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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뱀을 죽였던 방식으로 이 영험한 놈을 잡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배낭과 카메라를 등로에 나두고 왔기 때문에, 이 괴이한 현장을 사진에 담을 수도 없다. 그냥 그렇게 지금까지 자연 속에 살아 왔던 것처럼 이 자연 속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백사를 발견한 장소가 어디인지는 말할 수 없다. 혹시 이 글이 정보가 되어 기름기 번지르한 탐욕스런 인간을 그곳으로 달려가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보았던 것이 진짜 백사가 아닐 수도 있다.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하얗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과연 내가 백사를 보았는지 점점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 영물(靈物)이 나 같은 속물(俗物)에게도 나타날 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 뱀을 다치지 않게 고이 보내줬기 때문에 앞으로 가야하는 정맥길에 그 일로 인하여 내 스스로 불길하거나 찜찜한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강정골재-마이산-성수산-팔공산-신무산-백운산-장안산-영취산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52.4km(5/20 29.1km, 5/22 23.3km, 서비스 1.7km 포함)
- 산행일시 : 5/20(토) 04:40~22:10(17시간 30분), 5/21(일) 04:40~17:10(12시간 30분)
- 산행구간 : 5/20(토) 강정골재(04:40)-봉두봉(06:10)-마이산 탑사(06:30)-수마이봉 들머리(07:30)-은천이재(08:10)-가름이재(08:50)-옥산고개(09:30)-709.8봉(10:04)-식사(10:10~10:50)-성수산(12:23)-신광재(13:22)-취침&식사(15:00~16:00)-961봉(16:43)-삿갓봉(17:00)-오계재(17:25)-데미샘분기점(18:05)-데미샘(18:25)-데미샘분기점(18:55)-서구이재(19:25)-팔공사(20:35)-합미성(21:28)-차고개(22:10)
5/21(일) 차고개(04:40)-신무산(05:30)-수분령(06:30)-대기&식사후 출발(08:20)-886봉(09:50)-사두봉(10:30)-밀목재(11:20)-식사(12:35~13:06)-백운산(13:40)-장안산(15:26)-샘터(15:55)-무령공재(16:30)-영취산(16:48)-무령공재(17:10)
- 소요비용 : 46,500원(안양-전주 12,700원, 전주-진안 3,300원, 수분재 식사와 식수 7,200원, 장수-대전 8,200원, 대전-안양 9,100원, 저녁식사 6,000원)
★ 산행기
<<산행 첫날>>
이제 남은 50여킬로미터의 금호남정맥을 완주하기 위하여 65리터 배낭에 이것 저것 채워 본다. 비박텐트에 매트와 판쵸우위(비가 오지 않더라도 이불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충분한 여벌의 옷과 양말, 네끼의 식사에 3리터 하이드로백에 물을 가득 채우니 그 큼직한 배낭이 이내 꽉 찬다.
최대한 배낭 무게를 줄이려고 해봐도 17kg을 넘기고 말았다. 5월 19일 바로 퇴근하여 배낭을 짊어지고 호계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지막 전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전주에 도착하니 마지막 진안행 버스는 다행히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지난번 식사했던 진안의 그 식당 앞에서 하차하여 혼자서 강정골재까지 올라가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마이종합학습장 위의 정자를 야영장소로 봐두었지만 생각과 달리 표고버섯밭의 미로같은 길을 통과하여 찾아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지나친 길도 헛갈리니 어이가 없다. 어렵사리 정자에 도착했지만 야영장소는 비 때문에 바닥이 질퍽한 상태였다.
애써 올라온 보람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이를 대신할 다른 장소를 찾을 수도 없다. 물이 덜 고여있는 곳에 매트를 깔고 잠을 청했지만 시외버스 안에서 잠깐이나마 잠이 들어서 그런지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좁은 텐트안에 꽉 들어찬 습기는 물방울이 되어 여기저기 뚝뚝 떨어진다.
