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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번뇌를 다 잊고서... 순천 조계산 (선암사⇒송광사)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홍매화 흐드러지게 피어
승선교 핏빛으로 물들일 봄이 오면 갈까?
가을 날, 노을처럼 고운 단풍에
눈물 울쿡울쿡 쏟아내며
선암사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나 볼까?
그러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조계산이 생각난다.
선녀가 내려왔다는 강선루
신선이 노닐던 우화각
.................
조계산에 오면 꼭 연락하라던..
산우님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건만
늦게 찾은 죄책감에
감히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한 채
이른 새벽
곤히 자는 적토마를 깨워 집을 나선다.
...................
산행지 : 순천 조계산(선암사-장군봉-연산봉-천자암-송광사)
일 시 : 2006. 3. 19(일)맑음
산행자 : 꼭지(아내)와 둘이서
교 통 : 자가운전
차량회수 : 송광사⇒순천역(버스30분간격 1:30소요)
순천역⇒선암사(버스30분간격 50분소요)
06:30 주차장 -산행시작-
06:50-07:30 선암사
09:00 선암사굴목재
09:40 배 바위
10:00-10:20 조계산 장군봉
11:40 연산봉
12:10 송광굴목재
12:25 천자암봉
12:40 천자암
13:25 비룡폭포
13:35-14:10 송광사
14:30 매표소
총 산행시간 : 8시간
차량운행거리 : 서대구⇒선암사(220km 2:30소요)
▲산행개념도 “부산일보 산&산” 에서 발췌
순천 조계산의 개요
조계산은 소백산맥 줄기의 끝자락에 솟아 있으며 해발 884m로
비교적 낮으며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주암면 일대에 걸쳐 있으며 나이가 수십년이 넘은 활엽수림과
단풍나무가 많아 철 따라 경관이 뛰어나고 사계절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피아골·홍골 등의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온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렸으며 송광산(松廣山)이라고도 한다.
본래 이름이 청량산이었으나 대각국사 의천이 이름을 조계산으로 바꾸었다 한다.
조계산 서쪽 기슭에는 삼보사찰의 하나인 송광사(松廣寺)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 기슭에는 선.교종의 중심사찰인 선암사(仙巖寺)가 있다.
조계산은 두 거찰을 빼놓고는 산행의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선암사와 송광사 그리고 천자암은 꼭 들러야 한다.
아침7시에 산행을 시작하면 점심시간에는 산행이 끝날 터
그때 식당에 가서 대 일본전 야구 중개도 보고
낙안읍성도 둘러보고, 낙안온천에도 가고
계획은 거창했는데
..............
순천까지 4시간을 예상하고 새벽3시에 출발해 구마고속도 남해고속도를 거쳐
선암사에 도착하니 웬걸 아직도 깜깜한 밤중(05:30)이다.
“흐미~~ 너무 빨리 왔네.”
그 넓은 주차장에 우리 차 한 대 뿐이다.
일등이다.
아직 매표소아저씨도 출근 전이다.
꼭두새벽부터 전화해 입장료 받으라고 불러낼 수도 없고..
어쨌든 공짜는 꼭지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날이 밝을 때까지 차안에서 1시간정도 선잠으로 시간을 보낸다.
“태고종찰” 선암사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고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하였으나 영조(英祖)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海鵬)이 다시 중창하였다.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의 당우(堂宇)가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佛閣) 9동, 요(寮) 25동, 누문(樓門)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특히 이 절은 선종(禪宗)·교종(敎宗)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松廣寺)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修鍊道場)으로 유명하다.
365일 꽃이 지지 않는 산사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만다라”와 “아제아제 바라아제”,“취화선” 등의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로 깊고 오래된 화장실인 뒷간(해우소)과 800년 전통의 야생차밭,
그리고 자연석을 무지개처럼 이어놓은 승선교(보물400호)가 유명하고
주요문화재로는 신라 때 이중기단 양식의 삼층석탑(보물395호)과
웅장한 대웅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41호)이 있다.
06:30이 되니 날이 서서이 밝아온다.
산행준비를 하고 주차장 화장실을 지나니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다.
조계산은 따뜻하여 소강남이라 했다는데 그건 옛말인가 보다.
찬바람 생생 부는 영하의 날씨라 쌀쌀하건만
계류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니 봄은 봄인가 보다.
