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우리 나라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스포츠 연감>을 펴낼 정도로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쌓아온 100여 년 동안에 걸친 연감을 크게 '10년 단위'로 엮어 우리 나라 스포츠에 대한 역사를 풀어내었다. 그러나 단순히 승패를 나열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역사책에 걸맞게 스포츠를 통해서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투영해 보았다.
돌이켜 보면 실로 놀라운 성장이다. 100여 년 전, 우리는 나라를 잃었었다. 그래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되어도, 그 가슴에 우리 나라 국기조차 달지 못하고 우승을 하여도 조국에 영광을 바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백성들은 나라 잃은 울분을 '스포츠'를 통해 풀어내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스포츠는 눈물이자 희망이었단다.
어찌 보면, 우리는 어렵고 힘든 때를 맞아 '스포츠 덕'을 참 많이 보았다. 앞서도 말했듯이 식민지 시절에도 나라 잃은 슬픔을 우리 백성들이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바로 '스포츠'였다. 익히 알려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 금메달을 따온 것처럼, 해방 뒤 5~60년대에도 마라톤 영웅 이창훈이 있었단다. 특히 그가 더 기억에 남는 까닭은 58년 도쿄아시안게임에서 일본 하늘에 태극기와 애국가가 울려 퍼지게 하였다는 점일 게다. 이창훈의 우승이 개인에게도 영광이었을 테지만, 우승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들에게도 찐한 감동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정국안정을 위해 스포츠 영웅 몇 명 희생시키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7~80년대 경제고도 성장기를 지날 때까지는 몰라도 '군부독재'를 청산한 90년대부터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나라 스포츠 선수치고 대통령과 악수 한 번 하지 않는 선수가 없을 정도였단다. 오늘날도 여전히 국제경기에 나간 우리 나라 선수가 우승을 하거나 월등한 성적을 거두면 어김없이 '대통령 축전'을 한다. 물론 외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기에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스포츠를 악용한 역사를 감안하면 그닥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이를 테면,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도 어김없이 이명박 대통령께서 축전을 보내셨단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온국민이 우승 기쁨을 만끽하는데 찬물을 싹~끼얹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닌 분도 계셨겠지만...뭐, 우리 아부지는 아직도 종종 대통령을 임금님에 비유하시곤 한다.
이렇게 기분 더럽게 시작한 것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프로야구>다. 전두환씨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은 반겼다. 오랜 옛날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었던 만큼 한바탕 어우러져서 일을 치룰 기회를 마다 할 리도 없을 테다. 그리고 참 즐겁게 즐겼었다. 그런데 전두환씨는 이를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이용해 먹었을 뿐이다. 흔히 '3S 사업'이라고도 불리는데, '스포츠-섹스-스크린'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의 관심을 한껏 증폭시켜 딴 곳으로 돌리게 만들고 그 이면에서 못된 짓을 일삼는 나쁜 정책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무슨 나쁜 짓을 했을까? 광주민주화운동을 짓밟은 나쁜 짓을 덮기 위해 <프로야구>를 개막하였고 국민들은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각본없는 드라마'에 대한 열광으로 바꾸게 되었다. 또 못된 정치로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어 놓고서 <사창가>를 드나들게 하여서 국민들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를 가면 으레 '사창가 신고식'을 치르곤 한다. 또 예비군 훈련을 가서도 '정관 수술'을 받으면 훈련을 면제해주곤 했단다. 물론 이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슬로건 아래 '출산억제'를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론 남자들에게 마음껏 섹스를 즐겨도 '책임'질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식으로도 해석되곤 했다. 당시 남성의 바람이에 너그러운 사회적 인식도 한몫했으리라.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서민들에게 서구에서 만든 <화려한 영화>를 보여주며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훗날 저런 삶을 누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당시 토요일 밤마다 귀에 익은 시그널음악을 들으며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본 경험을 했었는데, 이것이 지금에 와서 되짚어보니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기는 일 아닌가. 국민들은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감동을 하며 열광하고, 선수들은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뼈를 깎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뒤에서 못된 정치인들과 나쁜 경제인들은 국민들을 우롱하고, 선수들을 이용해 먹었다니 말이다.
허나 우리 나라 스포츠사에 어두운 면이 있었다고 한들, 우리 나라 스포츠는 날로 발전하였다. 서울 올림픽을 시점으로 하여 명실공히 우리 나라는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 하였다. 물론 몇몇 종목에 국한 된 초라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불모지나 다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늘 기대에 넘치는 성적을 거두어 국민들에게 힘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IMF시절에 박찬호와 박세리 남매가 보여준 선전이었으리라. '코리안 특급'은 우리 나라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경제파탄으로 인한 시름을 털어내게 해주었으며, 박세리가 보여준 '맨발투혼'은 아무리 위기에 빠져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 희망의 절정에 다다른 것이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였으며, 거리거리마다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친 붉은 악마들이 실현시켰다. 그 희망은 다방면에서 여러 선수들이 다시금 확인시켜주었으며 또다시 그 절정은 김연아가 실현시켜주었다. 특히 벤쿠버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분에서 역대 최고 점수로, 또 2위인 라이벌 아사다 마오를 30여 점 앞선 기록으로 우승하여 '피겨 여제'에 등극한 사건은 우리 나라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업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성과는 피겨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서 더욱 뜻 깊다고 할 수 있다. 김연아는 단순히 개인적인 영광을 달성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 이제 더는 꿈이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준 영웅인 셈이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온누리 사람들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그 감동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왜냐 하면, 우리는 스포츠가 발전하면서 동시에 우리 나라 경제도 함께 발전한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 경험은 우리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스포츠 선수들이 선전을 할 때면 우리 국민도 함께 어깨가 으쓱해지며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어 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수들과 국민들이 한 몸이 되어 울며 웃는 지 100여 년...앞으로도 이 밀접한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