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r of Your Own World
"네 멋대로 해라"
20부작 MBC 수목드라마 2002
"이제 우리, 그렇게 막 살아요, 느낌이 가는 대로!"
어느 막가파 조폭 마누라의 사랑타령이 아니라,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몸으로 겪는 진솔한 그래서 더욱 심금을 울리는 사랑이야기를 본다.
'남자와 여자'의 애틋한 사랑, 이것은 변함없는 우리의 주제인가보다.
여기에 헤아릴 수 없는 부성애를 바탕으로 한 부자간의 사랑이야기 또한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26살 한창의 나이에 극도로 심화된 뇌종양 수술을 받는 도중 유명을 달리한 복수를 도대체 형언하기 어려운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경이의 클로즈업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며칠 동안 함께 한 이 장면으로 말미암아 꼬리에 꼬리를 잇는 생각의 타래실에 뒤엉켜 밀려오는 잡념을 기꺼이 맞이해 본다.
'황혼이혼'을 비롯하여 급증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이혼률, 그에 수반된 반쪽가정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픔을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
이제는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할 '가부장제도'와 '호주제도'.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차디찬 통념과 미비한 재활씨스템으로 오히려 범죄의 온상이 되고만 '큰집'의 부정적 역할.
최근 '로또 열풍'에서도 감지할 수 있는 한탕주의에 기반된 사행심리와 여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사회구조.
정제된 삶의 언어로 무장한 젊은 세대의 신선한 사고방식과 이에 대비되는 형태로서 위선과 오해로 점철된 늙은 세대의 복잡한 생활방식.
나를 위한 삶과 너를 위한 삶.
기발한 언어유희.
기발하다 못해 시쳇말로 '깨는', '짱나는' 그래서 함께 보는 이의 어깨를 나도 몰래 두드리게 만드는 대사들.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가금씩 차단하고 스스로 판단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려는 방식으로서의 중얼거리는 혼잣말.
"이제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담배만 펴야지. 밥도 안먹고 음악도 안하고 이렇게 담배만 펴야지..."
미움은 사랑의 다른 끝?
"나 아저씨, 그냥 미워할래요. / 좋아해도 되나요?"
죽음! 지겹게 많이 살고, 나이 먹어서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죽음.
그것도 젊은 나이에 맞이하는 죽음, 시한부 생명.
하지만 죽음을 극복하는 삶의 의지로 변화되는 삶.
치명적인 원인으로서의 병마저도 신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애절함.
"나도 이 슬라이드 그림에 당신을 담아요, 내 머리 속 종양 옆에도."
이러한 생각의 타래를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네멋"을 "내멋"으로 삼아 오로지 등장인물의, 주로 복수의 "눈빛"에 대한 느낌만으로 풀어보고 싶다. 이것이 "니 꼴리는대로 해라"가 되더라도 말이다.
'가부장', '호주'로서 호기를 부리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져야만 하는 아버지가 삶의 스트레스를 어머니에게 풀어대던 흔한 가족 중의 하나인 복수의 가족은 뿔뿔이 갈라진다. 고아원 생활에서 익힌 소매치기로 거친 사회를 몸으로 부딪히던 복수의 눈빛은 창공에서 사냥감을 찾는 독수리의 눈처럼 빛난다. 소매치기의 획득물로 흥청망청 거리지 않고, 씨다른 동생을 혼자 키우고 있는 엄마의 생활을 돕는 그러면서 아빠의 어두운 과거를 이해하려는 복수의 눈빛엔 정에 겨운 우수가 배어있다.
독수리처럼 강렬한 눈빛 속에서도 확고하게 자리잡은 채 숨어있는 복수의 따스한 눈빛은, 가방을 터는 '작업' 중에 마주치는 경이의 해맑은 눈빛에 '전신마취'를 당하고 만다. 진부하지만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말의 '첫'이 아니라 '눈'에 방점을 두는 입장에서 보니, 입을 통한 말보다 눈을 통한 느낌이 더 위력적인가 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처럼 순수한 마음을 한껏 담아낸 경이의 눈빛에 복수만 첨벙했을까 싶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수술해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는 의사의 진단을 듣는 복수의 눈빛엔 세상에 대한 조소의 빛이 느껴진다. "내가 잔머리를 너무 많이 굴려서 그런가?"하는 체념조의 어투에도 강한 반발심이 배어있다. 길거리의 구겨진 깡통을 집착적으로 걷어차 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생각은 쉽게 정리될 길이 없다. 미래의 방문을 발작하듯이 두드리며 "이렇게 바쁘고 귀중한 시간에 잠을 잘 수 있냐"라고 부르짖는 복수의 눈물 머금은 눈빛에서 처연한 비장감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 대략 60-70년을 산다고 하는 어느 사람에게 불쑥 난치병이 찾아와 "이제 길면 1년 정도, 아니면 몇 개월만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 어떤 느낌일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한부 생명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20대 중반의 청년 복수는 '야속한 세상에 복수를 하듯'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결연한 눈빛을 가다듬는다.
