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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다시 읽는 생활의 문장들
― 최순옥 수필의 체험과 지혜의 기록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 일상의 의미를 발견하는 글쓰기
수필은 멀리 있는 세계를 향해 떠나는 문학이기도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삶을 다시 바라보는 문학이기도 하다. 최순옥의 수필은 바로 후자이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 버린 하루, 너무 자주 반복되어 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일상, 너무 당연하게 곁에 있어 고마움을 잊은 사람들 속에서 그의 수필은 문득 하나의 빛을 발견한다. 그 빛은 화려하고 찬란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하다.
최순옥의 수필집 『오늘도 삶을 건너는 중이다』에는 대단한 성공담이나 극적인 사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특별한 체험이 전면에 놓여 있지 않다. 대신 꽃을 바라본 순간, 가족과 나눈 밥상, 부모의 병실, 여행지에서 마주한 풍경, 책을 읽으며 떠올린 삶의 질문, 봉사의 현장에서 만난 늙은 몸 그리고 자기 자신과 조용히 마주한 시간이 놓여 있다. 작가는 그 일상의 장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삶의 뜻을 묻고, 상처의 의미를 되짚고, 사람 사이 사랑의 온도를 살피며, 마침내 한 문장의 지혜를 길어 올린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잘 살아낸 날의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정신없이 살았고, 그 와중에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본 순간들의 흔적”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이 수필집은 성공적인 삶을 자랑하는 회고록이나 자서전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흔들렸으나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마음, 다 알지 못했으나 다시 이해하려 애쓴 시간, 포기하고 싶었으나 견디며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의 기록이다.
책의 제목처럼 작가는 ‘오늘’을 다시 읽는다.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오늘, 고단하고 반복적인 오늘, 때로는 상처와 후회로 남은 오늘을 그는 다시 펼쳐 본다. 처음에는 불행으로 보였던 일이 시간이 지나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원망으로 남았던 일이 이해의 자리로 옮겨가며, 무의미해 보였던 수고가 누군가를 지키는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최순옥의 수필은 바로 이렇게 삶을 다시 읽는 글쓰기이다. 다시 말해, 삶을 한 번 겪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시 읽고, 다시 해석하고, 다시 받아들이는 글쓰기다.
2. 생활은 어떻게 지혜가 되는가
최순옥의 수필에서 일상의 삶은 생각의 출발점이고, 지혜가 발생하는 장소이며, 작가가 자기 삶을 확인하는 구체적인 현장이다. 그의 글은 멀리서 얻은 깨달음보다 가까운 곳에서 얻은 깨달음을 더 신뢰한다. 꽃을 키우고, 음식을 나누고, 병원에 다녀오고, 가족과 대화하고, 여행 가방 속에 남은 김밥을 바라보는 순간들이 그의 수필에서는 모두 삶을 배우는 계기가 된다.
「계절을 잊은 꽃에게 배우다」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집들이 선물로 받은 연산홍이 온실 같은 거실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잎은 푸르고 단단하지만, 계절을 잊은 꽃은 피지 않는다. 작가는 그 꽃을 화단의 차가운 흙에 옮겨 심는다. 바람과 추위, 비와 밤의 서늘함을 견딘 뒤에야 연산홍은 비로소 붉은 꽃을 밀어 올린다. 이 짧은 경험은 단순한 화초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작가는 그 장면에서 삶의 오래된 비밀 하나를 배운다. 꽃은 따뜻한 보호 아래 피어나지 않고, 고통과 시련을 견딘 자리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자연을 관찰하는 방식이다. 그는 꽃을 아름다운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꽃의 침묵과 변화, 피지 못함과 다시 피어남을 인간의 삶과 연결한다. 지나친 안락함은 성장의 기회를 빼앗을 수 있고, 비바람은 상처가 아니라 생명을 깨우는 힘일 수 있다. 이 깨달음은 교훈적이지만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실제로 꽃을 기르고, 기다리고, 다시 피어난 장면을 본 사람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마음으로 끓였다_수제비」 역시 생활 속 사물이 어떻게 삶의 지혜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새벽 한 시, 미국에 사는 언니와의 통화에서 시작된 수제비의 기억은 가난했던 시절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밀가루 반죽, 끓는 냄비, 좁은 방, 서로 팔꿈치를 부딪히며 먹던 한 끼. 그때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반대로 지금은 갈비도 먹고 좋은 재료도 넣을 수 있지만, 그때의 맛은 다시 나지 않는다. 작가는 여기서 음식의 맛이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맛은 함께 먹는 사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 부족함 속에서도 나누던 온기에서 온다.
