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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선 염불 수행일지
굉성(박보성, 경주)
1) <1997년 2월 20일> 관정 큰스님과의 첫 만남과 자성염불
나는 1966년생이니 1997년이면 31살 때의 일이다. 그해 2월, 내가 포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 대구로 출장을 갔는데 우연히 동화사 포교당인 보현사 앞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극락 다녀온 중국의 관정 대법사 초청법회」
‘극락을 다녀온 스님?’
나는 이 현수막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시선이 끌리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극락을 다녀올 수 있는 것인가?’
‘극락이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닌가?’
그렇지만 너무 특이하면서도 마음이 끌려 2월 20일 보현사 법회에 참석하였다. 알고 보니 군위 압곡사 재건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회장을 맡고 있는 미타회 회원들도 모두 참석하였다.
사람이 많이 참석하여 멀리서 극락 다녀오신 스님을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관정 큰스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법회에 참석한 나는 법문이 진행되는 동안 멀리서나마 관정 큰스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 가슴이 뭉클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
3월 6일 큰스님이 군위에 있는 압곡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다시 뵈었다. 보름 전 멀리서 뵐 때와는 달리 처음으로 가까이 뵐 수 있었는데 대중 집회 때보다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집회 때 근엄하고 좀 무섭기까지 했던 큰스님이 나에게 웃음으로 대해주어 어쩐지 옛날 가까이 하였던 사이인 것처럼 친근감이 느껴지고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압곡사에서는 낮에 잠깐 법회를 하면서 정토선 염불법을 배웠다. 그리고 관정 큰스님이 육성으로 녹음한 정토선 녹음테이프를 하나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압곡사에서 포항까지 돌아오는 3시간 내내 차 안에서 그 녹음테이프를 틀고 집까지 왔다.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녹음테이프는 틀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하고 자세히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니 바로 내 귀 속에서 나고 있었다. 모기 소리만큼 작았기에 조용히 신경을 쓰면서 들어보니, 귀속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데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이 무엇이지?’
‘그래, 이 염불에는 무엇인가 신비한 것이 있다.’
한편으로는 신기하여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새로 배운 정토선 염불에 대한 강한 믿음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았다. 관정 큰스님이 법문을 할 때 이렇게 소리가 나는 것이 자성염불이라고 했지만 자성이 무엇인지, 자성염불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내가 직접 체험해 보니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안 놓치려고 열심히 들었다. 그러자 그 소리가 점점 커지고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압곡사에서 (??, 宏成, 寬淨 큰스님, 慈海 스님, 필자)
그렇게 2달쯤 지난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자성염불 소리가 들리지 않고 뚝 끊어져 버렸다. 나는 몹시 당황해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엊저녁 회사 회식 때 고기를 한 점 먹었던 것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평소 육식을 삼갔는데 회사에서 회식할 때 옆 사람들이 하도 권하길래 고기를 한 점 먹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나는 즉시 육식을 일체 하지 않고 자성염불을 다시 살리기 위해 녹음테이프를 틀고 큰 소리로 염불을 하는 등 엄청나게 노력을 하였다. 그러자 사흘 만에 다시 자성염불이 시작되었다. 관정 큰스님은 법회하기 전에 늘 먼저 계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는 법문을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하려면 역시 먼저 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2~3일씩 허공에서도 염불소리가 났는데 나중에는 귓속에서 났고, 5~6개월이 지나자 가슴에 있는 중단전으로 그 소리가 옮겨갔다.
“자성염불이 옮겨 다니기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가슴에서 나는 염불소리가 익어가자 그때부터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잘 돌아가고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할 때도 소리는 나지 않지만 안에서 소리가 이어진다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거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중단전에서 염불 소리가 이어졌다.
‘내 속에 나 아닌 다른 무엇이 있구나!’
생각하면서 환희심이 나고 모든 생활이 즐거워졌다. 그러나 나의 수행 결과는 함부로 남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 이제는 어떻게 하지?”