▲선암사 가는 길.. 좌측으로 이어진 계류
해학적인 미소로 반겨주는 선암사 목장승을 지나니
스님 한 분이 휴지통을 들고 길가에 휴지를 줍고 계신다. 가볍게 인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수행의 손길.. 천년고찰 선암사의 모습이다.
▲선암사 목장승
“선녀는 무지개 타고..”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
승선교는 호암화상이 6년여 공사 끝에 완공한 홍예(무지개다리)로 숙종24년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어 자살을 하려고 했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했는데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과 절 입구에 승선교(보물 400호)를 세웠다고 전한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1
무지개다리사이로 보이는 강선루는 선경이다.
선녀가 목욕하고 강선루에서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승선교의 아름다움에
꼭지가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다.
▲선암사 승선교와 강선루2
“해탈을 일깨우는” 선암사 삼인당(三印塘)
삼인당은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1980년 전라남도기념물 46호로 지정되었다. 도선(道詵:827-898)이 축조한 것이라
전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인 삼법인(三法印)을 줄여 지칭한 것이다.
▲삼인당 연못
삼인(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精印)
즉,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존재하는 것 또한 무아임을 깨닫는다면
일체의 속박과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한다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눈물 없이 찾을 수 없는..” 선암사 해우소
400년이나 된 깊고 그윽한(?) 해우소는 일주문을 들어서면 좌측 성보박물관 옆에 있다.
근심을 풀어준다는 해우소(解憂所),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워 유일하게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뒤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읽어야 “뒤깐”이 된다.
▲청소하시는 스님들과 해우소(대변소/뒤깐)
정호승시인이 “눈물이 나면 선암사 해우소로 가라.” 했으나
청승맞게 변소에 앉아 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그 유명한 해우소를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일
따스한 햇살이 청소하시는 스님들의 어깨너머로 빗살처럼 파고든다.
▲깐뒤(뒤깐)
해우소에 들어서니 밖은 훤히 내다보이고 시골 화장실 그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좌측은 남자용 우측은 여자용인데 너무도 깨끗하다. “역시 절간의 화장실은 다르구나.”
고요한 정적.. 역시 이곳에 앉아 엉엉 소리내어 운다면 운치도 있을 것 같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 정호승
▲무채색의 소박한 선암사 대웅전
▲선암사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40여분 선암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산행을 시작한다.
선암사우측으로 가면 장군봉으로 바로 오를 수 있으나 유명하다는
보리밥집을 빼놓을 수가 없어 삼인당 좌측으로 선암사굴목재로 향한다.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다는 선암사 계곡도 보고 싶고
소문난 보리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파전으로 막걸리한잔을 걸치고 싶었다.
보리밥집을 가려면 선암사골로 올라야한다.
▲선암사굴목재 가는 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리 보리밥에 동동주 한잔하고 정상으로 가자.”
편안한 오솔길이 울창한 편백나무숲을 지나면서부터
등로는 경사가 심한 급경사 돌길로 이어진다.
“무어 조계산이 부드럽고 편안하다.”고 드디어 꼭지의 투정이 이어진다.
꼭지의 입을 막기 위해 또 스틱으로 잡아당기며 오른다.
그렇게 30여분 땀깨나 흘리고 올라서니 드디어 선암사굴목재다.
▲선암사굴목재
굴목재에 올라서면 바로 보리밥집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정표에는 보리밥집까지 10분이라고 되어있다. 헉~~! 그것도 급경사 내리막이다.
꼭지의 걸음이라면 왕복 30여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몇 발자국 내려서니 아니라 다를까 꼭지가 마음이 변한다.
“나 밥 안 먹을란다.”
“~~~~?????”
이 길을 내려갔다가 어떻게 다시 또 올라 오냐며 차라리 굶더라도
보리밥집 포기하고 그냥 장군봉에 가서 컵라면이나 먹자고 한다.
“쩝~~ 동동주는 물 건너 가벼렸네.”
▲장군봉가는 길의 시누대(산죽) 터널
“노아의 방주” 배 바위
장군봉 가는 길은 좋아하는 산죽(시누대)이 드문드문 이어져 운치를 더해준다.
배 바위 아래에까지는 유순한 오솔길로 이어져 걷기는 편하나 능선좌우로
잡목 때문에 조망이 없어 약간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배 바위에 올라서니 전망이 좋고 가슴이 확 트인다.
뒤쪽으로는 장군봉이 지척이고 건너편에는 가야할 연산봉이 어서오라며 손짓한다.
앞쪽으로는 멀리 호남정맥인 깃대봉과 고동산까지의 마루금이 선명하다.