이 작품에서 단순한 음식인 수제비는 가족 공동체의 기억이며, 결핍 속에서도 살아 있던 정서적 풍요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최순옥 수필의 힘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작가는 물질적 풍요와 마음의 허기를 대비시키며, 오늘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넉넉해졌지만 덜 바라보게 된 사람들,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함께 먹는 기쁨을 잃은 시간들, 집은 커졌지만, 마음은 더 쓸쓸해진 삶. 수제비 한 그릇은 그렇게 현대인의 외로움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구름 위에서, 김밥 하나까지」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여행 중 몸이 좋지 않아 먹지 못하고 가방에 넣어 둔 김밥. 작가는 그 김밥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었지만, 여러 순간을 놓치고 만다. 숙소에 도착해 가방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김밥을 보며, 그는 무엇이든 그때 그 순간을 놓치면 쓸모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김밥에서 출발하지만, 곧 삶 전체로 확장된다. 사랑도, 친절도, 웃음도, 다정한 말도 아끼다 보면 때를 놓칠 수 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내 안에서만 머물다 결국 식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순옥 작가는 거창한 깨달음을 찾기 위해 멀리 가지 않는다. 오히려 가까운 것들을 자세히 바라본다. 자세히 바라보는 순간, 생활은 철학이 된다. 「나는 오늘을 다시 읽는다」는 이러한 글쓰기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인생이 사건 자체에서보다는 그 사건을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최순옥 수필의 핵심 태도가 드러난다. 삶은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을 던져 준다. 그러나 그 사건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는 인간에게 남는다. 불행이라 적히려던 문장을 지우고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라고 고쳐 쓰는 일. 바로 그 고쳐 쓰기가 최순옥 수필의 본질이다. 그의 글은 사건을 바꾸지 못한다. 대신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문제 해결의 문학이기보다 삶을 해석하는 문학이다.
이런 점에서 최순옥의 생활 수필은 단순한 경험담과 다르다. 경험담은 있었던 일을 전하는 데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최순옥의 글은 경험을 지나 의미에 이른다. 생활 속에서 얻은 장면을 붙들고, 그 장면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에서 한 문장을 독자에게 건넨다. 그 문장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왜냐하면 그 문장 뒤에는 작가가 실제로 통과한 삶의 시간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3. 늙음과 병, 죽음 앞에서 배운 겸손
『오늘도 삶을 건너는 중이다』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읽어야 할 축은 늙음과 병, 죽음의 문제다. 이 책은 따뜻한 생활 수필집이지만, 마냥 밝고 가볍지만은 않다. 부모의 병, 노년의 몸, 치매, 협심증, 백내장 수술, 죽음의 그림자, 봉사의 현장에서 만난 생의 끝자락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장면들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앞에서 그것들을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에 대한 겸손을 배운다.
「희미한 눈에서 밝은 눈으로」는 몸의 노화를 통해 삶을 다시 바라보는 작품이다. 면허 적성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한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밀검사 끝에 백내장 진단을 받는다. 작가는 자신이 아직 십 년 전과 같은 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몸은 달라져 있었다. 출장뷔페 일을 하며 화물차를 몰아야 하는 그에게 시력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계와 연결된 문제다. 치아 임플란트, 다초점 렌즈, 병원비와 수술비가 이어지며 작가는 나이 든다는 것이 몸이라는 집을 하나씩 수리해 가는 일임을 절감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백내장 수술이라는 의학적 경험이 죽음과 빛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수술실에 들어가 얼굴이 하얀 천으로 덮이고 한쪽 눈만 남겨졌을 때, 작가는 사람이 마지막 길을 떠날 때도 이렇게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하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생각한다. 병을 치료하는 수술은 여기서 두려움을 통과하는 의식이 된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뒤 세상이 다시 들어오는 순간, 그는 시력만 바뀐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조금 바뀌었다고 느낀다. 희미했던 눈은 닫히고 밝은 눈이 열린다. 이 밝음은 몸의 한계를 인정한 뒤에 오는 내면의 밝음이다.
