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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시편131:1~3 -
주님의 사랑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그 동안 평안히 잘 지내셨는지요?
한국은 이제 막바지 추위를 보내고 곧 다가올 새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지요?
한국도 예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겨울을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사는 이곳 다바오는 기후변화의 여파로 작년 말부터 우기(雨期)때 인데도 거의 비가 오지 않아서 무척이나 더웠고, 또 요즈음은 원래는 점점 더워져서 다음 달부터 필리핀 전역의 학교가 여름방학을 해야 하는데, 아침 저녁으로는 예전과는 또 다른 약간의 선선함까지 느껴지고 있습니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다보니 자연스럽게 감기를 비롯해서 면역력 저하에 따른 다양한 환자들이 늘고 있고, 한편 비가 오지 않아서 저수량이 부족하다보니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이곳에선 하루에 2시간씩 정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전과 단수가 일상이 되다보니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지요. 어두운 저녁, 정전으로 인해 커다란 양초에 불을 밝힐 때마다 가끔씩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호사(好事)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늘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만물을 새롭게 보여주시는 새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들의 삶이 더욱 더 활기찼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보내주시는 사랑과 기도에 늘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귀한 손길, 눈길, 마음길 위에 하나님께서 더 복된 것으로 채워주시고 갚아주시기를
기도드리며, 그간의 있었던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누겠습니다.
1. 지나온 이야기들
작년 12월 9일(수)에는 브로큰샤이어 병원에서 진행하는 “Porridge for health(건강을 위한 야채 죽)”이란 자선행사에 참여하여 침과 뜸 치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열악한 환경가운데 살며 몸이 약하신 분들을 선정하여 섬겨드렸습니다. 이곳 필리핀에서도 침에 대해선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비해 뜸은 좀 생소하게 여겨져서 파워포 인트를 준비하여 한국의 쑥과 뜸을 만드는 과정 을 일일이 보여주고 그 탁월한 효능도 설명을 해 주었지요. 확실히 강의를 통한 전 이해를 갖고 치료를 하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일전 편지에서 소개해 드렸던 엘라라고 하는 필리핀 여인과 그녀의 남편 납, 그리고 이점주 선교사님이 옆에서 강의안을 시부아노어로 번역해주고 설명해 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곳은 우리와는 좀 다른 문화가 있는데, 모든 종류의 강의가 끝나고 나면 반드시 강의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을 갖습니다. 강의실 이곳 저곳에서 호기심에 찬 표정과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침과 뜸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의 나이가 100세시고 지금도 현역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계신다고 했더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을 하며 놀라워들 하더군요. 그 날, 병원 인근에 사시는 가난하고 몸이 편치 못한 이웃들 아홉 분을 정성껏 치료해드렸고, 병원 측에서 준비해준 감사패와 작은 선물도 받고 보람된 하루를 잘 보내고 왔습니다. 2016년 1월 8일(금), 드디어 앞으로 3개월의 일정으로 병원 직원 가운데 난치성 환자 10명을 뽑아서 12번에 걸쳐 매주 금요일마다 치료를 하기로 하고 첫날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번 자선행사 때와 같이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기도를 하고 치료를 했습니다. 환자들은 주로 당뇨, 고혈압, 심각한 피부질환, 유방암 초기, 어지럼증, 관절염, 천식 등등이었습니다. 환자들을 치료하기 전에 저에 대한 소개를 했습니다. 나는 의사이기 이전에 목사이다. 나도 많이 아파 본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 또한 이 치료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나는 다만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이 분들이 모두 크리스천이다 보니 무언의 교통이 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더군요. 미리암이라고 하는 50대 후반의 여인은 제가 그녀의 손을 잡고 “많이 힘들었지요?”했더니 그 자리에서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겁니다. 이 여인은 온 몸이 멍이 든 것처럼 피부가 검은 색으로 변해있어서 한 눈에 보기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었으리라 예상했는데, 눈물을 훔치면서 그녀가 최근에 겪은 크나 큰 상실감에 대해 들려줍니다. 