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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메테오라, 다시 아테네
-델포이 신전에서
삼각대 위에 피티아가 무아지경에 빠져있다. 왼쪽에 신성한 돌 옴팔로스가 놓여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해 레아가 아이들을 낳는 족족 삼켜 버렸다. 처음에 헤스티아를, 다음에 데메테르와 헤라를, 하데스, 포세이돈을 순서대로 삼켰다. 레아는 분노했고 세 번째 아들 제우스 대신 보자기에 쌓인 돌덩이를 준다. 크로노스는 의심 없이 삼키고, 나중에 레아는 복수를 위해 크로노스에게 벌꿀이라고 속이며 구토제를 먹인다. 그 때 제일 처음 토해 놓은 게 돌덩이이고 삼킨 역순으로 자식들을 토해낸다.
후에 크로노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제우스는 토해 놓은 돌덩이를 어딘가에 갖다 두었는데, 그 곳이 대지의 중심 델포이였고 돌덩이는 세계의 배꼽 옴팔로스다. '인간들은 돌에다가 성스러운 기름을 계속해서 발랐으며 풀어진 양모가닥으로 덮어 두었다.'고 신화는 전한다. 독수리를 날린 제우스에게는 다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신화의 절반은 제우스가 손수 수작업을 하여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테르모 필레에서
-메테오라에서
- 다시 아테네로, 마지막 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편이 더 나은 쪽으로 가게 될지는 신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중에서.
플라톤의 일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읽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재판관으로 나섰던 아테네 시민들을 꾸짖고 당신들이 나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라며 다수의 횡포를 비난한다. 끝내 나를 살리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며 다그친다. 사형이 확정되자 소크라테스는 담담하게 작별의 말을 고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시민법정에 올려 진 노구의 입에서 나온 작별의 말에서 신탁에 대한 믿음이 느껴지고, 그만의 평생의 철학이 온전히 느껴졌다. 내가 그리스를 좋아하는 절반은 소크라테스 때문이다.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왕이었다. 신들의 시대를 제우스가 만들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시대를 만들었다. 철학의 옴팔로스, 소크라테스.
독서토론회에서 그리스 여행을 계획할 때, 프로젝트의 명을 정했다.
'신들의 초대'
초대에 응답하여 우리는 술잔을 들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신들의 메세지를 들을까 하여 델포이의 여사제가 올라 앉은 그 돌판에 고개를 숙였는 지도 모른다. 우리의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이었다.
열 번을 댕겨도 켜지지 않는 라이터처럼, 열기가 몽땅 증발해 버린 새까만 숯처럼, 좀 처럼 마음에 불이 붙지 않는 시절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계기가 필요한 시점에 다녀 온 그리스는 나를 다시 들뜨게 한다. 신들의 호흡과 사람의 호흡이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다. 수니온 곶의 포세이돈, 파르테논의 아테네, 델포이의 아폴론은 어차피 신의 장소였다. 잠 못 이루는 새벽에 우연히 만난 여신 에오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불이 일었다. 다시 그리스에 관한 책이 많아졌다. 그리스 역사에 관한 책에 자꾸 애정이 간다.
함께 동행하여 주신 김영자, 이정심, 송미선, 허모영,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다녀오고 난 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는 신탁의 말씀이었습니다. 꾸벅.
첫댓글 감사합니다.
다시한번 김명훈 선생님께 감동입니다.
소크라테스를 사랑할 충분한 자격이 느껴집니다.
그리스~
선생님 덕분에 더 의미가 깊어졌습니다.
저도 네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 다시 되새김질 하듯 잘 보았습니다.
그리운 그리스.
안간 사람도
갔다온 듯 꼼꼼한 정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