「물이 시간을 씻을 수 있을까」는 이 책에서 가장 깊은 사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목욕 봉사 가는 날, 작가는 그 봉사 활동을 누군가의 삶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길, 한 사람의 시절을 지나 생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길로 받아들인다. 105세 할머니의 몸은 나이의 기록이기보다는 이미 시간 그 자체다. 이불을 걷는 순간 보이는 굳은 다리,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몸, 오랜 기다림과 외로움이 쌓인 피부 앞에서 작가는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 조심스러운 존중을 배운다.
특히 할머니의 몸에서 밀려 나오는 때를 바라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작가는 그것을 더러움으로 보지 않는다. 씻기지 못하고 남아있는 날들의 무게로 본다. 몸에서 떨어지는 때는 할머니가 살아온 시간이라고 느낀다. 이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늙은 몸을 더럽거나 불편한 대상으로 보지 않고, 긴 세월을 견딘 존재의 흔적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작가는 목욕 타월로 문지르다 할머니가 고통을 호소하자 타월을 내려놓고 손으로 천천히 씻긴다. 야윈 몸은 힘보다는 존중으로만 씻겨야 한다는 깨달음의 대목은 이 수필집 전체에서도 특별히 빛나는 문장이다.
최순옥의 노년 인식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는 늙음을 불쌍함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늙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는지,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앞에서 젊은 세대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을 더 갖는 일이기보다는 무엇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관계와 소유와 존재감이 희미해진 뒤에도 기다림은 남는다는 인식은 그의 수필의 문장을 더 깊게 만든다.
이와 결부해서 가족에 관한 글들도 함께 읽어야 한다. 최순옥 수필에서 가족은 늙음과 병, 죽음의 문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따뜻한 이름이지만 동시에 무거운 이름이다. 작가는 가족을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부모의 병수발, 자식에 대한 걱정, 부부 사이의 오해, 형제자매 사이의 책임, 말하지 못한 서운함과 기다림까지 함께 보여준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다」에서 시어머니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고 싶다고도, 곁에 있어 달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괜찮다”라고만 한다. 작가는 그 침묵을 읽는다. 병실의 시간은 누구의 사정도 묻지 않지만, 자식들은 저마다 사업과 직장과 생활의 이유로 분주하다. 며느리인 작가는 여섯 남매에게 문자를 보내고, 어머니가 차마 말하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신 말하기’의 배려다. 어머니가 직접 요구하지 못하는 마음, 자식의 짐이 될까 삼키는 보고 싶다는 말을 작가는 읽어내고 조심스럽게 세상에 내놓는다. 그때 병실은 비로소 체온을 회복한다.
「두 어머니 사이에서 배운 말의 온도」는 말의 조절과 관계의 중재를 보여준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함께 지내는 풍경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도 사소한 서운함이 있다. 작가는 두 어머니 사이에서 해결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먼저 듣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고마운 말을 전한다. 말은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잘 건네면 반창고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옳은 말보다 부드러운 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나이가 들면 마음은 더 쉽게 다치고, 그러므로 말의 온도는 더 중요해진다.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부 관계를 다룬 작품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결핍을 알아보고 그 자존을 세워주는 이야기다. 남편은 학력에 대한 오래된 상처를 지니고 있고, 아내의 말이 조금만 높아져도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작가는 뒤늦게 남편에게 필요한 것이 지적이나 설득이 아니라 인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박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공부를 함께하고,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의 과정을 곁에서 돕는다. 부부는 서로를 완성된 사람들의 만남이기보다는 서로의 부족한 자리를 알아보고 세워주는 관계임을 이 작품은 말해 준다.
「딸의 바다」에서는 가족의 사랑이 기다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딸이 마음의 바다 앞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때, 어머니는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아파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곁에 남아주는 것뿐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다만 무너지지 않게 곁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 말은 최순옥 수필의 가족관을 잘 보여준다. 사랑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일 수는 없다. 그보다는 해결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떠나지 않는 마음이다.
「신선의 봄날」에서는 부모님들을 모시고 온천과 선운사에 다녀오는 평범한 하루가 그려진다. 목욕을 시키고, 점심을 대접하고, 잠시 바람을 쐬는 일. 특별할 것 없는 주말이지만, 작가는 마음속 숙제를 하나 풀어낸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 멀리 가지 않아도, 큰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숨을 고르며 보낸 시간만으로 충분히 신선의 봄날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이 책의 가족을 다룬 수필들이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최순옥의 가족 이야기들은 가족을 미화하지 않는다. 가족은 때로 힘들고, 귀찮고, 버거운 자리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늙음과 병, 죽음 앞에서 마지막까지 서로를 붙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족을 통해 돌봄의 사유를 배운다. 돌봄이란 거창한 희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말을 들어주는 일, 문자를 대신 보내는 일,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 밥을 챙기는 일, 기다리는 일, 상대의 자존을 세워주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다름 아닌 돌봄이다. 이 작은 돌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지탱한다.
