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점심과 저녁에 같은 고민을 한다.
점심에는 무슨 메뉴를 먹을까가 늘 막막함이고 저녁에는 소주 한잔의 안주로 어떤 것을 선택할까가 재미없는 고민거리다. 안주의 고민이 재미없는 것는 그 답이 늘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바다생물이거나 육지생물. 즉 회거나 고기.
이 식상함 앞에 외출 같은 술안주 거리가 있다. 제 살을 속에 감춘 체 입을 앙다물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 바로 꼬막이란 놈이다. 10월부터 2월까지가 제철이라고 하니 시즌도 잘 맞는다.
꼬막 한 두번 안 먹어본 이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젊은 시절 태백산맥으로 문학의 밤을 세운 이라면 꼬막은 더 많이 남다를터 이다. 버들가지 같은 외서댁을 범한 염상구가 그 정사를 빗대어 말하기를, 겨울꼬막 맛이라고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하다고 여인의 속살을 꼬막맛과 비벼댔다.
외에도 꼬막에의 서술은 태맥산맥에서 즐겨 인용됐다.
전라도에서는 1등 신붓감을 평할 때, 길쌈솜씨와 꼬막 묻히는 실력을 그 잣대로 삼는다고도 했고 길고 긴 겨울밤 무심하게 까먹는 심심풀이 음식으로 벌교의 꼬막을 이야기했으며 뻘밭에서 꼬막을 캐는 아낙들의 거친 노동을 너무나 숭고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그 꼬막을 먹으러 가보자. 제철 음식이야 제 곳에서 먹으면 좋으련만 꼬막을 먹기 위해 벌교까지 갈 수는 없을 터. 노량진에 꼬막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다. 이름하여 <순천 식당>.
이 집은 꼬막을 비롯한 모든 음식을 벌교와 순천에서 직접 공수해온다. 그날 팔 음식은 그날 오전에 올라오는 식이다. 그래서 비교적 산지의 싱싱함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순천식당이 꼬막만을 주메뉴로 하지는 않는다. 계절마다 메뉴 구성이 달라지는데 겨울에는 서대회무침(3만 원), 쭈꾸미볶음(1 만 원), 키조개 샤브샤브( 1접시. 4만 5천원), 홍어삼합(4만 원), 낚지 볶음 (3만 원)등을 판매한다.
키조개 무침과 쭈꾸미
음식을 다양하게 시키면 오히려 꼬막은 보조 안주로 여겨질 정도다. 꼬막은 9월부터 5월까지만 판매를 하며 한 접시에 1만 5천 원이다.
꼬막 반접시. 밑동을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끼우고 살짝 비튼다.
꼬막은 구워먹기 좋은 새꼬막과 데치거나 삶아 먹는 참꼬막이 있는데 이 집의 꼬막은 참꼬막이다. 그래서 겉에 털이 없고 골이 깊게 파여있는 생김을 하고 있다.
위의 태백산맥을 예로 들었지만 음식에도 스토리와 신화가 있다. 기를 쓰고 현지로 내려가 산지의 음식을 먹는 이유는, 그 스토리와 신화를 음식과 함께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거친 겨울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교 역전 앞, 그보다 더 허허한 겨울의 뻘밭에서 진흙과 바다 내를 풍기며 갓 잡아 올린 꼬막이라면, 시린 소주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궁합일터이다. 내가 생각하는 꼬막의 스토리는 이런 것이다.
그러나 이 집의 꼬막은 너무나 말쑥하다. 너무나 깨끗하고 단정해서 그 입을 벌렸을 때야, 살포시 바닷내를 느낄 뿐 그렇지 않다면 생물체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처음부터 스토리에의 욕심을 버린다면, 소주 한 잔 털어놓고 톡 하고 까먹는 그 맛은 색다르고 쏠쏠하다.
그리고, 이집에서는 메생이 국도 판다. 방심하다 입천장 데인다는 그 메생이 국이다. 감김 없이 술술 내려가 식도를 간지럽히는 그 메생이 국이다. 기가 막히게 고개를 넘는 남도의 창(唱)과 같은 음식, 그 메생이 국을 이 집에서도 판다.
꼬막에 소주 한잔하고 그 자리에서 해장용으로 메생이 국 한그릇 마시면 속도 기쁘고 살도 더워져서 좋다.
어떤가, 이 겨울, 쫀득 쫀득한 꼬막의 질감을 즐겨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