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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01/ by 얼음빙수/
도경수는 모범생의 요건을 모두 갖췄으나 공부를 잘하진 못했다.
도경수는 흥미 없는 과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도경수는 천생 문과인이었다.
도경수가 중간고사 수학 답안지에 시를 썼다.
서술형 1번 문제였던 '수열의 극한'에 관한 오행시였다.
수: 수가 뻔했지만 당했다
열: 열을 올려선 안 된다
의: 의연하게 넘어가라
극: 극한, 나는 그런 것 모른다
한: 한심한가
도경수는 수학 선생님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상관없었다.
사실 도경수는 방황하고 있었다.
한군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날뛰는 마음과 달리,
몸은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도경수의 방황은 너무나 얌전해서
외려 다른 친구들의 평범한 삶이 극성맞게 느껴졌다.
도경수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노력하기도 귀찮음에 금세 좌절됐다.
도경수는 당장 직업전선에 뛰어들어도 모자랄 가정형편이었으나
치열하지 않게 공부하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문계고 3학년 학생이었다.
도경수는 조용히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마지노선을 선택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도경수는 스펙이 아닌 시간을 벌러 대학에 간다.
바로 뛰어들기에 아직은. 아직은.
도경수는 4년이라는 시간 말고 무엇과 함께할 것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도경수는 흥미 없는 과목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관심과 뚝심으로 쌓아온 어중간한 성적 탓에 인문계열에선 오직 철학과만이 도경수를 반기고 있었다.
도경수는 결국 외면해왔던 태초로의 회귀를 꿈꾼다.
그냥 나는 자연에. 자연에 살으리랏다.
/식물인간/ 01 / by 얼음빙수/
도경수는 사회부적응자였다.
도경수는 새 학기가 되면 극도로 긴장을 하는 탓에 배가 아팠다.
도경수는 경직된 나머지 점심 급식을 궁금해하는 것도 잊었다.
도경수는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도경수는 가만히 착하게 앉아있었다.
도경수는 타고난 모습이 귀염성있어 사람들이 쉽게 다가왔다.
도경수는 놀리는 맛이 있는 나긋나긋한 돌아이였다.
도경수는 섬뜩한 농담을 즐겼고, 그 농담은 탄탄한 마니아 층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의젓하고 진중한 도경수를 신뢰하여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기도 했다.
나름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도경수는 그 안에서 여전히 배가 아팠다.
도경수는 사람보다 동물이,
동물보다 식물이,
식물보다 무생물이 편했다.
그래서 도경수는 반려 기왓장을 키우고 있었다.
8세 무렵 집 앞 태권도 학원에서 얻어온 기왓장이었다.
키울 생각까진 없었는데
국어 교과서에 실린 '웃는 기와'를 접한 후, 그것은 도경수에게 와서 반려 기와가 되었다.
도경수의 반려 기와는 웃는 기와와 전혀 다르게 생겼다.
[사진1- 웃는 기와]
도경수는 기분이 복잡스러울 때나 혹은 복잡스럽지 않을 때에도
반려기와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기와야, 있지. 난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가 않아.’
반려기와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너도 사람이잖아.’
도경수가 웃지 못하는 반려기와를 대신해 웃었다.
‘그래서 싫은 거야.’
/식물인간/ 01/ by 얼음빙수/
도경수는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방치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대가는 끔찍했다.
도경수의 특별활동부서가 수학토론반이 되고 말았다.
“다들 자습하고, 모르는 문제가 있다면 질문하도록.”
수학 담당인 학생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도경수는 수학토론반에서 국어 모의고사 오답노트를 했다.
가장 아끼는 황토색 펜으로 자신이 왜 그 문제를 틀릴 수밖에 없었는지까지 추리해서 적었다.
반항은 아니고 방황이었다.
도경수는 특별활동시간과 그 담당 선생님이 너무나도 껄끄러웠다.
도경수는 수학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보기 전에 먼저 알아서 피했다.
눈을 마주치면 돌처럼 굳을까 봐서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도경수는 고개 숙이고 뭐하니?”
메두사가 말을 걸어왔다.
“국어 모의고사 오답노트요.”
“수학토론반에서?”
“자습 주셨잖아요.”
“네가 진정으로 자유를 즐기다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는 말뿐인 자유였나요?”
도경수는 교무실로 불려갔다.
“왜 수학을 공부하지 않는거니. 1학년 때부터 점수가 아주 낮더구나. 노력하면 누구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과목인데, 포기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서 말이야. 그리고 시험을 잘 보고 말고와는 별개로 수학토론반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니. 선생님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네가 눈을 그렇게나 동그랗게 뜨고 이야기 할 줄은.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대학은 정했니? 어느 전공을 생각하고 있기에 수학을 포기한 거지? 아무리 문과여도 수학점수는........”
/식물인간/ 01/ by 얼음빙수/
도경수는 국어 모의고사 오답노트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두 개나 받았다.
11가지나 되는 색깔 볼펜으로 오답노트를 물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장을 하나만 받은 마동석이 도경수를 노려봤다.
그런 마동석을 우지호가 노려봤다.
신상품인 에메랄드색 향기 나는 미피펜이 탐났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경수는 고민했다.
‘내 삶의 철학은 이미 확고한데,
철학을 배우기 위해 빚까지 져가며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여야 하는가.’
“야, 마동석. 나 그 미피펜좀 써보자.”
우지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마동석에게 달려들었다.
도경수는 깜짝 놀랐으나 다시 고민을 이어갔다.
적어도 기말고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진로의 방향을 결정해야 했다.
고3 생활은 상담의 연속이었다.
도경수는 자신이 담임 선생님과 단 둘이 앉아 면담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사보다 긴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담임 선생님과 도경수의 사이가 눈에 띄게 어색했다.
도경수의 담임인 장성규 선생님은 도경수에게 사회복지전공을 추천했다.
“경수야, 선생님이 3년 동안 경수 담임을 해봐서 아는데, 넌 아주 착하고 대단해. 진심을 다해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을 거라, 선생님은 믿어 의심치 않아. 따라서 사회복지학과를 경수, 바로 너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남을 돕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래 맞아. 그럴 수 있어. 사실 착한 것과 남을 잘 돕는 것은 별개야. 선생님이 간과했어. 마음만 앞서 나갔다가는 큰일나는 수가 있지. 왜냐하면 나와 남의 마음은 불일치하기 십상이거든. 경수야, 인간이란 원래가 개성이 매우 강한 존재란다. 그래서 사람을 대하는 일에는 섬세하고 예민한 현실의 감각이 필요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감정소모가 상당할 거야. 부담될 수 있어. 경수가 부담감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모습, 선생님은 원치 않아. 다른 사람 몸과 마음 편하게 해주자고 경수의 몸과 마음이 골로 가면 안 되는 거야. 경수가 똑부러지게 잘 말했어. 의사 표현을 아주 잘하네. 역시 경수. 굿 보이.”
장성규 선생님은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하고 있었지만 전혀 충격받지 않은 척했다.
도경수는 속으로 쿵따리샤바라를 부르며 쪼갰다.
‘역시 성규 쌤, 재밌어.’
도경수는 사회복지학과도 철학과도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경수는 남을 돕고 싶지 않았고, 그의 인생 철학은 ‘그럴 수도 있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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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쳤다..... 오랜만에 정주해요ㅐ요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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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퇴근하고 정주행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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