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다”
화려한 패션 피플의 전형, 1년에 몇 번씩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코스모폴리탄, 대한민국의 최고 자랑거리는 ‘여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극렬 페미니스트…. 심우찬 씨를 수식하는 말들은 이처럼 죄다 범상치가 않다. 그런 그가 최근 에세이집 <프랑스 여자처럼>을 출간하며 여자 시리즈 3부작을 마무리 지었다. <파리 여자, 서울 여자>, <청담동 여자들>, 그리고 이번 신간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년간 끊임없이 자신의 책은 물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자’ 이야기만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은 남잔데, 왜 여자 이야기를 하느냐”고. 패션 칼럼니스트로 많은 글을 써왔고, 또 그만한 인지도를 자랑했던 그이기에 패션 관련 에세이가 아닌 여자 이야기만을 책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예상을 벗어난 행보였다. 물론 패션이 여자와 많은 관련이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 여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성토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프랑스 여자들이야말로 가부장 사회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우리나라 여자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여자를 테마로 벌써 세 번째 책이다. 여자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내 직업이 패션 칼럼니스트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은 여성과 일을 해봤고,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내가 <파리 여자, 서울 여자>를 썼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여성들이 여전히 마이너리티로 대접받고 있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 남성 위주인 한국 사회가 너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한국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똑똑하고 잘난 것은 사실 아닌가. 의사나 판검사 쪽에도 여성 비율이 높아지면서 남자들 사이에서 역차별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니 말이다.
하긴, 각종 고시에서 여풍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는 뉴스가 매년 들린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이 어느 순간 한계에 직면하게 되니까. 그래서 똑똑한 여성들은 싸우기보다는 국가 같은 더 큰 권력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소위 ‘증’을 받는 거다. 사법고시를 봐서 변호사가 된다든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다든지, 외교관이 된다든지…. 그런데 이제는 여성 비율이 너무 높아지니까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 ‘군 가산점을 줘야 한다’며 억울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남자들도 있더라. 나도 이해는 된다. 머리 나쁜 남자들로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오케이. 남자들한테 가산점을 준다고 치자. 그렇다면 여성들한테는 출산 장려금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인구 하나를 늘리는 일이니 한 명당 1천만원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 여자들이 유독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여성들은 똑똑하고 다 좋은데, 연대를 하지 않는다. 개인만 똑똑한 거다. 같은 여성끼리 뭉쳐서 싸워보려는 생각은커녕 그저 ‘나만 차별받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문제 제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계속 이렇게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지. 국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 여성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단적으로 LPGA에 나가 활약하는 여성 프로 골퍼들도 그렇고 김연아도 그렇고, 우리나라 같은 기반에서 그만큼 성장한다는 건 정말 뛰어난 거다. 뭔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 아테네 올림픽 때 영화 <우리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의 소재가 됐던 핸드볼 게임을 프랑스에서 지켜보았다. 무릎을 치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 어머니도, 여동생도, 누나도 똑같다. 그들처럼 어떤 순간이든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 끈기와 집념은 세계 어떤 여성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한국 여성들만의 매력이다. 문제는 이렇게 놀라운 자질을 지닌 한국 여성들이 편협한 남자들의 시각과 사회적인 잣대에 마구 휘둘린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 여자는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다. ’ 문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남자는 물론 여성들조차도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직접 문제를 제기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가끔 한국에 들어와서 TV를 보게 되는데, 머리 나쁜 연예인이란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이 다 똑같더라. 여자는 예뻐야 되고, 쭉쭉 빵빵해야 하고. 사실 그건 그 사람들만 하는 소리일 뿐 모든 남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미모나 외향적인 것이 아닌 여성의 성정이나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항상 TV에 나오는 사람들은 머리 나쁘고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여자의 미모’는 진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예쁘고 어린 여자에게 광적으로 열광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었다고 할까. 한번은 ‘지구상에 어쩜 이런 나라가 있을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다 벗고 떼로 나오는데, 그걸 30, 40대 아저씨들이 침 흘리고 본다는 자체가 충격이었다. 스무 살이 안 됐으니까 아동에 속하는데, 성인이 아동을 그토록 노골적으로 성적 대상으로 본다는 건 세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문화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더라. 옛날에 일본에서 ‘모닝구 무스메’라는 걸 그룹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일본은 참 몹쓸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따라하고 있는 거고. 그때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유교가 있어서 최소한의 도덕적인 선은 지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나라 유교는 남자들의 기득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도덕적인 가치가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요즘의 이런 비정상적인 문화에 비판을 해야 마땅한데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한국 여자들조차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여성들은 정말 자괴감을 가져야 한다. 얼굴만 반반하고 표준어만 대충 쓸 줄 알면 간판 TV 프로그램의 간판 아나운서가 되는 게 현실이다. 그게 바로 한국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상이다. 바라는 게 앵무새 수준의 지성과 미모밖에 없는 것이다. 더 웃긴 건 옆에 앉은 남자 아나운서는 경력 20년 이상 부장급이다. 삼촌이나 아빠뻘 되는 앵커와 짝이 되어 앉아 있는 모습이 사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인가. 결정타는 신사임당이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훌륭한 여성이 많은가. 유관순 누나도 있고…. 하지만 결국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으로 모두 재단되고 만 것 같다.