5월 20일 새벽 3시, 눈을 뜨며 번데기 모양의 비박텐트 쟈크를 열어 랜턴을 켜자 뿌연운무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배낭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아침식사를 미리 해 본다. 강정골재에 다시 내려선 시각이 04시 40분, 마이산 봉두봉 들머리를 찾아 절개지를 올라가는 내 모습이 이상한지 지나가던 경찰 순찰차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30년전 같았으면 거동수상자로 바로 경찰에 연행되어 신원조사를 했을 것이다.
삿갓봉을 지나자 여기저기 산줄기가 운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운무의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의 형상이다. 마이산은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이에 있다.
06시 10분 봉두봉에 도착하여 탑사방향으로 향하자 암마이봉으로 올라 갈 수 있는 등로는 폐쇄되어 올라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산행금지 표시를 무시하고 암마이봉 정상으로 오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냥 탑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06시 30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사는 강아지 한 마리가 정적을 깬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지 쵸코렛 하나를 던져주자 이내 잠잠해진다.
이갑용처사가 쌓았다는 돌탑을 두루두루 살펴본 후 다시 은수사로 가서 부처님전에 합장배례하여 화엄굴을 갔다오기로 하였다. 혹시 암미봉을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파르게 화엄굴까지 올라갔지만 특별히 볼만한 곳은 아니었다. 더욱이 암마이봉도 등로를 막고 있어 역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다시 내려서서 은수사 대웅전을 가로 질러 섬진강 발원지라고 적혀있는 샘터를 통과하여 공사 중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밧줄을 넘어서자 표시기가 나타났다. 가장 왼쪽 길을 따라 붙어 수마이봉에 인접하여 가파르게 올라가 본다.
<가운데 운무속에 탑사가 있음>
<탑사의 샘터>
<은수사>
<화엄굴>
07시 30분, 수마이봉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자 이내 30번 국도인 은천이재에 도착한다(08:10). 헌등산화가 방수가 안되어 트렉스타 등산화를 새로 샀건만 아침 풀섶에 맺힌 이슬이 신발에 스치자 물에 잠긴 것처럼 질퍽거린다. 도대체 고어텍스 등산화를 이 따위로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도로변에 앉아 양말의 물기를 짜내자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내일까지 산행해야 하는데, 발 때문에 걱정이 된다. 별 수 없이 발가락에 바세린을 잔뜩 바르고 풀었던 스패치를 다시 착용했다.
08시 50분 가름이재를 지나 09시 30분 430고지의 옥산고개에 도착한다. 10시 4분, 709.8봉에 오르자 계속하여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한다. 10시 10분, 지천에 널려있는 취나물(참취)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한다. 준비한 오가피주를 반주삼아 혼자만의 넉넉한 성찬을 즐겨본다.
10시 50분, 행장을 추슬러 성수산을 향한다. 775고지, 910고지, 1008고지 그리고 성수산까지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고 금호남은 영취산에 가까울 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마치 파도가 해변에 가까울 수록 파고가 높아지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12시 23분 성수산(聖壽山, 1059.2m)에 도착한다. 박무 때문에 내가 왔고, 앞으로 가야할 능선 마루금이 뚜렷하지는 않다. 밧줄에 의지하여 내려서자 부부등산객과 조우하게 된다. 성급하게도 홀대모 회원인 것으로 착각하여 필명이 어떻게 되느냐가 물어봤지만, 홀대모 회원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부러웠다.
<더덕밭>
13시 22분, 신광재에 내려서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간 후 농로를 따라 올라서자 커다란 소나무에 표시기가 걸려있고 평상이 놓여 있었다. 평상위에 행장을 부려 축축한 양말을 벗고 솔솔 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그 자리에 누웠다.
계속하여 된비알의 밭을 지나 억새숲을 오르자 14시 50분 1130고지에 이르게 된다. 15시 정각 홍두괘치로 내려선 후 다시 된비알의 마루금을 오르려고 하니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해서인지 밀려오는 잠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낙엽위에 드러 눕는다. 한시간쯤 비몽사몽 오수를 즐긴 것 같기는 하다.