▲배바위에서 바라본 깃대봉과 멀리 고동산 방향
배 바위는 조계산에서 보기 드문 귀한(?) 바위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대 홍수가 발생하자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처럼
사람들이 가축과 농작물씨앗을 배에 싣고 물이 차오르자 이곳 바위에 배를 묶어
물이 빠질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고 한다.
▲배바위에서 바라본 선암사와 멀리 상사호
실제로 1900년까지만 해도 배 바위에 붙어있는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었다고 하니 믿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또 하나는 소백산의 신선봉처럼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고 해서 신선바위(仙巖)라 하고
<선암사>라는 절 이름을 지은 것도 이 바위로부터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늠늠한 모습” 조계산 장군봉
배 바위에서 장군봉오르는 길도 경사가 심해 10여분 헉헉대며 올라야한다.
“누가 조계산을 부드럽다고 했던가.” 꼭지의 투정을 뒤로하고 장군봉에 오르니
제법 넓은 공터가 있고 앙증맞은 정상석이 반겨주는데 조망 또한 탁월하다.
▲조계산 장군봉
▲장군봉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고동산 방향
▲가야할 연산봉과 그 너머 천자암봉
장군봉에서 연산봉가는 길은 갈참나무군락과 산죽길이 많다.
경사가 없는 부드러운 능선이라 걷기는 좋은데
얼어붙었던 등로가 녹기 시작하여 죽탕 길로 변해 진행하기가 불편하다.
바지와 등산화가 금방 흙투성이가 되니 봄이면 어딜 가나 치러야 할 전쟁인 셈이다.
▲연산봉에서 바라본 장군봉과 그 아래 우측의 배바위
▲연산봉에서 바라본 보리밥집
▲연산봉에서 바라본 주암호
“아름다운 조망처” 천자암봉
연산봉에서 30여분 내려오면 송광굴목재 안부
이정표에는 (보리밥집25분/선암사 90분/송광사55분/천자암→송광사 100분)이라 되어있다.
여기서 송광사까지는 55분이면 충분한데 천자암으로 돌아가면 결국 45분을
더 가야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천자암을 빼놓을 수는 없다.
▲연산봉을 내려서며 가야할 천자암봉과 그 아래 송광굴목재
힘들어하는 꼭지를 송광사로 바로 보내고 홀로 천자암으로 향한다.
그곳에 있다는 “영혼의 나무?” 쌍향수(곱향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송광굴목재에서 급경사의 산죽길을 치고 오른다. 간만에 등어리에 땀이 맺히니 기분이 좋다.
▲전망이 탁월한 천자암봉에서 바라본 장군봉
▲우측으로 봉산리의 평화로운 시골풍경
땀에 대한 보답인가. 천자암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너무나 좋다.
지나온 장군봉과 연산봉이 하늘가득 시야에 들어오고
발아래에 펼쳐진 봉산리 시골풍경이 평화로운 전경으로 다가온다.
이외로 시원한 조망..
큰 소득을 얻은 셈이 되었다.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 천자암의 쌍향수(곱향나무)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했다.
그것을 입증하는 나무가 천자암의 곱향나무(쌍향수)가 아닐까.
쌍향수는 수령이 800년이 넘은 향나무인데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었다.
▲천자암의 쌍향수1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스스로 생각하여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이를 보면 어찌 식물에 영혼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스승과 제자의 다정한 모습.. 천자암의 쌍향수2
“또 알바??” 천자암에서 비룡폭포 가는 길
천자암에서 송광사가는 길은 진흙탕이 아니고 솔잎이 잔잔히 깔려있는 오솔길이다.
그런데 가도가도 송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길이 틀렸나??”
기다리는 꼭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급해진다.
능선안부에 올라서니 좌측 능선쪽으로는 길도 뚜렷하고 표시기가 많이 달려있다.
좌측은 운구재를 거쳐 송광사방향일 것이다.
하지만 직진하면 비룡폭포어딘가에 떨어질 것이다.
산죽사이로 희미한 족적은 나 있으나 표시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한다?
엉뚱한 곳으로 가다가 또 알바 하느니
차라리 표시기 많은 뚜렷한 길 따라 가면 손해는 보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능선으로(운구재방향) 오르다가
“에이 그래도 이 길로 함 가보자.” 다시 내려온다.
한 번 더 지도를 펴보고 방향짐작을 한다.
