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정보는 원래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들어 있는 내용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편집한 것이다. 원서의 "Apsara Dance"(압사라 무용) 항목에는, 정식으로는 "크메르 고전무용"으로 불러야 할 이 무용에 대하여, 용어 및 그 성립역사 등에 관한 내용이 부정확하거나 상세하지 못한 내용이 들어있어 전반부를 모두 삭제하였다. 또한 중간의 동작을 성명하는 부분 역시 "크메르 고전무용" 항목과 내용이 중복되어 삭제하였다. 대신 캄보디아 최초의 압사라 주연 무용수였던 "노로돔 보파 데위(보파 데비) 공주" 항목의 내용을 함께 편집했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저자가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원문의 영어 자체가 상당히 조악하여, 번역 대상에서 제외시키려 했으나, "압사라 무용"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들이 들어있어 가능한 한 내용들을 살려서 실으려 했다. 정교하지 못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참조해서 독해해주기 바람. 예비지식으로서의 "크메르 고전무용"의 성립사 및 일반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게시물을 참조하기 바란다.
☞ 바로가기 : "[개론] 캄보디아의 공연예술 (상)"
☞ 바로가기 : "[개론] 캄보디아 : 크메르 고전무용"
사진자료는 모두 "크메르의 세계"가 추가한 것임. |
1. 크메르 고전무용의 새로운 흐름
(사진: apsara2001.ifrance.com) 젊은 시절의 보파 데위 공주
1940년대에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임국왕의 모친이었던 시소왓 꼬써막 니어리리엇(Sisowath Kossamak Nearyrath) 왕후는 소테어리엇(Sothearath) 초등학교의 행사에 초청을 받았다. 왕후는 이곳에서,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압사라(Apsara) 조각상에서 영감을 받은 왕관과 꽃 등의 여러 의상들을 주부들이 종이로 제작하고, 그 종이 의상을 입고 연기하는 학생들의 공연을 관람했다. 여기서 왕후는 압사라를 주제로 한 무용을 재창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자신의 장 손녀이자 시하누크 공의 장녀인 노로돔 보파 데위(Norodom Bopha Devi, នរោត្តម បុប្ផាទេវី) 공주로 하여금 최초의 압사라 무용수가 되도록 했다. 그리하여 보파 데위 공주는 5세 때 무용 훈련을 시작했고, 이후 노로돔 시하누크 공 통치기에 최초로 압사라 무용을 선보이게 되었다.
(사진) 주연무용수로 활동하던 당시의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 모습. [출처: Ancestry.com]
1967년 아름다운 젊은 공주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치장된 비단 옷을 입고, 왕국 안의 공개된 천막 아래서 "왕립 무용극단" 및 전통 악단인 "삔삐엇"(pinpeat)의 반주에 맞춰 공연을 선보였다. 이후 보파 데위 공주는 15세기 이후 동면에 들었던 이 우아한 고대적 무용을 알리기 위해, 크메르 고전무용의 주연 무용수인 "하얀 압사라"(white Apsara)로서 세계를 여행하며 공연했다. 이로써 공주는 크메르 고전무용의 심볼이 되었다.
이 무용의 부활과 함께 시소왓 꼬써막 왕후는 보파 데위 공주를 해외 공연에만 보낸 것이 아니라, 맨 처음에 먼저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선보였다. 원래 이 춤은 왕궁 안에서 왕조의 선조들과 신들에게 바치던 예술형식이었다. 압사라 무용의 새로운 흐름은 의상이나 장신구 등이 앙코르와트의 압사라와는 다소 달리 새롭게 발전된 형태였고,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예전과 같이 국왕 앞에서만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크메르루즈 시대에는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압사라 무용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발견되어 모이게 된 무용수들은 베트남과 크메르루즈의 회합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들은 현재와 유사한 의상을 착용했지만, 동작은 보다 권위주의적 요소가 반영됐다. 청중으로 참가했던 한 증인은 "그 춤이 마치 미치광이 같았다"고 증언했다.