복수의 삶에서 중대한 변화의 시점에 폭우의 장면이 수반되어서 복수의 눈빛을 확인하기는 아쉽게도 쉽지 않지만 그 결연한 분위기를 감지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어린 복수를 고아원에 맡기며 아빠가 3년 후를 기약하며 돈 벌어 오겠노라고 하면서 만원 한 장을 복수의 무릎에 올려놓고 등돌려 떠나가는 아빠를 바라보는 복수의 눈물어린 눈빛은 때마침 쏟아지는 폭우에 가리고 만다. 이 만원 짜리 지폐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복수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죽음마저도 받아들이는 형태로 폭우 속의 농구장 장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는 곳에 어울려 함께 땀을 흘리고 싶어 끼어 들었던 복수가 갑자기 퍼붓는 비를 피해 학생들은 모두 사라지고 혼자서 농구를 하다가 진흙탕 바닥에 드러누워 온몸으로 비를 맞이하는 장면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죽음을 포용한 복수의 삶으로 말미암아 복수와 관련된 주위사람들도 각자의 "네멋"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복수의 눈빛엔 그 강렬함보다는 왠지 모를 여유마저 어려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여정을 감안하면 서두르는 듯한 조급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행복하게 오래 살다가 함께 죽자고 약속했던 아버지를 먼저 보낸 복수가 삶의 의욕을 상실한 상태에서 죽음을 실감하는 '환상 같은 여행장면'들에 이르러서는 보다 승화된 복수의 눈빛을 보게 된다. 잠든 경이의 머리맡에 베네치아 풍경의 슬라이드를 비추어 돌려보는 관조의 눈빛을 통해, 복수가 처절한 행복을 맘속에 차곡차곡 고이 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한부 생명을 인지한 이후에 복수의 눈빛이 변화되는 것 이외에, 입술의 모양에도 변화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뇌종양의 증상으로 신체의 운동신경에 이상이 오는 것처럼 말소리도 발음이 이빨 사이로 빠지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약간 부정확하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복수의 윗입술이 오른 쪽 위로 약간 치우쳐 올라간 형태여서 발음이 부정확하게 되는 묘한 일치가 생긴다. 연기자 양동근의 원래 입술 모양인지 알 수가 없다. 아역배우를 하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양동근이지만 실제의 입술모양이 아니라 배역에 대한 자체해석으로 자신의 입술모양을 그렇게 변화시킨 것이라면 걸출한 연기자의 탄생을 기대해봄직 하겠다.
'조강지처' 미래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복수의 경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보고싶은, 눈으로 지금 보는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상대를 보지 않으면 그냥 미쳐버릴 것 같은 느낌의 사랑을 "눈사랑"으로 명명해본다. 첫사랑, 외사랑, 짝사랑, 순백사랑, 영혼사랑, 육사랑 등등의 여러 사랑들 중의 하나로 말이다. 복수가 왕눈이 경이에게 끌리는 마음이 점점 배가되던 시기에, 경이가 미움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복수를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복수가 경이의 지갑을 훔치는 것으로 말미암아 경이의 친구가 죽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복수가 어떤 식으로든 경이에게 보상하려는 마음에서 경이를 집까지 뒤따라가고, 대문 앞에서 술에 취한 모습의 경이가 아빠에게 호통을 당하는 순간에 복수가 달려들어 경이 아빠를 부둥켜안아 경이를 보호하려던 장면 이후에, (아이고 숨차라, 또 주절주절 거리고 있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눈빛만 얘기해보려고 했는데...) 집으로 들어간 경이가 자기 방의 창문을 통해, 안타까움으로 대문 앞 골목길을 에둘러 걸어가는 복수의 자취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따라가며 포도씨를 유리창에 그려 붙이는 장면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포도씨의 자취는 하트모양을 이루는가 하더니 그냥 왼쪽으로 이어져 나가고 만다.
