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서 머물다 날아오르는 새. 추운 곳, 더 추운 곳을 찾아 따뜻한 곳을 등지고 날아가는 철새의 날개 끝에서 아침 햇살이 퍼득인다. 새의 날개 끝에서 부서진 햇살은 풀잎 위에서 다시 반짝인다. 풀잎 위에서 반짝이다 미끄러진 햇살은 풀뿌리 속으로 스며든다. 풀 뿌리들의 방이 환해진다. 그 환한 방을 하나씩 가진 풀뿌리들이 밀어올리는 꽃송이마다 애 절한 향기가 스며 있다. 어디로 갈까? 나에게 애절한 풀뿌리들의 향기를 전하고 날아간 새 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마음이 비무장지대에 머무는 동안 5월은 연두에서 초록이 되었다. 낯선 곳에서 와서 낯선 곳으로 날아갈 새들이 내 곁에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잊고 그들의 애환을 바라보았 다. 오대양 육대주 드넓은 지구 위에서 분단국가의 비무장지대를 찾아 둥지를 트는 새들의 감각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삶터를 고르는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 철조망과 철조망 사이에 더없이 아늑한 평화가 있었다. 그들은 그 평화의 향기를 맡고 찾아왔던 것이다. 포소 리와 포소리 사이에 깃드는 평화.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모래성 같은 것. 그러나 그 평화 의 모래성은 반세기를 다져져서 화석의 길을 향해 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비무장지대를 점점 더 넓혀가야 한다고. '무기여 잘 있거라'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 정말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원한다면 비무장지대로 들어와서 살게 하자고. 남쪽에서건 북쪽에서건 비무장지대로 옮겨온 사람이 비무장지대 밖에서 차지했던 공간만큼 씩 비무장지대의 철조망을 후퇴시켜 주자고. 비무장지대로 들어온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비무장지대는 넓어지고,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철조망은 점점 뒷걸음질쳐서, 결국은 압 록강과 두만강, 마라도와 독도 밖으로 밀려나서 사라지게 될 것 아니겠는가.
한반도 전체에 딸린 섬 모두가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와서, 언제 우리가 반목했던가, 그 반목의 시절은 얼마나 아프고 덧없었던가 후회하며 껴안고 살지 않겠는가? 애기똥풀꽃과 현호색이 한데 어울려 피고, 광대수염과 홀아비꽃대가 중간지대에서 만나 그 산등성이는 어 땠는가, 그 들판은 어땠는가 주고 받는 소리를 앞당겨 들으며 삼재령을 등진다.
오늘은 무척 더울 모양이다. 태양은 떠오르자마자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있다. 나는 더워 지기 전에 좀더 걸어 두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태양은 전후좌우를 검색하며 눈을 감 기고 길은 S자로 요동친다. 길이 요동치는 곳에선 내 숨결도 요동친다. 나는 비무장지대의 새들처럼 비무장이다. 나는 길이 생긴대로 따라 오르며 전후좌우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태양 이여! 나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았다. 자연이여! 나는 무기를 사랑하지 않는다.
오가덕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섶에도 많은 풀이 자란다. 풀씨들은 빈 땅을 향해 돌진 하는 버릇이 있다. 한꺼번에 몰려들어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습성도 이 풀들에 게서 배운 것일 게다. 네 구역 내 땅 따지지 않고 어울려서 사는 풀밭에 발목까지 잠그고 서서 향로봉 줄기를 건너다보며 물 한 모금 마신다. 내 몸속에 강을 만들며 흐르는 평화 한 줄기. 내 앞의 산, 건너편 산, 바람이 불 때마다 손을 흔드는 나무들에게로 전한다.