나는 당시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정토선 인연을 맺은 자해 스님에게 가서 나의 수행 진행상황을 말씀드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짧게 말씀하시고 그런 경계에서는 어떻게 수행을 진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도가 없었다. 그런데 나와 자해 스님과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K스님이 나를 부르더니 내가 겪은 경계를 자세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했다.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 하였다. K스님은 압곡사 아래 토굴에서 묵언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정토선 염불을 하였다. 그래서 글로 써서 대화를 했는데 자성염불이 안 되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몇 번 더 갔는데 갈 때마다 “지금 상태가 어떠하냐?” “어떤 체험을 했느냐?”라고 자세히 물었다. 출가하여 수행만 하는 스님으로서는 꽤 심각한 문제로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 질문에는 나도 아주 난처해졌다.
“혹시 처사님이 정토선을 수행해서 큰 경지를 얻으면 나도 제도해 주세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난감하여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고 나도 잘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피해버렸다. 사실 나는 열심히 수행하지 않고 쉽게 자성염불이 되었고, 그 뒤에는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해서 자연히 그 수행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이야기도 없었다.
자성염불이 크고 또렷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특이한 경계를 보기 시작하였다. 자성염불이 되고 3~4개월이 지나자 지옥과 천상을 보게 되었다.
어떤 지옥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늘도 땅도 연탄재처럼 까맣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에 수많은 사람들이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산은 진흙같이 끈적끈적하여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어려운데 위에서는 집채만 한 돌들이 끊임없이 굴러 내리고 있었다. 간신히 한 발자국씩 올라가는 사람들은 이리저리 피하다가 바위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그러면 그 죽은 시체 양쪽 옆구리에서 바퀴벌레 같은 괴물이 망토를 입고 땅 밑에서 올라와 그 시체를 뜯어먹는다. 그러면 그 시체는 너무 아파서 다시 깨어나 다시 올라가고, 또 돌에 맞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런 경계를 보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죄지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뼛속에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천상의 경계는 내가 붕 뜨면서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멀리 아름다운 천상세계가 언뜻언뜻 보이는 선에서 끝났다.
아울러 많은 생을 살아오는 동안 몸 안에 쌓였던 숙업이 녹아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5월쯤으로 기억한다. 반가부좌하고 수행하면서 내 몸을 또 다른 내가 지켜보고 있었는데, 왼쪽 옆구리에서 끈적끈적하고 시커먼 뭔가가 흘러나와 몸을 더럽히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순간 벽을 뚫고 관세음보살님이 나와서 내 옆구리에다 대고 거기서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몸 안에 있던 뭔가가 나가기 싫어하자, 관세음보살님이 어떤 주문을 외우자 옆구리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왔다
몸 안에서는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했는데 빠져나온 그것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수천 개의 산을 다 모아도 모자랄 정도의 무게로 느껴졌고, 아래로 추락하면서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참 후에 엄청 큰소리로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으며,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아~ 내 몸에서 큰 업이 빠져나갔구나! 업의 무게가 이렇듯 무거운데 나는 매 순간 업을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 세월 동안 내 생각과 몸으로 쌓아올린 수많은 업의 무게에 대한 참회와 큰 업이 빠져나갔다는 환희심 때문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나왔다
2) <1997년~1998년> 관정 큰스님의 직접 지도와 갖가지경계 체험
(1) 큰스님의 직접 지도
1997년 8월 26일 다시 압곡사에 오셨다. 압곡사에서 관정 스님은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정토선에 대해 특별 강론을 하시면서 동시에 수행도 지도하셨다. 나는 당시 포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조금 일찍 퇴근하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3시간을 달려 가서 강의를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12시가 되지만 피곤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처럼 큰 선지식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기 때문이다. 이때 비록 일주일이지만 정말 정토선 수행자로서 기초적인 면목을 갖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세 달 뒤 욕계에 속하는 6개 하늘 가운데 4번째 하늘인 도솔천(兜率天)을 볼 수가 있었다. 도솔천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화려하지 않고, 조용하고 담백하였다. 대중들은 70%가 아시아계이고, 흑인이 15%, 그 나머지는 백인과 지구 사람이 아닌 외계인처럼 생긴 대중들이었다. 특이한건 그곳 대중들은 모두 스님들처럼 가사를 입고 깊은 수행 삼매에 들어 있었다.