최근 2년 사이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셨답니다. 자세한 가정사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상실감이 너무도 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피부질환은 2년 전부터 더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본인은 스커트를 좋아해서 그것을 입고 싶어도 피부가 그렇다보니 입지를 못하고 또 금속알레르기도 있어서 몸에 쇠붙이 장식을 할 수도 없다고 힘들었던 얘기를 나지막이 들려줍니다. 그러나 그녀가 마음을 열고 치료를 결정한 순간, 이미 회복은 시작이 된 겁니다. 첫날이라 모두들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잘 따라주고 잘 치료에 응해주어서 힘들었지만, 잘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 주 금요일은 하루 온 종일 그 분들과 보내게 됩니다. 두 번째 치료부터는 깔리라고하는 퉁퉁한 병원 코디네이터가 합류를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병원장의 비서 격인데 병원장과 저 사이에서 중간 전달자 역할을 하다가, 어느 날인가 병원장 사무실에서 병원장을 만나기 위해 쇼파에 둘이 앉아있는데, 그 뚱뚱한 몸에 땀이 비오듯하고 연신 기침이 멎지를 않는 겁니다. 물어보니 기침이 10년도 넘었다네요. 원한다면 내가 지금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하자 순간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치료를 원한다는 겁니다. 잠깐 치료를 하고나자 금방 숨 쉬기가 좋아졌다고 환한 미소를 짓네요. 아마도 본인도 근본적인 치료를 원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위치도 있고 해서 미안해하던 차에 제가 지난 첫 번 치료 끝내고 등을 좀 떠밀었습니다. 끼어서 같이 하자고. 그렇게 해서 총 11명의 환자를 지금까지 잘 치료해 오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한 분 한 분을 어루만지시는 게 매 주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네요. 환자들 전체적으로 얼굴이 밝아졌고 피부색도 환해졌고 덩달아 마음도 많이 행복해보였습니다. 그 분들이 저한테 그런 고백을 합니다. 자기들은 매 주 금요일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린다고. 이 때 그 분들이 표현한 영어 표현이 waiting for가 아니라 looking forward to를 쓰면서 말입니다. 이럴 때 참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지난 2월 19일(금)에는 7차 치료를 마치고 중간 점검 겸 병원장 사무실에서 모든 환자들이 모였습니다.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그간의 변화과정과 궁금했던 점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혈압이 정상이 되었고, 어지럼증이 멎었고, 류마티스가 나았고, 천식이 멎고 피부색이 밝아지고 있고 전부다 좋아지고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병원장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감사했지요. 필리핀은 아무래도 전산시스템이 한국처럼 발달이 되지 않아서 모든 서류에 일일이 손으로 싸인을 해야 합니다. 병원장의 하루일과 거의가 싸인을 해주는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2년 전부터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싸인을 하느라 구부러지면 저절로 펴지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왼손으로 힘껏 펴주면 그제서 툭하며 통증과 함께 원위치로 돌아오곤 했답니다. 그러던 것이 이 번 치료를 통해 거의 완치가 되어서 저절로 피고 굽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행복한 기념촬영을 했지요.
1월 9일(토)에는 민선협(민다나오선교사 협의회) 체육대회가 있어서 참여하여 함께 운동하고 점심 먹고 집에 왔는데, 코피노 사역을 돕고 있는 박집사님이란 여자 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센터에 나오는 마크리라는 코피노학생이 허리를 굽히고 지금 펴지를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크리는 우리 나이로 17살인데 영락없는 한국인으로 아주 잘생긴 청소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인인데 본인은 얼굴도 모르고, 밑으로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4명 있는데, 어린 동생들을 극진히 돌봐주고 챙겨주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음에도 필리핀 엄마는 유독 큰아들만 미워하고 구박을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신을 버리고 간 그 미움에 대한 행위일 겁니다. 조그마한 집에서 동생들 건사하고 마크리는 늘 시멘트 날바닥에 잔다고 하네요. 그래서인지 늘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서 안쓰러웠다고 박집사님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체크를 해보니 신장이 많이 약해져있어서 잘 치료를 해주었더니 허리가 펴졌습니다. 멋쩍게 그리고 환하게 웃는 마크리를 보면서, 잠시 이 땅의 또 다른 마크리들을 떠 올려보았습니다. 해야 할 소중한 일들이 우리 곁엔 얼마나 많은가?
