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늙어감에 대하여 (돌베게)
저자: 장 아메리
발제: 김명훈 (결락)
장소: 김해 오광대 홍보관
일시: 2021. 10월 22일. 금요일 저녁 7시.
“자살자는 두 가지를 알린다. 하나는 계약에 대한 신의이며 (왜냐하면 그는 계약들로 이루어진 그물 없이는 사회적인 존재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오직 나에게만 속하는 나의 승리이다. 이러한 나는, 오직 나의 전부를 소유할 수 있는 경우에만 되찾을 수 있는 당연한 나의 소유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 형성된 현실로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은 통용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사물들의 질서로부터의 탈출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소유에 대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살자의 행위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회적 그물의 일부인 타자여, 네가 나에게 무엇을 가했든지 간에 네가 나에게 한 것은 항상 옳았다. 하지만 보아라. 너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은 채, 나는 이 법적 유효성으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장 아메리, 「자유죽음, 中」
시월 독서토론회는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가, 장 아메리는 오스트리아 출생이지만, 벨기에 망명작가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1943년, 악명높은 독일의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2년 동안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고문과 학대에 시달리게 됩니다. 당시에 아메리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저항운동을 같이 한 동료들의 신상을 말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바가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별정보를 발설해 버릴까봐 '자기살해'를 시도 했는데요.
결국 종전이 되어 1945년 4월 15일 풀려나지만 벨기에에서 이송되었던 약 2만여 명의 수감자 가운데 단 615명이 살아남습니다. 장 아메리는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후 정신의 내면까지 발가벗겨진 고문의 형틀에서 각인된 휴유증에 시달리다가 두번 째 자살시도를 결행, 1976년 저서 「자유죽음」에서 자살에 대한 자기확신을 찬란하게 빛내며, 2년 후 1978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장 아메리가 회자 될 때 마다 언급되는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1963년」)도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1987년 자살로 돌연 생을 마감합니다. 두 작가는 삶의 유전이 거의 유사합니다. 엄청난 시련과 홀로코스트, 세상을 이기려는 의지와 활동, 그를 바탕으로 쓴 인류애의 저작들을 남겼지만 모두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는데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써의 삶에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서사가 따로있음을 실감합니다.
1974년, 아메리의 두번 째 자살시도가 실패합니다. 의료행위를 통해 30여 시간의 혼수상태 끝에 다시 깨어났을 때에도 아메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상이 다시 자신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삶에 “포박된 자”로서의 자신에 대해 비통해 했습니다. 자살의 실패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죽음, 특히 자살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는 점을 이전보다 확신하게 되고 2년 후, 1976년 「자유죽음」을 발표합니다. 삶이라는 건 고문의 의자이고 인간은 그 의자에 올려진 포박된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로부터 2년 후, 1978년 실제로 자유죽음을 결행하고 성공합니다. 아메리가 삶의 반대편에서는 휴식의 흔들의자에서 편히 쉬고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시월 텍스트,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는 1968년, 54세에 쓴 에세이 입니다.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년의 우울함이 짙습니다. 정신은 젊음이라는 시간을 붙들고 있지만 흘러내리는 육체는 거울 속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실제하니까요. 늙어 간다는 것은 피부 속 주름에 패이고 사라지는 시간의 증거일 뿐인 것일까요?
시월에는 회원분들 대다수가 2차 백신 접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방수칙에 따라 대면 토론회로 전환하겠습니다. 이후 변수가 있으면 재공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