(2) 아미타불 친견
나의 자성염불은 계속되었고 다음해인 1998년 4월에는 아미타불을 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딘가에 혼자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오묘한 향기가 나면서 기분이 아주 상쾌하고 좋아졌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앞에 단단한 벽 같은것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벽 위를 올려다보면서 “아, 아미타부처님이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너무 높아 끝까지 다 볼 수가 없었다. 마치 개미 한 마리가 63빌딩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크기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가슴까지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위로는 무지갯빛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볼 수가 없었다. 비록 위 부분은 뵙지 못했지만 웅장하기 그지없는 가슴 아래 부분에는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갖가지로 장엄이 되어있어 나를 황홀하게 하였다. 아미타불을 친견하는 동안에는 자성염불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온 몸에서 함께 돌아가며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 <1998년 8월 16일> 큰스님과 찍은 사진
1998년 8월 16일 큰스님이 세 번째 한국을 방문하셔서 압곡사에 오셨다. 이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압곡사로 달려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해 스님이 너무 아파 큰스님을 모셔서 재를 올린다고 하였다. 나는 재에 참석하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거닐면서 자성염불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재를 마치고 ‘큰스님이 하늘을 보라’고 했을 때 엄청난 소리가 나고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나는 그 때 마치 굴착하는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이상한 진동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이 소리는 관정큰스님께서 머무르시는 3일 동안이나 계속되다 큰스님이 압곡사를 떠나고 약 10여분 후 진동이 멈춘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 법당 앞 마루에서 관정 큰스님과 자해 스님이 가사장삼을 단정하게 입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그런데 자해 스님이 나에게 손짓을 하여 부르셨다.
“굉성 거사도 이리 와서 함께 기념사진을 하나 찍으십시오. 정토선을 열심히 수행하였으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나는 당시 스님도 아니고 가사도 입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이 갈 생각도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자해 스님이 일부러 부르시니 용기를 내서 큰스님 옆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큰스님께서 나를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통역이 없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아듣지 못해 아쉽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 무슨 다라니를 외워주셨다. 그러자 내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저릿 했는데 잠시 후 정신이 얼마나 맑은지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찍은 사진은 아래 연꽃으로 장엄하여 지금도 우리 집에 가보처럼 모시고 매일 쳐다보고 있다. 그날 누군가 사진기를 가지고 와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대체로 고승들은 사진 찍기를 극히 싫어하시는데 관정 큰스님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기꺼이 여러 사람들과 사진을 함께 찍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사진을 찍는 것도 보살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른쪽이 아버지
왼쪽이 어머니
관정 큰스님을 뵙고 나서부터 자성염불은 더욱 또렷하게 들려 이제는 늘 자성염불과 함께하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경계들이 더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자성염불을 하고 있는 그놈을 쳐다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염불하는 놈이 나인가? 아니면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놈이 나인가?’
이런 강한 의문이 계속되었지만 아까 보았듯이 자해 스님은 이런 나의 질문에 대해 자세한 대답을 해주시지 않았다. 사실은 그때 관정 큰스님에게 직접 물었더라면 정말 시원한 대답을 듣고 공부도 한 단계 뛰어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때는 감히 그런 생각조차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4) <1998년 9월> 도량석을 듣고 보는 수많은 눈과 귀
한 달 뒤인 9월에 다시 압곡사에 가서 하루를 묵으면서 새벽에 도량석 도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에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갔다. 조용히 잠에서 깨어난 산천초목을 느끼면서 하늘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수 천 수 만, 아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과 귀가 허공에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들이 도량석을 돌며 온 중생을 깨운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중생들이 보고 듣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3) <1999년> 정토선 염불로 영가 천도와 출가 결심
(1) 정토선 염불로 영가 천도
압곡사에서 가까운 곳에 50살이 넘어 늦게 출가한 외삼촌이 토굴에서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와 나는 시간이 나면 가서 함께 수행을 하였다. 이 토굴은 관정 큰스님이 ‘서방정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던 곳이다.
