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강아지를 들여 놓은것은 20여년전
1986년 인가 1987년 인가?
노사분규
정확히 표현하면
노동조합 설립 직전 인가 보다.
강아지 한마리를 갖게 되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의 처남인 그에게
테니스라는 것을 배웠는대
그게 제가 태어나 두번째로 자격증 가진 사람에게
운동을 배운 세번째인 것..
첫번째 고교때 수영
두번째 연습장에서 고르프
세번째 사택에서 테니스
어느것 하나 제대로 한것이 없는
그러니까 살아오면서
무엇하나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 ...
새삼 그런 사실을 느꼈을때 찾아 오는 자괴감
그렇다고 매양 풀 죽어 있을수도 없는 현실
누구에게 매달려 보고 싶은 그런 벼랑에서
회사일에 떠밀려 살아온 3성상
그렇게 테니스 선생은 아이들 둘
그리고 아이들 엄마
그리고 마침내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남자의 건강을 생각하였으리라.
그렇게 두달인가 하는둥 마는 둥
일요일 아침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니
품안에서 어른 주먹 2개만한 강아지 한마리를 내려 놓는다.
뒤 따라 일어난 아이와 엄마는 가가대소하면서 강아지를 반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갖고 왔는대
감기가 걸렸단다.
아마 테니스 코치하러 가는 길에
어제 서울서 갖고온 강아지를 우선 우리집에 내려 놓고 가기 위함이렷다.
그는 언제나 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줄달음쳐 가 버리고
그렇게 홀로 남겨진 한달도 않된
겨우 눈을 뜬 강아지는
그때 부터 아이들과 엄마의 사람을 독차지 받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유견때 옮은 감기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았다.
그를 뒷산에 구덩이를 만들고 그를 보이지 않게 덮어주었다.
겨울이라 따 파는게 그렇지만
산자락 모두가 마사토이어서 그럭저럭
아마도 비가 심하게 오면 그의 시신이 밖으로 투어나올까 하는 두려움도 있어
비탈이 아닌 평지를 택했다.
그렇게 기여우 집에 강아지가 등장하는 첫장이 되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옛 시골에서 태어났을때
이미 우리집은 여러 마리의 개가 있어
집과 과수원 정자에 개를 끊임없이 키워왔다.
그리고 그 개의 의미는
밤이면 나그네의 소리에 영락없이 짖어 대지만
인기척에 짖다가도 그가 면식이 있는 사람이면
의례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다가가
귀여움을 받기 위한 몸짓이 전부인
그야 말로 시골의 전형적인 ㄸ 개..
우리집엔 제가 막내이니
아이가 응가를 마당에서 하는 일이 벌어지질 않지만
다른집에서는 흔히
아이가 응가를 하면 개는 기다릴 여유도 없이
그것을 먹으려고 아이를 뒤에서 힘으로 밀대대니
힘없는 아이는 앞으로 나둥그러져
죽으라 소리를 질러대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 하였는대
우리집 개들은 그런 행운을 가진 적이 없다.
그렇게 우리집에는 언제나 여러 마리의 개들이 들끓었고
남은 모든 음식찌거기는 모두 개들의 차지여서
부억의 개숫물을 몽땅 개들에게 주니
주방은 그야말로 잔반 제로..
그리도 음식재료 찌거기는 모두 돼지에게 먹이니
음식 검불도 제로
그러나 개의 의미가 집에 있다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개는 집 마당에 사는 그냥 닭이나 다름없어
고양이는 예외이었다.
고양이도 제가 태어났을때 이미 우리집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고
고양이는 집어던져도 사뿐히 내려 앉아버리는 신출한 모습에
자주 던지곤 하였던 기억이 있고
고양이는 가끔은 쓰다듬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잠 중에 고양이가 가랑이 사이 이불위에로 올라 누우면
잠 중에도 무거워서 신경질적으로 걷어 차버린 기억이 생생하다.
고양이는 언제나 밥상 순위 1번이다.
그리고 꽁보리밥도 귀하던 시절 고양이게는
그래도 이 밥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고양이 밥은 어릴적 언제나 할머니 몫이었는대
차츰 네재 형님 차지가 되었고
그 형은 고양이 뿐만이 아니라 개에게도 무척이나 애착을 보였다.
고양이는 가끔은 가출을 한다.
물론 숫 코양이의 짓이다.
우린 그때 가출한 고양이를 도둑 고양이라고 하였다.
밤에 고양이 소리가 나면
숫고양이가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갔다 세벽에 들어 오곤 하다가
어떤 고양이는 아예 나갔다가 들어오질 않는대
낮에 몰래 우리집에 들어 와서
그 무거운 무쇠 밥솥 뚜껑을 밀고 보온밥 통으로 쓰이던 그곳에서
밥을 싫컷 훔쳐 먹고 달아나 버리고
그리고도 방범이 여늬와 같으면 자신의 애인을 데리고 와
함게 성찬을 즐기고 가곤 한다.
