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깜, 컴퓨터 링커, 악발이, 두뇌플레이어, 성질 드런(!) 놈, 지독한 노 력파.. 70년대 대표적인 링커(현 미드필더), 게임메이커.. 조광래를 따 라다니는 수식어이다.
경남 진주 지방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명문 진주고등학교를 시험을 쳐 들 어가서는 앞날이 보장(!)된 공부보다는 축구에 미쳐 고교시절 축구 선수 가 된다. 선수가 된지 2년(?)이 채 안되 청소년 대표에 발탁이 될정도로 소질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의 드런 성질이 한몫을 한것으로 안다. 오잉~ 드런 성질? 지독하다는 야그다. 생긴걸 한번 보시라! 하하.
연세대 시절.. 독해도 제대로 안되는 축구관련 영문 원서는 옆구리에 줄 기차게 차고 다녔다나? 하는 기사가 당시 '월간축구'에 난적이 있다. 왜 자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영문 원서는 옆꾸리에 꿰차고 다녔냐고? 모 르더라도 읽어야 하고, 그래도 모르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안면있는 교 수헌테 가 "이책이 뭘 주장하는 거냐고" 물어볼 요량으로 그는 축구이론 원서를 끼고 다녔단다. 축구인에게 외국어는 필수니 그나마 영어를 못하 면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단다. 조광래는 그런 사람 이다. 이러한 그의 미래에 대한 투자와 배우는 자세는 그후 프로팀 감독 을 지냈으면서 수원삼성의 코치직을 수행한데서도 잘 나타나있다.
조깜. 조는 성이요 깜은 깜씨의 준말이다. 월만큼 까만가? 직접 보시라! 그는 나에게 숨막히는듯한 플레이로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가 아니다. 이회택처럼, 차범근처럼, 최순호처럼 백마탄 왕자의 모습으로, 한국축구 의 구세주, 수퍼맨으로 그렇게 강렬하게 카리스마로 어느날 부터 나에게 각인된 선수가 아니다. 고만 고만한 실력의 선수가 스멀스멀 모여 세월 을 야금야금 먹더니 게중에 그만이 우뚝선 그런 존재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대표팀 중원의 명실상부한 중심이 된 것이다.
등빨이 우람한 것도, 우람한 허벅지도 아니고, 스피드가 남다른 것도, 유연한 드리블링의 소유자도 아닌, 왜소한 체격에 뻣뻣하기 이를데 없었 으니 화려한 구석이라곤 없다. 그 왜소한 몸매에 툭하면 택도없이 상대 방한테 엉까, 비록 그라운드에 나동댕이쳐지곤 했지만 기까지 죽지는 않 는다. 그러한 이유에선지 그렇게 위태위태(!)한 악을 동반한 몸싸움을 했지만 크게 다친적이 내 기억엔 없다. 물론 절룩거리고 나온적은 다반 사이리라.
그러나.. 그에겐 남다른 그 무엇이 있다. 확뚤린 넓은 시야, 생각하려는 자세.. 그의 시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것과 곁들어진 각고의 노 력의 산물인 정확한 패스는 그를 컴퓨터링커, 두뇌 플레이어라는 칭송이 결코 과한것이 아님을 증거한다. 그로부터 뻗어나오는 한줄기 볼줄은 예 술이며 우리팀 공격의 젖 줄이었슴을 나는 기억한다.
진주고, 연세대, 충의, 대우를 거친후 그는 지도자로 변신한다. 대우에 서의 타협을 몰랐던 감독생활.. 그리고 외국유학과 수원삼성의 코치로서 의 흔치않는 재출발, 다시 결별.. 그리곤 또다시 선진축구 습득.. 이제 조광래는 안양LG팀의 감독으로 다시 한번의 승부에 도전하려하고있다.
지도자 조광래의 뚝심에 찬 도전적 축구인생에 영광이 계속 깃들기를 바 란다. 이제 그도 불혹의 나이이다. 모든이의 존경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