길 없으면 치고 내려갈 각오로 10여m 내려서니 아니나 다를까 족적은 없어지고
계곡너덜이 이어진다. “아뿔싸 오늘 또 알바를!”
하지만 이젠 다시 올라갈 수도 없는 일이라 그대로 직진한다.
▲하산 길의 계곡너덜 길
이끼 낀 돌들이 서로의 등을 비비며 정적에 휩싸여
전혀 때 묻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계곡 전체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레지꽃망울
드문드문 이어졌다 끊어졌다 길을 안내해주는 산죽
바위사이로 이리저리 숨바꼭질 하며
실 같이 흐르는 계류,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가 싶더니
갑자기 시원한 폭포수가 암반을 가른다.
▲비룡폭포
비룡폭포!
하산했던 길은 폭포 상류계곡.
본의 아니게 폭포골의 비경을 보게 된 것이다.
폭포는 정상등로에서 약간 비껴나 있어서 조용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정표는 물론 안내표시도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 의문도 잠시
폭포에서 10여분 내려왔을까 그림 같은 능허교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철사에 꿰여 대롱대롱 다리아래에 매달린 엽전 세 닢
송광사는 그렇게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꼭지를 만난다.
“신선이 노닐던 피안의 언덕..” 능허교(凌虛橋)과 우화각(羽化閣)
다리위에 세워진 우화각이 개울물에 비추어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우화란 우화등선(羽化登仙) 즉 날개가 생겨 하늘을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는 뜻이니
사랑도 미움도 모두 다 훌훌털고 오르는 무념과 무욕
바로 피안의 언덕이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송광사의 능허교와 우화각
“무욕의 상징” 능허교 아래 여의주에 꿰진 엽전 세 닢
엽전 세 닢에는 스님들의 무서운 교훈이 숨겨져 있다.
옛날 이 능허교를 처음 만들 때 거기에 맞춰 예산을 세우고 화주를 하였는데
이 다리불사를 마치고 나니 동전 세 닢이 남았다. 이미 다리 만드는 일은 끝났고
그 남은 돈을 다른데 쓰자니 율장의 호용죄(互用罪)에 해당될 것이 뻔하다.
▲우화각 아래에 매달아놓은 "무욕의 상징" 엽전 세 닢
(남아도 걱정 모자라도 걱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나보다.^^)
어쨌든 이래저래 고심 끝에 그 다리 아래쪽 용머리 끝 여의주에다 철사를 꿰어
남은 돈 세 닢을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그 불사를 위해 마련한 돈은
그 몫으로 써야한다는 철저한 옛 스님들의 정신을 거기에다 꿰어둔 것이다.
“삼보(三寶)사찰” 의 하나인 송광사
송광사는 1200년 전 신라말엽 혜린선사가 송광산 길상사로 창건하였다.
그후 고려명종27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定慧結社)의 도량으로 정하고
가람을 크게 중창 조계산 수선사라 개칭하였으며 당시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고 열여섯 명의 국사 등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면서
고려말에 이르러 절 이름을 다시 송광사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송광사(松廣寺)는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로
불리고 있으며 우리나라 불교의 전통승맥을 계승한 승보사찰로 유명하다.
삼보(三寶)란 佛,法,僧 즉, 부처님(佛)과 가르침(法), 그리고 승가(僧)를 의미한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 한다.
▲송광사 일주문
▲화려함의 극치 송광사 대웅보전1
▲송광사 대웅보전2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꽃살창
▲승보전의 대포와 화려한 단청
“나무밥통??” 송광사의 비사리구시
옛날 남원의 송동면 세전리에는 수령이 8백년이 넘은 비싸리나무가 있었다.
조선 경종4년(1724년) 갑진년에 태풍으로 인하여 이 비싸리나무가 쓰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비사리나무를 세 토막으로 나누어 전국의 유명한 사찰로 보내려고 하였다.
그 중 제일 큰 밑둥을 곡성의 도림사로 운반하려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시 구례의 화엄사로 운반하려 했으나 역시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그만 포기했다.
고심끝에 마지막으로 순천의 송광사로 운반하려고 계획을 세우니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하여
이 비사리나무는 이곳 송광사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초대형 비사리구시(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음)
이렇게 운반된 비사리나무는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절간 주방의 구시로 만들어졌다.
