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7월 16일 한반도종단대회를 600km까지 뛰고 마지막 22km구간을 남겨두고 부상으로 인한 40분 시간 초과로 컷오프(탈락)를 당해 설악산 진부령 아랫동내인 강원도 고성군에서 쓸쓸히 동생의 차편으로 귀가한 이후, 3주 동안은 발목의 부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리며 단 한시간도 운동을 해 보지도 못하고 직장만 왔다리갔다리하는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600km의 머나먼 길을 밤낮으로 달리며 오만가지의 일을 경험하였기에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며,인간이 밤에 잠을 편히 잘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가를 느끼게 해 준 일상이었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직장에 나가서 일하며, 퇴근해서 좋아하는 가요무대도 보고 7080도 보고, 잠을 잘 수 있다는 행복은 6일동안 밤낮으로 잠도 안 자고 달려봄으로써 더 소중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지겨워 한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경험, 특별한 도전을 해보면 자신의 현재가 행복하다는 걸 느낄텐데...
이 세상에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는 아무 것도 없다.
종단에서 돌아온 3주 후, 거의 발목이 나아갈 무렵 새벽 산악훈련을 재개하여 경과를 지켜봤다.
훈련을 해도 발목에는 더이상 나쁜 영향은 없고 오히려 재활에 도움이 되기에 하루하루 조금씩 시간과 강도를 높여 나갔다.
훈련 4일 차 마라톤대회일정을 검색하다가 작년에 참가했던 지리산 화대종주산악마라톤대회가 있어 클릭해 보니 어제가 마감이네...
대회 본부장에게 전화하니 내려갈 버스편에 자리가 있으니 지금 신청해도 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입금 신청하고 몸이 다시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에 참가하게 되어 내심 걱정이 조금은 되었다.
아직도 낮에 직장에서 활동하고 저녁에 귀가하면 발목이 부어있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가라앉는 상태가 계속 되고 있는 상태인데 과연 내 왼쪽 발목이 잘 견뎌낼 지 의문이었다.
토요일 직장일을 끝내고 서둘러 저녁을 먹고, 저녁 9시 30분까지 종합운동장 1번 출구로 가니 다섯 대의 전세버스가 막 출발하려고 한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려 국밥으로 요기하고 지리산 화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새벽 3시 10분이다.
3시 30분에 화엄사 주차장을 출발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계곡길을 오르며 지리산을 호흡한다.
원래는 작년처럼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였는데, 천왕봉에서 하산하다가 유평리에 이르러 지난번 폭우로 등산로가 유실되어 아직 복구가 되질 않아서 급수정하여 중산리로 하산하는 대회로 바뀌는 바람에 거리가 좀 줄어들었다.
지리산 계곡의 거침없는 물줄기...비온 후라 수량이 풍부하다
코재를 오르면 이내 나타나는 첫 관문, 노고단산장.
두시간 10분에 걸쳐 악명높은 화엄사 계곡과 코재를 넘어 성삼재에 도착했다. 성삼재 바로 위에 있는 노고단 산장엔 등산객들로 분주하다. 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라 엄청난 등산객들로 인해 진로에 많은 애로사항이 생길 듯하다.
우리 산악마라톤하는 사람들은 몸이 날렵해 산에서도 발걸음이 빨라 일반 등산객들을 모두 추월해 달리는데 두 세명의 등산객들이 앞서가면 양해와 감사를 구하며 추월을 하기 쉬운데, 일단 등산객들이 10명이 넘어서서 줄로 나래비를 하고 가고 있으면 뒷 사람에게만 양해를 구해서는 되질 않으니 추월해 앞서가는데 적잖이 시간을 뺐긴다.
노고단에서 휴식하는 등산객들..
삼도봉에서
어쨌거나 삼도봉까지 진행하였다. 어제 이곳에 비가 왔다는데 다행이 오늘은 잔뜩 찌푸린 흐린 날씨에 비는 내리지 않고 대신에 습도는 무척 높아 땀이 많이 흐른다. 다행이다.
안 그래도 종단대회 다녀와서 얼굴이며 팔다리가 새카맣게 꺼을려 기미까지 나와서 요즘 다시 얼굴도 제법 하예지고 기미도 다시 들어가는 중인데, 날씨가 흐려주니 도와주는 거다.
염려했던 발목도 아무 이상없이 버텨준다. 다만 그동안 쉬는 기간이 많아 근력이 좀 떨어져서 작년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게 문제다. 작년엔 엄청 빠른 속도로 진행했는데...
안개에 젖은 형제봉, 바위틈의 소나무 한 그루...수줍은 새악시처럼 다소곳이 등산객을 바라보고 있다
모처럼 만난 흙길...지리산은 육산이지만 길은 온통 너덜길로 유명하다.
이런 고운 흙길이 계속되었으면 좋으련만 200m남짓하려나...
지리산 천왕봉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아름다워진다.
세석평전의 너른 들녁
추운 겨울철 스님을 기다리던 배고픈 동자승 그만 얼어죽고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동자꽃이란다...동자꽃 군락지대...
곳곳에 비비추도 많이 피어 있더군.
촛대봉까지 왔다. 여기까지만 오면 이제 7부능선은 넘은 거나 다름없다. 장터목까지의 거리가 2.7km남았구나...
베낭에 넣어온 빵 세개도 이미 다 먹었고, 새끼손가락 굵기의 소시지 다섯개도 다 먹었고, 이젠 물밖에 마실 것이 없구나...
새벽 3시 30분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어느덧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니 속이 비어갈 수 밖에...





