산수화
최연숙
한 줌의 흙
도공의 호흡으로 빛을 살리고
천 삼백도 열기를 견디어 나와
비로소 숨결을 내뿜는다.
청아한 향기 품은
마알간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솟구친 산봉우리 청솔가지 뻗으며
가까이 하얀 달을 품는다.
출렁이는 하늘 아래서
최연숙
배넷저고리 지어놓고
어머니는 새벽마다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부벼 잘 자라기만 빌고 빌었다.
먹구름 가르고 뇌성 치더니
열병이 마을을 휩쓸고 지난간 후
다시는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넘어지기 일상으로
하늘이 출렁거렸다.
며칠 전 외출 했다가
성형외과에 들렸더니
멀쩡한 눈 코 광대뼈 지닌 사람들
마주 보며 양손으로 눈을 가린다.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때면
발자국마다 눈물 어리고
굳어가는 근육보다 더 두려운 건
짐짓 외면하는 행인들의 시선이었다.
늪에 빠질 때는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 연꽃이 되기를
기도 올린다.
명시 감상
눈 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도 오직 이뿐 !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옹호자의 노래
김현승
말할 수 있는 모든 언어가
노래할 수 있는 모든 선택된 사조(詞藻)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침묵들이
고갈하는 날
나는 노래하련다 !
모든 무형한 것들이 허물어지는 날
모든 우리의 꽃향들이 해체되는 날
모든 신앙들이 입증(立證)의 칼날 위에 서는 날
나는 옹호자들을 노래하련다 !
상식으로충만한 거리여
수량의 허다한 신뢰자들이여
모든 사람들이 돌아오는 길을
모든 사람들이 결론에 이르는 길을
바꾸어 나는 새삼 떠나련다 !
아로새긴 상아와 유한의 층계로는 미치지 못할
구름의 사다리로 구름의 사다리로
보다 광활한 영역을 가련다 !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여
나는 나의 우울한 혈액 순환을 노래하련다 !
날마다 날마다 아름다운 항거의
고요한 흐름 속에서
모든 약동하는 것들의 선율처럼
모든 전진하는 것들의 수레바퀴처럼
나와 같이 노래할 옹호자들이여
나의 동지여
오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 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窓)이 열린 길이다.
절대 고독(絶對孤獨)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하품을 하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아름다운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무엇인가 내게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준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 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詩)는.
❁ 김현승(金顯承)약력
호 남풍(南風)·다형(茶兄). 전라남도 광주(光州) 출생. 목사인 부친의 전근을 따라 평양(平壤)에 이주, 그 곳에서 숭실(崇實)중학과 숭실전문 문과를 졸업하였다. 교지에 투고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라는 시가 양주동(梁柱東)의 인정을 받아 《동아일보》에 발표(1934)됨으로써 시단에 데뷔하여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침》 《황혼》 《새벽교실》 등을 계속 발표,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나타내어 주목을 끌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붓을 꺾고 침묵을 지키다가 8·15광복 후 1949년부터 다시 작품을 발표, 《내일》 《동면(冬眠)》 등 지적이고 건강한 시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1951년부터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로 있으면서 박흡(朴洽)·장용건(張龍健) 등과 함께 《신문학(新文學)》(계간)을 6집까지 발행,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7년에 처녀시집 《김현승시초(金顯承詩抄)》를 간행하고, 1963년에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 1968년에 제3시집 《견고한 고독》, 1970년에 제4시집 《절대고독》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자연의 예찬을 통한 민족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띠었으나, 8·15광복 후에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세계를 보여 주었고, 말기에는 사랑과 고독 등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였다. 1973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았고 1974년 《김현승 시선집》을 출간했다.
저서로 《한국 현대시 해설》(1972), 《세계문예사조사》(1974) 등이 있다.
■ 다시 찾아 읽는 글(수필)
녹은 그 쇠를 먹는다.
법 정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두루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이 마음이니까. 그래서 가수들은 오늘도 “내 마음 나도 몰라ㆍㆍㆍㆍㆍㆍ ”라고 우리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니,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이 없는 진리이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는 눈길만 마주쳐도 그날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직장에서 대인관계처럼 중요한 몫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원인 중에 얼마쯤은 바로 이 대인관계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째서 똑같은 사람인데 어느 놈은 곱고 어느 놈은 미울까.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생(前生)에 얽힌 사연들이 조명되어야 하겠지만, 상식의 세계에서 보더라도 무언가 그럴만한 꼬투리가 있을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직장이 ‘외나무 다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선 같은 일터에서 만나게 된 인연에 감사를 느껴야 할 것 같다. 이 세상에는 삼십 몇 억이나 되는 엄청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도 동양, 또 그 속에서도 5천만이 넘는 한반도, 다시 분단된 남쪽, 서울만 하더라도 6백만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같은 직장에 몸담아 있다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비율이다. 이런 내력을 생각할 때 우선 만났다는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꼬운 일이 있더라도 내 마음을 내 스스로가 돌이킬 수밖에 없다. 남을 미워하면 저쪽이 미워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미워지니까. 아니꼬운 생각이나 미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그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버린다면 내 인생 자체가 얼룩지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대인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인생을 배우고 나 자신을 닦는다. 회심(回心),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것이다.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금생에 풀리지 않으면 그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일. 그러니 직장은 그 좋은 기회일 뿐아니라 친화력(親和力)을 기르는 터전일 수 있다. 일(직무)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점일 것이다. 일을 통해서 우리는 맺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미워하는 것도 내 마음이고, 고와하는 것도 내 마음에 달린 것이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뜻이다.
그 어떠한 수도(修道)나 수양이라 할지라도 이 마음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법구경》에는 이런 비유도 나온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같이 그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내 마음을 내가 쓸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대인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왜 우리가 서로 증오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같은 배에 실려 같은 방향으로 항해하는 나그네들인데ㆍㆍㆍㆍㆍ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