그날도 어머니와 나는 서방정사 법당에서 조용히 앉아 정토선 염불을 시작했다. 이렇게 염불을 시작한지 한참 되었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우리가 염불을 하고 나면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염불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 ~~~~~~불”
이런 특이한 현상은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나중에 굉성 스님이 물으셨다(관정 스님이 나에게는 宏城, 삼촌은 宏成이라는 법명을 내리셨다).
“여자가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가?”
굉성 스님은 수행중 잠시 쉬러나오신 어머니에게 물으셨다 이미 그 영가가 염불을 따라서 하는 것을 알고 계셨다. 아니 굉성 스님이 염불을 가르치셨는지 모른다. 어머니도 이미 이 영가를 보셔서 알고 계셨다. 어머니는 세련되고 예쁜 40대 여성이 다니다가 옆에 있는 무덤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나중에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 무덤이 40대 여성의 무덤이라고 한다. 토굴 주위엔 무덤이 3개나 있었는데 지금의 서방정사가 된 그 집은 많은 사람들이 살지 못하고 이사를 갔고, 결국 굉성 스님의 토굴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귀신이 나오는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굉성 스님은 그 귀신을 제도하고 계셨다. 이런 일이 있는 뒤 어머님이 당시 불교방송에서 상담을 하시던 금강선원의 혜거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그 안에 영가가 있는데 염불을 하여 극락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니 열심히 염불해서 천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답을 듣고 어머니와 나는 다음 주 토요일 다시 서방정사에 가서 저녁부터 그 영가와 함께 염불을 하였다. 우리 둘은 자성염불을 관하고 있으면 그 영가는 우리 자성염불을 따라서 하는데 우리 염불보다 조금 늦게 ‘~~~~~불’자로 끝난다. 이렇게 자정이 넘고 새벽이 되자 우리 힘이 좀 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큰 소리로 고성염불을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 동안 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잠깐 나가신 사이에 그 영가가 구름을 타고 앉아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잠시 멈춘 영가는 나를 보고 가슴에서 무엇인가를 내려 뜨리는데 한문 글자가 잔뜩 쓰여 있었다. 나는 그 한문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나서 그 영가는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 영가가 극락으로 갔다고 믿는다.
(2) <1999년 9월> 관정 큰스님과의 4번째 만남 그리고 출가에 대한 생각
1999년 9월, 관정 큰스님을 다시 뵙고 나서 출가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 당시 내가 보던 정토선수행법이라는 책에 나의 심정을 이렇게 메모해 놓았다.
‘사람으로 태어나 정법 만나기 몇 겁 만이었던가. 이제 시절인연으로 정법을 만났으니 어찌 수행을 게을리 하랴! 이 몸 받았을 때 대장부 한 소식을 마치리라!’
내가 이처럼 출가를 생각하게 된 것은 절에 갈 때마다 스님들이 출가를 독려하셨기 때문이다. 우선 압곡사에 가면 자해 스님이 늘 출가하도록 말씀하셨다.
“출가하여 정토선을 펴면 어떻겠느냐?”
“출가하여 내 상좌가 되어라.”
