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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크수도원 ... 빈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대 데레사의 기도는 순례의 나침반이
다. 이른 아침 멜크수도원으로 간다. 독일을 떠나오니 창에서 제라늄이 사라졌다. 린츠를 지나 유럽 최대의 바로
크 건축물로 손꼽히는 멜크수도원에 닿는다. 콜로만 성인과 레오폴트 3세가 지키고 선 문을 들어서니, 작은 분수
를 가운데 둔 건물들의 이마에 그려진 뭉크풍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추기경의 네 가지 덕목인 정
의와 지혜, 강함과 공평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황실 사람들의 숙소로 이용된 까닭에 수도원에서 유일하게 난방이 되었던 건물이 이제는 박물관이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부부의 초상이 걸린 입구를 들어서니, 베네딕토수도회의 태동부터 발전 과정이 열두 개의 형상으로 전
개되어 있다. 사람들이 미로에서 길을 찾듯이 갈 길을 찾던 시절에 베네딕토 성인이 밝힌 진리의 길!
멜크수도원
우리는 바덴베르크성의 유물들을 구경하고, 바로크시대의 황금빛 성물들과 콜로만 성인의 정강이뼈를 만난다.
계몽군주 시대에, 깨어 있으면서 백성을 위해 할 일을 찾았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제프 2세의 흔적은 자못
설득력 있었다. 그는 농노폐지, 세금개혁, 종교개혁 등을 단행한 인물이었는데, 죽으면 빨리 흙으로 돌아가야 한
다는 전제로, 파놓은 무덤에 시신만 빠지게 한 절약관과 화려한 비단 제의 대신 오랫동안 쓸 수 있도록 만든 가죽
제의 등은 나름의 철학이 묻어나는 유물이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흐르는 방을 지나 고딕 시대의 반동으로 등장한 도나우 학파의 접이식 제대화를 본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들은 물었다. 예수님의 수난이 주제이지만 배경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의 일상이다.
그들은 비로소 인간에게 눈을 돌렸다.
박물관의 긴 복도와 대리석 홀을 빠져나와 만난 멜크의 아름다운 정경
음악이 흐르는 대리석홀을 빠져나오니 저만치 도나우강이 보이는 인구 5천의 마을, 멜크의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
에 들어온다. 성당과 그 아래 콜로만의 뜰에 서 있는, 순례를 준비하는 콜로만 성인의 입상을 보며 그 유명한 멜크
수도원의 서고 문을 연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를 통해 상상했던 이미지는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물론 경탄할 만한 서고이지만, 상상 속에서는 얼마나 더 의미심장하고 긴박한 구조였던가. 허허로운 마음으로 대
성당에 들어선다. 어마어마한 위용이다. 우리는 대성당 제대 옆으로 난 문을 통해 작은 경당에서 미사한다. 작지
만 화려함의 극치다. 황금십자가와 빛살과 천사들. 그 십자가 위에서 흑백의 예수님 얼굴이 우리를 응시하신다.
멜크수도원에서 만난 예수님 보리수나무로 만든,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십자가와
미사를 봉헌한 대성당 곁 경당의 예수님
신부님은 “알퇴팅은 예수님의 빈 무덤에서 시작된 부활과 구원처럼, 믿음으로써 성모님의 위로를 얻은 곳이다.
사도바오로는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길 만큼 그리스도로
변화했다”고 강조하신다. 마음이 밝아야 계시를 알아본다. 마음을 비워야 들린다.
대성당 제단에는 거대한 왕관 아래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구약의 여섯 인물이 서 있었다. 신앙은 싸움이며,
그 싸움에서 이기지 않고는 왕관을 얻을 수 없다.
멜크수도원 대성당 제대와 천장화
수도원을 떠난다. 사람들의 물결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이곳에 오다니, 감사할 뿐이다. 수도원 앞 어둔 상수리
나무 건너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지나 우리는 빈으로 출발한다.
개략적인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들으며 빈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쇤부른궁으로 간다.
