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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요일은 장맛비가 또 온단다...
10일도 비가 온다고 해서 어쩔까 생각을 하던 중---장인선 대장의 성화에 못 이겨 -네-참석합니다----하고 흔쾌히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은 매월 2째 주일에 가는 흥사단 산악회 정기등산인 철원 고대산을 가기로 돼있었으나 전화로 불참을 통보한 후였다. 통일산악회 등산대장의 열성과 지난 달 검단산에도 못 가고, 지난주 고대산 산행도 불참하여 미안하기도 하고 대원들의 얼굴도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 관악산 등반 때 처음 참석하고 이번이 3번째인 신참이기에 더욱 미안하고 송구하기도 하였지만, 더욱이 꼭 가고 싶은 이유는 건강하고 젊은 산악인과 훌륭한 선배님이 많아 인생(?)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국사봉을 넘어 호룡곡산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장대장이 긴한 부탁을 한다며 갑자기 산행기를 써달라고 해서 거절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을 어쩌랴---이게 다 업보가 아닌가---순순히 답변을 하고 나서 산행기를 쓰긴 써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산행 내내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었다.
인생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던가...그렇다. 작문도 시작을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다짐해보지만, 역시 시작이 어려운 것은 결혼이나 취직, 승진, 자격시험 등과 같은 중대한 고비만 어려운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일찍이 언론 자유와 민주화운동의 큰 별 정동익선배가 만든 통일산악회에 참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선배와는 30여년전 동아일보 재직시 여성동아부에서 함께 고락을 같이 하였고 75년도 강제 해직되었으며 평생을 동아투위 위원으로 동지적 관계로 교제해온 터라서 우리 통일산악회 대원들은 금방 친근해졌고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적 산악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젯밤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잠을 설친 열대야였다. 3시간이나 눈을 부쳤을까 간밤에는 몇 번이나 깨어 잠이 깊이 들지 못했다.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는다.
늦지 않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서 9시 10분전 시청앞 대한문 앞에 당도하니 내가 아는 분은 없고, 관광버스 한 대가 서서 기다린다. 앞 유리창에 보니 한국관광단이라고 써 있었다. 이 버스는 분명 아니고, 다시 광장 쪽으로 올라가 보니 비상등을 켠 채 검은 세단 한대가 기다린다. 가까이 가서 보니 운전기사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다. 난감하다...
조금 늦게 장대장이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나니 여러분들이 악수를 나눈다. 그제야 배낭을 멘 몇분은 같이 관악산 겨울산행을 한 기억이 났다. 사람을 보아도 잘 기억이 안나니.....한심스럽다.
꾸물거리는 날씨에 지친 몸으로 섬산행을 선택
장대장은 연신 핸드폰을 눌러대며 전화하기 바쁘고, 시간은 흘러 9시 30분이 다 되어서
마지막으로 곽태영선생님이 도착하여 두 대에 분승하여 서울시내를 빠져나가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아래에 있는 무의도(舞衣島: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는 날 보면 마치 장군이 칼을 휘두르며 춤을 추는 모양)로 향했다. 오늘 처음 가시는 동승한 곽태영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며 물었다. 나는 6년전에 한번 종주산행을 한 적이 있어서 호룡곡산과 국사봉 두 개의 봉을 소개하고 하나개 해수욕장에서 벌어졌던 동죽조개와 고기잡이 사기사건(?)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후 이곳 주민이 돈벌이를 위해 하나개 해안에 길게 정치망을 치고 밀물과 썰물을 이용해 손으로 고기잡기대회를 열어 첫해는 성공적이었지만 다음해에 많은 인파가 신청하여 각지에서 몰려왔으나 그물에 고기가 걸리지 않는 바람에 환불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교통이 불편했던 때 다녀온 경험이지만 썰물시간대에 맞춰 하산하여 갯벌에서 꽤 많은 동죽조개를 잡아 집까지 가져갔었고 인천부두로 떠나는 배 위에서 조개를 구워 술 한잔하며 선상주를 했던 멋진 추억이 남아 있다. 여름철에 서해바다로 나가면 이런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1시간만에 잠진도 포구에 도착,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일행과 합류한 후 정기여객선 카페리호에 차를 싣고 8분만에 무의도 선착장에 하선했다.
흰 갈매기 떼가 배가 출발하자 꺼억꺼억 ---하고 선회하며 따라온다. 이곳 갈매기는 여행객들이 던지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습관이 돼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아침 10시---그러나 일부 대중교통으로 오시는 분들이 배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30여분 지체,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아침식사를 못한 어르신 몇 분은 바지락칼국수를 시켜서 요기를 한후 11시가 다 되어서 등산이 시작되었다. 오늘 처음 참석하는 부부팀 새식구도 있었다.
큰무리선착장의 등산안내판에 보니 실미도 해변 방향으로 국사봉(國師峰 해발 230m)을 먼저 오른 후 다시 하산해서 구름다리를 건너 호룡곡산(虎龍谷山 해발 245m)정상을 거쳐 우회하여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가면 된다. 종주코스는 3시간여 걸린다고 한다.