만약 외국에서 20년 넘게 살지 않고 한국에서만 살았어도 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도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해서 똑같이 생각하고, 부조리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마이너들에게 관심이 많았나? 아니, 전혀 아니었다. 이기적인 청춘이었다. 이 한 몸의 입신양명을 챙기기도 바빴다. 그런데 계기가 생겼다. 프랑스 유학이 끝나자마자 일본의 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4년 정도 머무는 동안 정말 쇼크를 받았다. 그렇게 차별받고 마이너로 취급당한 게 처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에는 한국 사람이 드물었다. 차별이 너무 심해서 재일교포들조차 자신이 교포란 것을 숨기고 다녔을 정도다. 그때 마이너로 사는 삶과 메이저로 사는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한때 그토록 열광했던 패션에 흥미를 잃은 이유도 그거다. 사회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돌아가고 있는 마당에 원단 소재가 달라졌다느니, 구두 굽이 2센티미터 높아졌다느니 등의 이야기를 쓰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여성 시리즈는 3부작으로 완성인가 아니면 계속 써나갈 생각인가?여기저기서 자꾸 콜이 들어온다. 그만큼 이런 목소리가 세상에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의 여자들’이란 책을 불어로 프랑스에서 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지만 우리 사회에도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여성이 나와 여성들의 삶을 바꿔줬으면 좋겠다. 자신의 삶을 통해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강력하게 보여줄 사람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만한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 안타깝다.
심우찬 사전에서 참고한 한국 여성의 수식어들
<끈기 있고 열정적인 patient&passionate> 시크함과 자유분방함이 프랑스 여자들의 매력이라면 한국 여자들은 어떤 이미지로 대표될까? “많은 미덕이 있지만 열정적이고 에너제틱하다는 점은 정말 최고예요. 뭘 하든 똑 부러지게 잘하고 열심히 하죠.” 외국 남자들에게도 한국 여자들은 대개 그런 이미지로 비친단다. 목표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끈기와 꿈을 향한 정열이 한국 여자의 가장 큰 장점인 셈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준우승한 핸드볼 여자 선수들도 그렇고,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여자 양궁 선수들, 여자 프로 골퍼들, 김연아 선수까지….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세계 20위권이라고 봤을 때 세계 최고를 차지한 한국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는 거죠.” 스포츠뿐만 아니라 실력만으로 평가되는 객관적인 경쟁에서 늘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까. 그의 지적대로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와 뿌리 깊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 크나큰 벽으로 우수한 여자들의 길을 막고 있다는 게 가장 맞는 설명일 터이다. 객관적 경쟁에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한국 여자들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은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게 되면서 더더욱 사회적인 성공과는 멀어진다. “한국 여성의 열정적인 면이 부정적으로 발현되면 대치동 엄마들처럼 치맛바람의 형태가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또한 주부들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지 못한 우리 사회의 탓 아닐까요? 에너지를 풀 곳이 없으니까 애들 교육에 집착하기도 하고, 복부인처럼 돈에 집착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여자들이 역량을 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훨씬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심우찬 씨의 견해다.
<똑똑하고 현명한 smart and wise> 최근 뉴스에서도 나왔듯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학력차가 상당하다고 한다. 혹시라도 내신이 깎일까 봐 아들을 남녀공학이 아닌 남고에 넣으려고 애쓰는 부모도 있을 정도다. 여자가 성장이 더 빠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여학생의 우수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증된 바다. 사실 한국 여자의 우수성은 국제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아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의 고위직 상당수는 한국 여자가 차지하고 있고, 국내 대기업에서도 여자 임원을 보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정치권에서만은 여자의 진입 장벽이 유독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이 훨씬 정치를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는데 장벽이 너무 높은 거죠. 우리나라에는 여성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몇 년 전 발표된 세계 성(性)격차지수 중 여자의 정치 역량 강화 분야에서 한국은 1백30개국 중 102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여자 국회의원 숫자는 국제의원연맹 집계로 84위에 불과하다. 여풍(女風)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상징되는 모성 정치 쪽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몬 드 보부아르나 아웅산 수지와 같은 존경받는 여자 지도자가 곧 나올지 모를 일이다.
<아름답고 센스 있는 beautiful and fashionable> 얼마 전 방한한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여성이 프랑스 여성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상냥하다”고 격찬한 바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 웨슬리 스나입스 등 한국 여자와 결혼한 할리우드 스타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외모도 외모지만 한국 여자들의 패션 감각은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월등하다는 평가다.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에는 라이선스 패션 잡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1993년 창간한 <엘르>가 처음이었는데 우리나라 여성들, 얼마나 학습력이 빠른지 불과 10년 만에 아시아 시장을 리드하는 패션 대국이 됐잖아요. 또 한국 여성들이 패션에 대해 관심도 많고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고요.” 다만 일부 외국에서는 ‘한국 여자들은 성형 미인’이라는 속설이 떠다닌다고 했다. 최근 들어 외모 열풍이 불면서 성형수술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사실이다. 심우찬 씨는 성형수술 자체보다 그렇게 이끌어가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했다. “얼굴만 반반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인식은 제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 뭐 이런 구태의연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요. 그것은 미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nonetheless> 이처럼 다각도로 우수성을 뽐내고 있는 한국 여자들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작 자기 인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우찬 씨는 반드시 삶의 주체가 자기 자신일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삶의 주체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결혼했으니까, 엄마니까 다 포기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어요. 다들 모성이 본능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조차도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허울일 뿐이에요.” 우리나라의 많은 여자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허탈감마저 느낀다.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주부와 엄마가 남편과 아이에게도 사랑받아요. 저는 한국 여성들이 좀 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당당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절대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문제에 눈뜰 수 있는 여유와 자아실현을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아량을 지닌 멋진 여성이면 더욱 좋겠죠?” 지금보다 더 여성들이 대접받고 제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때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까?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심우찬 씨의 열렬한 ‘여성 예찬론’이 그의 노력만큼 세상에 더욱 퍼져나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