이렇게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고냉(고양) 이는
사랑을 따라 가출하여 본가의 음식을 도둑질하길 여러번 하다 보면
단속이 강화되고
그러면 본격적으로 어머니와 음식 술래잡기에 머리 싸움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도저히 멈추지 않으면 쥐약을 놓아 독살까지 시도를 한다.
그러나 개는 그런 적이 없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그렇게 주인에게서 버려진 개들이 산으로 들어가
노루와 다른 작은 야생짐승들을 먹이 만큼이 아닌
죽이기 장난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버릇이 집에서 키워서 먹이를 취하는 것이 모두 인간에게 의존되어
야생에서 본능적으로 먹이를 취하면서도
먹이 잡기를 엔죠이를 한단다.
인간의 또 하나의 자연파괴 결과이리라.
그렇게 지나왔던 세월이
개를 방에다 키우는 것을 용납이 되지않아
마루에서 방에서 함께 지내다가도 잘 시간이 되면 어쩔 수없이
베란다에 내다 놓도록
엄격하게 명하여 오다가
그것도 모든 가족의 성화에 못이겨 슬며시 후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연말 이곳으로 이사온 후
달라진 환경 때문인지
개가 집에 들어오면 유난히도 붙어앉아 엉덩이를 들이밀곤 하기를 거듭하였다.
우선 큰아이가 분가를 하여 밤에 함께 자던 이웃이 없어진 데다
집이 바꾸니 불안하였나 보다.
먹이 활동이 조금 줄어드는 듯 하더니
가끔은 토하기를 하고
그 빈도가 잦아져 급기야는 먹이를 아예 먹지를 못할 지경까지 이르러
진주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았더니
6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하는
똑같은 여러가지 검사를 다 하고 나서
우리 둘을 정중히 부른다.
안절부절하던 개 엄마는 결과를 혼자 들어가서 듣고 나오란다.
개 의사는
수련의를 3명이나 대동하고
컴퓨터에 저장된 내시경 촬영 사진을 긑까지 보여주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보여주면서 차례 차례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위 조직을 내시경으로 채취하여 검사중이란다.
그 검사 결과가 나오면 최종 진단을 한단다.
현재 까지 내시경으로 관찰된 것은
위의 입구가 궤양으로 심하게 부어올라 음식을 삼킬수가 없단다.
지난번 초음파 검사때는 위벽 두께가 두꺼워 졌다는
신기한 진단을 받았는대
(몇년전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으니 심장 껍질이 유난히 두껍다는 진단)
얼굴이 두껍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왔으나
심장이 두껍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이라
겁도 난 나머지
그러면 그것이 어떤 증상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어떤 유발 병인이 되는 것인지 물으니
심장 박동수가 48~54인 것으로 보아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희소하게 나타나는 현상
마라토나인 이봉주
축구선수인 박지성
아마 박태환선수도?
그런 비슷한 현상인 것 같다며
신경 거스르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에 갑자기 지나간 것 중에
이와 연관된 모든것이 한꺼번에 지나간다.
난생 처음 군에서 뛰었던 마라톤에서
꼴인 지점에 들어온 제게
중대장이 낙오할것으로 짐작했는대 두번째로 들어왔다고..
부서 책임자들을 부서경비로 참가비를 내고
강제로 뛰게 하여
함게 뛰었는대 월등히 제일 먼저 들어온 일...
위가 부어 먹지를 못하여 매일같이 주사기로 미음을 먹이며 한달여...
170여리 방어진을 수없이 들락거리는대
함께 병원을 가자는 소리를 귀흘려 듣길 수차례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강아지를 안고
푸념과 울음섞인 모습이 여러번
급기야 입원을 시켰다.
매일같이 저녁에 귀가하면 잊지 않고 물어 보는 강아지의 병상태
이 상태를 되돌이킬 방도가 없으니 각오하고
빨리 종결짖자고 하여도
그의 집착은 떨어질줄 모르고
의사에게 전화를 하라 강요하여 통화하니
짐작대로 요점을 들려주는데
그의 목소리는 빨리 종결 짓자는 무언의 호소인 것 같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들려주니
그래도 그 소리에는 딱히 달려 들지를 않는다.
본인이 결정을 하지 못 함이리라.
토요일 심란한 날
경비실에 삽을 빌리기로 하였단다.
굉이를 영가하니 그냥 하란다.
굉이 없이 땅을 1자 이상 판다는 건
모래 밭이 아닌 다음에야 어렵지만
그냥 아무말 않는다.
오후 1시반 쯤 큰아이에게서 전화왔다.
"웅이가 죽었단다."
급히 경비실에 들려
괭이를 찾으니 없단다.
어디에다 그의 안식처를 만들까 경비원과 상의하니
테니스장 뒤의 소나무 밑에 하란다.
테니스장과 그곳은 가려진 것이 없이 마름모 철망사이로
훤히 바라 보이는 곳..
오후의 되약볕이라 그런지 테니장에는 보이질 않으나
아파트 경계 울타리 곁에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 부지런이 호미질과
바로 곁에 흐르는 냇가에서 물을 길어 채전에 뿌리고 있다.