무의도 선착장에서 간단히 칼국수로 요기를 하고
어제까지 비가 오고 날이 흐려서 안개가 낀 포구에는 고기잡이 배가 즐비하다. 밀물시간이라 갯벌에 덩그러니 걸쳐진 채 조용한 항구다. 오랜만에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갯내음에 모두들 날아갈 듯 기분이 상쾌한 아침이다.
한적한 어촌마을---잘 익은 산사과나무를 구경하고 오름길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엉겅퀴와 인동초(금은화), 취나물, 개불알 꽃, 수영꽃, 달맞이 꽃 등등 야생 들꽃이 피어 지나는 등산객의 시름을 한결 부드럽게 해주었다.
소사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한 좁은 비탈길로 들어서서 중간 쉼터에서 휴식하면서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로 건너편에 실미도(實尾島)가 뱀의 꼬리처럼 길게 누워있었다.
사실 무의도는 유명한 실미도사건과 천국의 계단 영화 세트와 멀리 보이는 인천국제공항 덕분에 최근 돈벌이가 좋은 관광명소로 유명해진 섬이 아닌가...
'실미도' 영화는 관객이 무려 1000만명을 돌파하는 흥행에 성공,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화로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이 일부는 사실과 다르게 개작되었다고 한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1968년 초 북한 124군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태이후 김형욱 정보부장의 특명으로 급조로 만들어진 소위 684특수부대원들이 훈련도중 특명이 바뀌어 해체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1971년 8월 섬을 탈출,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하여 서울로 진입하다가 서울 대방동에서 수류탄으로 자폭한 사건이다. 24명이 죽고 6명이 생존한 전대미문의 하극상 사건이었다.
이 때 무의도 어민은 그들 특수부대원에 의해 살해되기도 하고 강간사건이 일어나도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한 피해자였다고 한다.
이제는 언제 그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느냐는 듯이 섬은 아무 말이 없고 조석으로 무의도에서 걸어갈 수 있게 길이 열리고 있다. 영화 촬영 세트장은 당시 인천부시장이 무허가건물이라 하여 형체도 없이 완전 철거된 상태다.
여기서 50년 반공역사의 뒤안길을 회상하기도 하고 참외와 토마토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자작나무과의 소사나무가 하늘을 가린 오솔길을 달려서 첫 번째 봉인 국사봉에 12시 반에 도착했다. 정상표지석은 인천광역시 중구에서 검은색 대리석을 세우고 작은 철탑을 올려 정상을 표시하였다.
실제 실미도를 줄곧 구경보며 통일의 꿈을 꾸다
오늘따라 바람이 한 점도 없어 후덥지근하다. 좀 시원하게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좋으련만 날씨는 계속 꾸물거린다. 여행은 날씨가 받쳐주어야 하는데... 아쉬워하면서도 그래도 비가 안 와서 덥지 않고 좋다고 한마디씩 한다. 오늘도 국사봉에는 등산객들이 여럿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 왜 들 산에 가면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지 여기저기 숨어 있는 패트 병과 지저분한 종이와 캔음료 등이 도대체 양심을 가진 분들인지 얼굴이 뜨거워진다.
관에서 청소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산악인들은 스스로 자성해야 할 것 같다.
한참을 내려가니 쉼터 조망대가 나왔다. 오른편에 유명한 하나개 해안이 보이고 주변경치가 아름답다. 건너편에는 우리가 다시 오를 호룡곡산이 가로막고 서 있고 가운데로 길게 관통도로가 보인다. 오후 1시경 예의 도로에 당도하니 구름다리가 걸려있어 경계를 이룬다. 유행가 확성기를 틀어놓은 카페도 보이고 조그만 정자와 안내등산지도가 나왔다. 우리는 일행이 흩어져 내려오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려서 장대장의 지시로 다시 산에 붙었다.
시간은 1시 30분. 점심시간이 지나 배가 고픈 것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밥을 먹고는 등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므로 강행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샘터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등과 머리에서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헉헉거리며 당도한 호룡곡산 정상---2시 20분.
정상표지판은 없고 지적삼각점 만 덩그러니 박혀있었다.
"지적삼각점---이 시설물은 지적측량의 기준이 되는 지적삼각점으로 국가의 주요시설물이오니 훼손돼지 않도록 적극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명칭 인천 7 높이 245.56m 2003.6.28 인천광역시장."
국립지리원의 안내문에는 현재 위치가 동경 126도 25부 북위 37도 22부로 나와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발이 말을 안 듣는다. 널찍한 정상바위에 빙 둘러앉아서 꿀 같은 중식을 게눈 감추듯이 끝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 산행에서는 모두 귀한 술을 안 갖고 와서 지도위원이신 박성극 선생님은 혀를 차며 몹시 아쉬워하고 빨리 하산하잔다.