4. 책과 여행을 통한 배움의 경험들
최순옥 수필에서 책과 여행은 삶을 확장하는 중요한 통로다. 그러나 이때 책과 여행은 단순한 취미나 여가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고, 여행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마음의 거리다. 작가는 책을 읽으며 자기 삶을 읽고, 낯선 길을 걸으며 익숙한 삶을 새롭게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의 독서와 여행은 모두 배움의 경험이다.
「『모순』을 읽으며 – 선택의 얼굴」에서 작가는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다. 작품 속 인물 안진진이 마주한 가난, 가족, 사랑, 선택의 문제는 작가 자신의 삶으로 흘러들어온다. 안정적인 조건과 진심 어린 마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젊은 날의 기억,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선택 이후 감당해야 했던 책임들이 소설의 질문과 겹쳐진다.
여기서 독서는 작품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독서는 자기 삶의 선택을 다시 읽는 일이다. 작가는 책 속 인물의 질문을 자신의 질문으로 받아들인다. 행복은 안정인가, 자유인가, 사랑인가. 조건이 좋은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인가. 진심을 선택한 뒤 찾아오는 고단함은 실패인가, 아니면 책임을 동반한 사랑의 다른 이름인가. 이처럼 최순옥에게 독서는 외부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일로 오지 않고, 자기 인생의 오래된 장면을 다시 불러내는 일로 온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에서도 같은 태도가 나타난다. 작가는 김호연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사람들이 저마다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육아와 생계, 직장 문제, 꿈의 좌절, 외로움 등 각자의 짐을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불편해 보였던 공간이 누군가에게 쉼터가 되고, 사람들은 진심 어린 말과 행동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이란 불편함 속에서도 길을 걷는 일이며, 그 길 위에서 서로의 짐을 조금씩 나누어 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결론은 책의 주제를 요약하는 동시에 작가 자신의 생활철학과도 연결된다. 최순옥의 수필에서 중요한 것은 늘 ‘짐을 나누어 드는 일’이다. 가족의 짐, 노년의 짐, 병의 짐, 외로움의 짐, 삶의 무게를 혼자 지지 않도록 곁에 서는 일. 독서는 그 마음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여행을 다룬 수필에서도 이러한 배움의 태도는 계속된다. 「만리장성 위에서 부른 이름」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중국 베이징, 자금성, 만리장성, 백두산을 다녀온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떠나려던 여행이었지만, 작가는 지금이 아니면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부모님과 딸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여기서 단순히 관광으로 여겼던 여행은 효도의 시간이며, 세대를 잇는 기억의 자리가 된다.
비행기에 오르며 “내가 하늘을 나는구나”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한마디, 자금성의 붉은 담장 앞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던 모습, 만리장성의 돌계단을 디디던 발걸음, 백두산 천지 앞에서의 침묵은 모두 작가에게 오래 남는다. 이십육 년이 흐른 뒤, 부모님은 치매와 병으로 많은 것을 잊어가지만, 그 여행의 기억은 여전히 미소로 되살아난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여행이 딸에게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함께 여행했던 딸은 이제 어른이 되어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사다 드리고, 할아버지 어깨를 주물러 드린다.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서 가족들 사이에 계속 이어진다.
「수국이 불러낸 하루」는 가족 여행을 통해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바쁘게 사는 동안 가족은 늘 뒤로 밀리기 쉽다. 해야 할 일은 많고, 가족과 시간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아들의 제안으로 수국 축제에 가는 하루가 마련된다. 작가는 그날 “해야 할 일보다 만나야 할 사람이 더 중요한 날”임을 깨닫는다. 수국은 오래 피지 않지만, 그날의 하루는 오래 남는다. 여기서 여행은 가족이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보성, 비우는 법을 배우다」에서 여행은 더욱 내면적인 의미를 갖는다. 보성 여행은 특별한 사건보다 비워낸 마음들이 오래 남는 여행이다. 열화정을 찾아가는 과정, 할머니들의 손에서 느낀 온기, 도서관에서 집어 든 책, 돌아오는 길에 따라붙은 생각들은 모두 작가에게 비움의 철학을 깨우친다. 그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을 채우기보다, 오히려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여행은 낯선 것을 많이 보는 일이 아닌, 익숙한 나의 집착을 조금 비우는 일이 된다.
