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뷔일란트는 남독 비버랏하 부근의 '오버홀츠하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건한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처음에는 종교적인 작품을 썼으나 슈타디온 백작과 교류하면서 그의 계몽주의적 교양에 영향을 받아 사상적 경향이 변하게 되어 진정한 로코코 문학의 대표자가 되었다.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비판은 크리스토푸 마틴 뷔일란트(1733-1813) 의 소설 『압데라 사람들 이야기』의 제 4권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자기만족과 거만성, 독일인의 속물적인 얼치기 교양을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 시에 빗대어 예리하게 풍자하면서 이러한 속물 근성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작가가 살았던 계몽주의 시대(1720-1785) 는 범유럽적 정신사의 한 시기로서 비판적인 인간의 이성과 사유의 힘으로 근대적인 문화와 사회질서를 수립하려는 합리주의 적인 정신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중세 봉건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러한 이성에 토대로 한 합리주의적 사상이 개별적인 학자들의 인식과 체험으로부터 시민계급 공동의 세계관이자 그들의 집단적인 생활 태도로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 줄거리
당나귀가 군중들로부터 수천 조각으로 찢어짐으로 끝이 나는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은 치과의사인 '슈트루치온' 이 왕진을 가면서 당나귀를 빌렸다. 무더운 유월 아침부터 이웃마을까지 가는 거리에서 당나귀의 그림자 아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는데 당나귀 주인은 당나귀는 빌려줬지만 당나귀 그림자는 빌려주지 않았으니 돈을 더 내라는 요청을 한다.
치과의사는 이 요청이 합법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가 당나귀를 빌렸을 경우에 그림자도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나귀 주인은 당나귀와 당나귀 그림자는 엄연히 다른 것이니 당나귀 그림자의 사용료도 주어야 한다고 항변한다.
이 사건은 시 재판관 '필리피데스' 에게 맡겨져 서로 화해를 하라는 권유를 하였지만 거절한다. 그러자 그들의 항변을 듣고 있던 압데라에서 가장 유명한 두 변호사들이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되어 사건화 되고 더욱 커지게 되어 온 압데라가 술렁거리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정치가들은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경제인들은 자기들이 속한 조합이 유리하도록 이 사건을 이용하고, 종교인들 역시 이 사건을 이용하여 사리사욕, 당리당락에 이 사건을 이용하였다. 여론은 여론대로 조작하여 여론을 이용한 정치는 이 문제로 인하여 술렁거리게 되었고 결국 국가의 입법회의까지 열리게 되어 이 백인의 의원이 참가하는 입법회의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두 유명한 변호인이 치과의사의 편에서 변호를 하고, 당나귀 주인의 입장에서 변호를 해도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그 변호를 듣고 의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공화국의 시립 마구간에서 관리하고 있던 관리 책임자에게 묘안이 떠올라 당나귀에게 공작의 깃털로 장식을 한 다음 재판정으로 끌고 가자 성난 군중들이 당나귀를 이 당나귀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며 군중들이 달려들어 당나귀를 작살?(과한 표현이가요?) 내는 장면으로 끝이 나며 다행히 국가의 위기 상황이 될 뻔하였던 문제가 수습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3. 교 훈
작가는 독자에게 인간의 행동과 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압데라는 그저 '상징적 세계' 가 아니라 역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는 모델이며 압데라에서 벌어지는 바보들의 이야기가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로 바뀌게 되며 압데라의 비판은 독자의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을 자극하게 되는 동기를 유발한다.
현시대에서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 양보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중에 큰 사회문제가 되어버리는 것들.
2) 정치가 이러한 것을 가지고 이용하고
3) 각 언론사가 국민의 귀와 눈을 가리는 일을 하여
4) 압데라의 국민이 분명한 색깔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국민들도 분명한 색깔을 주장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에 의해 영호남이 갈라져서 서로 헐뜯는 모양과 흡사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