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방송 프로그램 중에 "베스트 친절시민을 찾아라" 코너가 있습니다. 뜻밖의 도움을 주었던 사람, 또는 주위에 칭찬해 주고 싶은 분을 시청자들이 추천을 합니다. 그러면 제작진에서 사람을 선별해서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몰래카메라를 동원해서 이 사람이 정말 친절한 사람인지 시험합니다. 그런데 이 테스트를 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상대방은 자기가 지금 시험을 당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행동들이 나옵니다. 친절하다고 추천을 받았던 사람들이 막상 찾아가서 연기자들이 몰래 친절을 유도해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테스트에 통과하는 사람은 친절시민으로 인정해주고 팡파레를 울리며 상을 줍니다.
지금 여러분이 여러분 몰래 누군가가 나에게 테스트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 우리의 삶이 조심스러워질 것입니다.
추운 날 새벽 3시, 선교사 지망자가 면접시험을 치루기 위해 선교국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미리 약속이 되었던 시험관은 아침 8시에야 어슬렁 어슬렁 나타났습니다. 한마디 사과도 없이 시험관은 자! 시작해 볼까요? 라고 하고서는 학교(school)라는 단어의 철자를 말해보시오 했습니다. 지망생은 그 초등학생들의 문제같은 것에 답변했습니다. 시험관은 "좋소, 그러면 숫자에 대해서 물어봅시다. 2의 두배는 얼마요"? 네, 4지요 시험관이 자리를 툭툭털고 일어나며 지망생에게 말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당신은 합격되었습니다. 당신은 선교위원회의 시험에 합격했으므로 내일 아침 선교사로 임명할 것을 건의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시험관은 선교위원회에서 그를 극구 칭찬하며 그가 자격이 충분함을 설명했습니다. 첫째, 극기시험에 합격입니다. 추운날 새벽 3시에 오라고 했는데 아무런 불평이 없었습니다. 둘째, 그는 시간을 엄수했습니다. 그는 신뢰와 약속의 시험에 합격입니다. 셋째, 다섯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넷째, 어린이 시험문제로 시험을 보는데도 기분 나쁜 표정 한번 짓지 않아 겸손의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선교사로서의 자격 요건을 다 갖추었으므로 기꺼이 선교사로 보낼 것을 추천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세상은 크리스챤들의 시험장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떤 문제로 시험을 치루게 될런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 시험이 남을 이롭게 하는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앞에 가시같은 사람을 만나서 나자신을 깨어지게 만들고 예수님의 눈으로 상대방을 섬기게 하는 시험을 치르게 하실런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겸손히 섬길 수 있는지의 겸손의 시험, 보이는 환경보다도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신뢰의 시험등 수많은 일들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 시험의 광경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 위해서 부지불식간에 치루어지는 이런 주님의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라도 이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완전히 죄가 없는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영어로 test입니다. 헬라어는 '페이라조'와 '페이라제인' 이 두말을 합성어로 만들어 놨는데 이 말의 의미는 '던져보다. 건드려 보다.'라는 뜻입니다.
건드려 보고, 던져보는 테스트는 결코 그를 파멸시킨다든지, 그를 실패하게 한다든지 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시험은 그저 건드려 보는 것입니다. 그저 던져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같은 시험이라고 표현하는 유혹은 다릅니다. 유혹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유혹은 우리를 범죄케 합니다. 유혹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른 말로 다시 표현한다면 마귀가 주는 시험은 유혹(temptation),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시련(trial)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어떤 종류의 시험이 되었든 간에 우리는 이 시험을 넉넉히 이겨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이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받은 자의 형편과 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능히 도와주십니다.(히 2:18).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험이 있었습니까? 이 시험으로 인해서 가슴아파하고 마음 조리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시험을 통과하고나서 우리 자신이 한층 성숙해졌음을 우리가 느끼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한번의 성공이나 승리로 영원한 승리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한번의 성령충만으로 평생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 성령충만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승리해야 합니다.
한번의 성공은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는 앞뒤쪽에 서로 붙어있습니다. 야고보서는 로마황제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있기 전에, 주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하였습니다. 또 베드로전서는 네로의 박해가 진행되고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두서신을 기록할 당시의 상황은 폭풍전야였습니다. 위기가 눈 앞에 예견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도 베드로도 이런 사실을 성도에게 주지시키기 시작합니다.
" 성도들이여 시련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이 시련이 오히려 여러분의 믿음을 온전하게 해줄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 기쁘게 여기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시련을 이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
그들이 권면한 것과 같이 야고보도 베드로도 믿음을 지키며 순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들은 시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6-7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
시험이 오면 잠간 근심합닏. 주춤거립닏. 흔들립니다. 그러나 다시 중심을 잡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주어질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올라가려면 실력을 테스트 받습니다. 학생들에게 중간고사, 학기말고사, 졸업시험을 치르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괴롭게 하거나 망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성적을 향상시키고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학생들을 불행하고 어렵게 하려고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하여 선생님은 시험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온 시험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여러분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영적으로 성숙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이 평안할 때, 군사력이 강할 때 ,그들이 태평성대해서 이웃나라의 조공을 받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와 개인이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받을 때 ,회개운동과 종교 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갔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고난의 비를 맞으며 신앙이 자라납니다. 시험은 피할 수 없을때가 많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시험이라면 즐겨보십시오.
바울은 롬5:2-4에서 이 시험을 즐기겠다고 말합니다.