「성곽을 걷다, 뿌리를 묻다 — 일본 여행기」는 최순옥의 여행 수필 중에서도 역사적 사유가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작가는 일본의 성곽을 걸으며 돌의 높이와 곡선, 방어의 구조 속에서 일본 사회의 조심스러움과 역사적 기억을 읽는다. 구마모토성,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흔적, 일본 속 한반도의 문화적 자취를 되짚으며 그는 여행을 단순한 감상에서 역사 인식으로 확장한다. 돌은 말을 아끼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진 역사는 침묵 속에 남아있다는 작가의 인식은 여행이 역사와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잠베지강 위의 붉은 빛, 마음의 문이 열릴 때」에서는 더 멀리 아프리카의 경험이 등장한다. 낯선 대륙, 붉은 빛, 강 위의 풍경은 작가에게 세상이 여전히 넓고,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감각을 일깨운다. 그는 그 배움을 독자에게 조용히 건넨다. 여행의 끝에서 새로운 첫걸음이 시작된다는 인식은 이 수필집 전체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삶은 완성되지 않은 채 계속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최순옥에게 책과 여행은 서로 닮았다. 책은 앉아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읽는 책이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여행을 통해 자신이 속한 관계와 시간을 다시 본다. 독서와 여행 모두 작가에게 ‘나를 읽는 일’이다. 책 속 인물의 선택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묻고, 여행지의 풍경을 보며 자신의 삶의 속도를 돌아본다. 낯선 곳으로 나아갈수록 가까운 자신이 보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자신의 마음이 더 또렷해진다.
5. 최순옥 수필의 문체
최순옥 수필의 문체는 어렵지 않다. 그의 문장은 현학적이지 않고, 과도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생활어에 가깝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듯 자연스럽다. 이러한 문체는 그의 수필 세계와 잘 어울린다. 그가 다루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가 아닌 실제로 살아낸 하루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문장은 삶의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밥상, 병실, 목욕 봉사 현장, 여행길, 가족의 대화, 가게와 일터의 공기가 문장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
첫째, 최순옥의 문체는 체험 중심적이다. 그는 먼저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새벽 한 시 울리는 전화벨, 거실에 놓인 연산홍, 병실에 누운 어머니의 손, 수술실의 하얀 천, 가방 속에 남은 김밥, 목욕물 위로 떠오르는 때, 수국이 번진 산자락 같은 장면들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독자는 추상적인 주장을 듣기 전에 먼저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구체성은 글의 설득력을 높인다. 작가의 깨달음이 머리로 만들지지 않고, 몸으로 겪은 일에서 나왔음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문체는 고백적이다. 최순옥의 화자는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린 마음, 서운했던 감정, 원망했던 순간, 뒤늦게 깨달은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는 오늘을 다시 읽는다」에서 남편의 사고를 두고 처음에는 원망이 올라왔음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지 않는다. 이 솔직함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다. 독자는 작가를 특별한 성인이나 교훈을 전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나와 비슷하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느낀다.
셋째, 최순옥의 문장은 비유를 통해 생활의 장면을 확장한다. 꽃, 물, 빛, 바람, 바다, 길, 김밥, 수제비 같은 친숙한 이미지들이 그의 수필 곳곳에 놓여 있다. 연산홍은 견딤의 상징이 되고, 수제비는 마음의 온기를 품은 기억이 되며, 김밥은 나눔의 때를 놓친 아쉬움이 된다. 물은 시간을 씻는 듯하지만 끝내 다 씻을 수 없는 생의 무게를 드러내고, 빛은 수술 이후 다시 열린 시야이자 내면의 회복을 상징한다. 이러한 비유들은 어렵지 않다. 독자의 생활 경험과 맞닿아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넷째, 최순옥 수필에는 끝 문장의 힘이 있다. 많은 작품들이 마지막에 짧고 분명한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꽃은 보호 속에서 피는 것이 아니다. 견딘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인생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다.” “야윈 몸은 힘이 아니라 존중으로만 씻겨야 한다.” “멀리 가지 않아도, 큰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숨을 고르며 보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신선의 봄날이 될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은 작품의 경험을 하나의 생활철학으로 압축한다. 독자는 작품을 다 읽은 뒤 그 문장을 마음에 남긴다.