이 구시는 영조이후 송광사에서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때마다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밥을 퍼 놓는 밥솥으로 사용되었는데 쌀7가마니(약 4천명분)의 밥을 지어 담을 수 있으며
송광사의 3대명물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송광사 담장을 곱게 물들이고 있는 산수유
거의 30여분 송광사 경내를 구경하고 돌아서니
담장 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가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꼭지의 발걸음에도 가벼운 미소가 실린다.
“산행도 오늘만 같아라.^^*
야구경기가 궁금해 얼른 식당으로 들어서니 6:0으로 지고 있다.
이기기를 바랐는데.. 아쉬움이 번진다.
능허교를 지나왔건만 나는 아직도 그 무욕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나 보다.
산채정식을 시켰더니 상이 부러질 정도로 푸짐하다.
하산주로 복분자1병을 꼭지와 주거니 받거니 비우고 나니
세상사 다 이 맛이라... 스르륵 잠이 몰려온다.
약간의 취기 속에 버스를 탔는데 비몽사몽간에 눈을 뜨니 벌써 순천역이다.
다시 1번버스로 갈아타고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가 넘었다.
산 그림자가 길게 주차장을 덥고 있다.
흐미~~ 차량회수하는데 3시간이나 걸리다니..
넙죽 엎드린 적토마가 투덜댄다. “택시 좀 타고다녀! 기다리다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
- 끝 - 감사합니다.
첫댓글 대구에서 서둘러 일찍 순천까지 가신덕분에 입장료 면제받고 호젓하게 소박한 선암사와 조계산 산행하시고, 화려한 송광사까지 뜻밖의 폭포골 상류계곡도 전세내어 즐거운 산행이 되었습니다..ㅎㅎ
저는 조계산이 대구에서 억수로 먼줄 알았습니다. 차량거리는 눌러보니 광주와 비슷하더군요 작년가을에 진작 다녀올 걸 후회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리에 미쳐서 눈에 뵈는 게 없었으니..
승용차를 이용하면 항상 문제가 되는것이 차량회수지요.. 산행시간보다 더지루한 차량회수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긴 덕분에 술 다깼으니 좋으셨겠습니다.ㅎㅎ 덕분에 봄이오는 조계산과 사찰 잘 봤습니다..
산사랑방님! 웬만하면 택시 이용좀 하이소. 그래야 택시도 묵고 살지요. ㅋㅋ 산사랑방님의 산행기를 읽고나서 저의 산행기를 한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2003년 9월14일 태풍매미가 쓸고간 그 다음날 선암사~장군봉~연산봉~송광사까지 12km 5시간 15분이라 적혀 있네요.
ㅋㅋㅋㅋ..그래서 산행기도 좀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원칙이 대중교통으로 차량을 회수하는 쪽으로 하고 택시는 불가항력일 때만 하기로 하였거든요.^^
준족이신 산사랑방님께서 8시간 걸린 이유는 곰탁곰탁 다둘러 보셨구만요. 과연! 산사랑방님 다우십니다. 저희가 못본 쌍향수며 비룡폭포며 눈이 휘둥그레 집니다. 이번 산행기를 통해 조계산 산행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좋은 모델케이스를 보여주셨습니다. 탄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이수영님의 칭찬은 달고 맛(?)이 있습니다. 예전에 김정길님이 알바 하나에 산행급수 한단계씩 오르고 죽을 고생하면 5단계 뛰어오른다고 하셨는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천자암에서 비룡폭포골로 떨어지 ㄴ사람은 아마 드물겁니다. 수영님 군침(?)나지요.~^*^
또한 이산행기를 통해 꼭지님의 파워가 어느정도인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 밥 안 먹을란다.] 하고 홱 돌아서면 동동주는 그림의 떡이 되는군요. ㅋㅋ 그리고 또 힘든 코스는 혼자만 내려가시는 건 또 뭡네까? 너무 꼭지님을 아끼시는것 아닝교? 우리처 보면 나 뜯기죽십니다. 너무하신다. ㅋㅋㅋ
ㅋㅋ.. 동동주만 그림의 떡 이 아닙니다. 잘못보였다간 잠자리도 그림의 떡이 되는 날이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제가 꼼짝을 못하지요. 급경사 오르막을 오를때는 스틱은 자동으로 뒤로 내밀어야 그날은 밤까지 온전하거든요.ㅋㅋ.. 아무리 그래도 수영님처럼 뜯기죽진 않습니다. 허허~~~
자..잠자리까지 그란단 말씀이십네까? 허어참! 옥문을 잠그는데야 어쩔 수 없겠군요. 허어참! 뜯기 죽는기 낫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