1월 11일(월)에는 지난 번 사말섬 봉사때 변을 못 봐서 고생하던 여인의 간절한 요청이 있어서 2차 진료를 갔다 왔습니다. 가서 보니 그동안 복용해왔던 약은 완전히 끊었더군요. 아주 잘된 일이라고 감사하다고 칭찬해주고 치료를 해드렸지요. 본인 생각에도 한 번만 더 치료를 받으면 완치가 되겠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소문을 듣고 찾아 온 현지 주민들 몇 분도 함께 치유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1월 19일(화) 힐링트리 때는 지난 12월 9일 ‘건강을 위한 야채죽’행사 때, 침뜸에 대한 강의를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데 유독 맨 앞에서 제일 많은 질문을 하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질문인즉, 자신은 78세인데 모든 기능이 정상인데 다만 귀가 안 들린다고 혹시 치료가 가능하냐는 거였습니다. 당일에는 다른 환자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증상에 속해 치료를 받을 수 없어서 저희 집 주소를 드렸더니 그걸 가지고 찾아오신 겁니다. 양쪽 귀에다가 침을 꽂아놓고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내주었더니 화색이 만연하면서 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그 뒤로도 한 번 더 오셔서 잘 치료받고 가셨습니다. 그 날 또 한명의 인상적인 환자가 계셨는데, 필리핀에서 건강식품으로 가장 인기가 좋은 한 회사 사장과 부사장이 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둘 다 여자 분인데, 부사장은 전에 누구의 소개로 그 회사를 방문했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의 테니스엘보를 치료해 준 게 계기가 되어 자신의 사장을 모시고 온 것이었습니다. 여사장은 팔과 다리에 백반증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이 분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또 많이 받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백반증은 침뜸 치료로도 잘 치료가 되지 않는 질환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정성껏 두 분다 치료를 해드렸더니, 사례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목사요 선교사다. 벽에 붙어 있는 플랭카드처럼 독립된 치유센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더니, 자기네 땅이 많다는 겁니다. 원한다면 땅을 무상으로 빌려줄 수 있다고 해서 우선 기도해 보자고 하고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분들은 독실한 크리스쳔이라고 들었습니다.
1월 20일(수) 오후에 아이들 학교 픽업을 나가다가 시속 40km 과속운전(?)으로 딱지를 뗐습니다. 다바오는 참 재미난 도시입니다. 필리핀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거의 모든 시내 지역의 제한 속도가 시속 30km입니다. 도로에서 불법 U턴을 해도 괜찮고, 끼어들기, 꼬리 물기, 아무 곳에서나 좌회전 모두 가능하지만, 속도만은 안 됩니다. 나름의 멋진(?) 원칙을 가지고 있는 곳이지요.