다만 이 문체적 특징은 장점인 동시에 일정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최순옥의 글은 때로 깨달음을 매우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독자에게 여운을 맡기기보다, 작가가 얻은 결론을 또렷하게 말해주는 방식이다. 문학적으로 더 세련된 함축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이 점이 다소 직접적인 설명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수필집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직접성은 단점으로만 볼 수 없다. 최순옥의 글은 모호한 미학을 겨냥하기보다, 살아가며 얻은 지혜를 독자와 나누는 데 무게를 둔다. 그는 어렵게 돌려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분명하게 건넨다. 이 솔직한 전달력이야말로 그의 수필이 가진 생활의 힘이다.
또한, 그의 문체에는 말의 온도가 있다. 가족을 다룬 작품들에서 특히 그렇다. 그는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읽으려 한다. 시어머니의 침묵, 남편의 자존심, 딸의 불안,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사이의 서운함, 조카의 기억 속 배고픔을 그는 모두 조심스럽게 만진다. 이때 문장은 날카롭기보다 따뜻하고, 단정하기보다 다독인다. 그 다독임이 과잉 감상으로 흐르지 않는 것은, 그 바탕에 실제 생활의 고단함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하는 따뜻함에는 힘든 시간을 통과한 뒤에도 사람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들어 있다. 그것은 결코 안이하게 도달한 낙관주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최순옥의 문체를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의 문장을 지혜의 문장으로 바꾸는 문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특별한 언어 실험을 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한 말들을 오래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로 다시 내어놓는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독자는 그 평범한 문장 속에서 자기 삶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최순옥 수필 문체의 가장 큰 미덕이다.
6. 맺으며 : 오늘을 다시 읽는 사람에게
『오늘도 삶을 건너는 중이다』는 삶의 정답을 제시하는 자기개발서 같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정답 없이 흔들리는 삶을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작가는 삶이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몸은 늙고, 가족의 걱정은 끝나지 않으며, 일은 예측할 수 없고, 사람 사이의 마음은 자주 어긋난다. 그러나 그는 그 흔들림을 실패로만 부르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수필집의 제목이 말하듯, 우리는 모두 삶을 건너는 중이다. 누군가는 병실을 건너고, 누군가는 가족의 긴 시간을 건너고, 누군가는 외로움과 기다림을 건너며, 누군가는 자기 안의 두려움을 건넌다. 최순옥의 수필은 그 건넘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삶은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러나 다시 읽을 수는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상처로만 보였던 시간이 훗날 씨앗이었음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불행이라 여겼던 사건이 다른 방향의 빛을 열어 줄 수도 있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이 책의 아름다움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작고 낮은 데 있다. 꽃이 피지 않는 이유를 오래 바라보는 눈, 수제비 한 그릇에서 가족의 온기를 떠올리는 마음, 병든 어머니의 침묵을 대신 읽어주는 귀, 늙은 몸을 힘이 아니라 존중으로 씻겨야 한다는 손, 책 속 인물의 질문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오는 태도, 여행지의 풍경보다 그 풍경 뒤에 남은 생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같은 작은 깨달음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최순옥의 수필은 독자에게 특별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삶을 다시 돌아보라고 권한다. 오늘 만난 사람, 오늘 먹은 밥, 오늘 건넨 말, 오늘 놓친 친절, 오늘 미뤄둔 사랑, 오늘 견딘 몸의 통증, 오늘 바라본 꽃과 하늘 속에 이미 삶의 문장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일상은 지루한 상투성을 벗어나 삶의 의미가 된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인생을 정답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남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비교,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았지만, 글을 쓰며 인생은 잘 푸는 문제가 아니라 계속 해석해 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 말은 이 수필집 전체를 닫는 동시에 다시 여는 문장이다. 삶은 끝내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해석할 수 있다. 다시 읽을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다.
오늘도 우리는 삶을 건너고 있다. 어떤 날은 발밑의 물살이 거세고, 어떤 날은 건너야 할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건너야 한다. 그 길에 최순옥의 이 수필집을 만났다는 사실은 큰 행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