오랜 전쟁이 끝나고 1995년에 이르러서야 압사라 무용도 다시 기지개를 펴게 된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에서 <라마야나>(Ramayana)를 공연하던 전통을 25년만에야 부활시킬 수 있었다.
압사라 주연 무용수로 활동하던 당시의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중앙)의 모습.
[사진출처] 캄보디아 궁내청 홈페이지. |
2. 압사라 무용수의 훈련과 현황
최초의 압사라 주연 무용수였던 보파 데위 공주는 이후 압사라 무용의 여러 스승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시소왓 꼬써막 왕후는 여러 전통 예술을 현대화시키는 데 노력했다. 왕후는 몸소 초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적절한 체형과 손발의 우아한 균형을 가진 소녀들을 선발하여 훌륭한 무용수들이 탄생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들 소녀들은 처음에는 왕궁 바깥에 있는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고, 종국에는 왕궁 내에서 최종 훈련을 받았는데,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압사라 무용수(댄서)는 몸놀림이 유연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이른 시기에 선발되어 처음에는 주로 손과 관절을 풀어주는 훈련을 한다.
압사라 무용수의 손가락들은 엄청나게 유연하다. 이들은 자신의 손가락을 거의 팔목까지도 꺾을 수가 있다. 오늘날 캄보디아에서 가장 저명한 대가는 60세(2009년)의 쁘로응 치엉(Proeung Chheang: 남)으로 전직 왕립 무용극단 출신이다. 그가 훈련하던 당시 "왕립 예술대학"(RUFA)에서 진행되던 무용 훈련은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가 함께 훈련하곤 했다. 쁘로응 치엉의 할머니 역시 왕립 무용단 출신이었고, 그의 여동생 역시 왕립 무용단의 무용수였다. 그는 8세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비공식적인 훈련을 받았다. 그는 "곡예동작 때문에 난 항상 원숭이역을 맡곤 했다"고 말한다. 왕립 무용수들은 특히 급료가 작은 축에 들었다. 그는 당시 첫 월급을 25리엘(1센트)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살해한 크메르루즈 정권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스승 중 한 사람이다. 현재 그는 "왕립 예술대학" "공연예술학부"(Choreographic Arts Faculty) 학장 겸 부원장(부총장)을 맡고 있다. "왕립 예술대학"에서는 압사라 무용 외에도 가면극과 그림자 인형극, 캄보디아 전통음악과 서커스 등이 교육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무용 훈련은 주로 아침에 진행되고, 그 외의 정규수업은 오후에 진행한다.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의 왕립 무용단과 함께 안무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의 압사라 무용은 더 이상 왕들이나 신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요한 호텔들에서도 공연되고 있고, 왕궁 근처의 "짝또목 극장"(Chaktomuk Theater)에서도 공연된다. 압사라 무용은 캄보디아인들에게는 국보에 해당한다. 쁘로응 치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용은 우리나라의 영혼이다."
3. 주요 주연 압사라 무용수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를 필두로, 세대를 이어오며 다음과 같은 주연 무용수들이 탄생했다. 모두 여성임.
- 셍 스레이 몸 Seng Srey Mum (អ្នកស្រី សេង ស្រីមុំ)
- 위언 스와이 Vean Sawai (អ្នកស្រី វ័ន សាវៃ )
- 도웃 띠언 Douch Tean (អ្នកស្រី ឌុក ថាច )
- 위언 사우웡 Vean Savvong( អ្នកស្រី វ័ន សាវង្ស)
- 유임 데위 Yim Devi (អ្នកស្រី យឹម ទេវី)
- 몬 까니까 Monn Kanika (អ្នកស្រី ម៉ម កណិការ )
- 오움 팔라 Aum Phalla (អ្នកស្រី អ៊ុក ផល្លា )
- 속 사끼엄 Sok Sakeam (កញ្ញា សុខ សុខឿន)
4.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
캄보디아의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는 1943년 1월 8일 프놈펜에서 출생했다.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국왕과 작고한 네약 모니엉 팟 깐홀(Neak Moneang Phat Kanthol) 궁비 사이의 1남 1녀 중 장녀로, 시하누크 공의 모든 자녀들 중 맏이다. 같은 어머니 소생 남동생으로 전 제1총리 및 국회의장을 역임한 노로돔 라나릿(Norodom Ranariddh) 왕자가 있고, 현재의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의 이복 누나이기도 하다. 그녀의 공식칭호는 "Her Royal Highness Samdech Reach Botrei Preah Ream Norodom Bopha Devi"(섬다잇 리엇 보뜨러이 쁘레아 리엄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이다.