그리고 가끔 압곡사에 오시는 광덕 스님도 “나에게 출가하여라.”고 하셨다. 차에서 다시 관정 큰스님을 뵈오니 무엇인가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면서 출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때 출가는 현실화 되지 못했다. 자해 스님이나 광덕 스님 때문에 출가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두 스님 때문에 출가할 생각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출가하려는 것은 출가한 뒤 열심히 수행하여 관정 큰스님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출가하라고 권하시는 스님 두 분은 정토선 수행에 대해서 나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신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스님들이 정토선 수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무조건 출가만 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다 결정적으로 2000년 초 관정 큰스님이 5번째 압곡사를 방문하셔서 글 한 줄 남겨놓고 떠나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출가를 접게 되었다.
4) <2002년> 잃어버린 자성염불이 나를 죽음에서 건지다
(1) 잃어버린 자성염불
2000년 관정 대법사께서 압곡사와 자해 스님을 떠나신 뒤 정토선 수행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씩 식어가면서 자성염불도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압곡사를 아꼈던 마음과 스님들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면서 정토선 수행에 대한 내 열정도 점점 식어갔다. 그리고 그냥 놔버린 자성염불은 힘이 없어져 어느 사이 내 영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 젊음의 가장 황금기였던 30대 전반 거의 5년 동안 내 마음을, 내 영혼을 철저하게 붙잡았던 자성염불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망각할 수 있는지 지금 되돌아보면 참으로 무섭기까지 하다.
나뿐 아니라 어머니도 관정 스님이 떠난 사실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정토선 수행을 접고 정토선 하시기 이전에 하셨던 관세음보살 정근에 몰두하셨다.
그 뒤 나는 비록 정토선은 떠났지만 수행에 대한 막연한 열망은 남아 있었던지 각종 사찰의 여름 수련회를 쫓아다니고, 한 때는 어느 스님의 권유에 따라 화두선에 몰두하기도 했다.
(2) <2003년> 나를 죽음에서 건진 정토선 염불
그러나 그 어떤 수행도 옛날 자성염불 했을 때 체험했던 깊은 경지를 얻지 못하고 나이는 마흔 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봉화에 있는 한 사찰에서 불사를 도우면서 제대로 수행을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수행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큰 사고가 나서 생사를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 비탈에 세워놓은 차의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차가 굴러 내려가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서 앞문을 열고 간신히 옆에서 핸들을 붙잡았으나 이미 기울어진 차를 세우기는 늦었다. 그렇게 좁은 산길을 달려 내려가던 차가 결국은 큰 나무에 부딪치면서 내 몸은 튕겨나가 허공을 날아 땅바닥에 떨어져버렸다.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양쪽무릎 연골이 파열되고 발목뼈가 여러 조각나서 깨지고 팔꿈치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큰 사고였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갑자기 절 안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정확한 정토선 염불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 ‘아니, 저 절에는 관정 큰스님이 오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정토선 염불을 틀어놓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염불소리를 들으면서 정말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였다. 마치 망망대해 위에 조용히 누워있는 기분으로 정토선 염불에 빠져 있었다. 내가 몇 년 전 자성염불이 될 때 느꼈던 편안함 그대로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편안했던 것을 보면 정신을 잃었던 순간에 정토선 염불 소리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은데 갑자기 내 마음의 눈이 우주로 가더니 마치 텔레비전에서 작은 점을 점점 키워 화면에 가득 채우듯이 우주의 한 공간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큰 공간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의 핵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파란색 작은 구 위에 빨간색의 더 작은 구 2개가 붙어있는 모양으로 구 하나 하나는 진동을 하지만 전체는 파장을 이루는데 그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옴~~ 이 우주는 텅빈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는 바늘 하나도 들어갈 빈틈이 없이 가득찬 생명력이었다. 옴~~~은 우주의 진동이자 파동의 소리였다. 그 순간 ‘아! 그래서 한 생각에 우주가 작용을 한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흔히 몸 안에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불성 안에 몸이 담겨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물이 그릇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지만 합해 놓으면 그저 바다이듯이 온 우주가 불성인데 나(我)라는 그릇만큼 불성이 담겨져 있다가 죽으면 그냥 다시 불성 덩어리가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나와 남이라는 것도 인연 따라 뭉쳤다가 다시 우주 전체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식이 돌아오자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정신이 깨어나지 않고 조금 전의 편한 자세로 그냥 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수행하면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달려와 나를 깨우고 병원으로 옮겨져 꽤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다시 정토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죽음에 맞닥트릴 때 결국 나를 살린 것은 아미타부처님이었고 정토선 염불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 귀에 정토선 염불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 속 저 밑에는 자성염불이 쉬지 않고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5) 다시 시작한 정토선 염불
본격적으로 정토선을 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마음만 바빴지 몇 년간 다시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45살이 넘어가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3년 전쯤 어머님에게 말씀 드렸다.
