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상 추모서
南雲 원신상님 지부장님의 흔적 (예술거제 Vol.19 / 2012년12월)
김화순 / 청마문학관 명예관장
어쩌면 청마가 간 길을 걸었던 남운, 청마가 아나키스트였다면 남운도 같은 길을 걸었고, 청마가 교육자였다면 남운 또한 그 길을
갔고, 청마가 한국전쟁과 같이 했다면 그것 또한 같은 길을 간 남운, 청마가 애주가였다면 남운 또한 술을 좋아했던 시인, 제자들에게음악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비로 풍금을 사서 수업을 했다던 의욕에 찬 사도의 욕심은 그 때의 행복한 제자들은 아마도 몰랐을 것입니다. 군사부일체라 했지요 특히 많은 추억담을 들려주시던 창호초등학교 재직 시절의 이야기가 너무고 인상 깊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총명했던 제자 한명 에게는 사업 실패담을 듣고 재기의 기회를 갖로록 선듯 종자돈을 보내준 선생님, 남운 신앙심은 남달라 선교를 위하여 목사님과 상의하여 지구상의 어느 오지 나라에 교회당을 건립토록 하시고 한결 마음이 가볍다 하시던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오른손이 하신 것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신 것을 더욱 감추려 하신 남운 원신상 장로님 6.25전쟁때는 미군의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으로 시작된 흥남 철수 작전 10만 명의 피난민 안전을 책임진 육군 소위 원소위, 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했던 정의감으로 무장된 육군 소위였습니다.
동부초등학교에 마련된 임시수영막사 깨진 유리창으로 비수 같은 칼바람을 가마니와 널판지로 막아주며 그들을 지키기에 온갖 지혜와 노력을 다했던 원소위였습니다. 휴전협정 후 원소위를 따르던 피난민들과의 인연은 멀어지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생생히 기억하며 재회의 기쁨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며 할머니가 되어버린 모습으로 자녀들까지 같이 찾아와 감사해하는 눈물어린 만남은 아마도 한편의 드라마이기에 충분 했습니다. 지부장님께서는 때로는 같이 바깥 구경도 할 겸 나들이 가자고 하실 때 시상이나 떠올려볼 생각으로 가자는 것 같아 따라 나섰던 기억들이 되살아 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신 일기는 그것이 곧 시였고 편지였습니다. 당시 건설중이던 거가대교, 해금강 바람의 언덕 다보시고 쓰신 거제도 순례는 8폭 병풍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생각나는 지인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대신 그들의 안부를 묻던 자상함 그것이 8년동안 거제의 예총 지부장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하면 될까요. 하루는 일본에서 공부하는 손자가 사다준 거라며 털슬리퍼를 자랑삼아 신어보이면서 흐믓해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회장으로 재직때 대우조선근로자 합동 결혼식에 주례사를 하셨는데 당시 화객으로 오신 거제대학장님께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주례사였으며 사랑가였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으신 일화는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지나간 어느 봄날 칠천도나 한바퀴 돌아보고 가자 시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해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당신의 건강도 괴롭고 통증이 심해 오는데 녹산화백을 걱정하시며 연락한번 해보라 하시던 인자한 모습은 어디서 뵐수 있습니까?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 없어지거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거제의 하늘에만 맴돌지마시고 아프리카 어느 오지마을 언덕 작은 교회당 위에까지 날아가서 노래하며 지내시기도 하십시요. 그렇게 좋아하시고 아끼시던 오르겐과 아코디언은 어느 전시실에서 먼지에 쌓인채로 멜로디를 흘러낼 날이 언제다시 올 것입니까? 노구답지않게 노래방마이크 잡으시면 그 고상한 노래 솜씨는 누구에게 주고 가셨습니까? 나 죽으면 저기 할멈옆에 가실꺼라고 국도를 지날때마다 알려주신 까닭이 뭣인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선(善)한 삶을 사시다 가신 뒷자리에는 그리움만 남아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사모님과 같이 계신 유택에 새겨놓은 시를 여기 적어 봅니다
<동행 / 원신상>
철없이 만난 긴 동행
서툴게 사노라 누짖던 아득한 세월
얼룩진 주름에 새겨 저녁 햇살이 고울때
가야할길 다 달려와 여기 회포의 언덕에
노쇠한 두 그림자 손을 꼭 잡고
싸늘한 바닷바람 초가을 억새의 손짓되어
당신의 가슴 소녀적 그리움
묻어나는 노을에 아름다운 황혼에 서다
지부장님께서는 유독 노래와 시를 좋아했습니다
<내 가는날 / 원신상>
내 가는날
다 두고 가는날
길들인 노래 부르도록
시심 하나 건져가리
지극히 고운 천상에서
지극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도록
내가는 날
다 버려두고 가더라도
가슴에 고인 시심만은 건져 가도록
버려 두게나 벗이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대 마지막 배려를 베풀어 주게나
이 유작은 두분 (장로 남운 원신상, 권사 옥영희 부부)묘 앞에 묘비명으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생전에 그렇게 진통을 주었던 통풍, 그 통풍없는 하늘 나라에서 시 쓰시며 노래하시며
잘 지내고 계십시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