"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우리 홀로 가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가 주십니다. 시험이 올때면 주님이 시험받는 자를 도와 주십니다.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43:1-2)
그러므로 시험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시험을 기쁘게 여기십시오
2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너희가 예기치 못한 시련을 당하거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쁘게 여기란 말의 뜻은 아무리 슬퍼할 만한 일을 만나도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시험 중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이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여길 만한 가운데서도 결코 낙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위해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시66편 10절이하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 (시66:10-13)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끌어 그물에 들게 하시며"-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셨으며"- 육신의 곤고함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 철저하게 깨어짐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시고 풍부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시험은 여러 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적인 물질 때문에 시험이 올 수도 있습니다. 물질이 부족한 것도 시험이요 물질이 풍부한 것도 시험입니다. 여러분 물질이 많은 것이 왜 시험이냐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로또복권에 당첨되면 아마 엄청난 시험거리를 끌어 앉은 것이 될 것입니다. 로또복권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돈을 갖게 됨과 동시에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잠30: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믿음 안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성공이나 형통이라는 말, 얼마나 좋습니까? 성공이나 형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성공이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젊은 부부가 사업을 시작합니다. 아주 열심히 주님을 섬기다가 갑자기 교회에 출석하는 일을 멈춰버렸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사업이 바빠서 주일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업의 형통이 오히려 신앙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형통은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것이 잘되고 있습니까? 형통할 때 조심해야 하십시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형통하기에 우리의 영혼이 나태해진다면 그 형통과 부요는 자기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있지만 시험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접근해 옵니다.
첫째는 사탄이 우리를 직접 공격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에 대해서 희미하게 만들거나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둘째, 세상을 통해, 세상의 문화를 통해 우리에게 공격하는 것,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세상을 말합니다. 로마서 12장에서 말하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던 세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이룩한 사회, 문화 그리고 가치체계로 구성된 세상을 뜻합니다.
세상의 문화에서 오는 시험은 법을 어기거나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못된 짓을 하게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험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영적인 면에서 큰 도전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욕심을 통해 공격해 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조심하십시오
둘째로, 시험이 오면 참고 지내야 합니다.(인내가 필요함)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
시험이 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시험을 주시면서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능력도 주심을 믿으십시오. 그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을 성숙케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전 10:13)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이루어집니다. (욥의 시험), 허락하시는데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십니다. 언제 길을 내십니까? "시험당할 즈음에" 입니다.
시험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시험을 피하지 마십시오. 피하면 피할수록 시험은 눈덩이처럼 굴러 나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 적극적으로 대항하십시오.
3.그러면 무엇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까?
1)기도로 이겨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8).
그렇습니다. 주님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에게 다가온 시련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십니다.
히4: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에게 다가온 시험은 주님이 기도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온 시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결과가 십자가를 기도해서 안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시험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고가는 시험의 십자가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라고 했고 기도하다가 조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한시라도 깨어 기도할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한다면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32)
야고보도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5:13)고 함으로 기도가 바로 시련을 극복하는 비결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은 모여 기도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도 그들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미합니다. 이때 그들은 감옥이라는 시험을 기도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2)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험이나 에덴 동산의 시험은 대표적인 마귀의 유혹이었습니다.
마태복음4장의 기록에 보면" 사탄이 예수님을 찾아와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마귀의 시험에서 주님은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어떠했습니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님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었지만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창세기 2장 17절에서 아담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그런데 하와가 뱀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3)라고 했습니다. 죽으리라는 말씀을 어떻게 바꿔놓았습니까? 죽을까하노라고 바꾼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은 마귀가 말씀을 들고 와서 말씀으로 유혹합니다. 이 말씀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마귀의 유혹에도 성경말씀으로 대처합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 것이라"(신8:3) 하셨고, 절하라니까 "오직 경배받으실 분은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또,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신6:16)는 말씀으로 호령을 쳤습니다.
우리에게 마귀가 시험할 때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십시오.
다윗은 자신이 범죄치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시119:11).
3)시험이 왔을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순종)하십시오 .
요일5:4-5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라고 했습니다.
욥의 시험은 엄청난 고난으로 다가왔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다가온 고난을 욥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갑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며 그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라며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엄청난 시련을 이기게 됩니다.
요셉 역시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했지만 하나님만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끝까지 순종함으로 이겼습니다. 고기를 못 잡아 큰 시련에 빠졌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 쪽 깊은 데 그물을 던져 그 시련의 순간을 풍성함으로 극복합니다. 나아만 장군도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함으로 문둥병이란 시련을 이깁니다. 성경에는 엄청난 시련과 난관, 질병과 고통에 쌓였던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한 기록이 많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한 사람이 남의 집에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하인을 조롱하기를 "나는 예수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도 없이 잘만 사는데, 너는 예수를 믿는데도 왜 늘 어려운 시험을 당하느냐? 그럴바에야 믿지 않는 게 더 낫겠다" 라고 했습니다. 간혹 이런 이야기를 우리도 주위에서 듣지 않습니까? 이럴 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때 이 하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노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가령 말입니다.
사냥 중에 사슴 두 마리가 있어 총을 쏘았는데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다리에 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간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쪽 사슴을 보고 달려가겠습니까?"
"그야 죽은 놈은 내 수중에 든 것이나 다름없으니 산 놈부터 쫓아가 잡아야지" "옳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험이 없는 것은 영혼이 죽어 마귀의 것이 되어버렸으므로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는, 마귀가 이를 방해하여 자기 수하에 넣을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니 시험을 당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기에 고난과 시험이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17:14-15)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케 하시려고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단련하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기에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성도를 유혹합니다.
어느 시험이든 시험은 우리를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시험없이 자랄 수 없습니다.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십시오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한 성도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름다운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믿음이 연단을 받아 정금과도 같이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인내로 인하여 신앙 인격이 성장하고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인정을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인생의 시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십시오
그러므로 시험이 오면 하나님께 더 인정받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믿은으로 시험을 통과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