1월 25일(월)부터 27일(수)까지 마닐라에서 우리 교단 선교사 전체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는 선교사회 회장이신 차훈 목사님과 한국의 몇몇 교회의 목사님들이 현지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쉼과 충전의 시간으로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아내와 잠시 상의를 했습니다. 침통을 들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들고 간다면 일하러 가는 것이고, 두고 가면 쉬러가는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 늘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핑계 거리를 찾을 때마다 하나님께선 달란트비유를 생각나게 하십니다. 비록 한 달란트 작은 재능이지만, 땅에 묻어 두겠느냐? 결국 침통을 챙겨가서 이틀 밤을 거의 새벽 2시까지 틈나는 대로 선교사님들과 가족들, 심지어는 오신 강사 목사님과 사모님까지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많이 힘들고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Healing Tree치유사역은 작년 9월 15일(화)에 시작된 이래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주도 빼놓지 않고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매주 평균 10명에서 15명의 환자들이 찾아와서 치료를 받고 교제를 나누고 형편껏 점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박 사장님이란 분은 저희 환자 가운데 VIP이십니다. 왜냐하면 환자들 가운데 제일 중증 환자이십니다. 아직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휠체어 신세를 지고 사시지만, 그 분의 의지력과 열심만큼은 참 높이 사드려야 합니다. 그 분을 업고 와서 치료를 끝내고나면 그 가여운 형편 앞에 저절로 기도가 쏟아져서 함께 둘러서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 분이 저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걷게 되면, 저를 업고 뛰겠다고 하셨고, 멋진 치유센터 건물도 지어주신다고 했는데 이 거짓말 같은 약속을 믿어야겠지요?
저희 가족은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봄, 가람, 샘이 모두 학교생활 잘하고 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모든 면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큰 아이 봄이가 곧 대학에 갈 시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가람이도 곧 뒤따르게 되겠구요. 그래서 제가 봄이와 가람이를 데리고 겸사겸사해서 잠시 한국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내 손희종 선교사는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렀습니다. 지난 1월 마닐라 모임 때, 여기 다바오에 계신 동료 선교사님이 함께 비행기 티켓팅을 하면서 제일 싼 표를 끊다보니 가는 날은 꼭두새벽에, 오는 날은 밤 늦게 이렇게 가고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더 일찍 일어나서 애들 도시락이며 등등을 준비해두고 그렇게 마닐라 숙소에 도착해서는 역시 밤늦게까지 여러 분들 치료를 도와 드리고, 다바오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병원 사역을 하다 보니 몸이 많이 힘들었었나 봅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하혈이 멈추지를 않고 거기에다 설사 역시 멈추지를 않아서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잘 먹어야 그나마 소진된 혈액을 보충할 수가 있는데, 도무지 먹을 수가 없으니 퍽이나 염려가 되더군요. 꼼짝없이 누워서 자의반 타의반 쉼의 시간을 보내면서 동시에 열심히 치료를 하고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고 3주 정도 지나자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몸이 이곳 기후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전에 같으면 덜컥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이곳에서 회복하고 이겨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고 해서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은혜 입은 종으로서 아주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별 것 없는 재주지만, 저를 필요로 하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비록 몸은 많이 피곤해도 여러 환자들을 섬기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을 정해서 한 날 온전히 치료봉사를 하고 있지만, 다급한 환자들 가령, 구완와사가 온 경우, 급히 허리를 삔 경우, 아이들이 발목과 무릎을 다쳐서 온다든지 하는 경우는 요일에 관계없이 치료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이야기들이 지난 3개월 사이에 있었네요. 돌아보니 또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2. 앞으로의 이야기들
2016년 1월 8일(금)부터 매주 금요일 시작된 병원사역은 이미 병원 측과 약속한대로 3월말까지 해서 총 12번에 걸쳐서 마무리되게 됩니다. 3개월 정도 꾸준히 치료를 하면 그 어떤 병도 상당한 호전을 보이고, 또 완쾌도 되는 경우를 보아왔기에 기간을 그렇게 잡았던 것이지요. 그 이후에는 매주 치료를 마치고 환자와 나누었던 인터뷰들을 종합해서 치료 전과 진행 과정 그리고 치료 후의 몸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병원 이사진들에게 보고를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협의를 거쳐서 침뜸 클리닉 개설이나 보다 체계적으로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트레이닝센터와 같은 실질적인 일들이 펼쳐지길 소망해 봅니다. 이곳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전 과정 위에 귀한 은혜를 더하시기를 기도드릴 뿐입니다.