17시 정각 1134고지의 삿갓봉을 지나 17시 25분 오계치에 도착한다. 석양을 준비하는지 이제 태양은 서쪽으로 떨어 질려고 한다. 1100고지에 이르자 3리터의 물이 완전하게 바닥이 났다. 다행인 것은 인근에 데미샘이 있었다. 18시 05분 데미샘 분기점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려 놓고 하이드로백과 카메라만 들고서 670미터 떨어진 데미샘까지 가파르게 내려서서 물을 길어 오기로 하였다.
멀리서도 데미샘은 그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릴 정도로 섬진강으로 힘차게 흘려 내보내고 있었다. 마이산 탑사와 은수사의 약수터도 섬진강 발원지라 하지만 이곳이 원래의 섬진강 발원지이다. 웃통을 벗어 머리를 감고 등목도 해본다.
19시 25분 서구이치(이정표에는 서구리재로 됨)에 도착하자 터널 아래 도로로 내려 가도록 되어 있었지만 터널위로 건너가는 것이 훨씬 편하였다. 근처에 개 농장이 있는지 터널 위로 오르는 나를 보고 끊임없이 짖어댄다.
팔공산에 이르는 등로가 부드럽고 편하다. 그냥 여기서 텐트를 깔고 야영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20시가 되자 어두워지며 랜턴불에 의지하여 진행할 수밖에 없다. 20시 30분, 팔공산에 못미쳐 헬기장에 이르자 팔공산의 거대한 통신탑의 위용과 함께 불빛이 주변을 대낮처럼 비추고 있다.
08시 35분, 팔공산(八公山, 1136m)에 도착하였다. 내려서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올라 앉아 장수의 야경을 감상해 보기도 한다. 21시 28분 합미성에 도착하자 차고개로 내려서는 길이 분명치 않다. 돌무더기를 밟고 올라 남동쪽 방향으로 걸려 있는 표시기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억새와 잡목이 무성하다. 임도에 내려서서 잠시 방향을 못 잡아 나침반을 보며 정치하여 남향으로 내려서자 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동쪽으로 방향으로 틀자 이내 차고개에 이른다.
몸을 씻을 만한 장소는 있는지 정자나 원두막 또는 폐가가 있는지를 살펴봤지만 전혀 없다.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물로 발이라도 씻기로 했다. 주인 잘못 만나 호되게 고생하는데, 그 정도의 배려는 해 줘야 할 것 같다.
대성고원(大成高原)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의 벚나무 밑에 매트를 깔고 텐트를 설치하였다. 남아있는 밥을 모두 치우고 혼자서 오가피주를 기울이며 나만의 호젓한 기분을 만끽해본다. 여벌의 옷을 모두 입고 텐트안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산행 둘째날>>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 놨지만 몸을 씻지 않아서인지 30분 일찍 잠에서 깬다. 대강 군밤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행장을 추슬르니 어제와 같은 4시 40분이 되었다.
랜턴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변의 식별이 가능하다. 엉터리 신발 때문에 스패치를 했지만 신발위에 이슬이라도 떨어질라치면 바로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10만원이 넘는 신발이 저자거리에서 파는 1만원짜리 가치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슴프레 여명이 비추는 된비알의 등로를 올라가는데, 더덕 냄새가 난다. 주변을 휘 둘러보자 아니나 다를까 소담하게 뻗어올린 더덕이 보인다. 스틱을 이용하여 주변의 흙을 파자 최소한 10년근이 넘는 더덕이 만져진다.
그 진한 향기가 좋아 배낭에 더덕 넝쿨을 걸치고 터벅거리며 신무산을 올라가는데, 반대방향에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침부터 수확이 좋으십니다.” “더덕이 그렇게 생겼습니까?” 이제 겨우 한뿌리 캐었을 뿐인데...