그렇게 다을 분주히 파고 난후
집에 들어서 그곳을 보라 이르니
보고온 강아지 엄마 잔소리가 시작된다.
너무 적다는 것.
"일을 시작하였으면 끝을 내야지!"
하는 쇳소리를 뒤로하고
울산에서 점심 대접하겠다고 나온 젊은 사람들과 함께
연거푸 석잔이나 마신 막걸리 덕분에
아무리 일어나 앉으려 하여도 잠에 빠져 버린다.
쐐기 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사람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공간에서 잠시
낮잠 아닌 낮잠을 잔다.
그것도 잠시 그곳으로 가 보니
삽을 빌려주었던 경비원이 파놓은 그곳을 다시 넗히고 있다.
큰아이를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기를 30여분
기다리는 아이는 나타나질 않아 무료하던 차에
점방 창으로 들여다 보이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차에 가서 동전 갖고 오겠다 하고 지하 주차장에 가 동전통을 들고 나오니 전화가 왔다.
강아지를 담아온 종이관은 눈으로 얼핏 보아도 A3 두장 반 크기
그러나 그곳에서 더 키우는 것도 어렵기도 하고
경비원이 이제서야 그곳이 장소가 아니란 걸 직감한 것...
이곳에 이러지 말고 다른 곳에 하란다.
처음부터 직감한 것이 오고야 만것..
직접 갖고 온 삽을 하나 더 빌려 달라고 하니
구덩이를 정리하고 오겠다길래 나중에 제가 하겠다하여 두개의 삽을 트렁크에 싣고
우리는 차 두대를 몰아 뒷산으로 향하였다.삽 두개도 함께.. 물론 시신도..
조금전 그곳말고 어디에다 광중을 할것인가
큰아이 기다리면서 끊임없이 양산천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해 보지만
터가 보이질 않아
지난번 한번 얼핏
그 안쪽 구석에 자신의 땅이 있어 공장으로 개발하자는 제안이 있어
찾아보고 도면으로 여러번 보았던 곳
나뭇꾼 길을 새마을 포장한 길을 들어서자 마자 앞에서
두대의 차가 나오면서 마주친다.
진퇴 양난
차를 한 켠으로 몰아 세우고 있는대
눈치 없는 아이는 이미 내 뒤에 코를 받히고 서있다.
겨우 도랑으로 차 한대를 집어넣고
앞에서 나오는 차를 내 보내고
장의차만 몰아 들어가려고 나머지 한대를 도량으로 주차하다가
그만 채전 경계석에
차가 부욱 긁힌다.
그리고 온 전화는 위에 주차장이 있으니 올라오란다.
그곳은 바로 등산객과 절을 찾아온 사람들 주차장
차는 두고
삽 두 자루를 들고 그렇게 우리 세 부모자는 산을 올랐다.
장소를 찾기가 만만치 않다.
재선충 훈증 보따리가 군데 군데
우린 길에서 10여 미터 오른쪽 위 산비탈에 올라
누군가가 파다가 놓은 자리에 삽질을 한다.
그렇게 두 부자는 땀을 비오듯하여 눈으로도 큼직한 구덩이를 만들었으나
아무래도 깊이가 불안하다.
그러나 바다과 둘레에는 돌덩어리
다 됬다 싶은 아이는 혼자 내려가 운구를 하여 오는대
그 무게가 예사치 않아
아이의 온몸에 땀이 장마비 오듯한다.
관을 넣으니 들어가기는 한대
염려 했던대로 깊이가 찰랑 찰랑..
우린 혼신을 다해 바닥에 있는 돌덩어리를 필사적으로 파고 파고
흔들고 하여 꼼짝않던 몇개의 돌을 빼 내는데 성공..
기쁨도 잠시
평토를 하고 입관하고
매장을 하며 몇번에 걸쳐 흔히 말하는 "달구" 다지기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 표시석 네개를 올려 놓았다.
혹여 라도 큰물이 지면 버티라고...
아이는 연신 사진기 후래쉬를 터트린다.
산소에 가기로 한 아침
올망 졸망 여러개의 짐덩이들
애써 참았던 히스테리가 발동..
이에 되돌아 오는 잔소리에
파탄이 날 뻔한 산소 참배를 간신히 이어 의성으로 향한다.
이렇게 수십년을 살아가면서도 쌓인 삶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게
서툴기가 어린아이이고
"개가 아픈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는 소리에
개가 뭣이냐며 꼬투리로 시작하여
강아지가 아픈대 얼마나 성의를 보였느냐는 푸념에 "
몇달간 자나왔던 속 앓이를 씻고
우린 아무일 없었던 듯이 의성을 향하였다.
30여분 늦게 출발한 것은 아무런 탓이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이틀간의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여늬때 처럼
"강아지는 귀찮아서 못 키우겠다"
는 혼자 말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첫댓글 ㅎ 애완견은 가족과 동격입니다. 넘 과장같지만 저도 10여년전 순신이가 사고로 죽으면서 큰아픔에 빠졌답니다. 사랑은 하는것도 받는것도 쉬운일은 아니지만 사랑을 버린다는건 끔찍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