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
영릉 의병장 장산 신돌석 장군은 1878년 11월 3일 경북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에서 부친 신석주와 모친 분성김씨 사이에
2남 2여중 셋째로 태어났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항일의식이 남달랐고 애국애족하는 마음이 강하였다.
1906년 을사조약이 채결되고 조국의 운명이 위급해지자 무력으로 적과 싸울 것을 결심, 1906년 여해에서 의병 300명을
일으켜 진군을 개시하였다. 여러차례 일본군과 접전, 경상도, 강원도 일대와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기습적으로 많은 적을
사살하는 등 가는 곳 마다 큰 전과를 올렸으며 그만큼 명성도 높았다.
일본군은 그를 체포할 목적으로 현상금을 걸었는데 그 현상금을 탐내 주민이 일본군에 매수되어 그를 집으로 초대 독주를
먹여 취하게 한 다음 무참히 살해하였다. 이때 나이 30세 였다. 국가에서는 1962년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하였다.
신돌석장군 유적기념관
신돌석장군 기념관 입구 정면의 흉상
장군의 한시
장군은 1905년 울진 평해 월송정에 올라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자 애국충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읊은 시
登樓遊子却行路(등루유자가행로)
루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잃고
可歎檀墟落木橫(가탄단허락목횡)
낙목에 가로 놓인 단군의 터전을 한탄하노라!
男子二七成何事(남자이칠성하사)
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
暫倚秋風感慨性(잠의추풍감개성)
문득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솟는구나!
사 당
뒷편의 건물이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영 정
충의사에 봉안된 장군의 영정
기념비
경상북도독립유공자선열유족회 의병대장신돌석장군기념사업회에서
1965년 7월에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건립한 것을 1999. 11. 18일 이건
유허비
장군의 동생 신태범이 각처에서 모금하여 1948년에 도고리 528번지에
건립한 것을 1999. 11. 18일 이건
장군묘소
장군의 묘소를 1973년 국립묘지 애국자묘역(131호)에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