05시 30분, 신무산(神舞山, 896.8m)에 도착하여 바위위에 걸터앉아 일출을 감상한다. 박무 때문에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제 모습을 찾아간다. 내려가던 등산객 중 한명이 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그러면서 이제 그만 갑시다고 하는 것이 나를 자기들 일행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저 혼자 반대방향으로 간다고 하자 그제서야 그러냐고 하며 부리나케 일행을 따라간다.
임도를 몇 번 만나지만, 벌목된 나무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가운데 길을 바로 내려가자 밭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우회하자 이정표가 나오며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순간 왜 갑자기 이곳에 물이 있어야 하는 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분명히 제대로 왔는데, 물이 건너야 하다니 이게 뜬봉샘이란 말인가?
06시 30분, 수분재로 내려서자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의 표시석과 함께, 물을 가르는 수분송도 있다. 아직 식당이 문을 열려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지만 뜬봉샘은 찾을 수가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도 뜬봉샘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수분재를 넘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어(약수터 가든까지 가봤지만) 일단 수분령 정자에 누워 07시 30분까지 눈이라도 붙여보기로 하였다.
요란한 음악소리에 잠이 깨어 휴게소에 가보니 휴게소에는 라면은 끓여주지만 식사는 안된다고 한다. 그 시간까지도 뜬봉샘기사식당은 감감 무소식이다. 식당에다 전화를 했지만 사람이 없는지 받지도 않는다.
10분간을 더 기다려봐도 식당의 문을 열지 않자 할 수 없이 휴게소에서 라면과 공기밥 두 개를 부탁하여 하나는 아침으로 대체했지만 다른 하나는 점심식사로 할 요량으로 배낭에 쌌다.
뜬봉샘이 어디 있는지를 물으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15분정도 더 가야 한다고 한다. 혹시나 했던 그곳이 뜬봉샘이 흘러내리는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식수 2리터를 구입하여 하이드로백에 채우자 또 배낭이 어깨를 짓누른다.
<금강의 발원지인 뜸봉샘에서 흘러내리는 물>
08시 20분, 수분재에서 왼쪽으로 더 진행하여 과수원으로 올라가는 시멘트도로를 한참 오르자 표시기가 보이며 680봉으로 향하는 마루금이 나타난다.
라면을 먹어서 그런지 속도 불편하고 계속하여 물이 캥긴다. 680봉을 지나 당재에 이르자 그때까지 하고 있었던 스패치를 푼다. 바구니봉재를 지나 09시 50분 19번 국도와 함께 북쪽으로 향하던 마루금은 동쪽으로 급하게 꺾인다. 소사두봉 봉수대를 지나자 바로 10시 30분 사두봉(蛇頭峰, 1014.8m)에 이른다. 산세가 뱀의 머리처럼 생겨서 사두봉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뱀의 머리를 연상하며 쳐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960봉을 지나 900봉은 나무가 없고 잔디가 깔린 민둥산으로 되어 있었다. 2~30대의 동호회원들이 활공을 하기 위하여 모여 있는 것으로 봐서 활공을 위해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다시 표시기가 나타나며 정맥길로 들어서는데, 또 한차례 올라오는 산객들을 만난다.
11시 20분 수몰민 이주마을이 위치한 밀목재에 도착한다. 전원주택의 동일한 형태로 10여채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서자 나타나는 큰 도로를 바로 가로질러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잠시 젖어 있는 발이 내리막에 충격을 주며 엄지발가락 주변으로 쓸리기 시작한다. 양말을 벗어 바세린을 잔뜩 바르고 또 다시 마른 양말로 갈아신는다.
<소사두봉 봉수대>
<밀목재에 있는 수몰민 이주마을>
11시 35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널널산행할 요량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럴 수없다. 전주에서 안양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최소한 17시이전에는 끝마쳐야 했다.
