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저 바위는 어떻게 오르나
멀리 암벽을 바라볼 때는 그저 거대한 하나의 바위덩어리로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모양도 다르고 그 크기도 다르다. 평평하고 넓은 곳(슬랩)도 있지만 각이 진 모서리(칸테)도 있다. 깨지고 갈라진 좁은 틈(크랙)이 있고 몸이 들어갈 만큼 제법 넓은 틈(침니)도 있다. 이렇게 바위의 모양도 다르지만 모양에 따라 바위를 올라가는 방법도 다르다. 일단 바위에 붙으면 우리 몸이 거기에 맞추어 움직인다. 그러나 조금 더 알면 오르기 더 쉬울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제 바위의 모양을 살피고 바위를 올라가 보자.
슬랩(Slab) 오르기
보통 60°이하의 넓고 경사진 바위를 슬랩(Slab)이라고 한다. 슬랩 등반에서 중요한 것은 발 딛기, 균형 잡기, 체중 이동이다. 완만한 슬랩은 두 발만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경사가 커지면 걸어 올라가기는 어렵다. 경사가 작을 때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엎드린 자세로 발을 딛으며 올라갈 수 있다. 경사가 더 커지면 발로 잘 딛고 있더라도 균형을 잡기도 어렵고 올라가기는 더욱 쉽지 않다. 3지점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다른 한 손이나 발로 잡고 딛어 체중을 이동하며 올라가야 한다.
슬랩에서는 발의 역할이 중요하다. 손은 힘을 주어 몸을 끌어당기기보다 주로 홀드를 잡아 몸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바위를 딛고 버티며 힘을 주어 몸을 올리는 것은 발의 역할이다. 미끄러지지 않고 버티려면 마찰력을 최대로 이용하여야 한다. 딛기 쉽고 암벽화와 바위의 마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딛는 것이 중요하다.
* 여기에 게재된 그림은 등산전문강사 고경한 선생이 그린 그림과 몇 가지 등반교재에 게재된 그림을 활용하였다.
모두 같은 바위처럼 보이지만 잘 찾아보면 매우 작은 차이지만 주위보다 조금 더 경사가 작은 평평한 곳이 있다. 또 바위를 이루는 성분이 더 거칠거나 유난히 돌출된 곳도 있다. 이런 것들이 발 홀드이다. 이러한 홀드를 찾아 체중을 실어 딛어야 미끄러지지 않는다. 홀드가 크면 모양에 따라 발의 앞쪽 끝이나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비교적 넓게 올려놓고 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발도 편하고 다음 자세를 잡기도 좋다.
발 홀드가 작아도 뒷굼치를 세워 앞쪽 끝으로 서면 좁은 접촉면에 체중이 실리므로 마찰력이 커진다. 또 발끝을 좌우로 문질러 딛으면 암벽화의 부드러운 밑창이 바위에 깊이 접촉되기 때문에 마찰력이 더 커진다. 마찰력이 커야 미끄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
슬랩에서 기본자세는 두 손과 두 발을 바위에 대고 기어가는 자세이다. 가장 먼저 두 팔을 어깨너비 정도로 벌려 쭉 펴고 두 발은 바위를 딛고 선다. 그다음 손과 발을 교대로 움직이며 위로 기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슬랩을 오르는 것은 발 홀드를 딛고 편히 선 다음 한 발에서 다른 발로 체중을 옮기면서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동작의 반복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체중을 옮겨 일어설 때마다 새로운 3지점 균형을 만드는 것이다.
팔은 가급적 쭉 뻗어 상체를 바위에서 뗀다. 체중을 싣고 선 다리는 곧게 세운다. 배가 바위에 붙지 않도록 하고 엉덩이도 상체와 직선이 되도록 한다. 홀드를 잡거나 몸을 이동할 때만 팔꿈치와 허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는 뒤로 내밀어 체중을 분산시킨다. 팔과 다리를 구부리면 몸이 바위 쪽으로 붙고 쉽게 미끄러진다. 발끝은 위쪽으로 똑바로 딛고 발뒤꿈치를 내려 마찰력으로 버틴다. 그래야 힘을 절약할 수 있고 근육에 무리가 없다. 체중이 실려있지 않은 다른 쪽 발은 다음 위치로 이동을 준비한다.
이때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홀드가 있으면 좋지만 슬랩에서 그런 곳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역시 다른 곳보다 더 돌출되거나 갈라져 손가락 끝으로 잡거나 걸칠 수 있는 홀드가 있게 마련이다. 이 홀드를 잡고 3지점 균형을 맞추고 새로 딛은 발에 최대한 체중을 많이 옮겨 실으며 일어서야 미끄러지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어차피 손은 힘을 쓰기보다 주로 균형을 잡는데 쓰인다. 작은 홀드라도 잡고 발과 함께 3지점 균형을 맞출 수 있으면 충분하다.