마지막 장터목산장을 지나면 나타나는 고사목지대

고사목지대를 오르면 지리산의 멋진 풍광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늘은 참으로 일진이 좋구나. 지리산에 와서 비도 안 맞고 흐린 날씨 속에 진행하다가 세석대피소를 지나면서부터 날씨는 개이고 간혹 햇살이 비치기 사작해 천왕봉을 오를 땐 사방이 탁트이며 멋진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으니...
설악산처럼 멋드러진 산은 아니지만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는 지리산의 진면목을 즐감한다. 그러나 몸은 힘들어 발걸음 하나하나가 죽을 맛이다.


큰 산은 높이 오른 사람만이 더 멋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고통이 커질수록 가슴 속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크기도 배가된다.
이 높은 산에 무엇하러 힘들게 올라왔느냐고 자문하기 전에 시야를 트여 아래를 보며 무언가를 느끼면 된다.



천왕봉 정상에 올라섰다. 지리산 정상석은 언제나 등산객들에게 인기라 정상석 부여잡고 사진 찍기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10분간 휴식하고 중산리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다들 싸온 도시락과 여러 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데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내 배 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난다. 다 맛있어 보인다. 염분이 빠져나가선지 저기 보이는 김치조각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면 얼마나 좋을까....조금만 참자.
이제 한 시간 반 정도만 내려가면 피니쉬 라인에 설 것이며 이어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을테니까...



중산리 계곡의 맑은 물줄기
볍계사까지 내려와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정신이 없어선지 아무 생각 없이 직진하는 길을 택하는 바람에 2km를 알바해서 출발한지 12시간 31분 만에 42km를 달려 멋지게 두 팔 벌려 포토라인을 지나며 골인했다.
염려했던 부상부위도 아무렇지도 않고 위험한 바위와 너덜길을 달려와 종착점에서 주체측에서 제공한 산채비빔밥을 먹으니 얼마나 맛있던지...거기다가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죽여준다...
식사를 중간 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용케도 소나기를 피해 골인을 잘 하였네. 그럼 그렇지, 여름에 지리산 와서 비를 안 맞으면 재미가 없지...
첫댓글 사진이 배꼽만 나오는거 아닌지....
우리클럽에 윤주현,하승협 두 선수의 완주를 축하드리며, 완주기를 기대해 보는데...
이번주엔 목포대회 킹코스가 있어 기대하기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