1560년경에 시작하여 1700년에 완공된 이 궁전을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보수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총 1441개의 방 중 수십 개의 방만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잠시 자유롭게 궁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는데, 정원의 미로 같은 산책로에 접어들어 다람쥐랑
놀다가 결국 시간에 맞추느라 헐레벌떡 뛰어간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략적인 계보를 듣고, 이제는 박물관이 된 궁전으로 오른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연회장의
천장화로, 마리아 테레지아 부부가 천상 구름 위에 좌정한 가운데, 1700년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한 나라들의
특산품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머큐리는 왜 나타났을까?
빈 정원에서 바라보는 쇤부른궁과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바라보는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어린 모차르트도 참석했다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결혼식 세밀화들을 보고, 푸른 중국의 방, 자개의 방,
나폴레옹의 방, 밀리언 굴덴과 고벨렝 살롱과 레드 살롱 등을 본다.
오랜 세월을 버텨 온 태피스트리는 성글어져서 꿰맨 자국이 역력하고, 비단도 낡아서 헤지고 있다.
바로크 시대 건축인데도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된 내부는 사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금실로 짠 베드
스커트가 호화로운 마리아 테레지아의 650킬로그램 침대를 보고, 그의 자녀들의 초상화가 있는 방에 들어선다.
보석 같은 얼굴, 철없는 꽃 같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거기 있었다. 분분한 그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그 영화로운
궁에서 자란 공주의 미완의 삶이 안타까웠다. 마리 앙트와네트나 오스트리아가 사랑하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시시나, 그 지극한 아름다움 뒤에 한 인간으로서의 불우함이 더욱 짙게 느껴진다.
모퉁이를 돌며 얼핏 작은 침대가 놓인 시종들의 방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전날 우박과 비로 연기된 바브라 스트
라이샌드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불어오는 바람 속에 사람들이 분주하고, 진한 말똥 냄새가 코를 찌른다.
버스에 올라 링거리 쪽으로 간다. 작은 도시 비엔나를 둘러싸고 있는 링거리는 더 이상 성벽이 필요하지 않게
된 1800년에 도시 확장을 위해 성벽을 허물어 만든 길이다. 유겐트 스타일의 바그너빌라를 지나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내린다. 햇살이 강하다. 자연사 박물관과 예술사 박물관이 양 날개처럼 선 광장을 건너 들어간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영웅광장의 청동상을 보며 잠시 앉는다. 유모차에 탄 천사 같은 아이가 연신 우리를 보고 미소를 보낸
다.
다시 거리에 진동하는 말똥 냄새를 맡으며 슈테판 성당으로 간다. 파르테논 신전을 본 딴 국회의사당과 시청사를
지난다. 검고 아름다운 슈테판 성당에서 모차르트가 결혼했고, 그의 장례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성당 외벽에는
재건축 당시 있었던 공동묘지의 묘비들이 마치 부조처럼 붙어 있다.
성당 안 성물방 문설주에는 아일랜드 왕족 콜로만 성인의 피가 묻은 돌이 있어서, 치유를 빌며 기도하고 나온다. 종
소리가 들리고, 향냄새가 퍼진 성당을 나서니 온통 어두워져 있다. 그래도 후텁지근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데, 기어이 비
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한다. 비 내리는 비엔나. 버스 안에서 저녁기도를 하고 나니 비가 멎는다.
슈테판 성당 고색창연한 성당의 외관과 성물방 한 모퉁이에서 만난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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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멜크수도원은 찾아가기가 아주 까다로운 곳이다. sound of music의 촬영지인
오스트리아 인스부르그의 호수 옆 환상같은 아름다운 라크 호텔에서 하룻밤을 투숙하고
아름다운 호수와 어울아진 그림같은 그곳 정경에 반하여 떠나기 싫은 것을 일정 때문에 억지로 떠나며
다뉴브강을 따라 멜크수도원을 정말 어렵게 찾아갔다.
그러나 수고한 보람이 있어 그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수도원이 얼마나 큰지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그리곤 수도원 안에 있는 성당의 장엄하고 웅대하며 화려함에 더 놀랐다.
모든 규모가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 버금갔다. 고생하며 가 볼만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