크랙(Crack) 오르기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는 암벽에도 위 아래 또는 좌우로 길게 이어지는 작은 틈이 있다. 이것이 크랙(crack)이 있다. 경사가 커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암벽도 이 크랙을 잘 이용하면 올라갈 수 있다.
크랙을 오르는 것도 슬랩과 마찬가지이다. 손과 발로 3지점의 균형을 이루고 발의 마찰력을 이용하여 딛고 올라가는 것이다. 다만 좁은 크랙에 손이나 발을 끼워 넣어 지지력과 마찰력을 얻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경사가 큰 암벽의 경우 슬랩보다 크랙을 따라 오르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크랙에 손과 발을 끼워 3지점을 확보하고 지지력을 얻은 것을 재밍(jamming)이라고 한다. 손 재밍을 할 경우 크랙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손가락, 손바닥, 주먹을 적당한 모양과 방향으로 끼워 넣는다. 또 크랙이 클 겨우 손을 끼워 한 쪽으로 잡거나 양쪽으로 당겨 잡는다. 재밍할 때 손등을 보호하고 더 큰 마찰력을 얻기 위해 재밍 장갑을 이용한다.
발을 이용하여 재밍을 할 수도 있다. 크랙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발을 옆으로 세워 크랙에 넣어 비틀어 끼우기도 하고 발끝과 뒤
꿈치를 틈에 걸쳐 끼우기도 한다. 이때 크랙에 끼운 발은 딛고 체중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하지만 너무 단단히 끼우면 발이 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 크랙이 손이나 발을 끼우기에 너무 클 때가 있다. 이럴 때는 팔을 끼워 넣기도 하고 다리나 어깨를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던 힘을 적게 들이고 균형을 이루고 다음 동작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경사가 큰 크랙에서 홀드를 쉽게 잡고 버틸 수 있으면 손으로 당기면서 몸을 뒤로 제치고 발로 암벽을 딛으며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이 밀고 당기기, 레이백(layback)이다. 발로 바위를 딛고 몸을 뒤로 제치면서 팔을 쭉 뻗어 힘껏 잡아당겨 균형을 맞추고 손과 발을 교대로 옮기며 올라간다. 레이백은 힘이 많이 들어 계속하기 어렵다. 발을 편안하게 딛고 쉴 수 있을 때까지 빨리 올라가야 한다.
침니(Chimney) 오르기
바위에서 위 아래 방향으로 몸이 들어갈 정도로 벌어진 큰 틈새를 침니(chimney)라고 한다. 침니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손과 발, 등과 엉덩이로 밀고 버티는 힘을 잘 이용해야 한다. 벌어진 크기에 따라 손과 발로 앞쪽의 바위를 밀고 등과 엉덩이를 뒤쪽의 바위에 대고 버티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한쪽 발과 손을 뒷벽에 대고 버티면서 등과 엉덩이를 떼어 몸을 올리고 다시 발을 앞쪽의 바위에 놓고 버틴다.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며 조금씩 올라간다.
넓은 침니 또는 가까이 있는 두 바위 사이의 생긴 공간에서는 손과 발, 등과 엉덩이를 끼워 넣어 오르기 어렵다. 이러한 경우 양발을 넓게 벌려 양쪽 바위의 홀드에 딛고 발을 차례로 옮기며 올라간다. 이것이 벌려딛고 오르기, 스테밍(stemming)이다. 스테밍은 양발을 넓게 벌려야 한다. 손 홀드가 좋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러므로 긴 구간을 스테밍해야 한다면 더욱 주의하고 빨리 통과해야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바위를 오르는 방법은 있다. 옆으로 가기도 하고 바위를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기도 한다. 같은 방법도 바위의 크기, 형태, 위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이것들이 바위를 오를 때 모두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바윗길이라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등반자의 신체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 오를 것인가는 것은 자신이 그때그때 판단하여야 한다.
바위를 오르는 방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면 바위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친구들은 처음에 경사가 완만한 슬랩이나 잘 발달한 크랙에서 시작하게 된다. 바위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일단 바위에 붙어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위에서 몸이 움직이는 대로 무작정 오르기보다 기본적인 원리를 알고 하나씩 적용해 가면 쉽게 익힐 수 있고 더욱 안전하고 자신감도 가지게 된다. 그다음 등반을 계속하고 경험이 쌓이면서 위에 소개한 것뿐만 아니라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등반 방법들은 하나씩 배우거나 스스로 터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