적잖은 나이에 또 하나의 언어를 익혀나간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아실 겁니다. 이제 겨우 영어에 눈을 조금 떴지만, 그걸 토대로 이곳의 언어인 시부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처음 생각에는 영어만 충실하게 해 두면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또한 동시에 두 개의 말을 배우는 게 저희로서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영어에만 집중을 하자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살면 살수록 또 장기 사역을 구상하며 준비할수록 현지어인 시부아노어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환자들을 치료해보아도 그렇고 시골 교회를 다녀 봐도 그렇고 진짜 속 깊은 마음의 대화는 모두가 시부아노어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현지인들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현지어에 능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쉽지 않은 여건들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 다녀온 후 올해 6월부터는 아내와 함께 한 6개월 정도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시부아노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기도 중에 있습니다.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UCCP) 남부 민다나오노회 노회장인 로프랑코 목사와는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갖고 있는데요, 언젠가 저에게 노회장으로서의 고충이랄까 안타까움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UCCP산하의 시골 지역 많은 교회들이 처지가 어렵다보니 목회자를 섬길만한 형편도 못되고 실제로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꽤나 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렇다면 그런 형편이 어려운 교회를 섬기는 것도 귀할 것 같아 혹시 영어 예배가 가능한 교회가 있다면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을 전에 했었습니다. 노회장이 그러마하고 약속한 시점이 이번 6월입니다. UCCP체제는 과거 카톨릭 전통이 있어서 모든 교회의 교역자들을 2년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시킵니다. 그렇게 2년이 되는 시점이 올해 6월인 것이지요. 현지교회를 섬기게 되면, 여러 가지 것들을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저에겐 주어질 것 같습니다. 다만, 교회를 섬기는 일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 힐링트리 치유사역을 어떻게 병행해 갈지가 현재로선 숙제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할 뿐이지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저와 봄, 가람 두 아이가 3월 29일(화)부터 5월 9일(월)까지 6주간 한국을 다녀옵니다. 두 아이는 방학이어서 곧 있게 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학원을 좀 다닐 예정입니다. 서울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저희로서는 참 감사하게도 총회 선교사안식관에 마침 방 하나가 비어서 은혜 가운데 그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해 주시고 마음 모아 주시는 교회들과 개인 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저에게 그러한 은총의 기회를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다가올 새봄,
눈에 보이지 않던 생명들이 겉으로 드러나 만물을 풍요롭고 충만하게 채워가듯이,
저와 여러분 속에 숨어있던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눈망울들이 영롱한 믿음의 새싹으로
피어나는 복된 시간들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언제나 보듬어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손길,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은혜로 강건하시고 평안하소서.
2016년 2월 29일
선교지 다바오에서
이영일, 손희종, 이봄, 이가람, 이샘 올림.
* 기도제목 *
1. 3월 말까지 치료하는 11명의 환자들과 향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위해
2. 힐링트리 치유센터를 위해
3. 섬기게 될 현지 교회와 성도들과의 귀한 만남을 위해
4. 새롭게 시작하는 시부아노(현지어) 공부를 위해
5. 한국 방문(3월 29일~5월 9일)과 서울에 머물게 될 아이들을 위해
첫댓글 긴 글을 읽으며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및 줄을 그어가며 읽기도 하고
사모님의 건강이 염려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가정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목사님 뵈올 날이 기다려 집니다.
사모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목사님 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권사님.
늘 글을 쓰고 나면 부끄러움이 밀려오지만,
다만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희를 다듬어가시고 이끌어가시는
오묘한 손길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귀하신 백목사님과 모든 쌍샘 식구들, 영육간에 강건하세요.
조국에서 꽃피는(?) 봄날, 뵙겠습니다.
목사님 따뜻한 봄에 뵙겠습니다. 청년들도 기다리고 있어요 ^^
강건하시죠...?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봄. 가람. 샘...늘 가슴에 와 닿는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늘 부르던 그 이름들입니다
꽃 피는 완연한 봄날 뵙겠습니다.
그 날이 기대됩니다.
믿음직스러운 재훈 군, 늘 변함이 없으신 백집사님, 감사드립니다.
이미 꽃처럼 아름답게 사시는 분들이 계신 쌍샘은 이미 꽃밭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