3시 정각. 하산명령에 가장 빠른 지름길로 들어서서 쏜살같이 내려갔다. 힘은 안 들어도 군데군데 미끄러운 진흙 비탈길이 위태위태하다. 모두 잘도 달리고 잘도 내려간다. 부처바위를 지나 중도에 삼거리에서 한번 쉬어 숨을 고른다.
언제나 산행에 앞서 자작시를 써 오셔서 낭독까지 해주시는 양희철 선생님의 시 낭독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어떤 시일까 궁금하다.
뻐꾸기 울어
뻐꾸기 우는 소리에
산허리 안개 걷히고
뻐꾸기 부르는 소리에
꽃은 피네 지네
뻐꾸기 울어라!
산에 들에 꽃내음 잎푸름으로
뻐꾸기 울어 예니 해는 솟아라 밝아라
고향의 흐드러진 꽃둔덕
정조식 벼포기 하늘거리는 들판
밭머리 뽕나무
뻐꾹 뻐꾹 부르는 소리
장안산 산그늘
벽남호(湖) 잠길 때 까지
뻐꾹! 뻐구기 불러 왔노라 섰노라.
고향의 정 얻으러 받으러
잠깐 정말 잠깐만이라도
고향에 담기고 파서
2005 7.10
전북 장수가 고향이신 양선생님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뒷동산인 장안산을 다녀오신 소감을 적은 것이다. 너무 오래 고향을 등지고 살아서 감회가 남다르며 마치 이방인이 간 것 같아 소외감이 많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박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30여년을 옥고를 치르신 장기수이시고 통일운동의 대부이며 원로 시인이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정하여 창작과 연구에 몰두하시고 계신 분이다. 일전에는 금강산 관광을 신청했는데 국정원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입북허가를 내주지 않아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함께 복역했던 다른 분은 지난달 통일부 주관 하에 남북고위급통일회의에 민간인 출신으로 평양을 다녀오셨다고 했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 후배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선생님의 시를 경청하고 다시 하산하다가 물소리가 요란한 계곡으로 내려섰다. 먼저 도착한 팀이 세안와 세족을 하더니, 뒤에 내려간 청년들은 웃통을 벗고 아예 등목을 한다. 참으로 시원한 광경이다. 나는 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짓궂게 사진을 눌러댔다. 사진관에서 뽑아줄지 모르겠다.... 하긴 해수욕장 사진도 빼주니까 이 정도야...
뒤에서 보니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엉덩이와 허리춤까지 젖어 있었다. 어느 분은 아예 웃옷을 빨고 있다. 벌써 4시다. 하지가 지난지 얼마 안되어 아직 해가 질 시간은 멀었지만 서울까지 가려면 꽤나 늦어질 것 같다.
서둘러 계곡길을 내려가니 여기 저기 이섬의 생태계 안내판이 나오고 곧 유원지 입구---'호룡곡산 삼림욕장' 간판이 보인다. 휴---이제 끝났다.
총 5시간의 긴 섬여행이었다.
나는 국사봉 정상에서 만든 소사나무 지팡이를 후답자가 이용하도록 담벼락에 잘 놓아두었다.
섬마을 횟짐에서 푸짐한 하산주로 마감하고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야영 하루 15000원이란다. 무엇을 구경하는데 길을 막고 돈을 받는지 모르겠다. 그냥 들어서려니 안 된다고 한다. 결국은 우리가 정한 섬마을 회집 식당에서 부담키로 하고 통과했다. '천국의 계단' 영화 촬영 세트가 나왔다. 하얀 집이 해변가 언덕에 서 있고 정원이 잘 조성되어 그럴 듯하다. 입구에는 커다란 피아노를 만들어 놓았다.
이 걸 구경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이 섬도 이제는 돈에 눈을 뜬 것이다. 관리사무소도 있고 수퍼, 민박, 횟집, 방갈로 등도 생겼다.
전주 덕진동이 고향이라는 아줌마가 하는 섬마을 식당(031-752-4587)에서 고동(소라)과 동죽조개 국과 생선회와 매운탕에 식사까지 푸짐하게 하산주를 들이켰다. 나도 오랜만에 만난 여러 산동지들과 어울려서 취하도록 마시게 되었다. 오늘 처음 참석하신 박남근 부부는 앞으로 열심히 참석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일일이 돌아가며 장대장으로부터 자기소개를 받았고, 특별히 오랜만에 참석하신 곽태영선생님(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 상임대표)은 우리가 자주 독립국가로서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눈치 볼 것 없이 남북통일의 주체가 되자고 강변하시며 오는 15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에 참석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저녁이 다 되어 어스름한 해를 뒤로 하고 마을버스를 타고 선착장에 도착, 7시경 배를 다시 갈아타고 잠진도로 건너가 다음주일 정선 가리왕산 1박2일 등반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이날 오랜만에 찾은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무의도의 국사봉--호룡곡산 등산은 다시 한번 섬 산행의 재미를 한껏 업그레이드 해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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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죽 산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