“어머니와 저는 10년 전 정토선 염불을 떠나 어머님은 관세음보살 정근을 하셨고, 나는 이것저것 옮겨 다니다가 세월만 보냈습니다. 전에 내가 죽음에 직면할 때 나에게 남은 것은 나무아미타불 밖에 없었고 그 아미타불이 나를 살렸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정토선 염불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니도 동의하셔서 3년 전부터 다시 정토선 염불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전처럼 바로 자성염불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 변하지 않고 끈질기게 염불테이프를 틀고 염불을 하였다. 그리고 무려 2~3년이나 걸려 겨우 자성염불이 되살아났고 귀속에서 들리던 자성염불이 이제는 이전처럼 중단전에서 들리기 시작한다. 너무 쉽게 자성염불을 이루어 그 가치를 몰랐었는데 다시 해보니 한 번 놓치면 다시 찾기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에는 정말 크고 또렷하였으며 자성염불이 잘되었지만 지금은 정신 차려 끈을 놓치지 않아야지 정신을 조금만 놓으면 흩어진다. 그래도 이제는 다시 돌아온 자성염불을 키워나가 두 번 다시 지난날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얼마 전 부산 대승사 선용 스님을 찾아가서 오랜만에 정토선 법문을 들었다. 선용 스님이 끈이 되어 그 다음에 보정 거사님이 관정 큰스님 저작집 정토와 선을 주셔서 읽어보니 그 동안 우리가 수행은 열심히 했지만 정토선에 대한 기본 원리를 정확히 깨치지 않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관정 스님은 정토선을 수행하게 되면 몸으로 깨닫게 되는데(身覺) 3가지가 있다고 했다. 몸으로 물질을 깨닫는 것(身物覺), 몸으로 신(神)을 깨닫는 것(身神覺), 그리고 몸으로 자성을 깨닫는 것(身性覺)이다. 물질을 깨닫는 것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해 내는 것이고, 신(神)을 깨닫는 것은 하늘나라를 비롯하여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경계를 보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정토선이 목표로 하는 것은 자성(自性)을 깨닫는 것으로 신질(神質)을 본다고 해서 그것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하셨다. 그래서 ‘수행에서 신통은 참된 이익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토선을 공부하다보면 천안ㆍ혜안ㆍ법안ㆍ불안이 열린다고 하는데 10년 전 나는 공부가 조금 되어 천안이 좀 열리고 신질(神質)을 조금 보기 시작하자 그것이 엄청난 경계인 줄 알고 공부에 소홀히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자성염불을 바탕으로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사실은 이미 정토선 정의에 다 나와 있는 것을 소홀히 하였던 것이다. 이제 자성염불을 올곧게 관하여 일념(一念) 단계에 이르고, 더 나아가 그 염불조차 사라지는 무념(無念)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공부 방향이다.
끝으로,
“이런 수행법을 내려주신 아미타부처님 고맙습니다.”
“이 수행법을 가르쳐 주신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이 수행법을 전해주신 관정 큰스님 고맙습니다.”
“관정 큰스님과 인연을 맺게 해 주신 자해 스님 고맙습니다.”
나모아미따불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