경이로부터 복수를 좋아하는 감정을 전해들은 복수가 환희에 차서 눈 위를 좋아라 날뛰는 멍멍이 마냥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기쁨에 가득 찬 미소를 머금은 눈빛에는 장난끼마저 느끼게 하는 순수한 어린이의 이미지가 한껏 배어있다. 미래의 슬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기에 더욱 애절한 복수와 경이의 (눈)사랑은 여러 시련들을 겪는 과정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해 간다. 그 시련의 과정 중에 한 가지로, 오토바이 결투를 촬영하던 복수가 유리창을 뚫고 튀어나가 넘어지면서 뇌종양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됨에 따라 격심한 두통을 겪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이 때 스턴트 역할의 위험성에 놀란 경이가 이제 스턴트를 그만 하라며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에, 복수가 "괜찮아, 자꾸 그러면 이제 다신 안볼 거야!"라고 짜증스런 투로 응답하자, 경이의 눈에선 절망의 눈물이 샘솟는다. 두 사람에게 볼 수 없다는 것은 "눈사랑"을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기에, "어떻게 보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수 있냐!"라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경이의 핏발 선 눈빛에 절절한 사랑이 배어있다.
눈사랑의 절정은 "발사랑" 장면에서 나타난다. 엄마의 발을 주물러 주던 그 예쁜 마음을 지닌 복수의 손을, 어느 야외의 수돗가에서 수도꼭지 밑으로 잡아끌어 구석구석 "손을 씻어주던" 경이의 애정 어린 그 손으로, 그리고 발냄새 난다며 아빠의 발을 그것도 감기 걸리면 안 된다며 여름철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물로 정성스레 닦아주던 복수의 효성스런 그 손으로, 서로의 발을 잡고 복수의 집 마루에 나란히 마주보고 옆으로 누워 사랑을 주고받는 그 애틋한 장면에서 눈사랑의 절정을 볼 수 있다. 거기에 살며시 움켜쥔 상대의 발에 입맞춤하는 발사랑의 장면은 그 어떤 러브씬보다 훨씬 섹씨하고 감동적이다.
머리 속에 피가 가득 차는 부상을 입고 현대의 양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양감독의 병이 그의 생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극복이 되었다는 암시에서, 잠시나마 복수의 난치병 뇌종양이 스턴트맨에 목숨을 건 듯이 매달리는 복수의 행동을 감안해 볼 때 혹시 치유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였으나, 복수의 새로운 삶은 아쉽게도 짧게 마감되고 만다. 병이 악화되어 갈수록 복수의 눈빛이 약해지고 입놀림의 어색함으로 말미암아 말에도 힘이 없어진다. 병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다 유리지붕을 통해 하늘을 향한 복수의 시선 속에 간절한 소망이 깃들여 있다. "아빠, 그 위에서 손 좀 써봐. 안 그러면 아빠도 아냐, 엉."하며 아빠에게로 향한 복수의 눈에는 이제 경이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또한 수술실에서 맘이 약한 레지던트였던 찬석이에게 "찬석아, 나 무섭다."라며 애절하게 호소하는 복수의 눈빛에는 이제 힘이 다 소진된 느낌이다.
수술부위인 머리를 터반처럼 붕대로 감싼 채 수술실에서 시신으로 나오는 복수를 웃음으로 맞이하는 경이의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르겠다. '슬픔이 승화된 기쁨'이라는 말이나 '죽어도 나는 안 죽을래!'라던 복수의 말에 따라 '복수에게로 향한 사랑의 표현' 등 그 어떤 말로도 경이의 그 눈빛을 대신할 수 없기에.
이것이 까르페 디엠 carpe diem의 정수인가...
사족 1: 눈이 크면 겁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눈이 크면 눈물이 많다는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사족 2: 모성애와 부성애! 어느 것이 더 강할까? 크기에선 모성애가 깊이에선 부성애가 더 강할 것 같은데.
사족 3: 수술실에서 나오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있는 복수는 죽은 건가? 수술시에 의사의 미간에 큰 주름이 패이고 가망이 없다는 표시로 의사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고,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기구인가 하는 것의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근거로 나는 복수가 죽었다고 보았는데, 함께 이틀 밤을 꼬박 새면서 보았던 나미는 "경이가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잖아, 복수는 죽지 않은 거야"란다.
사족 4: 위의 눈사랑 이야기에서 인용부호 속의 대사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DVD판으로 드라마를 한 번 보고 감상문을 쓰는 것이고, "젖꼭지가 아파"서 해당되는 부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사족 5: 사족으로 괜히 길어질 것 같아 그만 두련다. 언젠가 기회 되면 "네멋"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자던 본드님의 말에 술 한 잔으로 기꺼이 응답하려고 하는데, 그 때 나눌 얘기들을 좀 아껴둬야 술맛이 나지 않을까 싶기에...
사족 6: 경이가 아빠 생일잔치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불렀던, 그리고 복수와 경이가 즐겨 데이트하던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던 고복수의 "황성옛터"라는 곡의 노랫말에도, "걷기만 하네"나 "나비"와 같은 배경음악 못지 않게 "네멋"에 유관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어떻게 눈사랑에서 트로트로 이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 노랫말을 적어본다. 그리고 나도 흥얼거려 본다, 삶의 의미를...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루어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