삼재령에서 무산에 이르는 분수령길은 그늘 한 점 없는 날등길이다. 식민지 시절의 아 궁이들과 전쟁의 불길이 이 땅의 나무들을 재가 되게 했다. 큰 나무 없는 산길에는 그늘도 없다. 칡덩쿨과 찔레덤불은 이런 곳을 더 좋아한다. 사방으로 팔을 뻗은 칡순들은 통통하고, 찔레덤불에는 하얀 꽃이 피었다. 하얀 찔레꽃 사이에 돋은 파릇한 새순. 한 줄기 분질러 가 시돋친 껍질을 벗기고 씹어본다. 까마득히 잊고 있던 옛날의 향기가 혓바닥에서 되살아난다.
오가덕산은 태백산이나 상원산처럼 두툼하다. 그런데 오가덕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덕'은 언덕 또는 산을 의미하는 글자니 오가덕은 언덕처럼 생긴 산이라는 뜻인가 보다. 무 산은 더하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 저 날카로운 암봉들을 열두폭 치맛폭에 다 그러안을 듯이 살찐 언덕을 벌려놓았다. 무산은 한자로 '巫山'이라고 쓰지만, 무당의 징소리도 푸닥거리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목마름과 허기가 발목을 잡고 쉬어가라 한다.
정상 동쪽 비탈에 배낭 내려놓고 쉴만한 바위가 한 덩이 있다. 신갈나무 가지가 팔을 뻗어 햇볕을 가려준다. 바위는 알맞게 데워져 있다. 오가덕산 오르다 뜯은 취나물이 한 주먹 이다. 5월 산행에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 다니는 쌈장이 있다. 손바닥 위에 나물 얹고 나물 위에 찬밥 얹고 찬밥 위에 쌈장 얹어 입으로 가져온다. 입안 가득 퍼지는 산나물 향기! 아 아 이 땅이 기른 취나물 향기는 남북이 다르지 않구나.
큰골 상류에 작은 샘이 있었다. 그 샘물까지 마시고 나니 잠깐이라도 눕고 싶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푸른 하늘 가운데 눈부신 태양이 박혀있다. 그 햇빛 하 도 강렬해서 눈이 절로 감긴다. 감은 눈속으로 내 어릴 적 가난한 불빛들이 모두 돌아온다. 30촉 알전구 불빛도 방과 방 사이에 구멍을 뚫어 나누어 쓰던 시절. 안방과 부엌 사이에 작 은 유리를 붙여놓고 유리에다 전등을 바짝 붙여놓고 그 불빛으로 설거지도 하고 책도 읽었 었지. 그 흐린 전등들도 자정이 되기 전에 꺼져 버렸지. 그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로 가면 등잔불이 잡아먹는 기름도 아끼려고 초저녁부터 잠들고, 아이를 많이 낳은 어머니들은 어버 이날마다 훌륭한 어머니 칭호를 받고 상을 탔었지.
나는 소설책 한 권이라도 더 읽으려고 토막초가 보이는대로 줏어모으곤 했지. 내 앞 머 리카락은 늘 촛불에 타고 그을려서 오글오글 했었지. 그래, 그 날, 무쇠솥에 고구마를 잔뜩 앉히고 아궁이에 서속단을 밀어넣던 날, 하마터면 우리 집을 몽땅 태울 뻔했지. 내가 소설에 빠져 불길을 돌보지 않는 사이에 아궁이 안의 불길이 점점 밖으로 나와서 여벌로 쌓아둔 짚 단에 옮겨붙었던 거야. 눈앞의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야 나는 초가지 붕을 삼킬 듯이 치솟는 불길을 발견했다. 우물물을 길어다 지붕 위로 던졌지만 물은 내 머 리 위로 더 많이 쏟아졌다. 마침내 불길이 잡혔을 때 처마는 시커멓게 그을리고 부뚜막과 아궁이 앞은 물투성이 재투성이가 되고 저녁과 간식으로 먹을 고구마는 설익었지만, 내 어 머니는 "이기 무신 일이고?"하시고는 함석지붕으로 바꾸셨다.