심지어는 격투기들을 포함하여 크메르 전통 예술과 문화에서 차지하는 스승의 위상은 지대하다. 공연이 끝난 크메르 고전무용 출연자들이 안무가인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에게, 스승께 감사를 표하는 "삐티 솜피어 끄루"(Pithi Sompeah Kru, ពិធីសំពះគ្រូ)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상/하). [사진촬영] Sovannahong 2008-7-5. |
4.1. 호 칭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의 성을 제외한 이름인 "보파 데위"는 영문으로 "Buppha Devi" 혹은 "Bophadevi"로 표기된다. 그녀는 종종 성인 "노로돔"을 제외하고 단순히 "보파 데위"로 호칭되곤 한다. "보파"는 원래 빨리어 "뿝파"(puppha: 산스끄리뜨어로는 "뿌쉬빠"[pushpa])에서 크메르어 식으로 발음이 변한 말로, "꽃"을 의미한다. "데위" 역시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 "여신"에서 온 말이지만, 크메르어에서는 "여왕", "왕후", "공주" 등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4.2. 약 력
(사진) 정치인이자 안무가로 활동 중인 보파 데위 공주.
[사진출처] "미국의 소리"(VOA) 방송.
보파 데위 공주는 고등학교 교육을 프놈펜의 "리셰 쁘레아 노로돔"(Lycée Preah Norodom)에서 마쳤다. 그녀는 조모였던 시소왓 꼬써막 왕후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무용수로의 길을 권유받고 훈련을 받았다. 15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왕립 무용단"의 주연 무용수가 되었고, 18세에는 "프리마 발레리나"(prima ballerina) 칭호를 받았다.
이후 그녀는 "캄보디아 로얄발레"(Cambodian Royal Ballet)의 주연 무용수로서 캄보디아 고전무용을 재창조한 그녀의 조모 시소왓 꼬서막 왕후와 함께 전 세계 및 캄보디아 국내 전역으로 공연을 다녔다.
1959년(만15세)에 결혼한 그녀는 5자녀를 두었고, 남편인 전국회의원 켁 완디(Khek Vandy)와의 사이에 5남매를 두고 있다.
- 장녀: 시소왓 모니 고써마 공주 Sisowath Moni Kossoma (1960년생)
- 차녀: 시소왓 깔랸 떼위 공주 Sisowath Kalyan Tevi (1961년생)
- 의붓딸?: 께오 찐시따 포시넷띠 Keo Chinsita Forsinetti (1965년생)
- 장남: 시소왓 찌완나릿 왕자 Sisowath Chivannariddh (1968)
- 차남: 시소왓 위억찌라웃 왕자 SIsowath Veakchiravuddh (1973)
보파 데위 공주는 최근까지도 캄보디아 문화예술부 장관으로 재직했으며, 푼신펙당(FUNCINFEC)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
노로돔 보파 데위 공주는, 그 인물 자체로도 다른 크메르인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 아이콘이다.
상단 좌측의 그림은 미국에 망명 중인 캄보다아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켐 짠타(Khem Chantha)가 그린 공주의 모습이다.
하단의 그림은 압사라 여신 등 전통적인 크메르민족의 상징들을 이용해 세미누드 작품들을 그려내 논쟁을 야기한 리어후(Reahu)라는 닉네임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원래는 칼라로 된 작품이지만, 여기서는 흑백으로 변환해 가공되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리어후가 켐 짠타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의 작품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
|
첫댓글 이로써 당분간은 압사라 무용에 관한 내용은 좀 정리가 되었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