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농공고의 맏딸들
죽암 장석대
"김진사댁 셋 째딸 제일 이쁘다든데.."라고 하는 노래도 있지만, 옛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첫 딸을 낳으면
'살람밑천이라고 전해져 왔었다. 춘농공고가 길러 출가시킨 맏딸들이 바로 제57회 여성동문들이다.
그들이 모교로부터 출가한지 어느덧 36년이란 세월이 흘러 55세~56세 중년부인이 되었는가 하면 혹자는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보고 어쩌면 손주까지 안아본 할머니의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몇몇 맏딸
들을 지난 11월 5일 ,재경춘농고동창회가 마련한 포천 야외 단합대회에서 만날 수 있었고, 총동창회 홈페
이지에 알차고 메끄러운 글을 올려놓는 넷 째딸 박을순(61회)동문도 만나는 행운도 가졌었다.
춘농공고의 맏딸들은 졸업 후 40년 가까이 흐르는 세월 속에 자기의 슬기로운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부단한
노력을 대해왔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사회의 일원이란 성숙된 자아(自我)로 사회에 헌신하려는 포부도 잠
시 평생의 삶을 좌우하는 혼인이란 대사도 겪게되고, 달콤한 초혼생활도 또 잠시 남편의 버거운 내조자로서
의 아내란 위치와 맹모삼천(孟母三遷)역활의 어머니란 위치에서 허리 펼날없이 허둥대는 나날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허둥대는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쑥쑥 커가는 모슴에 흐뭇하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코 앞
에 닥쳐오는 교육문제, 내집 마련이란 피할 수 없는 큰 과제를 남겨 둔 주부의 마음은 무겁고 샇여가는 것은
스트레스 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쓰라린 고비를 어느 정도 넘김 몇몇 맏딸들은 큰 마음 먹고 포천 야외단합
대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쏘주와 맥주를 곁들인 푸짐한 음식으로 배불린 선후배동문들은 오락시간을 맞았다.
갑자기 스테레오 음악이 소리높이 울려퍼지자 가지각색 복장의 동문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몇몇 맏딸들의 춤솜씨는 세련되고 푸로에 가까웠다. 여기에 뒤질세라 젊은 남정네 동문들이 어울
려 돌아가는 분위기는 광란에 가까웠다. 한 마디로 여간내기들이 아니었다.
한 켠에서 지켜보는 이 선배는 소시적에 익혀놓은 꽈배기춤(트위슽)이 되살아나는 듯 어깨와 엉덩이에 전율
이 흘렀지만, 분위기 잡칠까봐 뛰어들지는 못았다.
끝까지 지켜보노라니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과 선후배간 우정의 발로라기보다 그간에 쌓였던 고뇌와 스트레
스를 말끔히 날려버리는 카타르시스(Cutharsis)의 페스티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춘농공고의 한 선배로서 제57회 맏딸들에게 충고 한 마디 건네주고 싶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선생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당진 유배지에서 자식에게 "너는 아버지의 주량(酒量)은
앞지르면서 글공부는 아버지를 따르지 못한다지?"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자식이 술독에 빠지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이렇듯 아버지의 어느 부분을 뒤쳐봐도 가슴 속엔
자식사랑은 가득 차있을 것이다.
나를 3년동안 양식(養識)을 심어주고 전도(前途)를 밝여 준 춘논공고란 어머니와도 같은 모교는 어떠한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춘농공고란 제품이 내로라하는 백화점 진열대에서 뭇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모교
는 바랄 것입니다. 나란 브랜드가 초라한 구멍가게에서 나돌아 다녀서야 되겠는가. 자신의 상품가치는 자
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고가품으로 뭇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또는 저질품으로 전락되어 천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춘농공고의 맏딸들은 지금까지 어려운 살림에서 이리조개고 저리 쪼개며 사느라 허리 펴고 산날이 별로 없어
모교와 동문들을 찾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 경제적형편이 나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겻다면 그냥 앉
아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이럴테면 가칭 "춘농공고여성동문회" 같은 써클을 조직하여 취미활동을 하며 총동창
회활성화에 일익역활을 하는 것도 바라직하다 하겠다.
개교100주년을 맞는 모교와 총동창회에서는 동문들의 성의있는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분에 넘치는 큰 후원이 아니라도 성의와 애정이 담긴 꼬깃꼬깃 접힌 천원 만원을 바랄 것이다.
꿀벌이 꿀을 딸 때 미운 꽃 이쁜 꽃을 가리지 않는 단다. 춘농공고의 출신이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면
나의 분수에 걸맞는 베풂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할 것이다. 여기 베풂에는 제57회 받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의 과제일 것이다.
201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