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서러운 우리 손님들을 위해서 조금 일찍 국수집에 갔습니다. 떡국을 끓일까 밥을 할까하다가 반찬이 여러 가지이니까 떡국보다는 밥이 좋을 것 같아서 진한 쇠고기 육수에 대파 송송 썰어서 얹어드리면 될 것 같았습니다.
곰국, 순무김치, 돼지불고기, 갈치구이, 숙주나물, 도라지 무침, 동태전, 고사리나물, 어묵조림, 장아찌 그리고 후식은 귤을 내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오스딩 형제님과 프란치스코 형제님이 오셨고, 대성씨와 옥련동 민들레의 집의 선호씨와 성욱씨가 왔습니다. 손님이 많이 오시더라도 설거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전 열시부터 열한 시까지 식사하신 손님만 쉰 명입니다. 설날에는 무엇을 드셨는지 물어보면 컵라면 하나 드셨다는 분, 교회에서 떡과 과일을 주어서 먹었다는 분, 그냥 굶었다는 분, 서울에서 오신 분은 서울역에서 떡국을 드셨다는 분이 있습니다. 치질이 걸렸는지 의자에 엉거주춤 앉아서 아주 불편한 자세로 세 번이나 접시에 가득 밥을 담아 드시는 분을 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민들레 식구인 종현씨가 왔습니다. 설 전날에 만두국을 사 먹은 것이 탈이 났던 모양이라면서 설날 하룻동안 배가 아파서 그냥 굶었다고 합니다.
기성씨는 어제 살던 집에 있던 물건들을 옮기고 월세 정산을 하고 토요일에 자기 집으로 간다고 합니다.
오후에 프란치스코&아녜스 부부가 아이들 둘과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형제는 25년만에 만났습니다. 25년전 제가 새남터 성당에 파견나갔을 때 주일학교 교사들인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몇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전에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작은아이가 바이올린 연주를 했습니다. 아주 잘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바이올린 연주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아빠 엄마의 설거지를 돕고, 손님들을 접대하고, 함께 밥과 반찬을 먹고...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서울 가양동 성당에 다니는 글라라 자매님이 혼자서 용기있게 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설거지를 어찌나 잘 하시는지요.
오후에는 봉사자들이 너무 많아져서 혼란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아오스딩 형제님과 프란치스코 형제님이 설거지 자리를 양보하셔서 나중에 오신 분들도 조금 할 수 있었습니다.
용산에서 밥도 못 먹고 굶고 있는데 민들레국수집에서 밥 먹고 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온 영등포 손님이 있었습니다. 무료급식소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심하다고 비웃고 그랬는데 자기가 그 꼴이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커피 한 잔까지 대접받고 기분좋게 갔습니다.
경희할머니는 이제 일흔 다섯입니다. 딸과 아들이 둘이 있는데 마흔이 넘었습니다. 둘 다 미혼이고요. 경희할머니가 벌어야만 세 식구가 삽니다. 파출부 일을 나가시는데 한 달에 이십 칠팔 만 원 정도 법니다.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아야합니다. 아들과 딸이 있기에 기초생활 수급권자도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한 입이라도 줄여보려고 경로식당에 가서 식사하시지만 감사가 있을 때는 어렵습니다. 빈병과 파지를 모아서 고물상에 가져가 보지만 돈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도 간혹 제게 소주 한 병 선물하곤 합니다. 치아가 부실하셔서 접시에 담은 반찬이라곤 어묵조림 몇 개뿐입니다. 급히 계란 프라이 두 개를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갈치를 한 토막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십니다. 한 토막을 더 드렸습니다. 봉사자들이 뼈를 발라드리니까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맙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고기국물을 맛있게 드십니다. 집에 가서 냄비를 가져오시도록 했습니다. 고깃국을 한 냄비 드렸습니다. '소금 쳐 드릴까요?' 했더니 '그냥 가지고 가서 쳐 먹겠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프란치스코&아녜스 부부가 설날음식을 차에서 가져와서 할머니께 나눠드렸습니다.