어머니 가슴에 솟은 두 개의 젖무덤같은 998m봉과 907m봉이 먼 바다를 가리고 솟아 있다. 두 개의 젖무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엔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아아 나에게 생명을 준 바다. 내가 그리도 찾으며 울었다는 젖비린내 같은 것. 나는 그 바닷가를 33년 전에 떠났 다. 내가 떠난 남쪽 바닷가엔 내 어머니가 혼자 계신다. 백두산보다 나를 더 그리워하실 어 머니. 너무나 멀리 와서야 나는 비로소 실향과 이산의 아픔에 눈을 뜨고 있다.
새덕현에서 우현에 이르는 능선은 고도도 낮고 무수한 지능선들이 가지를 치는 구간이 어서 11km를 걷는데 4시간 반이 더 걸렸다. 고성군과 금강군을 연결하는 소로들도 이 구간 에 모여있다. 조금 가면 길, 조금 더 가면 길, 이런 식이다. 그러나 이 구간의 소로들. 산 너 머 남쪽 마을과 산 너머 북쪽 마을을 잇는 산길들이 사람 사는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를 다 시 보게 한다.
'산 너머 남촌엔 누가 사나 아침이면 흰구름 뭉게 뭉게 피어오고 저녁이면 까마귀 까옥 까옥 날아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이에 1,147m봉 쪽으로 내처가고 있었다. 그토록 다짐 을 했건만, 마음이 한눈을 팔면 이제나 저제나 틈을 노리던 다른 길이 슬그머니 발밑으로 끼어드는 것이다.
우현 서쪽에는 답석동 백적동 발이동 상순갑리 등이 소양강 줄기를 따라가며 오손도손 삶터를 열어 놓고 있지만, 길 안의 사람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아침에 나를 그토록 검색 하던 태양은 서쪽 산등성이 저쪽에 꿀단지라도 맡겨둔 것처럼 부지런히 바퀴를 굴려간다. 나도 그 태양 등지고 부지런히 걷는다. 갈수록 길어지는 내 그림자 밟으며, 내친 김에 외무 재령까지 가서 북극성을 만나려고 한다.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물며 밤길 가는 사람들에게 가 야할 방향을 가리켜주는 등대같은 별. 그 별이 뜰 때까지는 3시간이 남았다.
우현에서 국사봉을 지나 호룡봉을 향해가는 능선 주위에는 활엽수들이 무성하다. 동쪽 기슭에는 굵은 소나무들도 드문드문 섞여있다. 반가운 소나무들. 맛배지붕의 용마루처럼 우 뚝한 능선길을 따라 백두대간은 계속 북진한다. 백두대간도 비로소 길다운 길로 들어온 것 같다.
분단의 고통도 비무장지대의 애절함도 먼 마을의 저녁 짓는 연기도 보이지 않는 길. 그 러나 두고 온 것들 뒤에 남은 것들이 나를 부른다. 모든 강은 산에서 시작되지만 모든 사랑 은 사람 사는 마을로부터 싹트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속 거대한 자연 속으로 들어와서야 나는 비로소 가장 평범한 사랑과 진실에 눈뜨고 있다.
가상 코스가이드 삼재령∼무산∼외무재령 [지도보기1] [지도보기 2]
삼재령(556m)-4.6km-오가덕산(951m)-3.9km-무산(1,320m)-2.1km-새덕현(,1057m)-6.5k m-우현(1,039m)-2.4km-국사봉(1,385m)-3.8km-호룡봉(1,403m)-1.2km-외무재령(1,197m)[총 28.6km]
이 구간부터는 현재 북한의 영토로, 강원도 금강군과 고성군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다. 금강군은 1952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양군, 인제군, 양구군 등의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새로 만든 군으로 1개 읍(금강읍)과 25개 리(신원, 속사, 화천, 곡산, 신읍리 등)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은 이 구간의 백두대간 능선을 '백두산줄기'로 부른다.