12시 35분 밀목재에서 출발한 지 1시간이 경과하여 994봉 인근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날씨가 더울 뿐만 아니라 아침식사한 후 계속하여 물을 마셨기 때문에 2리터의 물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모두 합하여 300cc정도의 물과 매실차, 그리고 귤하나가 수분으로 섭취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금호남정맥의 백운산>
<백두대간의 백운산>
장안산 지나 샘터까지는 남아 있는 물을 아껴가며 마셔야 했다. 시간을 체크하며 10분 경과시마다 입술을 축일 정도만 마셨다. 13시 40분 계속하여 북동쪽으로 향하던 마루금은 백운산(947.9m)에 이르러 급하게 남동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장안산으로 가까워질 수로 계속하여 표고차를 높여간다.
장안산 전위봉에 이르자(15:20) 산 정상에 있는 사람의 말소리도 들린다. 한걸음에 달려가자 이내 소망하던 장안산(長安山, 1236.9m)에 이른다. 아스라이 내가 왔던 마루금과 내가 갈 마루금이 보인다. 백두대간의 백운산과 왼쪽 저멀리 남덕유산도 희미하게나마 조망이 된다.
이제 물은 거의 바닥이 났다. 만약 샘터가 고갈되었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무령고개에서 올라왔다는 등산객에게 물으니 샘터에 물이 잘 흘러 내린다고 한다.
등로가 좋아 1.5km 떨어진 샘터까지는 30분이 채 소요되지 않았다. 이 샘터가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산꾼에게는 생명수나 마찬가지였다. 그 자리에서 500cc 수통에 물을 받아 단숨에 들이마시고 또 반을 더 마셨다. 거의 죽어가던 세포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장안산에서 본 가야할 마루금, 저 멀리 남덕유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임>
<무령공재>
영취산까지 갔다 오면 되기 때문에 하이드로백은 그대로 두고 날진물통에만 물을 채워 배낭옆 주머니에 넣고 무령고개로 향한다. 16시 30분 비포장도로의 무령고개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지점에서 오른쪽으로는 비포장이었지만 장수방향으로는 포장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지점을 향하여 가파르게 올라가자 16시 48분 영취산(1075.8m)에 도착하며 금남호남정맥을 마감한다. 배낭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던 오가피술을 꺼내 그 전부를 컵에 따른 후 벌컥거리며 마시자 짜릿한 느낌이 목젖을 타고 내려간다.
<영취산 정상 도달 직전>
이틀동안 땀냄새로 절은 웃옷을 갈아입고 다시 무령공재에 내려서니 17시 10분이다. 마침 지나가는 트럭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태워줄 것을 부탁하자 기꺼이 타라고 한다. 구불거리는 무령고개를 지나 한참을 달린 것 같다. 나하고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동네 친구인 듯한 사람들이 육두문자를 써 가며 즐겁게 얘기하다 가는 방향이 다름에도 일부러 장수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바래다 준다.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고 터미널에 들어가니 전주행 버스는 18시 20분이 되어야 간다하고, 대전행은 18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전주행 버스를 탈 경우에는 전주에서 안양행 버스는 이미 끊겨 이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서울행 버스조차도 이용하기에 용이하지 않아 대전으로 가기로 하였다(8,200원). 대충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 대전행 버스를 타자 장계와 무주를 경유하기는 하지만 일단 고속도로에 오르자 출발한지 1시간 25분만에 대전에 도착한다.
금남정맥 종주하면서 몇 번 들렀던 동대전 터미널에서 안양행 마지막 버스가 20시 30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식당에 들러 해장국을 주문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맥주한잔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다(6,000원). 안양행 버스에 올라(9,100원)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모든 일정이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들어 맞으며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던 산행이 되었다.
★ 에필로그
작년 11월부터 부여 낙화암에서 출발하여 출행 다섯 번만에 금남정맥과 금호남정맥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두 번은 비박을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6일동안 산행한 셈이 된다. 계룡산과 대둔산의 위용과 마이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장안산 넘어 백두대간의 영취산까지 왔다. 이로써 영취산은 네 번이나 온 셈이 되었다.
야밤에 혼자서 조망이 안되는 터널같은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그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비박도 해봤으며, 진기한 장면도 봤다. 그러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가슴속에 추억이 되어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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