이 구간의 서쪽 기슭으로 흘러내린 물은 대부분 소양강으로 들어가고, 동쪽 기슭으로 흘러내린 물은 남강이 되어 동해로 빠진다. 강원도 고성군은 남북으로 양분되었으나 남북한 이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 구간은 우현에서 끊어타는 게 좋다. 802m봉에서 오가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중간 왼쪽에(큰골 상단) 샘이 있을 것이다. 갈수기에 마를 수도 있으나, 무산 정상까지는 이 샘 뿐이다.
①삼재령에서 802m봉까지는 2km 정도로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대간 능선을 따라 소 로가 나 있으나, 지도 위의 길은 현장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가 많으므로 지형도와 지형을 확인하며 대간 마루금을 놓치지 않아야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다. 특히 오가덕산쪽에서 내려올 경우, 802m봉 정상에서 동릉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
②802m봉에서 오가덕산까지는 주능선만 따르면 된다. 오가덕산 주위에는 많은 길이 얽 혀 있고 ④지점인 새덕현까지 동쪽 산비탈을 돌아가는 임도가 연결되고 있으므로 주능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것. ③은 무산이다. 무산은 태백산이나 가리왕산처럼 두툼한 육산이다. 동쪽보다 서쪽이 더 두텁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남tj쪽이 트인 편이다.
무산은 산경표에는 이름이 나와있지 않으나 지금의 무산이 산경표상의 회전령(檜田嶺) 이었을 거다. 꼭 정상이 아니더라도 ④지점의 새덕현이나 남강과 소양강이 머리를 맞대는 ⓗ지점일 수도 있다. 현재 회전령이란 이름은 무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 에서 찾을 수 있으나, 소양강과 임진강의 지류가 어지럽게 얽히는 낮은 곳에 그렇게 중요한 지명을 붙였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지점에 오면 능선이 둘로 갈린다. 1,175m봉쪽으로 뻗는 북동d능선을 타지 말고 ⓖ지 점을 향해 고도가 낮아지는 북서쪽 능선으로 들어서야 한다. ⓘ지점에서는 북동진해야 한다. 애석산쪽으로 빠지는 남릉을 타지 않도록. ⑤는 1,157m봉이다. 정상에 삼각점이 있고, 고도 를 낮추면서 북서진하다가 ⑥우현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우현에는 동서를 연결하는 임도가 가로지르고 있다. 우현에서 동쪽으로 1km 남짓 떨어 진 우묵이에는 진나무정이라는 마을이 있고, 서쪽으로는 답석동 발이동 백적동 등의 마을이 이어진다. ⑥우현에서 국사봉과 ⑧호룡봉을 거쳐 ⑨외무재령에 이르는 능선에서는 남강 줄 기와 동해를 조망할 수 있다.
⑦국사봉에서 북쪽으로 1km 되는 지점에도 임도가 지나간다. ⑧호룡봉에서 외무재령으 로 내려설 때는 속도를 늦추고 1,114.5m봉쪽으로 내려서는 서릉을 타지 않도록 한다. ⑨외 무재령에는 금강군 자양리와 고성군 원앙동을 연결하는 소로가 지나간다. ⓐ ⓑ ⓒ ⓓ지점 들은 역코스를 택할 때 잘못 들어서기 좋은 지점들이다. ⓔ ⓕ ⓖ ⓘ ⓛ지점들에서는 지능 을 타지 않도록. ⓙ ⓚ ⓜ ⓝ ⓞ지점들은 내리막길로 들어서며 가속이 붙었을 경우 엉뚱한 곳으로 들어설 확률이 높은 지점이다.
이 구간의 최고봉은 호룡봉(1,403m), 가장 낮은 고개는 삼재령(556m)이다. 휴전선을 중 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4km는 현재 비무장지대에 속한다(1:50000 북한 지형도, 속사동리/고 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